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67)
신예원이 워낙 톱스타에다가 이미지도 도도하고 쿨한 느낌이라서 그런지 다들 쉽게 다가가진 못했다. 오태성 역의 배우가 스타트를 끊었다. 그는 쭈뼛쭈뼛 다가가 신예원에게 사진 요청을 했다.
사진을 보고 수줍게 웃으며 제 옆에 앉은 배우를 보며 유연서가 피식 웃었다.
“이제 조연출이 뭐라고 안 하지?”
“헉, 어떻게 아셨어요?”
엄동필은 감독에게만 꼬장 부린 게 아니었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배우에게도 가시 박힌 말을 했었는데, 특히 오태성 역의 배우에게 자주 그랬다. ‘얘는 아이돌이면서 밥차 하나도 안 오네’라던가 ‘역시 아이돌이라서 그런지 연기는 못한다’라는 틀에 박힌 불만 말이다.
‘언제적 아이돌 배우 홀대야.’
옛날 사람이라 스태프 소통용 커뮤니티도 그렇게 해 놔서 정보를 파는 사람이 나오질 않나. 사람대우하는 것도 옛날 사람티 난다.
요즘 아이돌 배우에게는 관대했다. 배우 끼리 견제도 안 하는데, 애초에 판이 다르다고 생각해서였다. 게다가 투자도 덕심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팬덤형 아이돌에게서 좋은 투자자가 붙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걸 생각할 머리가 없으니 엄동필이 감이 떨어졌다는 거다.
“혹시 형이 뭔가 하셨어요?”
유연서는 생각에 잠겨서 대답하지 않았지만, 무언의 긍정이라 여긴 오태성 역의 배우는 선망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 뒤로 잠잠하긴 한데······.’
유연서와 대화한 뒤로 엄동필은 성실하게 촬영에 임했다. 더는 만만한 배우나 감독, 스태프들에게 꼬장 부리지 않았고 촬영장을 찾아온 인파를 알아서 퇴치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저런 유형은 초반에나 기합이 들어가지, 나중에 가서는 흐지부지된다.
‘약발 떨어지기 전에 한 번 더 얘기해야지.’
정말 내가 엄동필을 데리고 JSENM으로 갈 거라는 확신을 심어서 행복 회로에 불을 지펴야지. 그런데 내가 원래 이렇게 사람 하나 찝어 묻는 걸 좋아했던가?
‘이게 다 과거 기억 때문이겠지.’
기억 동기화도 70%가 넘었다. 영향을 안 받을 수 없었다.
아무튼, 스태프들은 엄동필의 변화가 의아했지만, 유연서가 어떻게 해결해 준 것 정도는 알았다. ‘스네이크’ 현장에 유연서가 주연 배우의 품격이 드러났다는 기사가 왜 나왔냐면, 그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달됐기 때문이다.
“자, 예원 씨도 오셨으니 빨리 촬영 끝냅시다!”
신예원은 바쁜 몸이다. 게다가 드라마 현장은 영화보다 여유롭지 않다. 유연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
마약 3팀은 돌연사한 클럽 MD와 그가 약을 받았던 유통책의 휴대전화를 조사했다. 공통으로 나오는 번호를 조사해 보니, 그 끝에는 톱스타 ‘유미’가 있었다.
손진호의 명령을 받고 유미를 잡으러 온 한유준은 갑자기 한 사람에게 가로막혔다.
“엑스트라야?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예?”
“저기 가서 서.”
“저는 배우가 아닌······.”
김유미가 보이지 않으니 한유준은 일단 단역 배우들이 대기하는 곳에서 상황을 파악했다. 이윽고 고급 세단에서 화려한 차림의 신예원이 내렸다.
“이런 애는 어디서 구했어? 마스크 좋으니까 앞에 세우자.”
“따라오세요.”
한유준은 일단 스태프의 지시를 따랐다. 신예원이 맡은 톱스타 역의 김유미는 뭐가 불편한 듯 몸을 긁고 있었다. 계속 긁는 모습 그리고 언뜻 소매 사이로 보이는 상처, 흔히 보이는 중독자의 부작용이었다.
“어머, 얘는 누구야? 괜찮은데? 너 소속사 어디니?”
잠깐 등장하고, 거의 즉흥으로 대사를 치는 것임에도 신예원은 극 중 톱스타 역할에 녹아들어 있었다. 김유미가 제 턱을 살짝 건드리자, 한유준은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기류가 심상치 않아서 그런지 지켜보는 몇몇 스태프들이 좋아했다.
“너 말 못 하니? 소속사 어디냐니까?”
“인포경찰서입니다.”
“뭐?”
한유준은 신분증을 꺼내 그녀에게 보여줬다. 은색 수갑도 함께였다.
“김유미 씨, 잠시 서로 가 주셔야겠습니다.”
“뭐, 뭐야? 당신이 뭔데······.”
“무슨 혐의를 받고 있는지 제가 이 자리에서 설명해 드려야 합니까?”
한유준은 고갯짓으로 김유미가 긁었던 곳을 가리켰다. 순식간에 얼굴색이 창백해진 김유미가 저항하던 팔을 힘없이 늘어뜨렸다.
“가시죠.”
그는 김유미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촬영장 밖으로 나섰다. 신예원의 특별 출연은 여기까지였다. 한 번에 오케이를 받아낸 신예원이 유연서에게 인사했다.
“나중에 찬휘랑 희진이랑 한잔할래?”
“시간 나면요. 잘 가요.”
유연서는 미련 없이 그녀를 보냈다. 유연서는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에서 안타까움을 읽었다.
‘댁들이 바란 그런 거 없다니까.’
‘국새’의 망붕이 여기도 있었나······ 유연서는 실망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다음 촬영을 위해 자리를 이동했다.
퍽
“아, 죄송합니다.”
그와 어깨를 부딪쳤던 남자는 괜찮다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모자를 쓰고 있어서 얼굴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 하지만 유연서는 왠지 모르게 싸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런 감은 틀리지 않았다.
‘저런 사람도 있었나?’
유연서는 기억력이 좋았다. 오죽하면 말단 스태프의 이름도 외웠다며 주변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하지 않았던가. 유연서는 돌연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는 이미 어딘가 사라지고 없었다.
“······수상한데.”
“연서야! 슛 들어가기 전에 연습 좀 할까?”
“네, 형.”
그는 정현식의 제안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촬영장 정보가 암암리에 유출되는 가운데, 과연 구경꾼만 존재할까?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임승현에게 문자를 보냈다. 촬영장 정보를 팔았던 그 사람을 조사하라고.
신예원의 특별 출연을 끝으로 서비스 장면은 끝났다. 그리고 드디어 2부 격에 해당하는 내용이 나왔다.
체포된 김유미는 자신에게 접근했던 마약 유통책을 술술 불었다. 워낙 톱스타라 그런지 유통책도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만큼 약점을 잡으려는 의도였고.
“잡아!”
“저기 있다!”
마약 3팀은 몇 주의 잠복 수사 끝에 김유미를 비롯한 여러 톱스타와 재벌 자제가 엮인 핵심 인물을 잡아냈다. 그를 데리고 심문실에 앉힌 손진호와 한유준은 심문을 시작했다.
“박우준 씨. 소지품에서 마약이 발견된 거 아시죠?”
“······.”
“어디서 얻었습니까?”
(이 새끼 소리는 어때?)
손진호의 속마음에 한유준은 고개를 저었다. 중독자라 기괴한 소리밖에 안 들렸다. 뭐라 추궁해도 입을 열지 않는 상대방에 손진호가 버럭 소리쳤다.
“이 약 어디서 구했어?”
“······.”
“어디서 구했냐고!”
현장에서 잡은 당시부터 약에 절여져 있었던 유통책은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한유준을 속일 순 없었다.
(뱀······.)
“······뱀?”
한유준의 되물음에 손진호의 표정이 변했다. 드디어 실체가 없던 ‘스네이크’의 꼬리를 잡았다는 희열, 그리고 분노가 있었다.
“혹시 당신에게 약 팔라고 준 사람이 뱀 문신을 하고 있었습니까?”
“······.”
(······어떻게.)
한유준은 눈을 크게 뜨고 손진호를 쳐다봤다. 손진호는 일단 나와보라고 고갯짓했다.
“후우······ 어떻게 생각해?”
“중독자라 속을 읽는 게 어렵습니다. 계속 들어봐야겠습니다.”
“좋아. 앞으로 네가 질문해. 할 수 있지?”
손진호가 알려준 덕분일까? 심문실 안의 소리는 더는 거슬리지 않았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속마음대로 사람의 입을 열게 할지에 관한 것도 손진호가 많이 알려줬다. 한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잠시 자리를 비운 게 실책이었다.
“어, 어어?!”
“왜?”
“저 사람 이상해요!”
손진호와 한유준이 심문실을 바라봤다. 그들이 잡아넣었던 용의자가 몸을 뒤틀고 경련하고 있었다. 게다가 입에는 흰 거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뭐야, 왜 이래?!”
“구급차 불러!”
그들이 다급하게 심문실 안으로 들어가 응급 처치를 했다. 어떻게 잡은 실마리인데, 놓칠 수 없었다.
“······죽었습니다.”
하지만 용의자는 죽었다. 사인은 마약 과다 복용이었다.
***
그렇게 간신히 잡은 스네이크의 단서도 무용지물이 됐다. 애초에 마약 수사는 업무 난도가 상당히 높았다. 게다가 퇴근도 하지 않고 잠복 수사도 스스럼없이 한 탓에 팀원들은 지쳤다. 간신히 잡은 증인도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려서 다들 의욕이 없는 모습이었다.
“오태성 씨, 퇴근 안 하세요?”
“이것만 하고요.”
그중에서도 오태성의 몰골은 가관이었다. 다크 서클이 짙게 내려앉은 눈빛으로 키보드를 영혼 없이 두들기고 있었다.
“······저 사실 사이버 수사팀 업무 과다라서 여기 온 거거든요.”
“그러셨습니까?”
“그런데 가만 보면 여기가 더 심해. 아무리 저라도 개인 메신저까지는 못 턴다고요.”
“이게 다 잠을 안 자서 그래요. 팀장님도 없는데, 퇴근하시죠.”
“하아······ 그래야죠. 들어가세요.”
그렇게 피곤에 절은 오태성을 뒤로하고 생각에 잠겼다.
‘팀장님을 만나봐야겠어.’
마약 3팀의 책임자, 박기훈 검사는 용의자를 너무 험악하게 대해서 죽은 거 아니냐는 이상한 논리를 펼치며 버럭 소리쳤었다. 하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그가 읽은 박 검사의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그는 손진호를 만나기 위해 핸드폰을 들었지만, 전화를 걸지 않았다. 손진호는 경찰서 근처의 노상 포차에 앉아 홀로 술을 들이켜고 있었기 때문이다.
“팀장님. 여기서 뭐 하십니까?”
“보면 몰라? 앉아. 한 잔 받아.”
한유준은 떨떠름한 얼굴로 손진호의 맞은편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이미 빈 소주병이 두 개나 있었다.
“박기훈 검사 소리가 수상합니다.”
“그래.”
“아무래도 박 검사님이 손을 쓸 것 같은데······ 수사 권한이 검사 쪽에 있으면 저희 팀은······.”
“······그래.”
말을 해도 듣지를 않아서, 한유준은 손진호의 손에 들린 술을 확 뺏어버렸다. 드디어 고개를 든 손진호가 한유준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내가 재밌는 얘기 해줄까?”
“······.”
“그때는 오랜만의 휴가였어. 우리 딸, 수영이랑 단둘이 바닷가에 가려고 했거든.”
정작 듣는 사람은 대답도 안 했는데 손진호는 술에 취해서 그가 알아듣지 못 할 말을 술술 뱉었다.
손진호는 많이 지친 상태였다. 그의 직업에 있어서 큰 도움을 줬던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기껏 잡은 실마리는 알맹이를 캐내기도 전에 돌연사했다. ‘소리’가 들릴 적에도 실체가 없었던 스네이크, 지금이라고 잡을 수 있을까?
한유준은 대충 듣는 척하면서 손진호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궁리했다.
“야, 한유준.”
“네.”
“그때 왜 날 말렸어.”
“네?”
멍하니 안주만 바라보던 한유준이 고개를 들었다. 여기서 몇 번을 연습한 표정 연기를 보여야 했다. 터널 사고를 생각해낸 손진호의 속마음을 들으면서, 그의 얼굴은 의문에서 경악으로 변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건······.”
그때 그 사람이 손진호 팀장이었어?
한유준이 떨리는 눈동자로 자신을 원망하는 손진호를 응시했다.
“왜 날 살렸냐.”
(그때 죽게 내버려 두지.)
그러면 적어도 딸이랑 같이 죽을 수 있었을 텐데. 괜히 복수를 꿈꾸지도 않았으면 이런 좌절은 겪지 않았을 텐데.
그 말을 끝으로 손진호는 테이블에 고개를 처박고 정신을 잃었다. 남겨진 한유준은 멍하니 그의 정수리를 바라봤다.
(유준아. 항상 착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
불현듯 떠오른 건 돌아가신 아버지의 가르침이었다. 터널 사고를 겪고 몸이 저절로 움직인 것은, 아버지의 세뇌에 가까운 가르침이 각인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누가 요즘 세상에 착하고 바르게 살아요?’
하지만 정작 내가 구한 사람은 나를 탓하고 있었다.
“······나도 이런 거 필요 없었습니다.”
나라고 이런 ‘소리’를 듣고 싶었겠습니까? 아버지의 유산을 탐내는 친척들의 소리를, 알고 보니 나를 속이고 있었던 친구들의 소리를. 중독자들의 기괴한 소리가 가끔 악몽으로 재현되는데, 나라고······.
한유준은 한 번도 마시지 않았던 제 잔을 들어 올려 술을 한 번에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