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08)
“그, 윤성이처럼 연쇄살인범 이런 거는 아니고요.”
“······고생 많이 하셨겠네요.”
그는 자세히 묻지 않았다. 알 필요도 없었고. 어쩐지 시놉에 쓴 대사 몇몇이 묘하게 눈길을 잡아끌더라니.
“사실 긍정적으로 연락 왔던 제작사가 몇 군데 있었어요.”
팬심을 떠나서 일단 계약하고 돈은 벌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고민하던 와중에 유연서의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사촌 동생분 영상을 봤어요.”
“아······ 그거요?”
적당히 편집해서 올릴 줄 알았지, 날것 그대로 올릴 줄은 몰랐다. 울어서 퉁퉁 부은 모습까지 적나라하게 나왔는데, 얘는 쪽팔리지도 않나······.
그 때문인지 박선우의 멤버십에 가입한 사람들은 유연서를 향해 역시 우리 형님이라고 찬양하는 반응을 보였다.
“잘못 없다고 말씀하셨을 때, 데뷔 기회가 엎어지더라도 꼭 이 회사랑 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마침 연락도 주셨고······.”
다른 이보다 얼굴이 알려졌지만, 박선우는 할아버지의 비호를 받을 수 있으니 다들 무서워서라도 입조심 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땠을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은 무시할 수 없다. 또 인터넷도 발달했으니 지역 SNS 같은 곳에 소문이 났을 수도 있다.
“저는 별생각 없이 말한 건데······.”
아닌 척 미간을 찌푸린 그를 보며 김예진이 작게 웃었다.
“걱정하시는 것도 알아요. 그렇다고 저도 무작정 우리도 힘들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에요. 좀, 그렇잖아요.”
“누가 더 불쌍한지 경중을 따지는 것들 말이죠?”
김예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유연서도 공감했다.
이희서 사망 사건이 밝혀지면서 유연서의 팬들은 당연히 그를 걱정했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거지 주제에 누가 재벌 걱정을 하냐 세상엔 못 먹고 굶는 사람들도 많다며 주제가 엇나간 비유로 따지고 그걸 또 반박하기 위해 싸웠다.
-뭐임? 퇴근하고 오니까 분위기 왜이래?
-오늘 플 요약
유연서 팬들이 내배우 그런사건겪었는데 너무잘자랐고 걱정되고 불쌍하다ㅠㅠ라고함->불쌍하다는 워딩 보고 누가 발작함 거지주제에 황태자 걱정한다. 세상에는 못 먹고 죽은 어린이들이 훨씬 많고 걔들이 더 불쌍하다->일부 팬들, 비유도 이상하게 들었네 맥락을 못잡는거 아니냐고 함->또 발작버튼 눌린 어그로가 불쌍해하는 사람들 재산 합쳐도 유연서 발가락만큼은 되겠냐 니네 인생이나 잘 살아라 라고 함->팬들 또 반박함->이거 무한반복
반박시 네 말이 맞다
└ㅇㄱㄹㅇ
└근데 너무 유연서 팬입장에서 썼네ㅋㅋ
└└? 어디가 팬입장?
└대충 저게 맞긴함
-팬의 입장에서는 걱정할만하지 않아? 이게 그렇게 싸울일이야?
-근데 솔직히 연쓸걱은 맞음
-애초에 처음 시발점이 된 글은 주어도 유연서 아니었음 그냥 내배우 앓이였는데 어그로가 지랄한거ㅋㅋ
-아니 그냥 넘어가면 될걸 그걸 또 꼬리를 잡아서 늘리냐 플 존나 기괴하네ㅋㅋ
-유연서도 어린 시절 불쌍한 거 맞고 세상에 널린 수많은 빈민들도 불쌍하다고 땅땅해 그냥ㅋㅋㅋㅋ
-병먹금 좀 해;; 커뮤 하루이틀하냐?
팬들의 염려하는 마음은 잘 알았다. 하지만 실컷 불쌍해해달라고 나선 적 없고 그들의 인정을 바란 것도 아니지만, 누가 더 불쌍하고 누가 더 잘못했냐를 따지는 것을 보면서 조금, 웃겼다.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어이없어서였다.
“네. 그냥 도 넘은 비난만 하지 말아 달라는 거죠. 너만 억울하냐,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더 불쌍하다면서 말꼬투리를 잡는 게 아니라······.”
격양된 목소리로 내뱉던 김예진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런 소리를 듣는 것에 이골이 난 것 같았다.
“그냥 제가 겪은 걸 기반으로 이런 일도 있었다는 걸 드라마를 통해 알리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렇군요.”
“그리고······ 제 작품을 통해서 사회적 인식이 조금은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고요.”
아직 데뷔도 안 했는데 이런 생각하는 게 우습죠? 라고 멋쩍은 듯 말했지만, 유연서는 그 말에 깊은 울림을 받았다.
몇 초간 멍하니 있는 그를 보며 김예진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혹시 제가 못 할 말을 했나요?”
“아뇨. 아니에요.”
저절로 실소가 새어 나왔다. 그마저도 비웃는 느낌을 줄까 봐 애써 입을 다물었다. 생각지도 못했다.
그의 교통사고 이후 행보는 특이했다. 글을 도둑맞은 작가 대신 복수해주고, 마찬가지로 제작사에서 글을 도둑맞을 뻔한 감독의 작품을 밀어주었다.
누군가는 업계의 호감을 사서 대기업의 시장 장악을 하려는 게 아니냐는 얘기를 했고, 누군가는 대기업이 나서서 창작자의 환경을 존중한다고 호의적인 반응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의도하고 한 일은 아니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거슬리는 것을 치웠을 뿐이다. 이정훈의 ‘다만’ 시사회에서 했던 발언도 이익을 위해 전략적으로 접근한 거지, 신념이 강해서 내뱉은 말은 아니었다.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어쩌면 그로서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지망생 작가 A가 되었을 김예진이 자신의 글을 통해서 인식을 바꾸려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렇다면 나 정도 되는 영향력이면 어디까지 바꿀 수 있을까? 나는 이걸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을까? 하는 깨달음이 들었다.
“그래서 윤성이 역할은 꼭 연서 씨가 맡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사실 전에는 팬심이 좀 있긴 했지만······ 아무래도 잘 이해해주실 거라 생각하고······.”
피해자 가족의 처지면서, 가해자의 가족을 이해할 수 있는 상황. 물론 다른 배우들의 연기력을 폄훼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비슷한 상황에 부닥친 사람이라면 더 몰입을 잘하게 되지 않을까? 상징적이기도 하고. 김예진은 가방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사실 글을 조금 보완해 봤거든요.”
“지금 읽어봐도 되나요?”
“네. 그, 좀 더럽긴 한데······.”
유연서는 종이를 받자마자 빠르게 훑었다. 정말 제대로 읽는 게 맞을까? 싶을 정도로 빠른 손놀림이었다.
“초반부에 범인을 의미심장하게 포장한 거는 서술 트릭인가요?”
“네.”
연출을 잘해야겠네, 음악 감독도 좀 잘하는 사람을 뽑아야겠고······ 중얼거리는 모습을 김예진은 신기하게 쳐다봤다. 그 밖에도 읽는 중간에 툭툭 질문하는 것을 보면 대충 훑은 것도 아니었다.
‘더 괜찮아졌네.’
사실 처음 글을 봤을 때는 느낌이 좋은 작품은 아니었다. 마침 작품을 물색하다가 그의 상황과 맞아떨어진 제목을 보게 되었고, 소재가 와닿아서 관심이 있었을 뿐이지 만약 계약하게 된다면 베테랑 작가를 붙여 속성 과외를 시킬 생각이었다.
수정하기 전 내용은 직·간접적인 피해자를 중심으로 다루려고 한 탓인지 옴니버스 형식과 비슷했고, 단막극에 어울릴 것 같은 흐름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야기는 두 주인공의 사건 수사 중간에 은근하게 끼워 넣으면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드러냈다. 그렇다고 초기 주제 의식이 흐려진 건 아니었다.
“좋아요. 저희랑 같이하실 거죠?”
그리고, 수정한 시놉이 느낌이 좋다. 그리고 이 좋은 느낌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유연서가 씩 웃으며 말하자, 김예진의 표정도 금세 밝아졌다.
***
올해를 되돌아보는 주요 뉴스에는 박경석 살인 교사 사건이 빠짐없이 올랐다. 방송국 연말 시상식에서는 이희서의 소싯적 영상과 함께 짧은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새해를 맞이했다.
[공식] 유연서 활동 재개···JSTV 드라마 ‘연좌제’ 주연 확정요양 후 복귀 시동 건 유연서, ‘다만’ 속편 주인공 물망
JS엔터 측, ‘故 이희서 작품 리부트 가능성 있다’ 밝혀···유력 주연 후보는 유연서?
해가 바뀌자마자 유연서와 관련된 보도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벌써?
-와 차기작을 벌써ㄷㄷ
-좋은데 이렇게 좋아해도 되는 걸까?ㅠㅠ
-내배우도 차기작한다~!
유연서는 이재학 피디와 비밀리에 예능 준비를 했다. 예능은 정말 깜짝 발표할 예정이었다. 아무런 보도 기사 없이 인기 프로그램의 마지막에 예고편을 방영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설날이 되었다. 작년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빠지는 사람 없이 다 참석하라는 유 회장의 엄포에 모든 사람이 모였다.
“연서야.”
“누나, 오랜만이네.”
유연서는 큰고모의 장녀, 이서윤과 반갑게 인사했다. 서로의 근황을 물으며 형식적인 말만 오고 가다가 잠시 머뭇거리던 이서윤이 운을 뗐다.
“사실······ 그 사건 있고 나서부터 아빠 생각이 바뀌었어.”
“그래?”
이영택은 박경석의 추락한 모습을 보고 생각이 많아진 듯하다. 유연서도 뒤늦게 그날 오갔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박경석의 남 탓을 보며 생각이 많아졌겠지. 이제라도 바뀌어서 다행인가.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시더라.”
“오······.”
“이걸 잘된 일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
“잘 됐지.”
이서윤은 자신이 자유로워진 계기가 유연서와 얽힌 안 좋은 사건 덕분이라는 것에 온전히 기뻐할 수는 없었나 보다. 유연서는 이서윤을 안심시켰다.
그렇게 모든 사람이 한 식탁에 모인 자리에서 상석에 앉은 유 회장이 선언했다.
“다음 달부터 회사는 건민이가 맡는다. 나는 은퇴할 거야.”
이미 몇 년 전부터 승계를 위한 준비를 마쳤기 때문에 그냥 직함만 바꾸면 되는 일이었다.
“축하해, 오빠.”
“축하합니다. 형님.”
“다들 고맙습니다.”
고모들과 이영택이 짤막하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유건민은 살짝 일어나서 화답했다.
“유산은······ 생각이 바뀌었다. 다들 성과는 없어도 돼, 그냥 공평하게 배분할 거다.”
“장인어른, 그 사건은 장인어른 잘못이······.”
“알아. 하지만 내 방식도 옳지 않다는 건 너희들도 느끼고 있었지?”
가족 간의 경쟁을 부추기고, 유산을 마치 인질 삼아 성과를 만들어 오라고 닦달하는 것들. 유 회장은 박경석과의 대화에서, 많은 걸 생각했었다.
그렇다고 사람을 죽인 건 용납할 수 없는 행위이지만, 그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이제라도 바로잡아보려 한다.”
“아버지, 어디 아프신 건 아니죠?”
“죽을 때 아직 안 됐어!”
유건민의 말에 버럭 소리치는 유 회장은 그사이에 많이 늙어 보였다.
유연서는 그 모습을 감회가 새로운 듯 바라봤다.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독불장군이 생각을 바꿀 때도 있구나. 나이가 들어서인가?
“세금 문제는 도와달라 하면 최대한 도와주마. 낼 능력 있는 애들은 알아서 내도록 하고, 불만들 없지?”
“네.”
감히 누가 불만을 말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민감한 유산 문제도 공평하게 나눈다니 만족스러웠다.
“그래, 다들 잘 지냈어? 선영이 너는 별일 없고?”
“이제 괜찮아요, 아버지.”
“우리 유정이랑 선우는?”
“저희도 괜찮습니다. 할아버지.”
유선영의 표정은 전에 봤던 때보다 밝아 보였다. 박유정과 박선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서로의 앞으로 할 일을 묻고 잘 될 거라고 격려하는 와중에 화살은 유연서에게 돌아갔다.
갑자기 째려보는 할아버지의 표정에 유연서는 숟가락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연서, 너는 기어코 활동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아주 요란하게 광고를 했더구나.”
“그래야죠. 계속 집에 있으면 심심해서요.”
“네 건강을 생각해야지! 아직 원인이 뭔지도 밝혀지지 않았는데!”
“에이, 주기적으로 병원 가면 되죠. 설마 의사들이 저를 가만히 내버려 두겠어요? 원인을 찾는 순간 대박인데.”
“아이고······.”
대화를 엿듣던 어른들이 환장하는 가운데, 가벼운 행동으로 할아버지의 복장을 터뜨린 유연서는 준비했던 말을 내뱉었다.
“할아버지는 은퇴하시고 뭐 하실 예정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