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92)
92화 성불 의식 (2)
이강은 온몸에 침을 꽂은 채 누워 있었다.
그렇기에 주변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강은 주로 유정신과 금침의괴가 서로 대화를 나누는 일로 상황을 판단할 뿐이었다.
불사신검을 성불시키는 의식이 잘 진행되고 있구나.
자신의 모습은 마치 금으로 된 가시를 가진 고슴도치 꼴이겠구나.
성불을 하려는 불사신검이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겠구나.
이미 죽어 본 그는 물론이고, 그를 성불시켜 주려는 청림의 도인들도 사후세계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르니까.
무언가 변한 것은 이강의 시야에 불사신검이 들어왔을 때부터였다.
그 말은 땅에 서 있던 불사신검이 공중에 떠올랐다는 뜻이었으니.
게다가 그가 뿜는 금빛 광채는 유정신이나 금침의괴의 눈에도 보이는 듯했다.
불사신검은 이강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가 떠나려는 곳을 바라보듯 하늘을, 정확히는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볼 뿐.
그런 불사신검에게 이강이 약간의 섭섭함을 느꼈음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이강은 불사신검의 성불을 축하하는 마음이었다. 그가 이 지상에서 얼마나 큰 고통을 겪어 왔는지 알았으니까.
하지만, 일은 그렇게 쉽게 돌아가지 않았다.
“이런, 이럴 수는……!”
유정신의 아찔한 외침과 함께, 이강의 몸에도 변화가 느껴졌다.
속에서 후끈한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는 느낌.
“커헉-!”
이강은 기침과 함께 무언가를 토해 냈다. 검붉은 피였다. 금침의괴가 당황해서 이강의 입가를 닦아 주었다.
“이런……!”
“크윽. 뭡니까.”
이강은 당황하면서도 몸이 가벼워졌음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사지가 지끈거리고 온몸에 열기가 느껴졌다. 절맥증인 그로서는 거의 겪어 보지 못한 일이었다.
“몸에 있던 탁기를 토해 낸 거다.”
“그러면 좋은 것 아니에요?”
이강이 황당해서 그렇게 물었다. 예고도 없이 일어난 일이지만, 좋은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침의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오히려 심각한 표정으로 구슬땀을 흘릴 뿐.
“이래서는 안 돼. 어디부터 잘못된 거지?”
유정신이 불안한 목소리로 내뱉는 말에, 이강 또한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알아챘다.
불사신검은 여전히 멍하니 떠 있었다.
뿜어내는 광채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무언가를 흘리고 있었다.
황금빛 안개 같은 것이 그의 발끝을 따라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강은 억지로 고개를 돌려서 그 안개를 따라갔다.
“이건…….”
그 빛 안개는 바닥의 진식을 따라서 이강의 몸으로 흘러들어 오고 있었다. 넘치는 힘이 어디서 찾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저게 조상님이 가지고 계셨던 영력입니까?”
“그래…….”
이강의 몸에 흘러들어오는 영력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거세질 따름이었다.
금침의괴는 구슬땀을 한 방울 흘리더니, 버럭 소리를 쳤다.
“정신아! 결정을 내려라!”
“아직 원인을 알 수 없습니다…….”
“이 애를 죽일 셈이냐!”
이강은 눈을 크게 떴다.
“죽어요? 누가요.”
금침의괴는 물끄러미 이강을 바라봤다.
이강은 손가락을 들어 자신을 가리켰다.
“내가요?”
그리고 유정신이 결단을 내렸다.
“끊읍시다, 사형!”
“좋다!”
금침의괴가 번개 같은 속도로 이강의 몸을 훑었다.
파바바바박-!
애써 세밀하게 박아넣었던 금침들이 일제히 뽑혀 나왔다. 이강의 몸에는 핏방울 하나 흐르지 않았다. 놀라운 솜씨였다.
“물러나라, 이강. 의식을 멈춘다. 이러다가는 네가 터져 죽을 거야.”
이강은 다양한 방법으로 죽는 것을 상상해 왔다.
하지만 터져 죽는 것은 상상해 본 적이 없으니. 그는 일단 금침의괴의 손을 잡고 석판에서 일어섰다.
그제야, 이강은 공동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
불사신검은 의식도 없이 허공에 떠 있었다. 그리고 마치 피를 흘리듯 자신의 영력을 땅으로 흘리고 있었다. 금빛 영력은 마치 불사신검을 지상에 매어 두는 끈 같았다.
“대체 왜…….”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마치 강바닥에서 수초에 발이 묶인 익사자처럼 무력하고 고통스러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 아래에 유정신이 서 있었다.
그는 새빨갛고 거대한 깃발을 들고 있었다. 무슨 용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범상치 않은 물건이었다.
“의식이 도중에 실패했다!”
유정신은 그렇게 외침과 동시에 자신의 앞에 깃발을 박아 넣었다.
쿵-!
“혼백이 명계로 넘어가려는 도중.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갇혀 버렸어.”
공동에는 바람 한 점 불지 않았건만, 깃발이 세차게 펄럭이기 시작했다.
“우선 의식을 중지할 테니……!”
유정신의 머리카락도 깃발과 함께 휘날렸다.
그와 동시에, 불사신검에게서 흘러나오던 영력의 기세가 줄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뿐이었다. 곧, 홍수로 둑이 터져 나오듯 영력이 거세게 흘러나왔다.
금침의괴가 놀라서 외쳤다.
“아니, 금침을 뽑았는데도 영력의 유입이 멈추지 않는다. 정신아!”
이강은 놀라서 자신의 모습을 살폈다. 불사신검이 흘리던 영력은 계속 그에게 흘러들어 오고 있었다.
하지만 유정신은 깃발을 제어하는 데에만 온 힘을 쓰고 있는 듯했다.
“육시럴!”
크게 놀란 금침의괴가 이런저런 시도를 했다.
이강의 혈도 곳곳을 두들기기도 했고, 다시 침을 놓았다가 빼기도 했다.
하지만 이강의 몸은 영력을 계속 게걸스럽게 흡수했다.
이강의 표정이 불안해질 때쯤, 금침의괴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후우, 이거 어쩔 수 없군.”
“……해결하신 겁니까?”
“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법이지.”
그는 이강의 어깨를 꾹 잡았다.
“남기고 싶은 말이 있느냐?”
“그게 무슨 말이에요.”
“유언 말이다. 너는 곧 몸이 터져 죽을 거야.”
금침의괴의 말에 이강의 눈동자가 떨렸다.
“농담이 아니다. 시간이 없어 음, 십, 구.”
“몸이 왜 터집니까!”
“인간이 수행도 없이 저만큼의 영력을 넘겨받았으니, 당연한 일이지. 육, 오.”
“저는 아직 멀쩡한데요?”
“내 명예를 걸고 진실이다. 이거, 백씨세가에 어떻게 말을 전해야 할지. 이, 일.”
이강이 가슴을 콱 움켜쥐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죽어서는 평안하거라!”
금침의괴는 이강을 와락 껴안았다.
자신이 살리지 못한 환자에 대한 미안함 때문일까. 이강이 펑 터져 옷을 버리더라도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이강아아아!”
유정신이 절규하고, 금침의괴는 질끈 눈을 감았다.
하지만 퍽 하면서 내장이 튀거나. 옷이 피에 젖어 뜨끈해지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눈을 뜬 순간. 이강이 금침의괴를 냅다밀쳤다.
“진짜 죽는 줄 알았네!”
“어, 어떻게 살아 있냐?”
금침의괴는 바닥에 주저앉아서 깜짝 놀랐다.
이강은 터지기는커녕 멀쩡한 모습이었다.
“그럴 리가, 분명 죽어야 하는데!”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합니까, 예?”
천하사대신의라는 이름을 걸고, 금침의괴는 이강이 죽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강이 죽지 않자 크게 놀랐다.
그 탓에 금침의괴는 고수인 자신을 이강이 가볍게 밀쳐 버렸다는 것에 의문을 갖지도 못했다.
“요괴나 신선도 아니고, 인간이 그런 영력을 갑자기 받아들이게 되면. 반드시…… 환골탈태라도 하지 않은 이상 몸이 터져 죽지.”
그의 황망한 중얼거림을 듣고 이강이 멈칫했다.
어쩐지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삼원성화의 구근이랑 연관이 있나?’
삼원성화는 탈극의 영약이라고 했다. 예전에 그것을 먹은 남궁가 가주는 환골탈태라는 기연을 얻었다는데, 정작 이강은 그 구근을 먹고 큰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제가 절맥증이라……. 체질이 특이해서 그런 거겠지요.”
“아니, 절맥증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야. 체질을 뛰어넘는 문제다.”
하지만 이강은 몸이 약간 화끈할 뿐 몸이 달라진 점을 느낄 수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불사신검으로부터 흘러들어 오던 영력이 멈추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유정신이 깃발 앞에서 쓰러져 있었다. 그 사이에 그가 불사신검의 영력을 멈춘 것이다.
“서고주님!”
“허엇! 정신아!”
이강과 금침의괴는 얼른 쓰러진 유정신에게 달려갔다.
다행히 유정신은 의식이 있었다. 다만, 몸의 기운을 너무 끌어쓴 탓인지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금침의괴가 추궁과혈을 해 주자 겨우 얼굴에 혈색이 돌아왔다.
“의식이 실패했다.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내 능력의 부족으로 이강 너를 죽일 뻔했구나.”
유정신은 힘없이 누워서 이강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이강은 그런 그를 탓하지 못했다.
금침의괴가 유정신을 나무랐기 때문이다.
“천신촉대에 육혼번(戮魂幡)을 같이 쓰다니. 수명이 몇 년은 깎였겠구먼.”
“급한 상황 아니었습니까, 사형.”
유정신이 들고 있던 ‘육혼번’이란 깃대는 제 수명을 담보로 혼의 움직임을 강제하는 보패였다. 그는 이강을 위해서 스스로의 수명을 소모한 것이다.
곧 제자로 들일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남이라고 할 수 없는 이강에게 어떻게 그렇게까지 하는지.
이강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자칫하면 불사신검께서 구천(九天)을 떠도는 망령이 될 뻔했지만. 그런 일을 막기 위해 천신촉대를 가져온 것이다.”
이강이 고개를 돌려 천신촉대를 바라봤다.
저 보패의 쓰임새가 여태까지 궁금했는데, 곧 그 사용처를 알 수 있었다.
“이제 촛불이 하나 꺼질 것이다.”
휘릭-
그 말대로, 바람 한 점 없었는데 가장 아래의 촛불이 꺼졌다.
“천신촉대는 결계법(結界法)을 이용해서 대상을 고정시켜 두는 보패란다. 하나의 촛불이 꺼졌으니, 이제 여덟 개 분량의 시간이 남았겠구나.”
유정신은 금침의괴를 돌아봤다. 그리곤 쇠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자만했습니다. 저 혼자서는 할 수 없어요. 보조가 필요합니다.”
“보조라니, 영선궁에서 도선 사형을 부를까?”
“아니요, 영화제자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면……. 은거하신 장로님들을 찾거나 서장에 간 녀석들을 부를까?”
“그럴 시간은 없어요. 천신촉대라 해도 저 정도 혼을 오래 묶어 둘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면 어쩌자고!”
“담현이가 필요합니다.”
“……!”
금침의괴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이강 역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듣기로는 분명 담현은…….
“그놈은 제 스승을, 너를 찌른 놈 아니냐.”
“예.”
“그런 놈을 믿고 의식을 치르자고?”
유정신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담현이가 절 찌른 것은 맞지만, 아시지 않습니까.”
“……허나 그놈은 분명 제정신이 아니야. 위험하다.”
심각한 표정의 금침의괴를 두고, 유정신은 이강에게 담현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 * *
담현은 분명 이상적인 제자는 아니었다. 붙임성이 좋은 것도, 제 사부한테 싹싹하게 굴던 제자도 아니었다.
오히려 단점이 더 많았다.
어릴 적부터 염세적이었고, 성정이 도가 무인에 맞지 않게 잔혹했다. 사교성이 부족해 친구도 없다.
아니 사실 그 정도가 아니라, 담현은 인간에 대해 전반적인 혐오를 품고 있었다.
그 반면에 동물을 아끼고 사랑했으나 오히려 그 점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고깝게 보였으리라.
다만, 그가 처음부터 스승을 해한 패륜아는 아니었다. 그 일은 정말이지 비극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유정신의 유일한 제자로서, 담현은 대서고의 사서로 일했다.
사부 외에는 다른 사람들을 만날 일이 적었으니, 어쩌면 그에게는 천직이나 다름없었을지도 모른다.
담현은 기문둔갑과 괴력난신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보패의 관리 역시 흥미가 있었는지 곧잘 해 왔다.
하지만 유정신은 담현의 정신적인 취약함을 간과하고 말았다.
보패 중에서 특히 위험한 금기(禁忌) 보패를 정비하던 날이었다.
사고가 일어났다. 음기가 유독 강했던 어느 날, 금기 보패 하나가 폭주하고 담현은 크게 당하고 말았다.
머릿속에 암기(暗氣)가 깃든 것이다.
그 대가는 광증이었다. 순간 미쳐 버린 담현은 스승을 찔러 버렸다.
정신이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피 묻은 칼에 절규했다.
“잠깐, 암기요? 예전에 듣기로는 여우요괴에 홀려서 그랬다고…….”
“그래, 그렇게 알려졌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야. 금기보패를 잘못 다루다가 사고가 났던 거다.”
그리고 며칠 뒤, 담현은 스스로 참회동에 들어갔다고 한다.
유정신은 그렇게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 일은 담현의 요청에 의해 비밀로 숨겨졌다고 했다.
유정신은 담현이 사실 마음 따듯한 아이라고 주장했다. 금침의괴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문도들도 내심 담현이가 착한 아이라는 것은 알고 있을 거다. 리연이에게 가서 도와달라고 해 보거라. 그 아이라면 흔쾌히 도와줄 거야.”
유정신은 그리 조언했다.
불사신검을 망령으로 만들 수는 없는 법이다.
이강은 진리연에게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때마침 그녀는 유수린과 함께 있었다.
“……조금 일이 생겨서. 담현 사형의 도움이 필요하게 됐습니다.”
그말에 웃고 있던 진리연과 유수린의 표정이 얼음처럼 굳었다.
곧, 유수린이 벌떡 일어서서 외쳤다.
“그 새끼는 미친놈이에요!”
유수린은 엄연히 제 사숙인 담현에게 쌍욕을 퍼부었다.
이해할 만한 여지는 있었다. 그가 제 아버지를 찔렀으니.
진리연이 그런 유수린을 말렸다. 여기서는 어른스러운 그녀의 의견을 듣는 게 나으리라.
“수린아.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놈이라니.”
“…….”
담현을 참회동에서 데려오는 게 맞을까.
이강의 표정이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