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76)
별채에 있던 방이 본채로 옮겨졌다. 어린 유연서는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멍하니 복도를 걷던 그는 할아버지의 서재에서 큰 소리가 나는 것을 느끼곤 그쪽으로 향했다.
“사건 종결시키기로 했다.”
“아버지!”
열린 문틈 사이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대치하고 있었다.
유건민은 충혈된 눈으로 유 회장을 노려보았다.
“그렇게 갈 사람 아니에요. 아버지도 아시잖아요.”
“건민아, 그만 하자.”
“분명히 이유가 있어요!”
“언제까지!”
참았던 유 회장이 버럭 소리쳤다.
“언제까지 하려고!”
이미 사건의 정황이 이희서가 자살했다고 결론 났는데, 더 조사해보자는 유건민의 주장 때문에 마무리되고 있지 않았다.
“범인 잡을 때까지 해야죠!”
“범인, 그래. 너 말 잘했다. 범인이 누군데?”
유건민이 입을 다물었다. 한참을 매달렸지만, 아직 범인의 실마리도 못 찾고 있었다. 애초에 범인이 있을 거로 생각하는 사람은 유건민밖에 없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찾으면······.”
“네 고집으로 경찰 인력 소비가 말이 아니다. 알고는 있지?”
가뜩이나 이희서의 죽음에 둘러싼 루머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지고 있는 데다가 설상가상으로 재벌이 경찰 인력을 낭비하고 있다고 언론에 두들겨 맞고 있었다.
오너리스크 때문에 주가는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질질 끌어봤자 좋을 게 없었다.
“현장 들쑤시다가 애가 또 발작한 거 보면 모르겠어?! 그만해!”
게다가 재조사를 한다고 수많은 경찰과 형사들이 별채를 드나든 탓에 갓 퇴원한 유연서가 다시 쓰러지지 않았는가.
“하지만······!”
“토 달지 말고 이 아비 말 들어!”
유 회장이 벌떡 일어났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기백이 상당한 아버지 앞에서 유건민은 물러서지 않았다.
“너 회사 일도 내팽개치고 사건에 매달린 거 내가 이해한다. 이해해! 하지만 은호랑 연서, 저렇게 혼자 둘 거야?”
“그건······!”
쇳소리 섞인 호통에 유건민이 뭐라 소리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애 엄마가 그렇게 갔으면 아버지인 네가 부모 빈자리 느끼지 않게 잘해야 할 거 아냐!”
“······.”
“연서 그렇게 되고 온 가족이 달라붙어서 노력했다. 하지만 은호는?”
유 회장은 오너 리스크를 수습하느라 바빴다. 박금주는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어서 자신의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었다.
자신은 괜찮다고 동생부터 챙기라고 의젓하게 말하던 유은호도 고작 열한 살이었다. 보호가 필요한 아이였다.
“그동안 은호가 혼자 어디서 뭘 했는지 알고는 있어?!”
유 회장의 딸들도 각자 일이 바쁘고 돌봐야 할 자식이 있음에도 시간 날 때마다 찾아와서 봐 주긴 했다. 하지만 부모가 채워줘야 하는 빈자리를 채워야 할 시간에 유건민은 실체도 없는 범인을 쫓느라 정신없었다.
“어······.”
유건민은 아버지의 호통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아내의 자살 사건을 쫓느라 아이들에게 소홀한 게 사실이었으니까.
“희서, 그 아이는 자살이다. 그거로 끝내!”
유 회장이 눈에 띄게 핼쑥해진 제 아들의 양어깨를 잡고 절박하게 말했다. 남겨진 손자들도 손자들이지만, 가망 없는 일에 매달리는 제 아들을 위해서라도 사건은 이제 끝내야 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이러다가는 제 아들도 며느리를 따라 극단적 선택을 할 것 같았다. 유 회장이 간절한 표정으로 아들의 눈을 응시했다.
유건민의 눈에서 눈물이 주륵 흘러나왔다. 사실 그도 억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내를 자살로 내몰 만큼 자신이 아무것도 못 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차라리 누가 살해한 거라고 믿고 싶었다.
“······알았어요.”
문틈으로 보고 있던 유연서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아버지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갔다. 무거운 분위기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나 때문이야.’
아버지가 저렇게 고생하는 것도, 형이 혼자 집을 지키고 있는 것도 그리고 할머니가 자신을 내치는 것까지 전부.
그는 다시 제 방으로 돌아와 이불을 푹 눌러썼다. 지금도 허공 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하얀 치맛자락은······.
‘나만 알고 있어야 돼.’
아무도 알아서는 안 돼.
“아······.”
기억 동기화의 여파로 또 변기에 고개를 처박고 켁켁거렸다. 한참을 피를 뱉어낸 그가 소매로 입가를 대충 닦았다.
‘기분 더럽네.’
후유증 때문이 아니다. 당시 느꼈던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돼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2207년의 그도 산전수전 다 겪은 군인이기에 본체의 감정을 가볍게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감정에 휩쓸린다는 게 단순히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이러다가 진짜로 휩쓸리겠는데······.’
끝도 없이 파고드는 우울감과 절망감 그리고 자책감까지 정신을 못 차리겠다.
그러고 보니, 전에 기억 동기화를 한계까지 밀어붙이려다가 본체의 감정에 휘말릴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었지?
‘조심해야겠어.’
유연서는 전신 근육통에 욱씬거리는 몸을 힘겹게 일으켰다.
그나저나 본체는 뭐 때문에 이희서의 자살을 의심하는 걸까. 단순히 아버지가 의심스럽다고 한 것 때문에? 아니, 당시 유건민은 이희서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아서 범인이 있다고 억지로 주장한 것뿐이다.
‘뭐가 더 있을 텐데······.’
가장 가능성 있는 가설은 이희서의 사고 당시 어린 유연서가 범인을 봤다는 것. 하지만 아직 본체가 의심할만한 결정적인 기억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건 동기화율을 좀 더 높여야 알 수 있겠지.
그는 복잡한 마음을 애써 다잡고 밖으로 나갔다. 거슬렸던 긴 머리는 며칠 지나니 익숙해졌다.
“도련님.”
“임승현 씨,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에 현장으로 복귀한 임승현이 밴 옆에 서 있었다. 늘 입던 정장 차림도 아니었고 편한 평상복 차림이었다. 유연서가 정장 차림 답답하다고 입고 오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맡기신 일은 잘 처리 했습니다.”
“잘했어요.”
임승현은 그동안 유연서가 지시한 일 때문에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섬으로 간 동안 여러 가지 일을 지원했고, 자산 관리도 했었다.
임승현은 잠시 멈춰서 유연서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어디 아프십니까?”
안색을 확인하자마자 하는 소리가 참 공교롭다.
티 나나? 엘리베이터의 거울을 확인했을 때는 나름 괜찮았는데. 그래도 누군가 걱정해준다는 사실이 나쁘지 않아서 유연서는 가볍게 웃었다.
“어, 머리가 좀 아프네요.”
“태겸 씨, 병원으로 가죠.”
고작 머리 아프다고 병원으로 가자는 심각한 얼굴의 비서나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매니저나 둘 다 이상하다. 유연서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그럴 정도는 아니고. 입금 확인했어요?”
“네, 너무 많이 주신 거 아닙니까?”
“애를 살렸는데 그 정도는 해야지.”
유연서는 차 문을 열어주는 임승현의 어깨를 두어 번 토닥이고는 차 안으로 쏙 들어갔다.
이런 거 바라고 옆에 있는 거 맞긴 하는데, 이제는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돈으로 보상하는 게 유연서 나름의 감사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서 작게 웃은 임승현이 조수석에 올라탔다.
“뭐야. 비서 형님만 챙겨주지 말고 나도 좀 챙겨주지?”
“너 이번에 가져온 대본도 전부 꽝이더라.”
“에이 씨······.”
이태겸이 입술을 삐쭉 내미는 게 룸미러를 통해 다 보였다. 설마 나 보라고 일부러 고개를 위로 치켜든 거야? 그래 봤자 안 귀엽고 징그럽다. 유연서는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좋은 작품 고르는 법 뭐 없어? 힌트 좀 줘 봐.”
“글쎄······ 그냥 느낌이 오지 않아?”
동기화율이 30%를 넘기면서 이제는 자동행동모드를 안 해도 그냥 눈길이 가는 시놉이 있었다. 본체의 작품 고르는 눈만은 진짜니 마음껏 활용할 것이다.
“커피.”
“여기.”
이태겸이 냉큼 텀블러를 내밀었다.
오늘은 ‘결핍된 사람들 시즌 2’의 대본 리딩날이었다. 조금 일찍 도착한 유연서는 미리 와 대기하고 있는 배우들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안녕하세요.”
그는 제집 안방인 마냥 편하게 들어와 자리에 앉으려고 했다.
‘어라?’
그런데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얼굴이 익숙했다. 갑자기 생긴 상 욕심에 그동안 대본만 펼쳐봐서 결.사에 누가 추가로 캐스팅됐는지 확인을 못 했었는데, 이 사람이랑 같이 찍는다고?
‘이거 참······.’
우연인가? 어떻게 이렇게 만나지?
이 기회를 어떻게 이용할까 잠시 생각한 유연서는 일단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어, 그래.”
건성으로 대답하던 배우가 고개를 들어 유연서를 쳐다봤다. 그녀의 어깨가 흠칫 굳는 것을 확인한 유연서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진짜 닮았네······.’
배우, 류혜경은 유연서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그가 내민 손에 악수했다.
“잘 부탁합니다.”
“그래.”
안 그래도 존재감이 어마어마한데, 안 하던 친근한 행동을 하니 모든 사람의 시선이 유연서와 류혜경에게 몰렸다.
‘얘가 왜 이러지? 성격 좀 괜찮아 졌다는데 그게 사실이었나?’
당사자인 류혜경도 유연서의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당황했지만, 티 내지 않고 웃었다.
“앉아. 어차피 작품 안에서는 모자 관계인데 편하게 불러.”
“그럴까요?”
이렇게 먼저 다가와 주면 나야 좋지. 유연서는 자리에 앉고서는 류혜경을 흘끔 쳐다봤다.
‘일단 친하게 지내볼까.’
류혜경은 4인조 아이돌 그룹 ‘트윙클’의 멤버, 이희서의 아이돌 시절 같은 동료였다.
남은 2명의 멤버는 연예계를 은퇴했고, 배우로 전향해 아직 활동하고 있는 건 류혜경밖에 없었다.
‘이 선배님이 기억나는 게 많아야 할 텐데······.’
같이 숙소 생활도 했다고 했었나? 아이돌 시절 이희서가 어땠는지, 누구랑 교류했는지 기회를 봐서 캐물을 것이다.
‘근데 저 사람은 누군데 날 죽일 듯이 쳐다보지?’
맞은 편 대각선 자리에서 한 배우가 뚫어질 듯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리 불편해도 다들 배우라서 숨기는 데 도가 텄을 텐데, 이렇게 티 내는 것을 보니 뭔가 있군. 유연서가 오른손을 살짝 들었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태겸이 후다닥 다가왔다.
“누구야?”
누구를 말하는지 이미 눈치챈 이태겸이 작게 속삭였다.
“최재원, 네가 전에 거지 같다고 대놓고 욕한 배우.”
“······그래?”
“야, 이번엔 조용히 지나갈 수 있지?”
“봐서.”
본체가 업보를 많이도 쌓았구나. 언제 한 번 날 잡아서 업보 청산 프로젝트라도 해야 하나······. 유연서는 흘러내리는 머리를 뒤로 쓸어넘겼다.
‘근데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진짜 유연서가 아무 이유 없이 거지 같다고 욕한 게 아닐 것이다. 이미 그의 안에서 본체의 이미지는 ‘그냥 미친놈’이 아니라 ‘그럴만한 사연이 있는 미친놈’으로 격상되어 있었다.
“아······ 제발. 도발하지 마라.”
뒤로 물러난 이태겸이 최재원을 향해 손을 흔드는 유연서의 뒷모습에 대고 복화술을 하듯 이를 악물고 중얼거렸다.
“왜요?”
임승현은 그런 이태겸이 이해되지 않았다. 어차피 배역으로 보나 급으로 보나 자주 마주치지 않을 배우다. 신경 쓸 인물이 전혀 아닌데?
“쟤가 저렇게 인성질하면 저한테 다 돌아온다고요.”
“그래요?”
‘유연서 파일’을 거쳐 간 매니저들은 유연서의 더러운 성격 때문에 그만뒀다.
맡은 연예인의 성격이 더러워서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끼치게 된다면, 바쁘게 뛰는 사람은 매니저다. 사고 친 연예인을 대신해서 사과하고 사건을 수습해야 하기 때문이다.
피해를 당한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막상 연예인 본체에게 뭐라 못 하니 아래에 있는 매니저를 신 나게 갈구는 것이다.
“어차피 이태겸 씨는 도련님 매니저인데, 적당히 무시하면 안 되는 겁니까?”
“어쩔 수 없어요. 매니저는 항상······ 이런 거 수습하라고 있는 거니까.”
“그렇군요.”
이태겸이 한숨을 푸욱 쉬었다. 임승현은 그런 이태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작게 웃었다. 그는 매니저가 아니라 비서다. 최재원이 어떻게 나올지 벌써 기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