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45)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면 될걸······.”
자초지종을 들은 유연서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차윤호는 직접 물어본다고 이사님이 순순히 답을 주시진 않을 거잖아요. 라는 말은 속으로 삼켰다.
“쯧, 귀찮게.”
그가 중얼거렸다. 앞으로 할 연기에서 이런 감정은 쓸모없었다.
“앞으로 할아버지가 불러도 가지 마세요.”
“왜요? 회장님 표정 보기 좋던데.”
유연서는 말없이 차윤호를 빤히 쳐다봤다.
“넵.”
표정 변화는 없었는데 왠지 무섭다. 그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에 차윤호가 냅다 고개를 끄덕였다.
유연서는 도망치듯 멀어지는 차윤호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할아버지가 준 대가를 받지 않고 선의로 했다는 점에서 봐주는 것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멀찍이 떨어져 앉은 강천희의 옆에 앉았다.
“우리 구면이었죠?”
“네······ 그때 감사했습니다. 어떻게 보답이라도······.”
“내가 뭘 했는지 기억 안 나는데······ 일단 감사 인사만 받을게요.”
유연서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는 강천희의 손에 들린 대본을 바라봤다. 수없이 많이 들여다봤는지 낙서 가득한 대본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야 박지우, 대사나 맞춰 볼래?”
어차피 본체 나이도 똑같고, 극 중 나이도 똑같다. 이렇게 신변잡기 하는 것보다 차라리 작품으로 소통하는 게 나았다. 그 말에 강천희의 눈빛이 변했다.
***
“할아버지! 다녀오겠습니다!”
“어, 어어······ 갔다 와.”
황민재가 크게 외쳤다. 그 인사가 아직 어색하기만 한 황대식이 머뭇거리다가 인사를 받았다.
그런데, 현관문을 나서려던 손자의 옷차림이 이상했다. 신학기가 시작되었지만, 날씨는 아직 한겨울이었다. 황대식은 결국 손자를 붙잡았다.
“잠깐만, 다른 옷은 없어?”
“아······ 저 추위 별로 안 타요. 저 지각할 거 같아요.”
그게 멋쩍은지 뒷머리를 긁적인 황민재는 지각을 이유로 황급히 동네 밖으로 나갔다.
“······아직 추운데.”
그러고 보면 늘 똑같은 옷을 입었다. 정을 주지 않으려고 했는데, 한겨울에 홀로 얇은 옷 한 장 걸친 게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황대식은 알아도 받지 않았던 복지 혜택을 받으려고 관련 기관에 찾아갔다. 하지만 돌아온 말은 싸늘했다.
“어르신은 기준에 부합하지 않네요.”
“예?”
혹시 범죄 이력이 있어서일까? 어디서 된다고 봤는데······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의외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부양의무자가 있어서 안 된다고요.”
“예?”
계속 되묻기만 하는 노인이 귀찮은 것인지 담당자는 작게 한숨을 쉬더니 한 종이를 내밀었다.
“여기요, 황선혜.”
볼펜 끝에는 이질적인 이름이 쓰여 있었다. 다 쓰러져가는 집에서 구질구질하다고, 정신병자인 오빠는 이제 지긋지긋하다고 집을 뛰쳐나간 딸의 이름이었다. 연락도 없어서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자식이었다.
“그······ 얘는 연락도 안 되는데.”
“죄송하지만 처리해 드릴 수 없어요.”
“아니 걔는 나를 부양한 적이······.”
“죄송합니다. 법이 그렇게 돼 있어요.”
“아니, 잠깐만요. 그럼 돈 받을 수 있는 게 없는······.”
“네, 다음 분이요!”
담당자는 앵무새처럼 안 된다고만 반복하더니 결국 그를 포기한다. 다음 사람에게 밀려난 황대식은 한참을 서 있다가 체념한다.
‘변변찮은 옷이 없던데······.’
그게 계속 마음에 걸린 황대식은 제 손으로 돈을 벌기로 한다. 출소 후 흘러가는 대로 멍하니 살던 황대식이 하나씩 의욕을 되찾는 순간이었다.
한 편, 전학 온 황민재는 반에 있는 모든 학생의 주목을 받게 된다.
“올, 뭐냐? 잘생겼다?”
“고3이 전학 오는 거 흔하냐?”
“키 개 크네.”
[이렇게 해도 연서 씨 얼굴이 눌러지진 않네요.]감독이 교복을 입은 유연서를 보고 한 말이었다. 살을 빼고 자세를 구부정하게 만들고 앞머리를 눈을 덮을 정도로 내렸지만, 타고난 얼굴이 계속 이질감을 느끼게 했다.
[그럼 캐릭터 설정을 살짝 바꾸죠, 어차피 스토리에는 지장 없을 거예요.]원래 설정대로라면 황민재는 어디서나 볼 법한 흔한 고등학생이었다. 우울하고 자신감 없는 행동 탓에 따돌림을 당하던.
하지만 배우 본체가 워낙 잘생겨서 차라리 동급생의 질투 쪽으로 트는 게 나았다. 그리고 초반에 설정했던 우울하고 수동적인 성격을 살짝 누르고 그 빈자리를 악바리로 채웠다.
“네가 일은 왜 해.”
“저도 해야죠.”
“밀지 마. 나 괜찮아.”
“제가 안 괜찮아요.”
그리고 주목받는 황민재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한 동급생은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던 황민재가 폐지를 줍는 황대식의 리어카를 뒤에서 밀어주는 광경을 보게 된다.
“어? 저 사람······.”
“왜? 엄마 저 할아버지 알아?”
“이 동네에서 유명하잖아. 출소하셨나 보네.”
“출소?”
모친은 사정이 딱하다며 혀를 찼지만, 건수 잡은 학생은 비열하게 웃었다. 그는 다음날 학교에서 황민재를 건드린다.
“야, 너네 할아버지 살인자라며.”
“뭐?”
“이거, 너네 집 얘기잖아.”
상대가 내민 핸드폰에는 그가 상상도 못 했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정신질환자 아들 돌보다 살해한 70대 노인
조현병 앓던 아들 살해···생활고에 동반자살 시도하려 했었다
“헐, 나 이 사건 알아.”
“그거 황민재 할아버지였어?”
“그럼 너네 아빠 죽인 사람이랑 같이 사는 거야? 간도 크다.”
“야, 그만해라.”
웅성거리던 학생들은 그를 말리거나 방관했다. 황민재는 핸드폰 속 기사를 천천히 읽는다. 사실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긴 했었다. 다들 딱하고 불쌍하다고 했다. 그래서 별일 아닐 거로 생각했다.
황민재는 울컥했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소리지? 나는 지금 기댈 사람이 할아버지밖에 없는데.
“근데 우리 할아버지는 네가 어떻게 아냐? 너도 거지새끼냐?”
“뭐?”
“그 소문 알 정도면 너도 거지 동네 사는 거잖아. 나처럼.”
“푸흡!”
그 말에 맨 끝 구석 자리에서 엎드려 자던 한 학생이 웃음을 터뜨렸다. 학생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끄흐흑······ 푸하하하!”
어깨를 들썩이면서 끅끅 웃던 학생이 고개를 들었다. 강천희가 맡은 배역인 박지우의 첫 등장이었다.
“얘 재밌네. 그만해라.”
“넌 뭐야.”
“이 새끼는 도와줘도 지랄이네.”
박지우는 황민재가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되면서 그가 가족에게 가진 맹목적인 애정을 한 꺼풀 벗겨내는 역할이었다.
“뭘 또 왔어?”
그렇게 학교에서의 헤프닝도 끝나고 황민재는 일이 없을 때면 할아버지를 찾았다. 그리고 그가 끄는 리어카를 밀었다. 황대식은 그게 귀찮기만 했었다. 하지만 점점 싹싹하게 다가오는 손자에 입가에 웃음을 찾아간다.
“집에서 공부나 하지 왜 또 나왔어?”
“공부 해봤자 뭐 해요, 대학도 못 가는데.”
그는 할아버지의 왜소한 뒷모습을 바라봤다.
‘왜 그러셨을까.’
당시에는 의연했지만, 자꾸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 마음에 걸렸다.
“근데요······ 학교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어요.”
황대식의 걸음이 멈췄다. 그리고 황민재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직접 겪지 않고는 모른다. 중증 환자라 병원에서도 입원을 받아주지 않는 형편, 국가에서도 지원해주지 않는 서러움을.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을까 하는 생각을 하루에도 열 번씩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가 버리면 남겨진 아들은 나 없이 어떻게 살지······ 생각하다가 똑같은 하루를 보냈었다. 그러다가 그냥 같이 가자는 결론이 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는 게 그리 좋지만은 않더라.”
그렇게 죽음으로 도피하고 싶었건만 돌아온 건 아들의 싸늘한 시신이었다. 자식을 죽였다는 쓰디쓴 현실이었다.
“그러면 지금은 어떠신데요?”
“······.”
황대식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을 길을 걸으며 폐지를 줍던 노인은 묵묵히 제 뒤를 받쳐준 손자에게 나지막하게 말한다.
“나한테 너무 기대하지 마라.”
“······제가 알아서 할게요.”
기대했던 대답이 아니라 불퉁한 대답이 돌아온다.
없는 형편에도 엄마는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할아버지는 바람 한 번에 날아갈 것처럼 보였다. 고개를 세차게 저어 그 생각을 털어낸 황민재가 애써 웃었다.
“할아버지. 일 이제 끝났죠? 저 배고파요.”
“배고파? 그럼······.”
“저거 사 주세요.”
손끝에 있는 건 분식 포장마차였다. 그때는 돈이 없어서 못 먹었던 어묵 꼬치와 떡볶이 등을 할아버지와 나란히 서서 먹는다. 그늘진 황민재의 표정에도 웃음이 담긴다.
“할아버지! 우리 인형 뽑기 해볼래요?”
“이건 어떻게 하는 건데?”
“잘 봐요.”
조손은 인형뽑기 기계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마지막에서 안타깝게 떨어지는 인형을 보고 아쉬워했고, 결국 하나 뽑힌 것에는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 단란한 장면이 나오는 것은 다가올 비극을 위해서였다.
***
“기침하던데, 감기 걸렸어?”
“그런가 봐요.”
유연서는 오랜 시간 앉아 분장을 받는 박승환의 옆에서 대본을 펼쳐보고 있었다.
사실 몸은 괜찮았다. 다만, 작품 속 황민재가 가족에 관한 어긋난 애착을 두고 있어서 그런지 저절로 다른 가족을 생각하게 됐고, 그건 꼭 피를 보게 되는 결과로 나왔다.
“우리 영화 어떻게 될 거 같냐?”
“······평론가들은 좋아할 것 같던데요?”
“재호 쟤는 벌써 예술병 걸렸냐는 악플에 익숙해지기 훈련을 한다더라.”
“무슨 훈련 씩이나.”
유연서는 작게 웃었다. ‘비속 살해’의 흐름은 잔잔했다. 벼랑 끝에 몰렸던 황대식의 상황을 최대한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유연서도 흥행을 바라진 않았다. 그냥 이런 거 하나쯤은 필모그래피에 있어도 좋을 거 같았다.
“분장하고 연기하는 거 안 어려워요?”
“힘들지. 괜히 한다고 했어.”
박승환은 엄살을 떨었지만, 유연서는 적잖이 감탄하고 있었다. 얼굴을 답답하게 하는 분장인데도 어색함 없이 노인을 연기해냈다. 구부정한 자세가 힘들지도 않은지 덤덤하게, 그리고 가래 섞인 음성은 연기 때문에 일부러 감기에 걸린 줄 알았다.
“너는 황대식이 어떤 거 같냐.”
“뭐,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에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안다. 황대식의 처한 상황이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너는 어때?”
“저요?”
무슨 소리지? 고개를 돌린 그는 박승환의 눈빛에 숨을 삼켰다. 황민재와 황대식이 아닌, 유연서와 이희서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유연서는 허, 하고 숨을 토해냈다.
“그 얘기를 꺼낼 줄은 몰랐는데······.”
주변인들에게서 그녀의 이야기는 금기어였다. 다들 눈치만 보고 있었지, 대놓고 말한 사람은 박승환이 처음이었다. 아마 질문 시점이 2018년 이전이었더라면, 물건을 집어 던졌을지도 모른다.
“우리 이런 얘기 털어놓을 사이는 되잖아.”
“······글쎄요.”
지금은 범인을 확신할 수 있다. 직접 영상으로 확인하기도 했고. 하지만 그 얘기를 할 수는 없어서 과거에 있던 감정을 끌어올렸다.
“나로는 결국 붙잡을 수 없었던 거죠. 그건 민재도 똑같잖아요.”
그때의 감정이 떠오르자, 울컥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유연서는 본능적으로 그 감정을 유지했다. 마침 다음 장면이 황대식을 붙잡고 오열하는 장면이었다.
그 모습을 본 박승환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준비됐으니까 가자.”
“······네.”
상대 배우의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한 질문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유연서가 그의 뒤를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