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77)
“유연서?”
‘결핍된 사람들 시즌 2’에서 조연을 맡은 최재원은 유연서가 이태오 역할로 드라마에 합류한다는 소식에 눈이 뒤집혔다.
“아니, 걔가 왜?”
“나도 모르지.”
매니저의 대답이 얄밉게 들릴 정도였다. 최재원은 이미 시즌 1부터 드라마에 참여한 배우였다.
“아니 걔랑 나랑 좀······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잖아. 맞지?”
“어쩌겠어, 이미 확정된 거. 마음 넓은 우리 형이 참아.”
“걔는 내가 불편하지도 않나?”
물론 배려심 넘쳐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서로 얼굴 붉혔는데 내가 무섭지도 않느냐는 의미였다.
‘걔가 널 피할 급은 아니지 않냐? 재벌 3세 다이아수저인데······.’
뭐, 걔보다 나은 거라고는 연기력 정도인데, 그것도 이젠 옛말이 된 것 같고······ 최재원의 매니저는 할 말이 많았지만, 말을 아꼈다. 그는 최대한 자신의 담당 연예인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그래도 요즘 성격 괜찮아졌다는데?”
“너는 그걸 믿냐?”
“아니, 진짜 요즘 업계 평판 장난 아니야. 형한테도 고분고분하게 행동할 수도 있어.”
“괜찮아져도 그거 다 가식일걸? 이 바닥 한두 번 봐? 너는 내 매니저야 걔 매니저야?”
괜히 불똥 튀었다. 매니저는 애써 수습했다.
“당연히 형 매니저지.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하는 말인데······.”
“아, 짜증 나게.”
최재원이 뒤돌아서서 혼잣말했다. 사실 그도 유연서를 둘러싼 소문을 알고 있었다. 성격도 예전 같지 않고 협조적인데다가 연기력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게다가 이번 시상식에서도 그는 후보에 오르지 못했는데 떡하니 이름을 올리지 않았는가. 최재원이 초조해서 제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일단 쉬어, 형. 내일 데리러 갈게.”
눈치를 보던 매니저는 후다닥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괜히 견제하긴······.”
최재원과 4년을 함께한 매니저는 담당 연예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유연서랑 붙으면 유독 신경질 냈다.
아마 잠재적 라이벌로 생각하는가 본데, 솔직히 연기력에서 우위를 점한다 해도 타고난 태생부터 비빌 수가 없지 않은가. 외모도 당연히 최재원이 꿇리고. 그나마 나은 연기력도 이제는 뭐······.
‘저거 이번에는 얼마나 갈까? 갑갑하네.’
매니저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날카로워진 최재원의 감정 쓰레기통은 매니저인 자신의 몫이었다.
‘아, 퇴사하고 싶다.’
그가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갔다.
***
최재원은 류혜경에게 살갑게 인사하는 유연서를 보며 눈을 부릅떴다.
예전에 같은 드라마에서 만났을 때의 유연서는 아슬아슬하게 도착해 아무와도 말을 섞지 않았다. 리딩을 시작해 자기소개할 때도 고개를 한 번 까딱이고는 제 이름만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너희랑 다른 세계의 사람이다. 라고 깔보는 듯한 눈빛과 건방진 태도가 처음부터 맘에 안 들었었다.
물론 유연서는 원래 그랬고, 최재원 혼자 과대해석한 것이지만.
‘저 새끼 다 가식이야.’
그 가식이 어디까지 갈까? 내가 밝혀내는 것도 좋겠지. 최재원은 자신을 향해 발랄하게 손을 흔드는 유연서를 보며 이를 으득 갈았다.
‘어? 저 매니저······.’
최재원의 매니저는 유연서의 어깨를 툭툭 치며 그만하라고 제지하는 이태겸을 신기한 듯 바라봤다. 매니저를 갈아치우기로 유명한 유연서의 뒤에 낯익은 얼굴이었다. 설마 다시 돌아온 건가?
‘신기하네.’
유연서의 도망간 매니저는 다시 오지 않았다. 볼 때마다 얼굴이 바뀌어서 업계 사람들도 유연서의 성격이 보통이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최재원의 매니저는 이태겸의 뒤에 서 있는 임승현과 눈이 마주쳤다. 웃고 있음에도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냥 매니저는 아니고 실장급인가?
‘와 무슨 몸이······.’
실장이라기 보다는 경호원에 가까운 외양이었다. 저절로 눈을 깔게 된 최재원의 매니저가 딴청을 피웠다.
“안녕. 또 보네요.”
“안녕하세요. 말 편하게 하세요, 형.”
“그럴래?”
최재원이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을 가볍게 넘긴 유연서는 다시 만난 고효준에게 꾸벅 인사했다.
고효준은 시즌 2부터 합류한 수수께끼의 인물로, 훗날 주인공 일행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게스트 하우스 봤는데······ 애는 어떻게, 무사한 거야?”
“방송에서 확인하세요. 다음 주가 막방이던가?”
“에이······.”
고효준이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사실 유연서에게는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박승환이 유연서에게 보이는 태도를 보고 친해져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박승환은 모두에게 친절해서 과연 대배우다운 품격을 지녔다고 평가받고 있지만, 아니다 싶은 사람에게는 선을 딱 긋는 게 있었다.
그러니까, 박승환의 울타리에 들어갈 사람으로 유연서가 합격한 것이다.
‘아니면 승환이 형이 얘 울타리 안에 들어갔거나.’
울타리 안으로 품기엔 가진 게 너무 많지. 아무튼, 겸사겸사 친해지면 좋을 거라고 고효준은 생각했다.
“나중에 승환이 형이랑 셋이 술이나 한 잔 먹을래?”
“저야 영광이죠.”
“뭔, 영광까지야. 근데······.”
옆자리에 앉은 유연서와 대화하던 고효준은 손목시계를 흘끔 보더니 사람들 들으라는 듯 크게 말했다.
“리딩 시간 지나지 않았어? 아직 시작도 안 하고······ 누가 안 왔네?”
언론을 초대해 홍보 목적으로 하는 리딩도 아니었고, 고효준이니까 가능한 소리였다. 여기서 제일 발언권이 센 나이 많은 톱 배우. 심지어 작가와 감독마저도 곤란한 듯 시계만 쳐다보고 있었다.
‘진짜 늦긴 늦네.’
고효준이 기선 제압하려고 무게를 잡는 게 아니라, 진짜 예정되어 있던 리딩 시간에서 20분이 넘도록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 배우가 원래 이렇게 늦는 편이에요? 촬영 때도 지각하는 거 아냐?”
“아, 아뇨. 지금 엘리베이터랍니다.”
조연출이 급하게 대답했다.
죽음을 뺏긴 남자, 지범우역의 안현성이 아직 자리에 없었다. 안현성은 모델 출신 배우로, 연기 경력은 아직 신인 수준이지만, 원작 팬의 가상 캐스팅 목록에 꾸준히 이름을 올린 사람이었다.
그걸 이용해 안현성의 소속사는 계속 간을 봤고, 결국 신인치고는 좋은 조건으로 출연 계약에 사인했다. 안현성의 캐스팅 소식에 원작 팬이 제작사가 드디어 일한다고 찬양하며 안현성을 지지했다.
하지만 아무리 원작 팬을 등에 업고 있다고 해도 아직 신인에 불과한 주연 배우가 이렇게 늦어진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주연 배우가 이렇게 늦으면 어떡해?”
고효준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이 형은 다혈질인 기질이 있구나. 유연서는 그가 더 화낼까 봐 적당히 맞장구쳐줬다.
“그러게요. 기본이 안 됐네.”
그 성격 나쁘다던 유연서도 리딩에 지각한 적은 없었다. 고효준이 했던 말의 여파로 조용해진 공간에서 유연서의 날카로운 대답이 이어지자 분위기가 더욱 싸해졌다.
‘이야, 성격 어디 안 가네.’
‘근데 맞는 말 하긴 했어.’
다른 배우들은 물로 목을 축이고 괜히 대본만 살펴보면서 눈치를 봤다.
‘거 봐. 가식이라니까.’
최재원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지만, 그도 핸드폰의 시계를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사실 그는 안현성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신인 주제에 얼굴 하나로 주연을 따내고 건방지게 기어오르는 꼴이 아니꼬웠다.
때마침 문이 열리면서 한 사람이 급하게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안현성이 해맑게 웃으면서 상체를 꾸벅 숙였다. 최재원이 크게 말했다.
“야, 현성아. 너 지금 오면 어떡해. 지금 몇 시야?!”
“아이고, 죄송합니다. 차가 막혀서요. 정말 죄송합니다.”
차가 막혔다면서 손에 든 커피 컵이 유독 눈에 띄었다. 차 막힐 거 고려해 일찍 나오는 건 생각도 못 하고, 건물 1층의 카페에서 커피 사 올 생각은 했나 보지?
‘차라리 내가 주연을 맡았어야 했는데.’
최재원은 애써 표정관리를 하며 대본에 시선을 던졌다.
“네, 다 오셨으니 리딩 시작하겠습니다.”
표정이 밝아진 조연출이 냉큼 리딩을 시작했다.
리딩이 끝나고, 유연서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미친, 연기 늘었다더니 진짜네. 저 새끼 뭘 한 거지? 설마······ 약했나? 그러면 대박인데?’
유연서에게 어떻게 복수할까? 간을 보고 있는 최재원과
‘그러니까, 쟤랑 친해지면 나도 주성이랑 끈이 연결되는 거잖아?’
리딩 중간에도 그를 흘끔 쳐다보며 간을 보고 있던 류혜경.
‘아, 너무 늦었나? 괜찮아. 어차피 난 드라마 하차할 가능성이 없다고. 내가 얼마나 귀한 몸인데.’
그리고 팬을 등에 업고 스타 병에 걸린 주연 배우.
‘이야······.’
난장판이네.
유연서는 재밌다는 듯 웃었다. 최재원은 거슬리지도 않았고, 류혜경은 캐물어야 할 게 있으니 괜찮다. 안현성? 촬영할 때 늦지만 않으면 된다.
그리고 감히 유연서에게 피해를 줄 사람이 있을까?
걱정스러운 점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작품에 악영향을 끼치면 안 되는데.’
리딩이랑 촬영이랑 다르니까 지레짐작하지는 말아야지. 그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그런 유연서의 뒷모습을 류혜경이 뚫어지게 쳐다봤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유연서의 뒤를 쫓았다.
“저······ 연서야.”
연서야? 갑자기 친근하게 다가오는 류혜경이 수상했지만, 유연서는 표정관리를 하면서 뒤를 돌아봤다.
“네, 선배님.”
“선배님이라니, 너무 딱딱하다. 우리 어차피 몇 개월은 같이 볼 사이인데······.”
계산 다 끝났나 보군.
유연서는 속으로 웃었다. 리딩을 하면서도 옆에 앉은 류혜경의 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릴 정도였다.
“어차피 촬영 들어가면 엄마 아들 사이 될 텐데, 편하게 엄마라고 불러도 돼.”
“아 그건······.”
최유진도 어머니라 부르는데 아무리 배역 때문이라도 ‘엄마’라고 부르는 건 꺼려졌다. 유연서가 표정을 싸악 굳히자, 류혜경도 덩달아 표정을 굳혔다.
“그냥, 이모라고 부를게요. 엄마라는 말은 익숙하지 않아서.”
“어, 이모?”
류혜경이 당황했다. 유연서의 배경을 의식한 그녀는 맘먹고 얼굴에 철면피를 썼다.
같은 멤버가 재벌가에 시집갔는데, 가장 가까이 있던 류혜경은 이희서의 달라진 위치를 체감하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만큼 그녀도 이희서처럼 상류층에 들어가고 싶다는 욕망이 있는 사람이었다.
‘엄마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다니, 핑계치고는 너무 허술하지 않나?’
유연서의 철벽에도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멋쩍은 듯 웃었다. 그의 팔뚝을 툭 치면서.
“그렇게 엄마라고 부르기 싫니? 내가 어려운 말 한 것도 아니고. 조금 섭섭하다?”
“저 사실 최 부회장님께도 엄마라고 안 불러요.”
간을 보는 건 류혜경뿐만이 아니었다. 유연서는 씁쓸한 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어, 그래?”
“네. 아무래도 입에 붙지 않아서.”
“하긴, 이미 다 컸는데 새엄마가 들어오면 그럴 수도 있지.”
“그러고 보니······ 이모는 저희 친어머니와 같은 그룹이셨다면서요?”
류혜경의 눈이 반짝였다. 찰나였지만, 유연서는 그 기민한 변화를 눈치챘다.
“사실 그분을 추억할 사람이 이제는 없어서요. 집에서도 그분 얘기는 못 하게 하고 외가 쪽은 연락도 닿지 않아서······.”
자, 어서 날 이용해 봐. 유연서가 미끼를 던졌다.
“어머, 그랬니? 아니 어떻게 친엄마 얘기를 안 할 수가 있어?”
“아시잖아요, 저희 집안.”
이희서의 죽음을 둘러싼 루머는 아직도 진행 중이었다. 안 좋은 쪽으로.
“그래서 말인데······ 이모만 괜찮으시다면 그분에 대한 질문을 좀 해도 될까요?”
“그럼, 괜찮아.”
“네, 감사해요. 지금은 말고 나중에······ 촬영 때 봬요. 먼저 타세요, 저희는 홀수 층이라.”
유연서가 안심한 듯 활짝 웃었다. 류혜경도 기분 좋게 웃었다. 그녀를 태운 엘리베이터가 닫히고, 층수가 점점 내려갔다.
여전히 엘리베이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유연서가 웃음을 싹 지운 채 나지막하게 말했다.
“임승현 씨.”
“네.”
“류혜경에 대한 거 모조리 조사하세요.”
“내일 아침 8시까지 보내겠습니다.”
믿음직스러운 대답에 유연서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