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35)
‘내가 사람을 잘못 봤어.’
호구인 줄 알았는데 그냥 참고 있는 거였나······ 이래서 방송의 힘을 무시 못 했다. 무의식적으로 방송에만 보인 이미지로 판단하고 밀어붙인 것이다.
하지만 김미영은 작게 항변했다. 진수호 매니지먼트 자존심이 있지, 이렇게 물러나는 건······.
“그분이 많은 투자를 하신 건 아는데······ 그만큼 회수하셔야 하지 않겠어요?”
진수호는 그만큼 티켓 파워가 있다는 어필이었다. 하지만 이태겸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 진수호님이니까 제가 이렇게 참고 있는 건데, 왜 모르세요.”
“······.”
“그리고 걔가 정말 투자금 회수가 필요할 것 같으세요?”
손해를 봐도 걔가 가진 재산에 흠집조차 나지 않을 텐데······ 유연서가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한숨 쉬며 말하는 이태겸의 모습에 제작사 직원이 그들을 중재했다.
“자자, 두 분 진정하세요.”
“팀장님도 애매하게 행동하시지 마시고 슬슬 노선 정하시죠?”
언제까지 뒤에 물러서서 지켜보고만 있을 거냐는 압박이었다. 날이 선 목소리에 제작사 직원이 큼큼 헛기침했다.
영화는 제작 조율 단계에서 갑을 관계를 미리 정하고 간다. 배우가 세면 감독을 약한 사람으로, 원작이 세면 배우와 감독을 일부러 약한 사람으로 캐스팅해 현장에서 벌어질 기 싸움을 방지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역시 투자자님 우선으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 실장님이 양보해 주시죠.”
이 영화에서의 갑은 누가 뭐라 해도 유연서였다. 제1 투자자에 주연 배우, 제작사에 지분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진수호 쪽도 배우 자체의 이름값 그리고 진수호의 소속사가 국내 최대 배우 소속사라서 투자자 인맥도 많아서 이쪽 눈치도 보느라 이렇게 애매한 상황까지 가게 된 것이다.
“후, 그래야겠죠.”
황급히 중재하는 제작사 직원의 말에 김미영도 쉽게 포기했다. 무조건 투자자 우선인 걸 그녀도 알고 있다. 밀어붙이면 그래도 얻어가는 게 하나쯤 있을 거라 생각하고 찔러봤는데 되레 화만 당했다.
이태겸은 몸의 긴장을 풀고 미리 준비했던 자료를 건넸다.
“그럼 저희의 스케쥴에 맞추시는 거죠?”
“······그래도 좀 봐주세요. 중간에 중요한 스케쥴이 있어서······.”
“하루 이틀 정도는 조율해 드릴 순 있는데, 기대는 하지 마시고요.”
머리에 열이 몰린 이태겸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며 첫 미팅이 끝났다. 녹음기와 자료를 챙긴 이태겸이 벌떡 일어나자, 김미영이 그를 붙잡았다.
“저기, 이 실장님.”
“네?”
“다음 미팅에도 오시나요?”
“아뇨 아마 박 실장님이 오실 것 같은데······.”
진수호처럼 차기작을 쌓아두는 배우는 많다. 하지만 유연서는 ‘아이덴티티’로 팬들의 갈증을 살짝 풀었을 뿐 팬 미팅에 앨범 작업에 아직 공개하지 않은 스케쥴이 더 많았다.
이태겸은 그동안 유연서의 스케쥴을 따라다니며 매니저 일을 해야 했다.
‘이걸 말해야 할까?’
그러냐며 안도의 한숨을 쉬는 김미영의 모습에 잠시 망설였던 이태겸은 용기 내 그녀를 불렀다.
“그런데요. 김 실장님.”
“네.”
“아까 좀 무례했던 거 아시죠?”
아무리 미팅 자리에 이런저런 얘기가 오간다고 해도,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다.
“죄송합니다.”
눈도 깜빡하지 않고 자신을 보는 이태겸의 모습에 김미영이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그것에 바로 만족한 이태겸은 소속사로 향했다. 그리고 때마침 유연서와 마주쳤다.
“좀 늦었다? 어떻게 됐냐?”
“······망했어.”
“왜? 설마 저쪽에서 하란 대로 당했어?”
“아니 그게 아니라······.”
뒤늦게 후회가 밀려온 이태겸이 제 손바닥에 얼굴을 묻은 채 미팅 자리에서 있던 일을 설명했다. 그걸 가만히 듣던 유연서가 하하 웃으며 말했다.
“잘했네.”
“그래도 좀 오버였나? 너랑 친한 사람인데······.”
“뭔 소리야. 개인적인 친분이랑 이건 다르지.”
유연서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가 많은 돈을 투자했다고 해도, 혼자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제작 과정에서 뭔가 문제가 생기면 누가 돈을 더 많이 댔고 적게 댔고에 상관없이 투자자들끼리 합의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는 진수호 쪽 투자자가 끼어들기 전에 모든 일을 처리해 버렸다.
“다음 미팅도 가냐?”
“갈 수는 있는데······ 그냥 안 가려고.”
“왜?”
“그냥, 너 따라다니는 게 마음 편한 거 같아.”
현장에서는 강하게 나갔지만, 속은 이래도 되나? 내가 이렇게 해서 걔한테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하는 자기 검열에 빠졌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것보다는 그냥 속 편하게 운전이나 하면서 유연서의 뒷수발이나 드는 게 편하겠다는 결론이었다.
유연서도 이태겸이 이럴 줄 알았다. 애초에 이태겸이 실장 직함 받은 것도 경력이 많으니 달아준 것이지, 박 실장처럼 본격적으로 실장 업무를 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그러든가. 잘됐네. 너 운전 좀 해라.”
“어디 가?”
유연서가 던진 차 키를 간신히 받은 이태겸이 보폭이 넓어 벌써 저 앞으로 가는 유연서를 종종걸음으로 따라갔다.
“감독 보기로 했어.”
“그래?”
그렇게 유연서의 주도로 ‘아이덴티티’ 감독과 진수호, 세 사람이 식당에 모였다.
“안녕하세요.”
‘아이덴티티’의 김동운 감독은 제시간에 도착했는데도 미리 와 있는 두 사람을 보고 놀랐다. 워낙 탑 배우들이라서 젠체할 줄 알았는데 벌써 현장에 있는 감독처럼 대우해주고 있었다.
[진수호? 천재지.]김동운은 두 배우를 만나기 전 업계 선배들에게 두 배우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아무래도 두 배우가 워낙 잘나가는 배우이니 어떤 성향인지 미리 알고자 함이었다.
[대본 그냥 쓱 읽고 바로 그 캐릭터가 되던데.] [대본대로 딱 정석이지. 갑자기 애드리브 안 넣어서 좋고.] [그래? 난 애드리브 넣는 게 좋던데. 뭐, 이건 취향 차이니까.]진수호에 관한 평가는 항상 같았다. 대본을 대충 본 것 같은데 눈 깜빡하면 그 캐릭터 자체가 되어 있어서 NG도 잘 안 내고 애드리브도 하지 않아 튀는 것 없이 잘한다는 얘기였다.
[유연서는······ 글쎄, 내가 겪어본 게 아니라서.] [일단 현장은 되게 편할 거다. 제작비 장난 아니게 남을걸?] [돈 댔다고 압박하는 것도 별로 없고······.] [촬영장에서는 감독 권한을 존중해 준다고는 하더라. 예전에는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거 패드립 날려서 그런 거라며?] [아, 그래? 그럴 만했네.]유연서는 워낙 소문의 중심지에 있어서 중간에 다른 화제로 튀는 게 많았다. 하지만 김동운이 궁금한 건 이런 가십거리가 아니었다.
[연기? 잘하지. 현장에서도 박수 몇 번 나왔다고 하고.] [진수호랑 결이 좀 다르지? 대본도 빽빽하다고 하던데.] [몰입도 장난 아니라고 하더라.]그들이 진수호를 천재라고 딱 잘라 표현했다면, 유연서는 그런 게 아니었다. 그래서 김동운은 두 사람이 무척 궁금했다. 한 사람은 깨끗한 대본, 한 사람은 빼곡한 대본이라······ 연기 성향이 다르다는 건 잘 알겠다.
“시나리오는 어떻게 보셨나요?”
“제가 읽고 연서한테 소개했거든요.”
“덕분에 제가 좋은 환경에서 촬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덕담 비슷한 걸 나누던 세 사람은 본격적으로 작품에 관한 얘기를 시작했다.
유연서의 실물이 부담스러워서 진수호와 먼저 대화했다. 진수호도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적어도 주연 배우의 비주얼만큼은 볼거리가 많은 영화가 되겠다 생각했다.
“연서 씨는 어떻게······.”
“애매하던데요.”
유연서는 딱 잘라 말했다. 그 당시 마침 악역을 하고 싶었고, 처절하게 몰락하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진수호가 고른 시놉이니 흥행도 잘 되겠고, 그가 처음 읽었을 때 느낌도 좋았다.
하지만 추가로 온 시놉시스를 보고 이질감을 느꼈다. 이 캐릭터는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 감독이 이 작품을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게 뭘까? 그래서 이 자리를 주도한 것도 있었다.
“감독님, 저는 어떻게 연기하면 됩니까?”
김동운은 자신의 눈을 지그시 응시하는 유연서를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유연서가 발연기로 유명했던 것도 몇 년 전이지, 지금은 훌륭한 배우로 탈바꿈했다.
현재 남자 배우의 출연료는 유연서 기준으로 잡혀 있었다. 연기력은 물론이고 티켓 파워와 제작 환경 개선 등 그가 시나리오에 관심을 가졌다 얘기만 돌아도 주변인의 부러움을 살 정도였다.
‘설마······.’
그런데, 이렇게 잔뼈가 굵은 사람이 이런 기본적인 질문을 할까? 김동운이 숨을 삼켰다.
“······아셨습니까?”
“캐릭터 시놉 보니까 이질적인 게 보여서요.”
김동운은 평정을 가장했지만, 속으로는 매우 놀랐다. 그 짧은 시놉시스를 보고 내 의도를 파악한 건가?
“그 김필성 감독님의 자제분이 이런 기본적인 자료조사 하나 안 하실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고요.”
물을 마시려던 감독의 손이 멈칫했다. 김필성 감독은 천성민 감독과 마찬가지로 영화계 거장으로 불리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진수호도 몰랐는지 눈을 크게 뜨고 김동운을 쳐다봤다.
“그건 어떻게······.”
“적어도 이 업계에 제가 모르는 건 없을 겁니다.”
“아······.”
김동운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는 멋쩍게 웃었다. 거장이라 불리는 아버지 밑에서 영화를 배웠고, 자연스레 감독의 꿈을 키웠지만, 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입는 건 바라지 않았다.
“사실 제가 아버지 아들이라는 건 계속 비밀로 하고 싶었습니다.”
“왜요? 어머니 후광 실컷 받은 저도 있는데요.”
“네? 하하······ 그래도 연서 씨는 타고난 게 있지 않습니까.”
“이용할 건 이용해야죠. 아무튼, 작품 얘기로 돌아가자면. 저는 시놉시스대로 ‘애매하게’ 연기하면 되겠습니까?”
김동운은 순간 제 아버지가 하던 말씀을 떠올렸다.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배우란 말이야······ 시나리오를 쓴 감독의 뜻과 영화의 전체 뜻을 이해하는 배우야. 이 배역은 왜 이럴까? 의문과 통찰력이 남달라야 하지.]왜 진수호만 천재라 평가했을까. 이 사람도······ 만만치 않은데.
“네.”
“좋습니다. 자주 연락드려도 되죠?”
왠지 주도권이 바뀐 느낌이 들었지만, 김동운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설렜다. 짧은 문장에서 자신의 의도를 파악한 그에게 제법 감탄했다. 이래서 페르소나라는 단어가 있는 건가.
“잠시만요.”
감독과 배우들이 신나서 작품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을 때, 유연서가 급히 입을 막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아?”
예능 촬영 때 본 게 있어서 그를 따라온 진수호는 유연서가 뱉는 양을 보고 사색이 되어 그의 어깨를 잡았다.
“전보다 더 심해진 거 아니야?”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오히려 나아지는 중이지.
유연서는 얼마 전, 새해가 됐을 때 드디어 베타가 가져온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
“어떻게 됐어?”
정확한 계산을 하러 떠난 베타가 드디어 결과를 가져왔다. 마침 예전 꿈을 꿨던 유연서가 벌떡 일어나 베타의 목소리를 경청했다.
“본론만.”
“뭔데?”
베타는 곧바로 조율했던 것을 읊었다.
지금이 30% 남짓이니까······ 60%로 변경된다는 건가. 유연서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기간과 조정률이라면 평소에도 무리 없이 스케쥴을 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안 그래도 시도 때도 없이 피가 흐르는 바람에 주변의 시선을 너무 많이 받았다.
여기서 더? 유연서는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도 조정하느라 힘든데······ 하지만 현역 시절의 신체 능력을 일부 쓸 수 있는 건 장점이었다.
‘팬 미팅도 있으니 어느 정도 신체 능력을 확보하고 싶은데······.’
안 그래도 쥐꼬리만 한 조정률에 1년이라······ 조금 아슬아슬할 것 같다. 그리고 부작용이 더 심해지면 내가 일상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