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17)
체육관에 홀로 남아 연습에 열중하던 김은주는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체육관의 불을 끄고 밖으로 나섰다.
“아······ 우산 없는데.”
김은주는 문득 황진우가 언제든 연락하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황진우, 뭐 해?”
사실 부모님에게 연락하면 된다. 하지만 김은주는 그냥 황진우에게 데리러 오라고 하고 싶었다. 부끄러워서 괜히 헛기침한 김은주는 대답 없는 황진우를 의식했다.
“아 설마 자고 있었어? 그럼 됐고.”
(······너 설마 우산 없냐?)
“응.”
역시 눈치 빠르네. 헤헤 웃으며 대답하자 수화기 너머 황진우가 작게 한숨을 내뱉는 게 느껴졌다. 뭐지?
“근데 목소리가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 별거 아닌데? 너네 체육관으로 가면 되지?)
“응. 어? 야, 잠시만.”
수줍게 통화하는 김은주를 차에 탄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었다. 충동을 억제할 수 없어서 손을 덜덜 떨고 있던 황수철이었다. 마침 사냥감을 물색하던 차에 체육관 밖에 서 있는 김은주를 발견한 것이다.
그는 룸미러로 자신의 표정을 살폈다. 단단하게 닫힌 입과 경직된 얼굴 근육을 풀고 사람 좋은 얼굴을 연출했다. 김은주의 앞에 차를 세운 그가 조수석 창문을 내렸다.
“학생! 우리 진우 친구, 맞지?”
“어? 안녕하세요!”
“탈래? 아저씨가 태워다 줄게.”
김은주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윽고 조수석의 문을 열어 차에 올라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황진우의 아버지다. 어머니끼리도 잘 알고, 피곤해 보이는 황진우를 귀찮게 하기도 싫었다.
(야. 김은주.)
“아냐 안 와도 돼. 너네 아저씨가 태워 주신대.”
(뭐라고? 잠깐, 은주야.)
통화를 끊고 안전띠를 맨 김은주가 넉살 좋게 말을 걸었다.
“감사합니다. 괜히 귀찮게 해 드린 거 아니죠?”
“아냐, 나도 가는 길인 걸. 주소가 어디니?”
황수철은 활짝 웃으며 김은주를 안심시켰다.
“부모님 걱정하실 테니까 미리 연락해야지.”
“아!”
이런 말까지 하니 저절로 안심됐다. 김은주는 자꾸 제게 전화를 거는 황진우를 무시하고 어머니께 연락하려고 했다.
“어?”
황수철이 김은주를 기절시키기 전까지는. 황수철이 주먹을 뻗었고, 화면은 빗길에 정차된 그의 차를 보여줬다.
“흐······.”
힘없이 떨궈지는 김은주의 고개, 그리고 섬뜩하게 웃으며 차를 출발하는 황수철. 김은주의 휴대폰 화면에는 황진우의 이름이 깜빡였다.
***
김은주가 전화를 받지 않자 초조하게 손톱을 뜯던 황진우가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설마, 아니지?’
아닐 거야. 애써 생각해 경찰서 앞까지 가고도 신고를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김은주가 제 아버지와 마주쳤다고 이렇게 초조하게 구는 것 자체가 이미 제 아버지를 의심하고 있다는 방증이나 마찬가지였다.
(정해진 출퇴근이 있는 엘리트 직장인으로 추정되는 살인범은 피해자를 죽이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했을 것이다. 분명 범행할 장소를 미리 정해두고 피해자를 물색했을 것이다.)
정석준의 책에서 나온 구절이 생각난다. 아버지의 개인 공간을 찾은 그가 마구잡이로 물건을 뒤졌다.
서랍을 아예 꺼내 안에 물건을 탈탈 털었다. 아마도 피해자에게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물건들을 보니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한참을 뒤적인 그는 책 사이에 끼워진 지도를 발견했다. 형광펜으로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지도에 나온 지역을 눈에 익힌 그가 밖으로 뛰쳐나왔다.
“헉, 허억······.”
황진우는 폭우 속을 뛰었다. 길게 길러 웨이브 진 머리가 축 늘어져 이마와 볼에 달라붙었다. 몸이 차가워서 덜덜 떨리고 숨이 차올라도 멈추지 않았다.
한참을 뛰어 도착한 곳은 가로등 불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골목길, 김은주는 그곳에 있었다.
“으, 은주야.”
비가 이렇게 오는데 왜 거기 누워 있어. 다리에 힘이 풀린 황진우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김은주의 복부에서 검붉은 액체가 빗물을 타고 바닥에 번지고 있었다.
“은주야······.”
온몸에 힘이 풀려서 제대로 일어설 수 없었다. 결국 기어서 김은주의 곁으로 간 황진우는 처참한 몰골에 꺽꺽 숨을 쉬며 오열했다.
“어떡, 어떡해······ 은주야.”
그가 차마 잡지 못했던 손, 팔목에는 그가 줬던 끈 팔찌가 묶여 있었다. 황진우는 늘 자신에게 친절했던 김은주의 부모님이 생각났다.
“죄송합니다······.”
한참을 오열하던 그가 땅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누군가를 향해 사죄했다.
경찰서에 가서 그냥 얘기할걸. 괜히 망설였다가 결국 김은주만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다. 그는 김은주와 그녀의 가족들에게 사죄했고, 앞선 피해자들에게 사죄했다.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내가 미리 알았으면, 내가 그런 사람의 자식이라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만지면 부서질까 봐 망설이며 파르르 떨리는 손은 여전히 김은주의 손을 잡지 못했다.
***
“시궁쥐 살인 사건의 범인이 나타났다고?”
“이 사진 보세요. 골목길의 쓰레기를 일렬로 정리한 것을 보면 형사님이 찾던 그 사람 같습니다.”
범죄 심리학책을 쓰고, 우성 경찰서에서 계속 형사 일을 하던 정석준은 김은주가 살해된 사건 현장의 사진을 자세히 살폈다.
“이 새끼······ 드디어 나왔군.”
살인에 중독된 놈이다. 언젠간 다시 활동할 줄 알았지. 사진을 툭툭 두들긴 그가 옆 사람에게 물었다.
“신고자는 어딨어?”
“저기······.”
복도 의자에 앉아 어설프게 담요를 덮은 황진우. 경찰이 준 따뜻한 코코아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석준은 그에게 조심스레 다가갔다.
“학생, 우리 낮에 본 적 있지?”
“······.”
“학생? 나 좀 볼래?”
정석준은 황진우의 눈앞에서 손을 휘휘 저었다. 미동도 없는 모습이었다. 정석준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완전 넋이 나갔군.’
피해자랑 같은 학교라고 했었나. 지금 모습을 보니 가까운 사이 같은데, 충격이 꽤 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하루빨리 돌아온 살인마를 잡아야 했다. 몇 년을 참다가 드디어 다시 살인을 저질렀다. 고삐 풀린 살인마가 마구잡이로 피해자를 만들어 낼 가능성도 있었다.
“뭐 알고 있지?”
“······.”
“알고 있으니까 요 앞까지 찾아온 거 아니야?”
황진우가 몸을 움찔하더니 정석준을 바라봤다. 초점이 돌아온 눈빛에 정석준이 침을 삼키고 뒷말을 기다렸다.
“우리, 아빠가······.”
정석준은 황진우가 횡설수설 내뱉은 단어를 조합했다. 아버지, 시궁쥐, 살인, 의심.
황진우가 가방에서 아버지의 전리품을 내밀자, 그걸 알아본 정석준이 다급하게 황진우의 어깨를 잡았다.
경찰을 은퇴하기 전에 이놈은 꼭 잡겠다고 다짐했었다. 그 실마리를 드디어 잡았다는 생각에 흥분해서 소리쳤다.
“그걸 왜, 왜 지금 말했어!”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힘없이 사과하는 모습에 정석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직 성인도 안 된 학생이었다. 자신의 아버지를 밀고하는 일이 쉬웠을까? 당연히 망설일 만했다.
그러다가 김은주라는 새 피해자가 생겼지만, 절대 황진우의 잘못이 아니었다.
“저······ 그······.”
“진우야!”
사과하려던 정석준의 말은 경찰서로 뛰쳐 들어온 강미래에 의해 막혔다. 정석준은 벌떡 일어나 자신의 팀원들에게 말했다.
“당장 황수철 지명 수배해.”
“네, 알겠습니다.”
“너는 나 따라와. 황수철 집으로 간다.”
“네.”
분주히 밖으로 나서는 경찰들. 자신의 남편을 지명수배한다는 말까지. 아직 상황 파악을 못 한 강미래가 제 아들을 바라봤다.
“진우야. 이게 무슨, 무슨 일이야.”
“······엄마.”
황진우는 제 어머니를 보자마자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모자는 서로를 끌어안고 온기를 나눴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시궁쥐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이 체포되었습니다.)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한 소녀가 ‘시궁쥐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에게 살해당했습니다.)
내래이션으로 깔리는 뉴스 진행자의 목소리. 화면은 현실로 돌아와 고승혜와 강윤성을 비췄다.
“······고 형사님, 제가 자기주장도 제대로 못 한다고 답답하다고 하셨죠?”
“······.”
“그게요,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허탈하게 내뱉는 강윤성의 눈이 빨갛게 충혈됐다.
시신으로 발견된 김은주, 그리고 체포되는 황수철. 그들의 행복한 집은 경찰 통제선이 붙여져 많은 경찰이 드나들었다.
“그 살인마가 글쎄······.”
“세상에. 몇 명을 죽일 동안 그걸 몰랐을까?”
“내가 살인마 옆집에 살고 있었다니······.”
집 앞에는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진을 쳤고, 동네 사람들은 만나기만 하면 그 얘기로 수군거렸다. 그리고 세상은 강미래와 황진우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쟤야?”
“와 진짜 뻔뻔하다.”
힘겹게 등교한 학교에서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집중됐고,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같이 축구했던 친구들마저도 그에게 다가가길 꺼렸다.
“그, 진우야.”
“혹시 전학 갈 생각은 없니? 그게······ 학부모들이 하도 항의해서······.”
담임을 따라 교장실에 불려간 그는 사실상 쫓겨난 거나 다름없는 권유를 받는다.
동네 사람들의 손가락질 그리고 황진우의 전학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사했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야, 너네 아빠 살인마라며?”
“뭐?”
“이 지역에 소문 쫙 깔린 거 모르냐?”
“······.”
“왜, 나도 죽이게? 네 아빠가 했던 것처럼?”
살인마의 가족이라는 꼬리표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너는 네 아빠처럼 살지 마라.”
“왜 범죄자 가족을 신경 써야 해?”
어디서 소식을 전달받은 건지 이사 갈 때마다 그들과 관련된 소문이 들린다. 결국 여러 지역을 떠돌아다니느라 경제적으로도 쪼들리기 시작했다. 황진우는 어머니의 성을 따라 이름을 강윤성으로 개명했다.
“네가 신고만 하지 않았더라면······.”
“엄마.”
“헉······.”
지친 어머니의 한탄. 강윤성은 그 말조차 비수로 꽂혔다.
“미안, 미안하다.”
자신이 말을 내뱉고도 경악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강윤성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저라고 이렇게 살고 싶어서 살았을까요?”
고승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박가영을 향해 남편이 그런 사람이라는 거 몰랐냐고 했던 것이 바로 자신이니까.
제 아버지가 연쇄 살인범이라는 게 밝혀진 뒤로 주변 환경이 강윤성의 성격을 변하게 했다. 혹시 나도 아버지와 같은 성향을 타고났나 싶어서 병적으로 정신과 치료에 집착했었다.
“지금도 누가 속삭이는 소리만 들리면 몸이 저절로 경직돼요.”
“······.”
“나도 그런 사람 자식이라는 게 소름 끼칠 정도로 싫은데······.”
강윤성의 눈에서 아슬아슬하게 고여있던 눈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저랑 우리 엄마는 죄인이 아니잖아요······.”
***
복도 코너 길에서 얘기를 다 듣고 있던 정석준 교수는 경찰서 밖 벤치에 앉았다. 그는 하늘을 쳐다보고 무거운 한숨을 토해냈다.
“선배님.”
“어.”
“······다 들으셨구나.”
그런 정석준의 옆에 고승혜가 앉았다.
“그런데 왜 아들이 신고자라는 얘기가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아마 연대 책임의 꼬리표는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들이 첫 신고자라고 알려졌으면 그나마 덜하지 않았을까?
정석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고승혜를 바라봤다.
“설마 내가 공적 때문에 숨겼던 거로 생각하는 거야?”
고승혜는 차마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았다. 정석준은 한숨을 길게 쉬었다.
“말했어. 기자 양반이 인터뷰하러 오면 제발 이 얘기는 써 달라고 했었고, 내 책에도 썼었어. 강연에서도 귀에 닳도록 말했지. 그 아이가 없었으면 범인을 잡을 수 없었을 거라고.”
“그런데 왜 저희는 다르게 알고 있었을까요?”
“그때 정치권에서 비리가 터졌잖아.”
“설마······.”
정치권은 비리를 덮기 위해 그럴싸한 시민 영웅을 만들어냈다. 그게 몇 년간 미제 사건으로 남았던 ‘시궁쥐 연쇄 살인 사건’을 종결한 형사, 정석준이었다.
사람들은 처음 접하는 정보에서 거의 모든 걸 결정해 버린다. 그리고 후속 정보에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언론은 아들이 범인을 잡는 데 큰 공헌을 했다는 것을 지우고 그 자리에 정석준이 어떻게 황수철을 잡았는지를 치켜세웠다.
“그 아이한테 몹쓸 짓을 한 게 마음에 걸렸는데, 그치들 하는 꼬라지 보니까 형사 생활에 회의감이 들더라고.”
“그래서 은퇴하셨었구나······.”
“사과를 해야 할 그 애는 어디서 뭘 하는지 찾을 수도 없고······ 설마 여기서 다시 만날 줄은 몰랐지만.”
마음이 무거워졌던 정석준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우리가 이럴 때가 아니지. 모방범이나 빨리 잡자고.”
“네.”
강윤성은 강윤성이고 지금은 우성시 어딘가에서 또 사람을 죽이고 있을지 모르는 모방범을 잡아야 했다. 두 사람이 다시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려던 때, 헐레벌떡 뛰어오는 한 아주머니가 보였다.
“어?”
저 사람은······ 고승혜가 그녀에게 향했다.
“박가영 씨?”
“선생님.”
박가영은 전에 고승혜에게 불편한 소리를 들었던 것도 잊고 일단 경찰이니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내 딸······ 내 딸 좀 찾아주세요.”
“네?”
“내 딸······ 민주가 연락이 안 돼요. 여태까지 연락이 끊긴 적 없는 아이인데.”
“일단 진정하시고······.”
박가영의 몰골은 처참했다. 궂은일을 하다 온 것인지 작업복에 머리는 산발이었다. 눈물 때문에 이미 눈은 퉁퉁 부어있었다.
고승혜가 애써 박가영을 달래고 있을 때, 경찰서 안에서 강윤성이 튀어나왔다.
“고 형사님!”
“뭐야?”
“최민주 학생이······!”
강윤성은 제 핸드폰 화면을 보여줬다. 최민주 학생이라고 저장된 번호에서 온 메시지에는 ‘도와ㅈ’라고 쓰여 있었다.
“요즘, 요즘 노약자만 죽이는 살인마가 있다면서······ 제발······.”
“일단 안으로 들어가셔서······.”
“우리 민주 좀 제발 찾아주세요······!”
정석준이 소리치고 애원하는 박가영을 애써서 달래는 사이 강윤성과 고승혜가 심각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