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44)
황대식의 첫 등장은 뒷모습이었다. 여기서 음향은 마치 높은 산에 올라온 듯 먹먹하게 울린다. 몇 번의 웅얼거림 끝에 타인의 말이 제대로 들린다.
“······나오세요!”
고개를 든 노인은 교도관이 하라는 대로 따르는 인형처럼 힘겹게 일어났다. 따르는 대로 따르니 어느새 수용자 복을 벗고 사복을 입게 된 노인은 바깥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따갑기만 했다.
“어르신, 밖에 나가면 남은 생 얼마 안 남았는데 열심히 사세요.”
“······.”
“또 잘못된 선택하지 마시고, 예?”
노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왠지 출소하는 사람이라면 몸짓이 가벼워야 할 것 같은데, 노인은 위태로운 발걸음으로 밖을 향한다.
“선배님, 뭐 그리 챙기세요. 그래봤자 범죄자 아닙니까?”
“저 사람은 사정이 딱해.”
“여기 자기 사정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다 자기가 억울하다고 하지.”
“그게······.”
카메라는 노인의 뒷모습을 계속 비추면서, 교도관의 목소리가 흐른다.
(저 어르신한테 마흔 넘은 아들이 있었는데······ 정신에 문제가 있었어.)
(그러니 제대로 장가를 갔겠어? 십몇 년 동안 아들 뒷수발만 했지.)
두꺼운 철문을 지나 바깥으로 나온 황대식은 내리쬐는 햇빛을 손으로 가렸다. 마중 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멈추지 않고 걸었다.
(근데 왜 여기 왔는데요?)
(그렇게 아들 뒷바라지만 하니까 형편은 어려워지지······ 더는 살길이 막막하니 뭘 선택했겠어?)
(설마······.)
(같이 죽으려다가 아들만 죽고 저 어르신만 살았지······.)
교도관들의 말이 점점 잦아들고, 사회로 나온 황대식은 버스에 올라탄다.
재판부는 그의 안타까운 사정을 반영해 비교적 낮은 형량을 선고했다. 그가 수용된 기간은 1년 6개월, 하지만 그는 아들이 죽은 그 시간에 멈춰 있었다.
황대식이 사는 마을 골목,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누군가가 그를 붙잡았다.
“아예 온 거야?”
“그렇게 됐어······.”
“잠깐만 기다려 봐······ 김치라도 가져가.”
비좁고 경사진 달동네, 제 살기 바쁜 형편이지만 다들 노인의 딱한 사정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정이 넘쳤다.
“어르신, 이거 과일인데······.”
“······고맙네.”
수감 생활 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사람 간의 정이었다. 그 호의를 무시할 수 없어서 받고 받다 보니 금세 두 손이 무거워졌다.
“집에만 있지 말고 저기, 슈퍼 앞에 자주 와.”
“맞아. 같이 고스톱이나 치자고.”
염려 섞인 말을 뒤로한 채 드디어 집에 도착한다. 작은 거실과 주방, 좁은 단칸방은 관리가 안 돼서 먼지가 쌓여 있었다. 황대식은 작게 기침을 내뱉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준 음식물 따위를 차근차근 정리하는 김에 집을 대충 치웠다.
‘내가 살아있어도 되는 걸까.’
제대로 치우지 않아서 먼지가 날아다녔다. 그가 또 기침을 내뱉었다.
기침, 그래······ 기침이었다. 그가 아들의 마지막 목소리를 들은 것은. 노인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같이 죽었어야 했는데······.’
***
출소 후 며칠간은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 마을 사람의 도움으로 들어오지 않는 전기와 수도를 복구했지만, 의욕은 없었다. 황대식은 생각에만 담아뒀던 일을 마침내 실행하기로 마음먹는다. 바로 아들의 뒤를 따르는 것.
“도련님, 들어가시죠.”
다만 그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 소품 담당이 노끈 같은 것을 들고 오는 것을 본 임승현이 조심스레 제안했다.
유연서는 몰입을 위해 제 촬영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극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 그리고 박승환의 연기를 현장에서 직접 보고 싶었기도 했다. 하지만 다음 장면은 도저히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죠.”
‘드리밍’에서의 전적도 있으니 유연서도 억지를 부리지 않았다. 현장에 이태겸을 둔 그는 차로 향했다.
“어? 다음 씬 바로 들어가야 하는데.”
“분장하러 가시는 거겠죠.”
감독 다음으로 자주 본 얼굴이 유연서였다. 그만큼 자리를 비우는 것은 의외의 상황이었다. 그의 모습을 근처에 있던 스태프들이 의아한 듯 쳐다봤다.
황대식은 느릿한 손짓으로 세상을 떠날 준비를 시작한다. 그 순간 그는 과거를 회상한다.
갑자기 제 손가락이 늘어났다며 이걸 잘라야겠다는 아들을 늙은 몸으로 막고, 제정신이 돌아온 아들이 죄송하다고 흐느낀다. 그리고 기침을 내뱉으면서 숨이 안 쉬어진다고 중얼거리는 마지막 음성까지.
“컷!”
그 연기가 맘에 들지 않는 박승환은 두 번을 다시 찍었다. 그동안 분장을 끝마친 유연서는 다음 장면을 준비했다.
준비를 거의 다 끝마친 황대식이 심호흡하는 순간, 황민재는 바깥에서 소리를 지른다.
“저기요!”
초인종이 눌리지 않아 문을 쾅쾅 치던 황민재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설마 없는 건 아니겠지? 그래, 퇴근 시간이 늦을 수도 있겠지. 한 번만 더 외쳐 보고 무작정 앉아서 기다리기로 했다.
“계세요?!”
그 외침이 황대식을 깨웠다. 바깥에서 귀찮게 구는 소리에 오늘은 틀렸다고 생각한 황대식, 의자 아래로 내려온 그가 현관문을 열었다.
따가운 햇빛이 거슬렸다. 그는 손으로 그늘을 만들었다. 그러자 교복을 입은 아이의 얼굴이 선명해진다.
“······왜?”
“어······ 안녕하세요.”
예상했던 사람과는 다른 모습에 황민재는 제 엄지손톱을 입으로 뜯으며 초조함을 내비쳤다. 설마 이사한 건 아니겠지? 떨리는 손으로 한 사진을 내밀었다.
“혹시 이 사람 아세요?”
마침 아들 생각을 했었던 황대식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처음 보는 사진이었다.
“······준호. 내 아들.”
그 음성을 듣자마자 황민재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럼 할아버지세요?”
어르신을 칭하는 게 아니었다. 마치 제 친족을 부르는 듯한 말투였다.
늘 햇빛을 가리던 손이 천천히 내려가고, 황대식의 생기 없던 눈에 빛이 들어온다. 황민재의 얼굴에도 따스한 햇볕이 비친다. 언뜻 보면 후광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것은 메마른 황대식의 마음에 따스한 빛이 스며드는 것일 수도 혹은 더 메마르게 할 수도 있었다.
“여기는 왜······.”
그러고 보니 아들과 눈앞의 아이는 꽤 닮아 있었다.
“그, 저 일단 들어가면 안 될까요? 추운데.”
황대식은 본능적으로 이 아이를 집에 들이면 안 된다는 예감이 들었다. 들이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무언가가 생길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의 초라한 모습이 마음에 걸린다. 추운 날씨에 얇은 겉옷 한 장만 입어 귀까지 새빨개져 있었다. 게다가 누구에게 얻어맞았는지 얼굴에는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여져 있는 그 모습.
“······들어와.”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처량함에 결국 아이를 집안으로 들인다. 황민재는 등장 이후 처음으로 밝은 미소를 보인다.
“천장에 줄은 왜 저렇게 해 놨어요? 전등이 나갔나?”
“아무것도 아니야.”
황대식은 그 줄을 황급히 치워버린다. 유연서는 그 위치에 절묘하게 보인 ‘그것’도 덩달아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 뭐 때문에 왔니?”
가래 섞인 음성에 다시 황민재로 돌아왔다. ‘비속 살해’ 분장을 위해 헐리우드에서 유명한 전문가까지 초빙할 정도였다. 그만큼 실제 같은 분장과 어우러진 박승환의 기세, 그것만으로도 몰입이 잘 되는 느낌이었다. 이래서 상대 배우가 중요했다.
황민재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엄마의 일기장 속에 아빠와 만났다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고, 사진이 함께 발견돼서 찾으러 온 거라고.
“그럼······ 네가 내 손자라고?”
“네.”
그렇게 대답한 황민재는 고개를 휘휘 꺾으며 황대식의 집안을 살폈다. 그래도 엄마랑 살던 집보다는 넓었다.
“네 어미가 준호를 안 찾은 이유가 있을 텐데······ 왜 왔니?”
하지만 황대식의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어, 이게 아닌데······ 난생처음 보는 혈육이니까 당연히 반겨줄 줄 알았다. 자신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할 테니까.
위기를 느낀 황민재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저 이제 엄마 없어요. 일하다가 돌아가셔서······.”
“저런······.”
황대식이 안타까워 혀를 찼다. 사정이 딱하긴 한데, 그도 제 한 몸 건사하기 힘든 사정이었다. 게다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세상을 떠나려 하지 않았는가. 이 애를 어떻게 돌려보내나 생각하는 와중에도 아이는 계속 말을 걸었다.
“근데 제 아빠는 어디 있어요?”
“없어.”
“어디 일하러 가신 거예요?”
“아예 없어.”
그게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눈치챈 황민재의 눈동자가 떨렸다.
“어······ 왜요?”
내가 죽였지. 차마 그렇게 말할 수는 없어서 황대식은 한숨을 쉬었다.
“······늦었으니 자고 가.”
***
당연히 황민재는 하루만 자고 가라는 황대식의 말을 무시한다. 그도 할아버지가 자신을 반기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로 알았다. 황민재는 애정 결핍에 우울함이 기본 설정이었지만, 아직 아이다운 천진함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이용했다.
“학교 졸업하면 나갈게요.”
“······.”
“······저 이제 할아버지밖에 없어요.”
그 간절한 말이 황대식의 마음을 움직였다. 마음대로 하라는 말에 황민재는 좋다고 인근 학교에 전학까지 신청한 상태였다.
이렇게 된 이상 절대 정을 주지 않을 거라 결심한 황대식, 처음 본 할아버지와 잘 지내보려는 황민재가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다.
마침 방학 기간이라 빈 학교에 촬영용 차가 하나둘 들어선다. 밴에서 내린 유연서는 미리 준비된 대기실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네, 안녕하세요.”
유연서는 한 배우의 인사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배우는 황민재가 전학 간 학교에서 친구가 되는 역할을 맡았다. 그는 밝은 얼굴로 유연서의 근처를 기웃거렸다.
“혹시 할 말 있어요?”
“아, 아뇨! 잘 부탁드립니다!”
“네 저도 잘 부탁합니다.”
단역만 전전하다가 그나마 비중 있는 배역을 맡아서인지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다. 황민재와는 절친이 되는 사이가 될 테니 본체끼리도 친해지기는 해야 할 텐데······.
“저분 모르세요?”
“강천희 씨잖아요. 나랑 동갑에 배우 경력은 7년 된.”
유연서는 서류상의 정보를 읊었다. 제작 상황 확인차 들렀던 차윤호는 유연서의 옆에 앉으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 거 말고요.”
“······제가 알아야 할 이유라도?”
“저분 ‘인형’에서 단역 하셨잖아요. 꽤 비중 있었는데.”
“아, 그랬었나?”
아직 그 기억은 제대로 받은 적이 없는데······ 유연서는 고개를 돌려 강천희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 막 형사 역할 했던 사람 있잖아요.”
“아, 좀 알겠네.”
기억은 안 받았어도 드라마는 봤다. 당시 그와도 두어 번 대사를 섞은 적 있었다.
“근데 그건 왜요?”
차윤호가 큼큼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인형’의 형사 배역은 무려 2회에 걸쳐 등장하는 비중 있는 단역이었다.
제작사는 그 배역을 대대적인 오디션으로 뽑았는데, 문제는 오디션을 통해 합격해도 제작사가 마음에 안 들면 현장에서 돌려보낼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아, 연기는 잘하는데 얼굴이 영······ 아닌데?] [다른 괜찮은 애 없어?]제작사는 마음에 드는 다른 배우로 변경하려는 상태였고, 강천희는 어렵게 잡은 기회를 놓칠 뻔했다.
[그냥 하지? 오디션 봐서 합격했다며, 돌려보내는 게 말이 돼?] [이미 다른 배우가 오기로 돼 있어서······.] [그럼 그 배우 올 때까지, 나 여기서 기다리라고?]유연서가 아니었더라면.
중요 투자자에 주연 배우이니 그 말을 쉽게 거스를 순 없었다고 한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듯 한 말이어도 강천희에게는 구원의 손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일이 있었나?”
“네, 저 그때 현장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간식 달라는 강아지 같은 표정으로 주위를 기웃댔군, 아마 감사 인사를 하려고 각을 잡은 것 같았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놀랍게도 2018년 이전의 사람에게 감사 인사를 받는 건 강천희로 처음이 될 것이다. 그동안 그가 데뷔시켜준 몇몇 감독과 작가에게는 안부 인사조차 없었는데.
‘아, 작품이 유명해지니까 다시 연락 오긴 했었지.’
괘씸해서 읽지도 않았다.
“근데 차 비서는 뭐 그런 걸 다 기억해요?”
“회장님한테 이사님의 좋은 썰을 들려드리기 위해서 제가 자료를······.”
“······회장님이요?”
유연서가 눈살을 찌푸리며 되묻자, 차윤호가 제 입을 막았다.
“아, 이거 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