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43)
“살이 좀 빠지셨네요?”
“더 빼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요.”
“지금도 괜찮을 거 같은데요?”
계약서에 사인한 지 얼마나 됐다고 바로 촬영을 시작했다. 마침 ‘다만’의 촬영 종료로 인력 수급에도 문제없었고, 자금이 넉넉했기에 가능했다.
“어우, 하필 오늘 역대급 한파가······ 괜찮겠어요?”
“어쩔 수 없죠.”
김재호 감독이 추운지 제 자리에서 왔다 갔다 했다. 박승환은 아직 다이어트 중이고, 오늘은 유연서만 찍는다. 꼭 이 시기에 찍어야 하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톤 다운을 해야 하나?”
“이 추위에는 오히려 창백한 게 낫죠. 상처도 더 잘 보이고.”
“교복 좀 더 구길까요?”
분장팀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유연서는 가만히 앉아 얼굴에 상처를 만드는 손길을 받았다. 차 안에서 뭔가를 하던 이태겸이 유연서에게 옷을 내밀었다.
“야, 다 됐다.”
“어 고맙······ 뭐냐, 갑옷이냐?”
“얼어 디지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냐. 야, 이거 발바닥에도 붙여.”
유연서는 옷에 다닥다닥 붙은 부착형 핫팩을 보고 헛웃음 지었다. 그는 입고 있던 롱 패딩을 넘기고 그 옷으로 갈아입었다.
‘비속 살해’ 속 황민재는 한부모 가정에 저소득층이다. 이런 한파에도 제대로 된 패딩 하나 없어서 낡은 후드 집업으로 연명하는 고등학생이었다.
“야 무슨 전기장판을 만들었어. 리얼리티 떨어지게.”
“이 추위면 얼굴만 내놔도 금방이겠는데? 너 코 빨개졌어.”
“그래? 괜찮네.”
유연서는 거울을 바라봤다. 학생처럼 다듬은 머리, 눈가의 멍 자국과 입이 찢어진 자국. 추위로 코와 귀는 새빨개져 있었다.
교복까지 다 갈아입은 그는 촬영장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하늘을 바라봤다. 그게 캐릭터에 몰입하려는 준비 작업인 것을 알아서 아무도 그를 건들지 않았다.
“안 춥나?”
“춥겠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이태겸과 임승현은 차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의 모습을 살폈다.
‘이 시기의 황민재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혼자가 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다.’
몸이 점점 과거를 되찾아갔다. 그래서 이제는 가족을 생각하면 형과 부모님부터 먼저 떠올렸다. 그래서 이럴 때는 혼의 기억을 되살리는 게 몰입에 도움이 됐다.
강진후는 군인이 되기 위해 유전자가 변형되어 태어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감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도 가끔은 과거의 영상물을 보고 나도 가족이 있었으면, 하고 상상하던 때가 있었다.
‘왜 나는 엄마밖에 없지?’
‘추워······ 나도 부잣집에서 태어났으면.’
‘아니 그냥 부모님 다 살아있고 할머니 할아버지만 있었어도······.’
전장에 홀로 남겨졌을 때의 허무함과 외로움을 되살려 황민재에 녹여냈다. 거기에 형편이 어려운 이 나이대 아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같은 질문에 꾸준히 답했다.
눈빛이 바뀐 유연서는 다시 촬영장으로 돌아왔다. 늘 꼿꼿했던 자세, 당당한 걸음걸이는 없었다. 추워서 움츠러든 것 같아 보이는 구부정한 자세, 낡은 운동화를 질질 끌며 걸었다.
“······시작하자.”
추워서 숨을 뱉는다. 입김 사이로 보이는 눈에는 희망이 없었다. 그의 모습에 김재호 감독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황민재는 누군가의 주먹을 맞는 것으로 첫 등장 한다. 양아치 1, 유연서가 임의로 철수라 이름 붙인 단역 배우가 허공에 주먹질하자 황민재가 쓰레기장에 우당탕, 나가떨어졌다.
유연서는 몸을 잘 쓰기로 유명해서, 실제로 맞은 듯한 연기에 카메라는 숨죽여 그의 모습을 담는다.
“좀 생겼다고 네가 잘난 줄 알지?”
“네 얼굴이 믹서기에 갈린 것처럼 생긴 게 내 탓이냐? ”
“뭐? 이 새끼가.”
말로는 지지 않는 황민재의 모습에 철수가 다시 주먹을 내질렀다. 반대쪽 볼도 맞은 황민재는 아파서 끙끙대면서도 도발을 멈추지 않았다.
“나 이렇게 줘패도 이예지, 걔는 너 안 좋아해.”
“이 시발 놈이······.”
철수에게 멱살을 잡힌 황민재가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주먹은 오지 않았다. 오히려 멱살 잡고 있던 손의 힘을 푼 철수는 황민재의 어깨를 털어줬다.
“야, 네 엄마 뒈졌다며. 너 이제 어떡하냐?”
체념에 가까웠던 황민재의 눈빛에 분노가 섞인다. 차라리 맞는 게 나았다. 이런 식으로 조롱당할 거라면.
“너네 엄마도 고아라며. 너 그럼 가족도 뭣도 없네? 너 원래 거지새끼잖아.”
“······.”
“우리 민재 불쌍해서 어떡하냐? 너 학교는 다닐 수 있겠냐?”
“이 새끼가······!”
얌전히 맞고만 있던 황민재가 벌떡 일어나 철수에게 달려든다. 하지만 혼자서 다수를 이기기란 쉽지 않다. 철수를 따르는 다른 양아치들이 황민재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머리를 가볍게 치며 조롱을 멈추지 않는다.
“얘네 엄마 밤에 일하는 거 아냐?”
“헐, 설마 그런 일 하냐? 미친 개 더러워.”
“아니야!”
황민재의 엄마는 야간 물류센터에서 일했다. 수당을 많이 주니까. 그렇게 자신의 몸을 혹사해 일하다가 쓰러졌고, 다신 눈을 뜨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에게 황민재의 말은 중요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열 내? 네 엄마 이미 죽었잖아. 들을 사람도 없는데?”
“이 새끼 마마보이잖아.”
“하하! 병신.”
주먹은 써보지도 못하고 볼품없이 나가떨어진다. 바닥에 손을 짚고 끙끙거리던 황민재를 낄낄 웃으며 관람한다.
“야! 너네 지금 뭐 하는 거야!”
“에이 씨발.”
그때, 창문에 들리는 고함에 양아치들은 후다닥 자리를 피한다. 남겨진 황민재는 앓는 소리를 하며 힘겹게 일어나 쓰레기통에 버려진 제 가방을 찾았다.
“괜찮아?”
“······네.”
“보건실 가자.”
“신경 쓰지 마세요.”
담임은 황민재가 이렇게 괴롭힘당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해결할 의지도 없다.
그러니 같잖은 위로로 ‘나는 외면하지 않았어’라고 자기 위안 삼지, 그의 상황에 실질적 도움은 하나도 주지 않았다.
“갈게요.”
“민재야. 황민재!”
쓰러지면서 어딘가 접질렸는지 절뚝였다. 그래서 걸음 속도도 느렸건만, 담임은 소리만 칠 뿐 여전히 붙잡지 않는다.
학교 정문을 나온 황민재는 집으로 향한다. 버스비가 없어 추운 길거리를 걸어간다. 추워서 그가 킁, 하면서 코를 먹었다. 잠시 분식집 앞에서 멈춰 서지만, 주머니 속에는 고작 200원밖에 없는 것을 확인한다.
어묵 꼬치를 보고 침을 꿀꺽 삼킨 그는 질질 끄는 발걸음으로 다시 집으로 향한다. 관리가 안 되어 쓰레기가 가득하고, 벽면에는 이상한 낙서가 있는 골목의 가장 안쪽으로.
“다녀왔습니······.”
끼이익, 낡은 현관문을 열었다. 좁은 단칸방, 장례를 치르느라 며칠 관리가 안 되어 있었다.
“······다.”
습관처럼 인사를 하던 황민재는 온기 없이 차가운 바닥을 느낀다. 이내 가방을 대충 던져두고 밥통을 열었다. 보온이 되지 않아 말라붙은 밥을 밥그릇에 퍼담은 그는 혹시 쉬었을까 킁킁, 냄새를 맡았다.
‘이 정도면 괜찮네.’
애써 태연한 척 아랫입술을 위로 올린다. 몸을 돌려 작은 냉장고를 열었다. 엄마가 생전 만들어 뒀던 반찬들이 있었다.
‘먹을까?’
그것을 꺼내려던 황민재의 손끝이 망설임을 담았다. 반찬통에는 내용물이 별로 없었다. 이것마저 먹어버린다면 엄마의 손길이 닿은 것이 하나 사라지는 셈이다.
결국, 손을 거둔 황민재는 바닥에 털썩 앉아 찬밥에 물을 부었다.
“잘 먹겠습니다.”
허공에 대고 인사한 그가 수저로 밥을 퍼먹었다.
(야, 네 엄마 뒈졌다며. 너 이제 어떡하냐?)
황민재의 기본 설정은 애정 결핍이었다. 밥을 먹는 행위, 단순 배고파서도 있겠지만 홀로 남겨져 공허한 마음을 어떻게든 채우려는 의미도 있었다.
“우욱······.”
한 큰술 떠서 꾸역꾸역 삼켰다. 찢어진 입가가 아파서 한쪽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선반 위에는 차마 본 품을 살 수 없어서 샘플만 늘여져 있는 작은 화장품 병, 전기 수도 고지서와 집주인의 방세 내라는 쪽지 따위가 어지럽게 늘어져 있었다. 보일러도 틀지 않아 추워서 끌어당긴 이불에는 엄마의 체취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
“윽······.”
그 냄새를 맡자마자 의연함을 가장했던 황민재의 감정이 울컥 터졌다. 엄마, 어디 갔어. 나만 두고······ 그는 다시 밥을 한 큰술 떠서 입에 한가득 집어넣었다. 그러게, 내가 대신 일 한다고 했잖아. 왜 그렇게 가버렸어······ 나 엄마밖에 없었는데.
‘엄마.’
그건 유연서나 황민재에게 무거운 단어였다. 작품에 몰입하기 위해 가상의 엄마를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저절로 다른 사람을 생각하게 되는 단어였다.
저절로 그녀의 생각이 들자마자 ‘그것’이 시야를 어지럽히는 느낌이 들었다.
[연서야.]귓가 근처에 속삭이는 듯한 환청에 밥을 꾸역꾸역 삼키던 그는 결국 사레들린다.
“우욱······! 쿨럭!”
미처 삼키지 못한 밥풀이 지척에 튀었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윽윽거리며 삼켰다. 생리적으로 눈가가 빨개지고 눈물이 고였다. 이윽고 그것은 슬픔으로 변해 방울져 떨어졌다.
당연히 실수였고, 대본과 콘티에는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컷을 외치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흐어엉······!”
한 번 눈물이 터지니 걷잡을 수 없다. 입가에 밥풀을 묻히고 소리 내 오열하는 모습은 볼품없고, 처량하다. 그만큼 황민재가 처한 상황을 잘 설명하는 장면이었다. 유연서는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히끅히끅 숨을 쉬며 밥그릇에 있는 밥을 꾸역꾸역 비운다.
“컷! 좋아요!”
감독의 외침에 손을 멈춘 유연서가 후, 한숨을 쉬었다. 이미 이희서를 떠올린 순간 몰입은 깨져 있었다. 적당히 애드리브로 넘어가서 다행이었지.
‘위험했다······.’
밥과 함께 피를 삼킨 그는 스태프가 건넨 휴지로 제 눈가를 닦았다. 곧바로 모니터를 보러 간 그는 화면 속 자신의 모습이 꽤 만족스러웠다.
“연서 씨, 어때요? 나는 훌륭하다고 생각하는데.”
“······네.”
“그럼 바로 다음 장면 갑시다.”
“잠시만요.”
흐트러진 몰입을 다잡을 시간이 필요했다.
양아치들에게 당한 상처를 치료하려 구급상자를 찾던 황민재는 엄마의 다이어리 속에서 한 장의 사진을 발견한다.
‘······뭐야.’
황민재의 눈동자가 떨렸다. 엄마의 어깨에 팔을 걸친 사진 속 남자는 자신과 꽤 닮아 있었다. 누가 봐도 자신의 아버지 같았다.
사진의 뒷면을 보니, 황준호라는 이름과 함께 주소가 쓰여 있었다. 그럼 이 주소로 가면······ 아빠를 만날 수 있을까?
그 생각은 충동을 자극했다. 대충 가방에 몇 가지 짐을 쑤셔 박은 그가 황급히 집을 나선다.
“야! 황민재! 어디 가냐?”
“할 거 없으면 저기서 빵이나 사 와라.”
건너편에서 시끄럽게 구는 양아치들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날린 황민재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학생. 아직이야?”
“죄송합니다. 안 챙겨 왔나 봐요. 다음에 내릴게요.”
한참을 주머니를 뒤적이는 학생, 얼굴에는 상처가 가득하다. 버스 기사는 인상을 찌푸린다.
“에휴······ 그냥 타.”
“감사합니다.”
버스 기사를 등지고 안쪽으로 향하는 황민재의 표정이 변한다. 이렇게만 하면 버스비를 안 내고도 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미소였다.
화면은 버스의 뒤에 있는 화려한 시내를 비추다가 황민재가 걸어가는 길을 보여준다. 구불구불 좁고 경사진 허름한 동네, 문 앞에 주소도 제대로 쓰여 있지 않아 찾기도 힘들었다.
“저······ 311번지 어딘지 아세요?”
“311번지? 어······ 어어! 거기 황 할배 댁 아녀? 저쪽에······.”
한참을 수소문 끝에 사진 속 주소로 찾아간 황민재가 크게 심호흡을 몇 번 하고는 초인종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