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ower of Babel and the Only Begotten Son RAW novel - Chapter 401
00401 백운산맥 =========================
좀 쉬고 싶다며, 수면을 취하러 자신의 막사로 돌아가는 스타이너를 태식은 딱히 말릴 수 없었다.
비록 한판 붙자고 한 것은 스타이너지만, 중간에 한 껏 들떠서 두들겨 팬 것은 본인이니까.
다만 이렇게 되면 또 무엇을 할 지가 고민이다.
수련하는 것이야 지켜보는 재미라도 있지 자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별로 좋지 못하니까.
그러니 홀로 허공에다 주먹이라도 휘두를까, 그런 고민을 하던 태식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갑작스레 들려왔다.
“재밌었나 보군.”
“어? 아재요.”
뻗던 주먹을 어정쩡하게 멈추며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태식을 보며 운성은 피식 웃었다.
‘인생, 확실히 모를 일이군.’
전생에서는 태식이란 존재는 최종층은 커녕 지금까지도 오지 못했다.
아마도 튜토리얼이라 불리던 초반도 넘지 못하고 죽어버렸었겠지.
하지만 현생에는 살아남아서는 전생의 무왕, 현생의 만병장인 스타이너마저 압도하는 존재가 됬다.
‘천명이란게 다 그런거겠지.’
이겨내면 영웅이요, 이겨내지 못하면 그저 흘러가버린다.
천명은 흐름이다.
그걸 제어하는 자는 영웅이 되지만, 그렇지 못하는 자는 그 일부가 되버릴 뿐이다.
전생에는 그러지 못했고, 현생에는 그러했을 뿐.
이제는 뒤틀려버린 미래, 인생 2회차인 자신에게 태식은 정말 ‘변수’ 그 자체다.
그를 끌어준 것은 어디까지나 초반에 실수로 리타이어 할 뻔한 자신을 구해준 것에 대한 비즈니스적인 보답이었는데, 그것이 지금까지 이렇게 이어질 줄은 결코 알 지 못했으니까.
말 그대로 뜻 밖의 수확인 그를 향하는 미소를 숨긴채 운성은 말했다.
“이제 슬슬 돌아가도 되겠군.”
“진짜요?”
“얻을 것은 거의 다 얻었으니까.”
“얻을 것…얻을 것이라…”
운성의 말에 태식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아재요.”
“왜.”
“내를 이 곳에 보낸 건, 나 때문이기도 한거 아니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유. 이유라…”
태식의 시선이 스타이너가 들어간 막사를 향했다.
“저 양반, 나와는 정반대였소. 하지만 정반대라는건 끝에서 끝을, 선을 그으면 하나로 일직선으로 이어진다는 것 아니겠수? 나만의 느낌이겠지만, 우린 공동의 목표라는 한 지점을 중심으로 이어진 하나의 선에 놓여진 대극對極이었던 것 같았지.”
대극, 그 느낌이 싫지 않다는 듯이 태식은 웃었다.
“이 세상 살다보면, 현실이란 놈이 자꾸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한단 말이지. 고개를 숙이라, 좀 꺾여봐라, 안 휘어지면 부러질꺼다. 내가 나가고 싶은 길을 이 쪽인데, 자꾸 저 짝으로 새어보라고 어찌나 성화들을 부리는지.”
피식.
재밌다는 듯이 웃은 그가 주먹을 들어보였다.
“그래서 난 이거 하나로 버텨왔지. 지구에서 현실은 사회라는 이름으로 나한테 지랄해왔다면, 바벨에서는 현실이 현실 그 자체라는 이름으로 나한테 지랄을 해오더구만요.”
죽음과 그에 따른 원초적인 공포.
문명의 수혜를 받은 사회가 생존이라는 가장 심플한 생존과제에서 벗어나게 해주어 더 나은 삶이란 고민을 인간에게 던져준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알려준 일들.
“나는 이 두 주먹으로 다 헤쳐가고 싶은데, 현실이란 놈은 그런건 당연히 불가라는 듯이. 다른 걸 더 익히라고 강요해왔소. 당연히 그게 맞아보였긴 했소. 가장 엿같았을 때가 그 놈의 귀신놈들 때 였지. 내가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찢겨지고 살이 다 터져나가는 수련을 해오며 익힌 주먹이, 도저히 닿지가 않으니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그 때 서는 회의가 들었다.
이 두 주먹만으로 해나갈 수 있을까?
죽음 그 자체는 두렵지 않았으나, 그 때까지 함께 해오던 오랜친구 천수와, 바벨에서 만나게 되어 더 없이 소중한 친구가된 혜진이 자신이 죽고 그들에게 죽게 될 것은 너무나 두려웠다.
“그래도 나는 걸어나갔지. 그렇게 지금에 닿게 됬소. 이제 나는 내가 닿고자 해서 닿지 못할 것이 없소. 내가 치고자 해서 치지 못할게 없지. 현실이 나에게 이러라저러라 지랄하면, 그 현실마저 후려칠 수 있게 됬으니까.”
그만큼이나 강해졌다.
이제 그는 괴물이 되었다.
“그래, 나는 괴물이 된거요.”
괴물, 인간이 아닌 괴물이 되엇다.
“그리고 괴물은 인간과 함께 할 수 없지.”
인간이던 태식은 트리니티라고 칭하며 자신의 친구들, 천수와 혜진과 어울릴 수 있었으나, 이제는 그러지 못했다.
“내가 너무 강해져버렸네요.”
이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생명체가 태어나며 가질 수 밖에 없는 차이, ‘재능’.
자신의 그것은 천수와 혜진의 그것에 비교할 수 없이 압도적이다.
거기다 더해 노력마저 그들을 압도한다.
그들이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태식의 노력이 더욱 끔찍했을 뿐이다.
인류제국의 보물이 된 라-파르테의 재생장치.
그것과 비슷한 것은 오래전부터 에덴에 존재했다.
스테인이 만든 장치들도 있었고 에덴의 기틀이 되는 세계수는 ‘재생’이니 ‘복구’니 하는 영역이 아닌 ‘창조’의 영역에서 태식의 수련을 도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라면 태식이 요즈음에 즐겨쓰는 의지를 먼저 특정지점에 보내고 뒤이어 육체를 구현시키는 것.
최초에 태식이 이것을 익힐 때는 그로테스크한 결과를 보았다.
자신의 육체와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세계의 어느 특정 부분에 자신의 ‘의지’를 구현시키는 것은 태식 스스로가 생각지도 못한 반발을 보여줬다.
의지가 뭉치려는 곳에 존재하던 세계의 의지들, 아무것도 없다 여겼으나 존재하던 공기들이 그리고 그것을 구성하던 마나들이 태식의 의지가 자신들의 사이에 난입하자 비명을 질렀다.
그 공간에 자리한 기억들이 난리를 치자 태식의 의지는 채 생성되지도 못하고 흩날리며 사라졌다.
먼저 보냈던 자신의 팔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태식은 얼이 빠지는 눈으로 잘려나간 자신의 육체를 바라보았다.
차라리 깔끔하게 잘려나갔으면 또 모르지, 인간을 도트단위로 분해해서 보낸 듯한 그 모습, 극에 오른 강체는 그 짧은 순간의 변화에도 본능적으로 자신의 육체를 인지하고 흘러내리지 않게 조종할 수 있게 하였으나 그 덕에 태식은 더욱이 선명하게 자신의 육체가 도트단위로 일부일부가 분해된 광경을 톡톡히 볼 수 있었다.
고통이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의 존재가 이토록 쉽게 세계에 의해 지워지는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압도적 공포를 뇌리에 새겨넣었다.
세계수의 의지인 뮤즈가 그 힘을 발휘해 태식의 팔을 고쳐놓았음에도 태식은 그 공포를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그래서 그 공포와 함께 앞으로 나아갔다.
몇 번이나, 몇 십번이나, 몇 백번이나 세계속에 자신의 의지가 사라져가는 공포속에서 태식은 앞으로 나아갔다.
그 결과가 지금이다.
계속하여 나아간 결과, 태식은 스스로가 너무 나가버린 것을 깨달았다.
지금의 그는 곁에 아무도 둘 수 없게 되었다.
홀로 나간 버릇이 생겨, 이제는 다른 누구와 함께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처음, 내가 이 두 주먹만으로 나아갈 수 없는 현실을 맞딱드렸을 때, 내가 이 두 주먹을 포기하지 않고, 다른 길에 눈 돌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내 친구들이 있었던 덕분이었지요.”
‘뭐 해? 병신같은 새끼야!’
아직도 그 날의 기억이 간혹 떠오르고는 한다.
귀신계열의 적들과 마주한 날.
평소대로 앞서 나갔다가 자신의 공격이 하나도 통하지 않고 죽을 뻔 했던 날.
천수는 태식을 뒤로 피신시키고 자신이 앞서나갔다.
항상 차분한 눈으로 전장을 파악하고 최적의 자리에서 최고의 효율을 뽑아내던 천수가 그 날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앞으로 달렸다.
채 활에 화살을 재지도 못해 마법을 각인시킨 주문화살을 손으로 휘둘렀다.
주문화살이 터져나가며 반동으로 자신이 피해를 입더라도 물러서지 않고, 귀신들에 상처입어도 상관쓰지 않으며 태식을 지키기 위해 정말 죽어라 싸웠다.
혜진 역시 마찬가지, 육체는 나약하기 그지 없는 그녀도 태식을 지키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그 때, 난생처음 무력함을 느꼈다.
평생을 자랑으로 여기던 두 주먹에 한심함을 느꼈다.
겨우 이것 뿐인가?
큰 소리 떵떵치며 휘둘렀던 주먹은 그저 애송이의 장난질에 불과했는가?
그 날 생환하며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 악몽으로 남았다.
“솔직히, 포기해버렸수다. 현실 따위에 굴복하지 말자고, 그렇게 걸어나갔던 길은, 내가 현실 따위에 굴하지 않게 되었지만, 어느 순간 나 자신에게 굴복하게 된 걸 지도 모르게 되어버렸지. 어느 때라도 앞서 나가면 되리라 여겨서 걸어온 이 길에, 나는 결국 앞서 나가는 것 밖에 모르게 되었지. 한 걸음 앞에서 앞서나가는 정도로 완급조절 하는 효율좋은 방법은 다 잊어버리고, 그저 앞만보고 나가다가, 나는 내 친구들을 버려버리게 된 것이지요.”
어느 순간 이렇게 되버렸다.
천수는 자신을 쫓아오기 위해 수련하며 가뜩이나 차갑던 녀석이, 더욱 냉혹하게 변해버렸고, 혜진은 식물과의 동조를 유지하기 위해 혈관에는 도핑 약물이 더 진하게 흐르게 되버렸다.
하지만 태식은 그들에게 그러지 말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자신이 그 말을 한다고 동료들이 듣기나 할까?
그런 말이라도 하며 편안을 얻으려는 것은, 어디까지나 한심한 자기 위안일 뿐이다.
“천천히 가면 어떨까? 라는 생각도 다 부질없을 뿐이었으니.”
그렇게 여유로울 수 있을 세상이 아니니까.
“어쩌면, 나는 또 다른 현실에 지고 있는 것이 었을지도 모르겠더군요.”
무조건 앞으로 가라고 지시하는 현실.
늦출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다.
위장에다 가시덩쿨을 쑤셔넣은 말과 같이.
고통속에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하지만,”
하지만, 그런 순간이 계속되던 오늘.
“저 양반을 봤지.”
자신과는 다르다.
자신과는 대극에 존재한다.
그렇기에 자신과는 동류다.
자신과 똑같은 직선상에 놓여있다.
세상에 굴하지 않고, 외길따위는 모르는 남자.
“세상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무언가를 버리라고 할 때, 그 어느 하나도 버릴 수 없어 모든 것을 짊어지고 온 남자.”
만병장萬兵將 스타이너.
그에게서 태식은 희망을 보았다.
“현실 따위에 흔들리지 않겠다고, 오로지 이 주먹하나만으로 나아가겠다는 이 의지가, 어느새 나를 앞만 보게 하는 현실에 사육되게 만들었던 것 같수다.”
한심한 본말전도다.
하지만,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허나 이제는 바꿔볼겁니다.”
현실 따위가 자신을 현혹할 수 없다.
현실에 살아가는 자신이 아니다.
자신이 살아가는게 현실이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현실은 허상일 뿐, 진실을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들 뿐이다.
“저 자를 통해 그 가능성을 보았으니까.”
그러니까,
“아재가 원한 것도 이런 것 이었지 않소?”
태식은 운성을 보며 미소짓는다.
========== 작품 후기 ==========
으악, 어제인가 어제어제인가 분명 쓰고 잤는데 날아가 있어요 흑흑흑흫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