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47)
“앞으로 그런 식의 연기는 하지 마라.”
“그래도 잘 나왔잖아요, 아니에요?”
“그건 그래도, 이건 제 살 깎아 먹기야.”
“하지 말라고 되는 게 아니라서요. 이쪽에 문제가 있다 보니.”
유연서는 검지로 제 관자놀이를 톡톡 쳤다. 반응으로 보건대, 그들도 무슨 이유인지는 대충 짐작하고 있는 거 같아서 애써 숨기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거든.”
그리고 범인을 잡으면······ 아마도? 사실 장담할 순 없었다. 단지 도와달라는 그 한마디 때문에······.
박승환이 쟤 원래 저렇게 답답하냐며 속삭였고, 임승현은 한숨으로 대답했다.
“지금도 많이 지나지 않았어?”
“아무튼 그런 게 있어요. 내일 바로 촬영 시작하시죠?”
그는 더 쉬라는 사람들의 말을 무시하고 내일 바로 촬영을 강행하라고 했다.
“······표정이 왜 그래요?”
“그, 하······ 아니다. 나랑 재호는 나가볼게. 쉬어라.”
“넵. 오늘 죄송합니다.”
촬영이 지연되면 돈이 들고, 그 돈은 유연서의 지갑에서 나온다. 물주가 하라고 하니 불만이 있어도 따라야지. 표정이 어두운 박승환과 김재호 감독이 나가고, 방 안에는 임승현과 이태겸이 남았다.
“괜찮으십니까?”
“안 괜찮을 게 뭐가 있어.”
유연서는 쯧, 혀를 찼다. 동기화를 안 해도 저절로 동기화되는 건 생각지도 못했다. 베타가 구형 모델이라서 그런가······ 기억을 찾는 건 빨라도 되지만, 이렇게 불쑥 튀어나오면 곤란한데······.
‘아냐, 조급해하지 말자.’
마음을 급하게 먹을수록 정신적으로 안 좋다. 그가 이불을 꽉 쥐었다.
하루 쉬게 된 유연서는 바로 촬영장에 복귀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그의 안부를 물었는데, 처음 한두 번은 괜찮다가 계속해서 이어지니 귀찮기만 했다.
“어제 현장은 어떻게 했어요?”
뒤따라오던 임승현이 대답했다.
“우선 입단속은 시켜 둔 상태입니다.”
“잘했네요.”
“······그래도 뒤에서 퍼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걸 알아서 유연서가 한숨을 쉬었다. 판이 좁다 보니 별별 소문이 도는 곳이다. ‘국새’ 때는 컨디션 난조로 어떻게 수습할 수 있었다. 응급실에 가고 난 뒤였으니까. 하지만 이게 두 번 이상이 되면 의심하는 사람이 생긴다.
(어머니) 연서야 몸은 괜찮니?
바로 지금처럼. 하필 이쪽 업계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을 어머니로 두고 있다 보니 소문이 퍼지는 것에도 주의해야 했다.
“벌써 퍼졌네.”
“부회장님이십니까?”
유연서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답장을 썼다. 별거 아니라는 대답, 최유진이 그냥 넘어갈지 말지는 모르겠지만.
‘이 상태를 아는 사람은 형이랑 할머니로 족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골치 아프다. 게다가 요즘 할아버지의 관심도 심상치 않았다. 그 생각을 하니 잠잠해졌던 두통이 더 심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야, 너 쓰러졌다며. 괜찮냐?”
그때, 작품을 찍으면서 친해진 강천희가 유연서의 옆에 앉았다. 원래라면 어제 같이 촬영했어야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자신 때문에 미뤄진 것이다.
“괜찮으니까 왔지. 스케쥴 지장 줘서 미안하다.”
“나야 뭐······ 이거 말고는 일도 없는데.”
전에 지나가는 말로 오늘 오디션 본다고 들었었는데? 유연서는 강찬희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왜 그렇게 봐?”
연기도 나쁘지 않고, 얼굴도 특출나게 잘생기진 않았지만, 특징이 확실한 얼굴이라 어느 역할이든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유연서는 조만간 일 하나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대본을 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대사나 맞춰 보자.”
“그래.”
***
“할아버지가 암이래.”
황민재의 말에 박지우는 먹던 어묵을 떨어뜨렸다. 국물이 튀어서 뜨거웠는지 그가 발을 동동 굴렀다.
“아씨, 너 때문에 700원 날렸잖아.”
“치료비가 필요한데······ 무슨 방법 없나?”
“미리 말하지만, 난 돈 없다.”
“너한테 꿔달라는 거 아니거든. 그리고 돈 빌려달라고 하면, 네가 줄 수는 있냐?”
황민재는 박지우의 종아리를 향해 가볍게 발차기를 했다. 박지우는 엄살을 떨었다.
“······혹시 이런 것도 보상금 받을 수 있어?”
“뭔데?”
황민재는 일이 고되다며 한숨을 쉬었던 엄마를 떠올렸다. 추가 근무를 시켰지만 수당도 주지 않는다고 한탄했던······ 게다가 마침 일기장에 남아있는 증거, 그리고 엄마 이전에도 이후에도 늘 말이 나왔던 업체.
“야 개 수상한데 아무것도 안 했었냐? 돈이라도 뜯어냈어야지.”
“지금 해도 늦지 않았을까?”
“늦지 않았지.”
그때는 엄마가 죽었다는 슬픔과 상실감에 별다른 행동을 취하진 않았지만, 잘한다면······.
“그럼 일단······ 여론전부터 가자.”
“어떻게?”
그는 박지우의 도움을 받아 국민 청원을 올리고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그리고 황대식은 손자를 위해 밥을 만들고 폐지를 주우며 똑같은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제발 병원에 가라는 손자의 말은 무시했다.
‘계속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그의 마음속에는 아직 미련이 남아있었다.
‘민재 그 녀석, 맛있는 거나 먹여야지.’
요즘 손자가 바쁘다. 늘 하던 아르바이트 현장에도 안 나타나고, 가끔 그의 일을 도와주는 것도 하지 않았다. 안 도와줬다고 괘씸하진 않았다. 다만, 어디서 뭘 하는지 걱정됐다.
그는 손자를 위해 안 가던 대형 슈퍼를 들렀다가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
“서명 한 번만 부탁드립니다!”
한창 공부에 집중해야 할 고등학교 3학년, 할아버지의 치료비를 마련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호기롭게 뛰쳐나간 손자가 저 앞에 있었다.
‘왜 저기에······.’
그러고 보니 황민재의 어머니가 불의의 사고로 죽었다고는 들었다. 설마······ 보상금을 요구하고 있는 건가. 황대식은 벽 뒤에 숨어서 손자가 하는 행동을 몰래 구경했다.
“야, 잘 돼 가냐?”
“아니.”
“내일은 옆 반 애들이 도와준다고 하던데.”
“진짜?”
그리고 손자의 곁에는 많은 친구가 함께 있었다. 앞날이 창창한 손자의 앞길을 내 병으로 막고 있는 게 아닐까?
‘준호······.’
황대식은 웃고 있는 황민재의 얼굴에서 먼저 보낸 아들을 떠올렸다.
그는 아들을 끝내 포기했지만, 손자는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행동은 적어도 어른이, 보호자가 해야 했던 일이었다.
‘나는 내 짐을 덜려 준호를 그렇게 보냈구나.’
형편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살기 힘들었는데 혼자 가기 싫어서 그랬구나.
과거 병원 응급실에서 눈을 떴을 때, 목숨을 건졌다는 사실에 안도했었다. 다시는 이런 선택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때는 옆에 누워 있었던 아들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제 목숨만 소중했었다. 그 생각이 들자 죄책감 때문에 속이 역했다. 귓가에는 아들의 기침 소리가 점점 커졌다.
(콜록······ 아버지······.)
황대식은 무언가 결심한 듯 주먹을 꽉 쥐고 뒤돌았다.
그는 1인 시위를 하고 돌아온 손자에게 넌지시 물었다.
“하는 일은······ 잘 되니?”
“네! 곧 치료비 마련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네 어미가 고생한 돈이지 않아? 너를 위해 써야지······.”
“이게 저를 위해 쓰는 건데요.”
황민재는 곧바로 정색했다. 더 하다가는 또 화를 낼까 봐 그는 묵묵히 밥을 퍼서 손자의 앞에 내밀었다.
“근데, 아셨어요?”
“알다마다. 그렇게 시끄럽게 선전하면 누가 몰라.”
“아무튼, 지금 반응 좋으니까 할아버지는 일단 병원부터 가세요.”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보니 꽤 잘 풀리고 있는 것 같다. 황대식은 중압감이 몸을 짓누르는 느낌을 받았다.
(손자분 성적이 너무 좋아요. 학원도 안 가는 데도······.)
(걔가요?)
(네, 이 성적대로라면 인서울 상위권 대학도 노릴 만한데······ 민재는 졸업하고 바로 일하겠다고 해서······.)
(······.)
(저도 다방면으로 지원할 방법을 알아보고는 있는데······ 쉽지 않네요.)
마침 학부모 면담에서 봤던 담임 선생님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늙은 할아버지가 병까지 걸려서 발목을 잡는 것 아닐까.
“그래······ 알았다.”
황대식의 덤덤한 대답에 황민재가 활짝 웃었다. 그때 붙잡은 게 효과가 있었는지 고집 피우던 할아버지가 잠잠하다.
한 편, 밥을 한가득 입에 집어넣는 손자를 보며 황대식은 자신의 결심을 굳혔다.
그렇게 가 버리면 분명 손자는 슬퍼할 것이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이게 맞다.
황민재는 이제 성인이 된다.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가 된다. 곁에 아무도 없었던 그와 아들에 반해, 믿음직한 친구도 신경 써주는 선생도 있었다.
황대식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악착같이 살았다. 아내와는 일찍 사별했다. 몸도 성치 않아서 제대로 된 일도 할 수 없었다. 딸은 도망갔고, 아들은 병원도 받아주지 않을 정도로 중증이었다. 뭐가 그렇게 제약이 많은지 나라에서 주는 혜택은 받기 힘들었다.
그렇게 그는 개인이 지기에는 수많은 짐을 짊어지고 살았다.
‘적어도 네게 짐이 되지는 말아야겠구나······.’
***
“어디서 유출된 거야······.”
몰려드는 인파에 조연출이 지긋지긋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요새 유연서가 이 동네에서 영화를 찍는다는 사실은 여러 번 사진을 남겼고, 당연히 소식을 본 사람들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이 동네가 재개발 들어가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계속 찾아왔을 뻔했네요.”
물론 그것 때문에 촬영을 일찍 시작한 것도 있다. 유연서는 제 옆에서 쫑알쫑알 떠드는 차윤호를 바라봤다.
“근데 차 비서는 여기 왜 왔어요? 감독님 부담스럽게.”
“제가 이사님을 모시는 건 맞지만, 더 높은 부회장님이 까라면 까야 해서요.”
“하아······.”
유연서가 이마를 짚고 한숨을 쉬었다.
“아무 일도 아닌데 왜······.”
“원래 부모가 다 그렇잖아요. 자식 일이라면 행동 빠른 거.”
유건민 만큼 주접을 떨긴 한다. 하지만 친아들도 아닌데 이렇게 지극정성인 것도 이상하다. 그러고 보면 여태껏 고모부들만 조사했는데······ 설마, 아니겠지. 유연서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래서, 부회장님이 왜 저를 여기로 파견시켰을까요?”
“차 비서는 몰라요?”
“이사님이 연기하다 쓰러지신 건 알죠.”
“다 아네.”
범상치 않은 상사의 분위기에 차윤호가 황급히 덧붙였다. ‘연기에 너무 몰입해서 그런 거라고 둘러댈게요.’라고.
“이래서 몰입이 되겠나.”
“형이요?”
“왜, 내가 무슨 연기의 신이라도 되냐?”
유연서는 분장을 마친 박승환을 바라봤다. 확실히 상대역이 누구냐에 따라서 몰입이 달라지긴 했다.
‘백호함’과 ‘악귀’에서는 별로 느껴보지 못했던 연기 합이 여기서는 여실히 느껴졌다. 그나마 ‘드리밍’에서 진수호, ‘국새’의 신예원과도 나름 시너지가 느껴지긴 했지만, 박승환은 차원이 달랐다. 그는 카메라가 돌아가든 아니든 항상 ‘황대식’의 분위기를 유지했다.
‘이거, 예전 상대역한테 미안해지는데······.’
그는 자연스레 과거를 떠올렸다.
“연기 신, 맞지 않아요?”
“야, 너무 그러지 마라.”
박승환이 괜히 엄살떠는 것을 보고 유연서는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많긴 많다. 하지만 이렇게 사람이 몰린 현장은 늘 있었다.
‘감정 잡기는 오래 걸리겠네.’
유연서는 하늘을 보며 눈을 감았다.
“······오늘은 괜찮겠어?”
“네, 저 달리기 오래 해도 안 지쳐요. 체력이 좋아서.”
“그런 거 말하는 거 아닌 거 알잖아.”
“그런 게 뭔데요?”
이 새끼, 알면서도 모른 척하네. 박승환은 결국 두 손을 들었다.
“마지막 씬, 잘해보자.”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