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75)
백산예술대상이 끝나고, TV 중계화면도 꺼졌다. 수상자들이 무대 위로 올라가서 단체 사진을 준비할 때, 집으로 가려던 유연서에게 진수호가 다가왔다.
“그래서, 내 조언은 생각해 봤어?”
전에 뭐라고 했더라······ 가족에게는 알려야 한다고 했었나. 마침 할머니가 생각나서 유연서는 작게 웃었다.
“생각해 보니까 가족에게 말한 적 있었어요.”
“어떻게 됐는데?”
“별로요. 얘기 안 하는 게 낫던데요.”
“그래?”
진수호는 미소 짓는 유연서의 표정에서 아픔을 읽을 수 있었다. 괜한 오지랖을 부렸나.
“어차피 나 안 좋아해요.”
할머니는.
유연서의 씁쓸한 표정을 본 진수호가 심각하게 얼굴을 굳혔다.
‘가족들이랑 사이가 나쁜가?’
사이? 좋다 못해 과할 정도다. 다들 유연서를 둥기둥기하느라 바쁘니까.
하지만 유연서의 주어 삭제 화법이 진수호에게 흘러가서 저절로 오해하게끔 했다. 역시 재벌가라서 약점이 될만한 것을 숨겨야 하나 보다. 진수호가 유연서에게 가진 측은지심이 더 늘어났다.
“아무튼 수상 축하해요.”
“그래. 고맙다. 나중에 게하팀 뒤풀이에서 보자.”
“네.”
유연서는 자신에게 인사하는 사람들에게 대충 인사해주고 성큼성큼 걸었다. 그가 시상식장을 빠져나오기 직전, 중앙에 서서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진수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 자존심 상해.’
데뷔를 같은 시기에 했는데 누구는 최우수상이고 누구는 무관이다. 후보에 든 것도 오랜만이라고 했던가? 물론 그 시절의 유연서와 지금의 유연서는 다르지만, 다르니까 새로운 마음가짐도 필요한 법이다.
“야, 아쉽게 됐다. ‘드리밍’은 받을 줄 알았는데.”
“됐어. 대본은 골라 놨어?”
“대본? 어어······ 고르긴 했는데.”
“집에다 갖다 놔.”
괜히 상 욕심이 없는 거로 자신을 속이지 말자. 나는 상을 받고 싶다.
‘열심히 해야지.’
우선은 진수호를 따라잡는 것을 목표로.
***
유 회장은 거실에서 티비를 보는 아내를 보며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당신이 이런 걸 봐요?”
“당신도 나 몰래 보잖아요.”
화면 속에는 ‘게스트 하우스에 어서 오세요’의 4회가 방영되고 있었다.
“크흠······ 그건 당신이······.”
연서랑 사이가 서먹하니까 그런 거지. 뒷말을 삼킨 유 회장이 헛기침했다. 그는 은근슬쩍 박금주의 옆에 앉아 TV 화면을 바라봤다.
‘게스트 하우스에 어서 오세요’ 화려한 출연진 ‘눈길’···순간 시청률
JSTV ‘게스트 하우스에 어서 오세요’ 단번에 소매치기 제압하는 유연서
‘게.하.어’ 유연서의 첫 고정예능, 제작진 가지고 놀며 시청자 반응 호평
-와 근데 유연서 발음 치인다
대체 몇개국어 하는거임?
└지금까지 5개국어임 기사로 보니까 더 늘어날듯
└미친 개쩐다
-근데 너무 날로먹으려는거 아님?
피디가 정한 룰이 있는데 그거 무시하고 물건 받는거 좀 노양심 아님?
└제작진이 넘어가는데 니가 왜 난리야ㅋㅋ
└불편하면 보지 말기
└저기있는 사람들 다 좋아하는데 왜 너만ㅋ
-유연서 사전 미팅에서 도련님이라고 해서 걱정했는데 은근 하는일 많은듯
└통역에 시장봐오는거 흥정도 개잘하고 칼질도 잘함
└근데 칼질 처음하는거 맞나?
-[게하] 노잼일줄 알았는데 개재밌네ㅋㅋㅋ
게하 운영도 잘하고 각자 캐릭터 확실해서 좋음ㅋㅋㅋㅋ
└요리왕 박승환과 기계파괴왕 김이준 최준영ㅋㅋㅋ
└이윤정 성격 털털해서 너무 좋다
└연장자가 막내 다 시키지 않고 나서는것도 좋은듯
└유연서도 김이준이랑 붙으니까 그냥 초딩이던데ㅋㅋ
‘게스트 하우스에 어서 오세요’는 첫 방송부터 입소문을 탔다. 워낙 인기 배우와 아이돌이 출연해서 주목받았는데, 까 보니 마냥 잔잔하지도 않고 예능적 재미도 챙겨서 시청률은 점점 상승곡선을 타고 있었다.
만약 섬까지 가서 서툴렀으면 답답하다고 욕을 먹었겠지만, 출연진들이 의욕적으로 나서기를 좋아했고, 거기다 유연서의 활약이 적지 않으니 자연스레 호평이 이어졌다.
“연서랑은 얘기 잘 됐어요?”
“······안 좋아요.”
“그래요?”
박금주의 표정을 살핀 유 회장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강제로라도 식사 자리를 만들어야 하나······.
같이 산 날이 많아서 이제는 표정만 봐도 유 회장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눈치챈 박금주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조만간 먼저 연락해 보려고요.”
“잘 생각했어요. 그놈은 자기가 먼저 연락하는 법이 없더라고.”
망할 놈. 유 회장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이탈리아? 좋은 나라죠. 짐은 거기다 두면 돼요.)
(*오······ 이탈리아어도 할 줄 알아요?)
(*조금요. 불편한 일이 있으면 일단 저한테 말하세요.)
자막으로는 ‘이탈리아어’라고 쓰여 있었다. 저번 손님은 독일에서 왔다는 소리에 막힘 없이 독일어를 구사하더니, 지금은 다른 언어를 써도 자연스러웠다.
(*얼굴 뭐야? 사람이야?)
(*동서양 통틀어서 내가 본 사람 중에 제일 잘생겼어······.)
(*우리말도 되게 잘하던데? 이탈리아에 살다 온 사람인가?)
안내를 마친 유연서가 밖으로 나가자, 점잔 떨던 손님들이 호들갑을 떨며 핸드폰에 유연서의 이름을 검색하고 있었다.
(*와, 한국의 배우. 주성 오너의 손자······ 재벌?)
(*주성? 내가 아는 그 주성이야?)
(*와 우리 억만장자한테 객실 안내받은 거야 지금?)
손님들이 놀라서 서로 바라봤다. 여기에 억만장자가 왜 있어?
“저 애가 저렇게 외국어를 많이 할 줄 알았나?”
유 회장의 광대뼈가 한없이 치솟았다. 손자의 재능이 넘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게 방송을 통해 알려지는 것도 좋았다.
손님들의 안내도 끝나고, 자유 시간이 주어진 게스트 하우스 오늘에 모닥불이 활활 피어올랐다. 둥그렇게 앉은 출연진은 각자 맥주 캔을 들고 최준영이 노래하는 것을 들었다.
(와! 역시 준영이 형!)
(대박!)
노래가 끝나고, 다들 손뼉을 쳤다. 최준영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연서야, 너도 한 곡 할래?)
(맞아. 얘 메보로 데뷔했어요.)
김이준이 호들갑을 떨면서 기대감을 키웠다. 다들 기대를 한껏 담은 시선으로 유연서를 쳐다봤다.
(한 곡해! 한 곡해!)
나서는 걸 싫어하는 유연서가 곤란한 듯 미소를 지었다.
(저 노래 잘 모르는데······ 아까 준영이 형이 불렀던 거 그냥 따라 부를게요.)
(좋지.)
최준영이 기타를 연주했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몰리자 유연서가 멋쩍게 웃더니 노래를 시작했다.
사실 유연서의 몸으로 들어와서 부르는 첫 노래였는데, 본체가 가진 노래 실력은 진짜였는지 한 번 들었음에도 꽤 잘 불렀다.
유 회장이 작게 감탄했다.
“노래도 잘 부르고······.”
유연서가 아이돌로 데뷔했을 때, 데뷔 무대는 찾아봐서 손자의 노래 실력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허락 없이 딴따라가 됐다고 분노하느라 제대로 듣지 못하긴 했다.
“좋은 혼처를 찾아야······.”
“애가 알아서 잘하게 내버려둬요.”
주접 시동 거는 유 회장에게 핀잔을 준 박금주는 말없이 TV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자신과 있을 때는 표정이 어두웠던 것에 반해 화면 속 손자는 행복해 보였다. 그녀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
“상무님, 퇴근 안 하세요?”
“아직 일이 남아서요, 먼저 퇴근하세요.”
“너무 무리하시지 마시고요. 내일 뵙겠습니다.”
“네. 들어가세요.”
유은호는 그렇게 눈치 주는 상사가 아니었다. 그래서 직원들 모두가 그를 좋아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비서를 보내고 사무실의 불이 꺼졌다. 유은호의 자리에 있는 스탠드 조명과 창밖 야경이 어우러져 분위기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하아······.”
피곤해서 눈을 꾹꾹 누르던 유은호는 핸드폰에서 진동음을 느끼고 눈을 떴다.
“어, 서준아.”
(······야 네가 알아보라고 한 거 알아봤는데.)
반쯤 누워 있던 유은호가 자세를 바르게 했다. 백서준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어떻게 됐어?”
(진짜 뭐 있는 거 같다.)
“뭐?”
유은호가 놀라서 목소리를 높였다. 백서준이 비밀 얘기를 하듯 속삭였다.
(사건 파일이 빠졌어. 누가 일부러 없애기라도 한 것처럼.)
“뭐가 없어졌는데?”
(나도 전에 본 적이 없어서 정확히 뭐가 없어졌는지는 잘 몰라. 느낌상 그때 있었던 사용인의 진술 같은데······.)
이희서의 사고 당시는 아직 전산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아서 전부 수기로 작성했었다.
백서준은 사실 적당히 알아보는 척만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증거가 없어진 이상 남을 보듯 지나칠 수는 없었다.
(혹시 네 쪽에서도 알아볼 방법은 없어? 그 당시 고용했던 사람들 목록이라던가······.)
“알 만한 사람이라면······ 전략 기획실 본부장님이 아실 텐데, 만약 내가 물어보면······.”
(회장님 귀에도 들어가겠지.)
“맞아. 아직 할아버지가 알아서는 안 돼.”
(그렇지.)
전략 기획실 본부장은 젊었을 때 유 회장의 비서실장을 맡았었고, 은퇴할 시기가 지났지만, 전략 기획실로 옮겨 아직도 주성에 충성하고 있는 회사의 중역 중 한 사람이었다. 본부장의 존재 하나로 비서실보다는 전략 기획 본부가 더 힘이 셌다.
본부장은 완벽한 유 회장의 사람으로, 정확한 증거를 잡기 전에는 유은호와 백서준 둘만 아는 비밀이 되어야 했다.
‘설득이 가능하면 좋은데······.’
만약 그가 주성에 이익이 될 일을 하게 된다면 한 번쯤은 비밀로 해 줄지도 모른다. 물론 그 일이 큰 건수여야겠지만······ 유은호는 일단 떠보기는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내 쪽에서도 최대한 알아볼게. 고맙다.”
(······그래. 근데 네 동생은 어떻게 의심한 거야?)
통화를 끊으려던 유은호가 멈칫했다.
(뭐가 짚이는 게 생겨서 너한테 얘기한 것일 텐데······ 왜 그렇게 의심했냐고 한 번 물어봐야 하는 거 아냐?)
“······.”
(아니다. 걔 번호 줘 봐. 내가 한 번 물어보게.)
처음에는 그 미친놈의 말을 믿냐고 했지만, 이렇게 눈에 띄는 증거를 발견한 이상 유연서는 이희서 자살 사건의 중요 참고인이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그러든가.)
날이 서 있는 유은호의 목소리를 들은 백서준이 허탈하게 웃었다. 동생의 일이라면 태도가 돌변하는 게 어이없어서였다. 이렇게 싸고도니 유연서의 성격이 그렇게 싸가지 없어진 게 아닐까?
(끊는다.)
“그래.”
통화를 끊은 유은호는 일어서서 창밖을 바라봤다. 동생이 드문드문 과거의 일을 떠올리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직 동생이 기억을 얼마나 찾았는지는 그도 알 수 없었다.
“진짜였구나······.”
유은호가 작게 탄식했다. 사실 아니길 바랐다. 하지만 출입이 제한된 경찰청 자료실에서 사건 파일이 빠졌다? 뭔가 켕기는 게 있어서 없어진 것이다.
“진짜였어······.”
그가 고개를 숙였다.
이희서와의 애착이 남아있는 건 유연서보다는 장남인 유은호가 더 많았다. 그래도 가족이 싫어 극단적 선택을 한 게 아니라는 게 밝혀져서 다행인 건가······ 하지만 이제는 그 가족들을 의심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연서는 어떻게 안 거지?’
다들 유연서의 기억 상실에 관해 깊게 파고들지 않았다. 성격이 변한 게 좋은 방향으로 변해서도 그렇고, 괜한 것을 생각해냈다가 또 발작을 일으킬까 봐 가족들 모두 조심하고 있었다.
[형, 내 말 들어봐. 그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이제 그만 엄마는 잊어버려.]그리고 만약 동생이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면 원망의 눈빛을 받지 않을까 괜히 겁을 먹게 된 것도 있었다.
‘이젠 내가 해야지.’
일곱 살의 동생이 어머니의 끔찍한 마지막을 형에게 보지 말라고 막았던 것처럼, 범인을 밝히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 되어야 했다. 그래야 그날 믿어주지 않은 것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