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34)
“오늘이지?”
“앗, 깜짝이야.”
지금 들릴 리 없는 목소리에 이태겸이 황급히 몸을 돌렸다. 유연서가 이태겸의 자리에 앉아 천장을 향해 공을 던졌다가 받았다.
“여긴 왜 왔어? 오늘 스케쥴 없잖아.”
“한 대표 놀리러 왔는데, 없더라?”
“대표님 요즘 촉 좋아지셨던데? 몸이 으슬으슬하다고 가셨어.”
이태겸은 설마? 싶어서 유연서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얘가 설마 나 보려고 몸소 여기까지 올 사람은 아닌데······ 이태겸이 의심의 눈을 지우지 않자, 유연서가 씨익 웃었다.
“잘해라.”
“······나 갈구러 온 것 맞네.”
“갈구다니, 격려인데.”
이태겸은 제 어깨를 툭툭 치는 유연서의 손길에 묘하게 안심되는 느낌을 받았다. 진짜 나 응원하러 여기까지 왔다고? 그 속마음을 읽은 유연서가 박수를 두세 번 쳤다.
“이태겸 첫 실장 업무인데 내가 응원은 해 줘야지.”
“어이고, 감사. 마침 잘 왔다.”
유연서가 쉴 때마다 이태겸은 박 실장을 따라다니면서 실장의 업무를 배웠다. 기나긴 인수인계 끝에 드디어 ‘아이덴티티’의 첫 미팅을 단독으로 나서게 되었다.
아무리 유연서가 투자와 제작사, 그리고 배급사에 연관되어 있더라도 배우로서의 업무는 헤일로 미디어가 도맡아 한다. 촬영 전 많은 미팅 행렬에 이태겸도 참여한다.
“여기, 로드 매니저 이력서인데 네 그 귀신같은 촉으로 괜찮은 사람 추려 볼래?”
“로드를 왜 뽑아?”
이태겸은 인상을 찌푸리고 자신을 가리켰다.
“나 실장 됨, 그럼 로드는?”
“몰랐어? 너 무늬만 실장이야. 내 운전은 네가 해야지.”
“뭐?”
유연서는 배우 중에서도 스태프가 극히 적었다. 로드 매니저인 이태겸, 코디는 유연서가 직접 했고, 헤어 메이크업은 샵에서 간간이 파견 오는 인력으로 충당했다.
그리고 개인 비서라서 배우 팀이라고 불리기도 애매한 임승현이 있었다. 유연서는 여기서 더 팀을 늘릴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지금 구하면 날파리가 많이 꼬일 것 같아서.”
“아······ 하긴 그렇지.”
사람을 거르는 게 참 힘들다. 심사숙고 끝에 사람을 뽑아도 어떤 지뢰가 걸릴지 모른다.
예전에는 유연서를 도촬해서 기자에게 사진을 돈 받고 넘기려는 이상한 놈도 있었다. 그놈이 입사하고 2주일이 안 됐을 때였다. 그리고 n번째 매니저라는 수식어도 붙지 못했다.
“그럼 너 촬영 들어가는 동안 추가 미팅은?”
“박 실장이 알아서 잘하겠지.”
“허허······.”
이태겸이 허탈하게 웃었다. 사실 실장으로 승진해서 지금껏 하던 일과 다른 일을 하게 되는 건가? 싶어서 조금 섭섭한 기분이 들었었다.
이젠 유연서가 기피 대상도 아니고 일만 잘하면 돌아오는 것도 많았다. 이제는 햇수로 7년이 넘어가니 나름대로 정도 많이 들었고.
기분이 묘해진 이태겸은 이어서 들리는 유연서의 질문 세례에 역시 쟤는 좀 재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 제1 투자자가 누구?”
“너.”
“제작사랑 관련된 사람 누구?”
“너지.”
“배급사는?”
“······.”
이태겸은 말을 잇지 못했다.
업계에서는 투자자가 ‘갑’이다. 그리고 투자자들은 티켓파워가 있는 배우와 감독을 선호한다. 그런데 유연서는 티켓파워가 있는 배우이면서 투자자다.
게다가 제작사에도 한 발 걸쳐 있지, 그리고 아무리 작품을 잘 만들어도 틀어주는 사람이 ‘슈퍼 갑’이다. 유연서는 국내 최대 배급사의 후계자였다.
“애초에 협상 못 하는 게 이상한 조건인데. 저쪽에 말려들어서 양보할 생각이면 다시 실장 떼라.”
“격려 아니잖아!”
유연서가 비웃으며 말하자 이태겸은 버럭 소리치고는 몸을 홱 돌려 성큼성큼 걸어갔다.
“가냐?”
“간다.”
“쫄지 말고. 거기서 제일 센 사람이 너다.”
“안 쫄거든?”
후우, 심호흡한 이태겸이 사무실의 문을 열고 힘차게 걸어갔다. 유연서는 고개를 옆으로 쭉 빼고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근데 진짜 쟤 응원하러 온 거 아니야?”
“회사 가는 김에 잠깐 들른 건데.”
“허이고, 그러시냐?”
“그러는 박 실장은 왜 이 시간에 여기 있어?”
박 실장이 뜨끔해서 제 볼을 긁적였다. 원래라면 유연서 말고 다른 배우의 미팅을 나가느라고 정신없어야 할 시기였다.
“인수인계 제대로 못 했어요? 쟤가 일머리가 없나?”
“아냐, 쟤 잘해. 너한테 옮아서 그런지 사람 신경 긁는 말도 잘하고.”
“그런데 왜?”
“······네 위치를 생각해 봐라.”
유연서는 다른 배우들보다 특별한 상황에 있었다. 투자자이면서 제작사에 한 발 걸쳐 있지, 게다가 배급사에도 연관되어 있다. 어쩌면 유연서의 존재 자체로도 업계에는 전대미문 한 일이었다.
예전이면 힘이 센데 제대로 못 휘두르는 느낌이라 조금 만만했다면, 지금은 자신의 뒷배경을 잘 활용해 회사 쇼핑도 하면서 점점 영향력을 넓히고 있었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관한 얘기도 오가고 있었다.
‘이거 상대 배우로 유연서 나오면 조율하기 힘들겠는데······.’
‘찍힐만한 행동을 할 바에는 아예 피해 가는 게 맞지 않겠어?’
‘우리 배우는 유연서 라인이라서 괜찮은데.’
‘영화 투자계 큰 손이니까 당연히 우리가 배려해 줘야지.’
소문을 알고 있던 유연서가 헤일로 미디어의 한 대표를 통해 배우로서의 일과 자신의 집안일은 분리해서 봐 달라는 소문을 흘렸지만, 그렇다고 분리해서 보기란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가뜩이나 별 사소한 일로 날파리가 많이 꼬이는데, 그거 때문에 자기라도 행동 조심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던데.”
“쟤가 그래요?”
“그렇대잖냐.”
박 실장은 이태겸이 술에 취해 주절거렸던 얘기를 유연서에게 전했다.
요즘 들어 공격하는 사람도 많고 전보다 이미지도 달라져서 신경 쓸 게 더 많아졌는데, 가뜩이나 방송을 통해 얼굴이 알려진 자신마저 막살았다가 담당 연예인의 이미지를 더럽히면 어쩌냐는 하소연이었다.
‘그렇게까지 생각이 많을 필요는 없는데······.’
그를 거쳐 갔던 몇몇 매니저가 지금 이태겸의 위치에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내 권력을 제 권력인 것처럼 행동했을지도 모르지. 그런 면에서 이태겸은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그럼 알아서 잘하겠네.”
유연서는 작게 웃었다. 하긴, 배경 믿고 휘두르는 건 나 하나로 족하지.
***
진수호의 소속사, 이스트 엔터테인먼트의 김미영 실장은 당당하게 회의실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김 실장님, 오셨군요. 여기 앉으세요.”
“그쪽은 안 왔나 보네요?”
“네, 아직······.”
JSENM의 산하 제작사 직원이 말끝을 흐렸다. 당연히 투자자이자 회장 아들인 유연서의 편의를 봐주는 게 맞다.
하지만 진수호도 탑급 배우였다. 티켓 파워도 세고, 그가 무슨 시나리오에 관심이 있다는 증권가 찌라시만 돌아도 투자자가 돈을 들고 찾아오는 몇 안 되는 배우 중 한 명이었다.
‘사실 돈은 유연서 쪽이 다 대서 진수호 쪽 투자자가 끼어들 틈도 없긴 했는데······.’
그렇다고 마냥 유연서 위주로 편의를 봐줄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진수호랑 이번 작품이 끝나고 다신 안 할 것도 아니라서 그렇다.
그래서 제작사에서 생각한 묘수는 삼자대면이었다. ‘두 사람이 알아서 잘 조율하고 나한테 알려줘 우린 맞춰줄게.’ 전략이다.
“오늘 미팅은 다른 분이 오실 예정입니다.”
“박상태 실장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요?”
“네, 그 방송에 나왔던······.”
김미영은 작게 숨을 내뱉었다. 어쨌든 박 실장만 아니면 됐다. 능청스럽게 넘어가면서도 정신 차려 보면 원하는 거 다 얻어가는 사람으로 유명해서 헤일로 미디어가 꽉 잡고 안 놔주는 인재였다.
“안녕하세요.”
“오셨습니까? 이쪽으로 오십시오.”
자신을 대하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제작사 직원의 태도에 김미영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얼굴이 낯익었다. ‘매니저 24시’와 ‘유씨 가문’에서 자주 얼굴을 내비쳤던 유연서의 매니저였다.
‘방송에서는 어리숙해 보이던데······.’
방송 속 이태겸은 유연서의 말장난에 넘어가 짜증을 내면서도 하란 대로 다 했다. 매니저와 연예인이라기보다는 동갑 친구로서의 케미를 보여줘서 화제였다. 그리고 이태겸의 ‘유씨 가문’에서의 캐릭터는 ‘호구’였다.
‘실제로도 그런 성격일까? 그럼 조금 쉬워지겠는데······.’
김미영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벌써 협상에 유리한 점을 세고 있었다.
진수호가 탑급 배우여도 유연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약했다. 그렇다고 고개를 바짝 숙일 수는 없다. 이 미팅에서 얻어가는 게 있어야 했다. 김미영이 의욕적으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이스트 엔터의 김미영 실장입니다.”
“헤일로 미디어의 이태겸이라고 합니다.”
세 사람은 명함을 주고받았다. 김미영은 이태겸의 이름 옆에 쓰인 직급을 바라보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승진하셨네요? 축하합니다.”
“네, 감사······.”
“그럼 바로 회의 시작할까요? 곧바로 다른 미팅이 있어서요.”
내가 늦게 온 건 아닌데······ 기선 제압인가? 이태겸은 일단 자리에 앉아 박 실장이 했던 것처럼 녹음기와 태블릿 패드를 꺼냈다.
“우선 촬영 시간부터 조율합시다.”
“네, 우선 저희 쪽은······.”
이태겸이 먼저 영화 촬영 기간에 맞춘 유연서의 스케쥴을 공개했다. 김미영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스케쥴 조율부터 난관이었다.
“연서 씨 다른 작품도 들어가시나 보네요? 그런 얘긴 없던데······.”
말투가······ 은근히 기분 나쁘다. 일부러 이러는 거 같은데? 이태겸은 일단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소문의 중심에 있잖아요. 그분이 다른 작품에 관심을 보인 건 없던데······.”
다른 작품도 안 들어가면서 뭐 이렇게 스케쥴이 꽉 찼냐는 말이다.
“네, 걔는 바쁘십니다.”
대답하는 이태겸의 말이 꼬였다. 차기작은 아니고, 팬 미팅 준비인데 아직 비밀이라서 자세히 말할 순 없었다.
말이 꼬이는 모습에 김미영은 조금만 더 밀면 원하는 대로 조율이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요? 어쩌지? 우리 배우님도 바쁜데······ 조금만 양보해 주실 수는 없죠?”
“예, 예에.”
안 그래도 영화에 앨범에 팬 미팅 준비 스케쥴 짜느라 바쁜데 여기서 어떻게 양보해? 이태겸은 어수룩하게 말끝을 흐렸다. 그 모습에 김미영은 점점 이태겸을 만만히 보았다.
‘참자······.’
나마저 싸가지없게 굴면 걔 얼굴에 먹칠하는 거다. 안 그래도 요즘 유연서 이미지 좋아졌는데 뭐 하나 꼬투리 잡히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거 순식간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예전이 좋긴 했지······.’
‘유연서가 유연서 했다.’라고 넘어가면 편했는데······ 이태겸이 단호하게 끊어내지 않자, 김미영이 눈을 반짝 빛냈다.
“그런데 하루 촬영 시간이 너무 짧은데요. 이렇게 가면 영화 촬영 기간이 너무 길어지는데······.”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투자자님 방침이어서요.”
“그래요? 그냥 관례대로 하는 게 편한데······.”
한국 영화판에서 스태프들의 인권은 휴짓조각이나 마찬가지다. 정시 퇴근? 일한 만큼 돈을 받는 구조? 절대 아니었다. 이런 악습은 관례처럼 굳어져 유지되고 있었다. 거기에 파문을 일으킨 게 유연서였다.
제작사가 유연서의 요청으로 마련한 촬영 스케쥴은 스태프들의 기본권을 보장한 스케쥴이었다.
“아무래도 저희 투자자님이 영화계 환경 개선을 중요시해서······.”
“선한 영향력이죠? 참, 대단하시네요.”
김미영의 빈정거리는 듯한 말투에 태블릿 패드 화면을 넘기던 이태겸의 손이 살짝 떨렸다. 제작사 직원은 그 모습을 보고 땀을 비질 흘렸다.
“길어도 너무 길어요. 이러다가는 영화 하나 찍는 데 한 세월 걸리겠는데······ 이 실장님이 조금 배려만 해 주시면······.”
김미영이 간과한 게 있다면, 이태겸이 첫 실장 업무에 긴장해서 어리숙한 모습을 보인 것을 눈치채고 조금만 밀면 그가 넘어갈 줄 알고 만만히 봤다는 거다.
하지만 이태겸은 이미 유연서의 밑에서 몇 년 동안 구른 경력의 소유자였다.
[쫄지 말고. 거기서 제일 센 사람이 너다.]참을 필요가 있나? 그는 ‘너 나보다 돈 많아?’라고 말하는 유연서의 목소리가 겹쳤다.
“저기요.”
“예?”
“이 영화, 이스트 엔터에서 돈 대셨어요?”
야 네가 돈 댔어? 유연서 걔보다 많이 댔니? 다소 직설적인 말에 김미영이 당황했다.
“그렇지만······.”
“저 하나 구워삶으면 원하는 대로 다 되시는 줄 아는데, 걔 유연서에요.”
다른 수식어 필요 없이 이름 석 자면 모든 걸 알 수 있는 사람이 유연서다. 나는 만만하게 봐도 걔는 만만하게 보면 안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