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46)
“할아버지.”
“으응?”
“이거······.”
등교 준비를 하던 황민재는 할아버지를 향해 한 상자를 내밀었다. 황대식은 어리둥절했지만, 눈에 기대를 잔뜩 담고 있는 손자의 얼굴에 마지못해 상자를 열었다.
“신으세요.”
황민재는 다 헤져서 낡은 신발이 마음에 걸렸었다. 대뜸 찾아와 식구가 늘었는데도 군말 없이 폐지를 줍는 모습에 부채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해 모은 돈으로 황대식의 운동화를 샀다.
‘자기 거나 사지······.’
이런 선물을 받아본 게 얼마 만인가. 느릿하게 신발 끝을 매만지던 황대식은 괜히 툴툴거렸다. 그의 입꼬리가 살짝 떨렸다.
“······네 거 사지 뭐 이런 걸 사 왔어?”
“그냥 거슬려서요. 다녀오겠습니다.”
황대식은 손자를 붙잡았다.
“잠깐만, 이거······ 입어.”
“······할아버지 거 사지 뭐 이런 걸 샀어요.”
그가 내민 종이 가방 안에서 나온 것은 긴 롱패딩이었다. 황민재는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애써 억눌렀다. 저절로 입가에 경련이 일어났다. 좋으면서 감정을 참는 조손은 퍽 닮아 보였다.
“겨울 다 지났는데.”
“당장 올겨울에도 입고 내년에도 입으면 되지. 필요 없으면 버리던가······.”
“아뇨, 감사합니다.”
다시 뺏어가려는 황대식의 손길을 황급히 피한 황민재는 계절에 맞지 않는 패딩을 입고 뛰어갔다. 꽤 빨리 달리는데도 힘들지 않은지 입가에는 점점 웃음이 짙어졌다. 할아버지가 미래를 말한 건 처음이었다.
“더운 데 그걸 왜 입고 가······.”
황대식은 허허 웃었다.
그렇게 조손이 가까워질 무렵, 황대식은 길거리에서 알 수 없는 통증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주변 행인의 도움으로 찾아간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결과를 들으러 갔을 때는 생각지 못한 소식을 접한다.
“암······ 이라고요?”
“네, 당장 입원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치료를 권하는 의사의 말을 무시하고 황대식은 병원 밖을 나섰다. 어차피 입원해도 돈이 없었다. 제 입에 풀칠하기 바빠서 보험 든 것도 없었고 국가의 지원을 받아도 한계가 있었다.
정처 없이 거리를 걷던 황대식이 불현듯 제자리에 멈춰 섰다.
죽음, 불과 몇 달 전에는 그렇게 바랐던 일이었다. 하지만 막상 닥치니 기분이 싱숭생숭해졌다.
‘이제 와 목숨이 아까워졌나······.’
그러면 왜 지금은 달라졌나. 고작 몇 개월간 같이 살았던 손자 때문에?
그러면 아들은 정상이 아니니 버린 거 같지 않으냐는 결론으로 이어지니,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치밀어올랐다. 잠잠해졌던 아들의 마지막 음성이 들린다.
(콜록······ 아, 아버지······.)
“······늙으면 죽어야지.”
이젠 생각하는 것도 귀찮았다. 그냥 이대로 사라지는 게 죽은 아이를 위해서도, 손자를 위해서도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걸 왜 샀지······.’
그걸 사고 집에 도착해서야 제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고 황대식은 집안 깊숙한 곳에 처박아놨다.
하지만 그 상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호적에 들기 위해 신분증을 찾으려다가 함께 발견한 것이다.
‘우리 집은 이런 거 필요 없는데······.’
허름한 동네긴 해도 나름 갖출 건 갖추고 있었다. 이미 보일러가 있는데, 게다가 한 여름에 번개탄을 왜. 연탄도 없는데······. 마침 친구인 박지우가 했던 말이 잔상처럼 떠올랐다.
(야, 동반자살이 아니지 등신아.)
(뭐?)
(죽이고 자살하려고 한 거잖아.)
(그런 거 아니야······. 많이 후회하고 계신 거 같던데······.)
그는 할아버지를 처음 봤을 때의 일이 생각났다. 생애 처음 보는 할아버지에 기뻐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천장 위에 매달린 그 끈은, 결코 전등 따위를 고치려고 있는 게 아니었다.
(네 말대로 네 할아버지가 네 아빠를 그리워하고 계신다면······.)
(그러면 그때는 못 한 일을 다시 하려 하시지 않겠냐?)
그때도 애써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숨겨진 번개탄을 보자마자 그간 쌓아왔던 의심이 와르르 무너진다.
“왔어? 앉아라. 밥해주마.”
“이거 뭐예요?”
“······.”
황대식은 손자의 손에 든 물건을 보고 몸을 멈칫했다. 잘못 산 걸 알았지만, 오늘 밤에 반품해야지. 내일은 꼭 해야지······ 생각하며 미뤄왔던 일이었다.
그리고 그게 미련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자, 황대식의 입가에는 희미한 웃음이 번졌다. 무언가를 결정한 듯한 표정, 황민재가 다급해서 소리쳤다.
“이거 뭐냐고요!”
“소리도 지를 줄 알았구나.”
그게 훨씬 아이다웠다. 늘 제 눈치를 보면서, 제발 버리지 말라고 매달리는 것 보다.
“지금······ 그게 무슨······.”
유연서는 박승환이 끌어준 감정을 되새겼다. 어린 시절, 아직 범인의 정체를 몰랐을 때 느꼈던 감정.
나로는 붙잡을 수 없었던 ‘엄마’.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매달린 그녀를 다시 내리기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할아버지’는 정이 많으신 분이니 내가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으면, 어쩌면 나를 봐서라도 계속 생을 포기하시지 않을 거라고.
“잘못 산 거야······ 반품하려고 했어.”
“진짜요?”
“그래.”
지친 듯 한숨 쉬며 말하는 대답이 마음에 차지 않았다. 대뜸 무릎 꿇은 황민재가 엉금엉금 기어가 황대식의 바지 끝을 부여잡았다. 이것도 김 감독이 지시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냥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안 돼요.”
“안 해.”
“가지 마세요······.”
이렇게 잡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황대식의 종아리를 꽉 안았다. 이 발은 바닥에 꼭 붙어 있어야 해. 안 그러면······.
[연서야.]그는 잠시 시선을 위로 올렸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어? 엄마가 이렇게 가까웠던 적이 있었던가? 그래,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주변 환경이 변한다. 조연출이 어렵게 답사해 발견한 달동네 허름한 집이 아니라, 고풍스럽고 넓은 유 회장의 저택, 별채였다.
[엄마······.]왜 대답이 없으시지? 지금이라도 엄마를 내려 드리면 괜찮으실지도 몰라. 놀랐던 그가 엉금엉금 기어가서 이희서의 발목을 끌어안았다.
[엄마······ 거기 있으면 안 돼······.]그가 낑낑거리며 까치발을 들었다. 아, 키가 너무 작다. 그는 근처에 있던 무거운 의자를 끌어당겼다. 힘이 부족해 중간에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서 의자 위에 올라갔다. 종아리를 끌어안았지만, 그래도 역부족이었다. 이대로면 엄마가 죽을 거야. 그러니까 내가 계속 붙잡고 있어야지.
[연서야!] [오지 마! 보지 말라고!]이 모습을 누가 봐선 안 돼.
느낌이 이상하다. 계속 끌어안고 있어서 온기가 느껴져야 할 종아리가 얼음장 같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엄마······ 가지 마······.]그런데, 지금 내가 누굴 붙잡고 있는 거지? 할아버지였지, 아닌데? 할아버지는 밖에 계시잖아. 아, 그래. 엄마였지.
[아줌마, 내가 잡고 있었데······ 엄마가, 엄마가 이상해······.]“나 두고, 가지 마세요······.”
그 간절한 모습에 황대식 아니, 박승환이 울컥했다. 유연서가 과거와 현재를 구분 못 할 정도로 위태로운 상황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상대 배우의 감정을 더 고조시키는 효과가 생겼다.
황대식은 혀로 메마른 입술을 축였다.
“······그래. 미안하다.”
“가지 마세요······ 죽지 마세요······.”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어차피 오래 못 살아.”
이대로 숨기는 건 손자에게도 못 할 짓이다. 황대식은 덤덤하게 자신이 말기 암을 앓고 있다고. 치료는 돈이 많이 들고 쓸모없다고 고백한다. 그동안 황민재는 계속 가지 말라고, 죽지 말라고 흐느꼈다.
“컷! 좋습니다!”
명장면의 탄생을 직감한 김재호 감독이 기쁜 듯 크게 외쳤다. 그러자 숨죽여 지켜보고 있던 스태프 중 누군가는 손뼉을 쳤고,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좋았다.”
황대식에서 박승환으로 돌아온 그가 바닥에 엎어진 유연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평소라면 그 손을 잡고 벌떡 일어났어야 할 유연서가 잠잠했다.
“연서야?”
“흑, 흐윽······.”
“얘가, 얘가 너무 몰입했나 보네. 연서야. 형 봐봐.”
박승환이 당황해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그의 어깨를 잡았다.
“······엄마.”
“······연서야.”
“가지 마······.”
생기 없는 눈동자, 처참한 표정에 박승환이 다급히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몇몇 스태프들이 웅성거렸다.
“어떡해?”
“연서 씨 매니저 어디······.”
“지나가겠습니다.”
이태겸과 임승현이 그들을 옆으로 밀어내고 카메라 안으로 들어갔다. 김재호 감독의 지시에 카메라 감독은 뒤늦게 카메라를 옆으로 홱 돌려버렸다.
[만약에······ 내가 연기하다가 뭔가 이상한 거 같으면 네가 깨워줘.] [어, 어떻게?] [알아서, 잘. 임승현 씨도요.]박승환을 뒤로 물리고 바닥에 주저앉은 이태겸과 임승현이 그를 살살 흔들었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야, 유연서.”
“도련님.”
임승현이 유연서의 볼을 아프지 않게 찰싹 쳤다. 그래도 계속 엄마를 부르면서 가지 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믿음직한 임승현이 어떻게 해 보려고 해도 역부족이었다. 이태겸은 제 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러고 보니······ 늘 잘났던 유연서를 한 방 먹인 사건이 있었다. 그가 그렇게 억지 부리고 분개한 것을 처음 봤었다.
이태겸은 유연서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유연서 개허접. 매니저한테 게임 처 발렸죠?”
“이태겸, 지금 상황에 그게 무슨 말······.”
“기다려 봐봐요, 형. 야, 복수전 가야지. 그래봤자 나한테 또 처발릴 거지만.”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이태겸을 임승현이 황당하게 바라봤다. 하지만, 효과는 굉장했다. 눈에 초점이 돌아온 유연서가 이태겸을 보고 이를 으득 갈았다.
“이 새끼가······.”
“깼냐?”
덕분에 깨긴 깼다. 그런데 기분이 더럽다. 이게 과거 기억 때문인지 이태겸의 열받는 말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코에서 뜨거운 게 주륵 흘러나왔다.
‘망했네.’
여기서 쓰러지면 안 되는데.
“어? 어어어?!”
“도련님!”
“연서야!”
***
내가 이렇게 약했나? 깨어난 유연서가 처음으로 한 생각이었다. 그가 눈을 끔벅이면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 웅성거리던 소리가 더욱 커진다.
“······얼마나 지났어?”
“5시간.”
“오늘은 꽤 빠르네, 며칠 걸릴 줄 알았는데.”
“······야, 너는 그게 말이라고.”
아, 촬영지 근처 숙소였다. 다행히 병원에는 데려가지 않았군. 아마 임승현이 잘 처리했겠지. 유연서가 끙,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아픈 건 정신인데, 왜 근육통이 온 건지 모르겠다.
“연서야.”
“아, 계셨어요?”
그는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박승환과 김재호 감독을 보며 볼을 긁적였다.
“내가 잘못 생각한 거 같다.”
“뭐가요?”
“너에게 그런 얘길 하는 게 아니었어······.”
박승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유연서는 괜히 웃었다. 이건 그냥 그가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였다.
“형 때문이 아닌데.”
“아니긴 뭐가 아니야.”
“촬영은 어떻게 됐어요?”
김재호 감독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었다.
“일단 중단했습니다.”
“저 때문에 괜히······ 내일 바로 다시 시작하죠?”
“어차피 제작비가 많아서 괜찮습니다.”
그리고 그 돈은 유연서의 지갑에서 나왔다. 다만, 돈을 댔다고 다는 아니다. 갑자기 틀어진 일정 때문에 배우들의 소속사 실장들은 뒤에서 바쁘게 일정을 조절하고 있었다.
‘계속 이런 식이면 곤란한데······.’
유연서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