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
────────────────────────────────────
나는 ‘유연서’를 연기해야 한다.
“아버지, 환자입니다.”
“환자는 무슨! 두 눈 똑바로 뜨고 보고 있잖아!”
노인이 큰 소리로 화내자, 중년의 남성이 노인을 달래면서도 유연서를 힐끔 쳐다봤다. 얼굴에서 그를 향한 걱정의 감정이 전해졌다.
“아버지. 주치의가 혈압 조심하라고 했잖아요. 제발 화 좀 풀고 얘기하세요.”
“내가 화를 왜 풀어!”
붕대에 칭칭 감긴 아들을 보니 울컥한 아버지, 유건민 부회장이 울상을 지었다.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다고 진단받은 아들이 무사히 깨어났건만, 아버지인 유 회장의 눈치를 보는 게 우선인 자신의 처지가 안타깝기도 했다.
“아이, 그만 하세요. 우리 연서, 아버지 손자. 예? 죽을 뻔했어요. 이제 방금 깬 건데 보자마자 화내시면 어떡해요.”
“그건······ 크흠.”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이 몸의 아버지겠군, 그렇다면 노인은 친할아버지고. 유연서가 된 강진후는 말없이 그들을 관찰했다.
노인의 옆에서 조용히 서 있던 젊은 남자가 유연서에게 다가와 옆에 앉았다.
“의식 차렸네. 다행이다.”
그럼 이쪽은 딱 봐도 형제겠군. 말을 편히 놓는 것을 보니 형 쪽인가?
유연서의 예상이 맞았다. 그는 유연서의 형, 유은호로 주성 그룹의 최연소 상무이자 유 부회장의 뒤를 이을 3대, 후계자였다.
“······너.”
유연서가 아무 말도 안 하고 멍하니 자신을 바라만 보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불안해진 유은호의 안색이 금세 어두워졌다.
유연서는 당황해서 아랫입술을 씹었다. 가까운 혈육이라면 유연서의 변화를 눈치챌 수 있지 않을까? 시간 여행자는 자신의 변화를 다른 이들이 눈치채게 두면 안 된다.
일단 이 상황을 모면하는 게 중요했다. 유연서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처신 잘하고 있잖아요.”
“뭐, 뭐라고?”
유연서는 곧바로 노인을 향해 쏘아붙였다. 노인은 유건민의 간절한 만류에 마음이 조금 누그러들었었는데, 다시 얼굴이 붉어졌다.
“연서야. 너는 또 왜 그러니······.”
말대꾸가 한두 번이 아니었던 모양인지 아버지인 유건민 부회장이 낭패감을 느끼며 한숨을 푹 쉬었다.
‘노인에게 쌓인 게 많았나 보네?’
어르신에게는 기본적으로 예의를 차리는 게 이 시대 사람들 아니었나? 몸 주인 성격도 보통 아닌가 본데? 유연서도 속으로 당황했지만, 남들이 말하길 ‘재앙의 주둥아리’라 불리는 입이 멈추지 않았다.
“내가 ‘그놈의 딴따라’ 관두면 어떤 걸 해도 상관없다면서요!”
“너, 너 지금 할애비에게 무슨 말대꾸야!”
유 회장이 버럭 소리쳤다. 유연서도 지지 않았다. 그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는데, 그 반동으로 비틀거렸다. 형인 유은호가 황급히 유연서의 어깨를 잡아 부축했다.
“소속사에 압박 넣어서 팀까지 탈퇴하게 만드셨으면 그걸로 만족하셨어야죠!”
유연서의 눈이 붉어지더니 눈물이 한 방울 툭 떨어졌다.
“할아버지가 바라신 대로 한국대도 입학했어요. 근데도 만족 못 하시고 머리 빡빡 밀려 강제로 군대까지 다녀왔잖아요! 이번엔 또 무슨 트집을 잡으시려고!”
“연서야. 진정해라.”
당장 달려들 기세였던 유 회장은 유건민이 막고 있었고, 유은호가 피곤한 듯 제 미간을 꾹꾹 눌렀다. 유 회장이 괴팍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버럭 소리치면, 유연서는 지지 않고 맞선다. 새우 등 터지는 건 유건민과 유은호였다.
“그래! 그놈의 딴따라 그만두고 대학 가서 공부하면서 회사 일 하랬지, 이번엔 뭐? 배우?”
“그러니까 그놈의 딴따라 관뒀으면 됐잖아요! 내가 배우 활동한 지 몇 년 차인데 할아버지는 그동안 신경도 안 쓰다가 갑자기 여긴 왜 오셨어요?”
“그건 네가 사고를······!”
“근데 사고 난 게 내 탓이에요? 보자마자 처신 잘하라는 소리는 왜 하시냐고. 몸은 괜찮냐는 말이 그렇게 하기 힘들어요?!”
유연서는 속으로 몸 주인이 느꼈을 감정을 체험하고 있었다. 자신의 앞길을 막은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 분노, 그래도 인정받고 싶은 욕심과 자신을 찾아온 할아버지에 대해 잠시나마 기뻤던 감정까지 다양했다.
‘말은 이렇게 해도 할아버지를 꽤 좋아하는 거 같은데?’
그런데 꼭 화를 내야 할까? 노인도 손자가 걱정돼서 이러는 거 같은데 좋게좋게 말하면 좋으련만, 유연서는 안타까웠다. 그가 강진후였을 때는 가족의 정이라는 걸 모르고 살았기 때문에 그랬다.
“저, 저 못난 놈.”
“할아버지, 일단 오늘은 집에 가죠. 연서도 방금 의식 차린 거라 경황이 없을 겁니다.”
유 회장의 얼굴이 새빨개져서 말을 잇지 못하자, 유은호가 할아버지를 부축했다. 그는 책망하는 듯한 얼굴로 유연서를 응시했다.
“유연서, 너도 할아버지께 그만 대들어. 말은 이렇게 하셔도 네 편의를 봐 주신 건 할아버지야.”
“은호야. 하지 마라.”
유 회장이 다급하게 유은호를 불렀다. 들키고 싶지 않은 진실을 들켜 당황한 느낌. 유연서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혼란스러운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럼 그거 다······.”
무너지는 유연서의 표정을 본 유 회장이 큼큼, 헛기침했다.
“크흠, 깬 거 보니 됐다.”
“할아버지.”
유연서가 불렀지만, 유 회장은 미련 없이 뒤돌아서 병실 밖으로 향했다.
기회를 엿보던 유건민이 흐트러진 유연서의 앞머리를 뒤로 넘겨줬다. 애정이 깃든 손길, 지금의 유연서는 그 손길이 익숙하지 않았다.
“아들, 나중에 올게. 깨어나서 정말 다행이다.”
“부회장! 따라와!”
“네, 네. 갑니다. 아버지.”
마지막으로 남은 유은호가 일어서 있는 유연서를 침대에 앉혔다.
“일은 형이 다 처리할 테니까 넌 몸 낫는 거만 생각해.”
“······.”
“할아버지한테는 나중에 꼭 사과해라.”
“······어.”
유연서가 마지못해 대답하자, 유은호는 그의 어깨를 작게 토닥였다.
세 명이 나가자, 병실은 금세 조용해졌다.
침대에 편히 누운 유연서가 눈살을 찌푸렸다. 귀에서 삐- 이명이 들리면서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자동 행동 모드의 부작용이었다.
‘이런 고통을 느낀 게 얼마 만이지?’
강진후였을 시절에는 상상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그는 태어나기 전부터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끔 설정되었으니까.
“유연서, 너······.”
상념에 잠긴 유연서의 침대 밑에서 누군가가 낑낑거리며 나왔다.
유연서가 놀라서 숨을 삼켰다. 이 정도 인기척도 눈치 못 채다니······. 자신이 진짜 다른 몸에 들어온 것을 실감한 그가 상체를 일으켰다.
“너, 뭐야!”
“그러는 너는 뭐야. 왜 거기서 나와?”
갑자기 침대 밑에 숨었다 나와서 크게 소리치며 삿대질을 하는 남자라. 얼굴을 보아하니 유은호보다는 나이가 어려 보였다. 그럼 이 몸의 또래인가?
“니가 꼰대 온다고 들키면 안 된다고 여기 숨어 있으라며! 갑자기 왜 모른 척이야!”
남자가 버럭 소리쳤다.
이상하네, 내가 유연서의 몸으로 깬 건 얼마 안 됐을 텐데······. 유연서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 몸으로 옮겨갈 때 차원 이동 관리자 알파-13의 말이 생각났다. 그 간섭이 설마······. 원래 몸 주인이 잠시 깨어난 건가? 그래서 가족들도, 이 남자도 깨어났다는 연락을 받고 온 거라면?
그의 생각을 읽은 베타-9이 단조로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야, 그만 가라. 소리치지 말고.”
대체 이 몸과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지만, 제정신으로 상대해 줄 여유가 없었다. 시야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이 몸 상태로 자동 행동 모드를 또 켜게 된다면 몸에 상당한 부담이 올 것이다.
유연서가 손을 대충 휘저었다. 순간, 그의 코에서 피가 후드득 떨어졌다.
“너, 너 피 나.”
남자가 당황해서 머뭇거리다가 탁상 위에 있는 휴지를 왕창 뽑아 유연서에게 건넸다. 유연서는 그걸 받아 제 코에 꾹 눌렀다. 잠깐 흐르는 코피치고는 양이 꽤 많았다. 남자가 안절부절못했다.
“괜찮냐?”
“미안한데, 그만 가 주면 안 되겠냐. 나 이거 두 번 말하는 거다.”
정신없어 죽겠는데 옆에서 계속 말을 거니 근처에 모기가 날아다니는 듯 거슬렸다.
남자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자신밖에 모르는 그 유연서가 사과를 했어······! 진짜 아픈가 봐!
“그래······.”
남자는 뭐라 따지려 했지만, 유연서의 몸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그가 몸을 돌렸다.
“잠깐, 가기 전에 하나만 물어보자.”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 남자가 무겁게 한숨을 쉬었다. 이걸 말할까 말까 한참을 고민 끝에 운을 뗐다.
“너 우리 팀 나간 거······. 할아버지 때문이었어?”
“······.”
“유 회장님이······. 너 아이돌 하는 거 싫어해서?”
남자는 아까 유연서와 유창호 회장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엿들었다. ‘팀까지 탈퇴하게 만들었다’의 그 팀은 바로 그가 소속된 아이돌 그룹이었다.
유연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몸에 대해 하는 게 있어야 말이지. 하지만 그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남자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랬구나······. 갈게. 몸조리 잘해라.”
남자는 터덜터덜 걸어갔다. 병실 문이 조심히 닫혔다.
“쟤는 또 뭐야······.”
깨어나자마자 가족을 상대하기도 벅찬데 친구인지 원수인지 모를 이상한 놈까지 상대하니 마치 폭풍이 지나간 느낌을 받았다.
“이제 어떻게 할까······.”
이제 그는 강진후가 아니라 유연서였다. 평화로운 2018년의······.
유연서는 뭐지? 어떤 삶을 산 걸까?
‘이 몸에 대해 정보가 필요해······.’
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한 첫 번째. 나는 ‘유연서’를 연기해야 한다.
‘그 전에 잠 좀 자야겠어······.’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고 있던 유연서가 침대 위에 쓰러졌다.
***
유연서의 병실을 나온 주성 그룹의 삼 대는 경호원에게 둘러싸여 주차장으로 향했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의사가 기적이라고 하더군요.”
침묵 속에서 유은호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연서도 할아버지 얼굴 봐서 좋았을 겁니다.”
“은호야, 동생이라고 너무 감싸지 마라. 애 버릇 나빠져.”
“제 동생이니 그런 겁니다. 걔 마음은 할아버지보다 형인 제가 더 잘 아니까요.”
정이 넘치는 내용이었지만, 내뱉는 어조는 덤덤했다. 유창호 회장은 잠시 멈춰 서서 유은호를 바라봤다.
“회복되면 제가 데리고 찾아뵙겠습니다. 그러니 할아버지도 너무 화만 내시지 마세요.”
“······그래.”
유씨 집안의 후광도 있었지만, 최연소 상무가 된 건 꽁으로 된 게 아니었다. 탁월한 업무 처리 능력, 시류를 읽는 감각에다가 냉철한 사업가의 면모를 보였지만, 가족의 일에 한해서라면 사려 깊었다. 장손에 대한 뿌듯함에 유창호의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맞아요, 아버지. 우리 연서는 하고 싶은 거 하게 둡시다.”
장손은 좋은데 아들인 유건민은 제 기준에 한참 못 미쳤다. 회사 일은 잘하는데, 그놈의 정이 너무 많았다.
“제 식구도 못 지킨 놈이 말이 많구나.”
유 회장이 쯧, 혀를 차더니 차에 올라탔다.
유 회장이 말한 ‘제 식구’는 유연서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남겨진 유건민이 상처받아서 울상을 지었다. 유은호가 그런 아버지의 등을 토닥이고는 자신의 차로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