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ower of Babel and the Only Begotten Son RAW novel - Chapter 476
00476 도룡궐刀龍闕 =========================
잘려버린 운성의 손목은 마치 노이즈가 낀 고장난 텔레비전의 화면처럼 지직 거리고 있었다.
힐끔 옆을 내려다 봤던 레이븐은 그건 또 왜그러냐 물을려다가 그냥 관뒀다.
워낙 괴이한 놈인지라 굳이 이런 것 하나하나 의문을 가지기도 그랬으니까.
지지지지직.
스파크 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의 근원지는 운성의 잘린 손목.
몇 번 그런 소리가 나더니 운성의 잘린 손목이 다시 복구되었다.
확실히, 재생이라기 보다는 복구에 가까웠다.
잘린 절단면에서 다시 손목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마치 원래 있었던 곳에 다시 나타나듯 세포가 아닌 무언가 다른 것들이 지직거리며 다시 나타나 손목이 있던 빈 자리를 다시 채웠다.
“휴, 힘들었군.”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주제에 운성이 그런 얘기를 하자 레이븐은 기가 막혔지만, 그래도 그가 확실히 뭔가를 한 것 같기는 했다.
운성에게는 변화가 없었으나 주변은 변화가 있었다.
일단, 가뜩이나 난장판이던 공간이 더욱 혼돈 속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 덕에 위험하기는 매 한가지나 어느 정도 여유는 생긴 다른 이들이 혼돈의 사이를 파헤치며
다가왔다.
중간에 난입하려 애쓰는 놈들은 스테인이 손가락을 튕기자 레이븐의 뒤를 따르며 길을 열었던 기계 병사들이 달려들어 자폭했다.
핵에 도달한 소피아와 스테인은 지금까지 처럼 핵에서서 외부인은 알아보기도 힘든 작업을 재개했다.
“이걸 4번만 더 하면 되는건가?”
약간은 질린다는 듯이, 그래도 큰 산 하나 넘어서 조금은 다행이란 듯이 스타이너가 묻자 운성은 고개를 저었다.
“손가락이 다섯 개라고 각 기 다른 몸에서 난 것은 아니지.”
“비유가 효과적인 것은 좋은데, 그냥 바로 바로 말 해주면 안되냐.”
“이것 하나만으로도 역으로 본체까지 치고 들어갈 수 있다는 거다.”
드드드드드드.
그들의 앞에 있는 핵에서 굉음이 울려퍼졌다.
가뜩이나 멈춰 있지 않고 계속하여 유동적인 변화를 보이던 핵의 중앙에서 소용돌이 같은 것이 치더니 그 가운데에 구멍이 하나 뚫렸다.
“왠지 생각하기 싫은 가정이 떠오르는데.”
“대체로 그런 경우가 정답이지.”
“제길. 꼭 이래야 하냐?”
“어쩌겠냐, 이게 지름길인 것을.”
“어디로 통하는데.”
“이 모든 것의 근원이라고 추측하는데.”
“추측이라니, 그게 뭐야 힘빠지게.”
“나란들 가보지도 않은 것을 어찌알겠나.”
핵의 가운데에 소용돌이 치더니 뚫린 구멍은 이 주박의 근원으로 향하는 것이라 추측되는 지름길을 만들었다.
그 곳을 관통하는 것이 지름길.
그걸 보는 스타이너의 표정은 발로 밟은 캔 음료 처럼 구겨졌다.
이 공간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관절이 쑤시고 어지러움증과 구토감이 유발된다.
그건 격하게 움직일 수록 심해지고 아까 용화가 베어서 연 길을 건널때는 극한으로 치달았다.
내색만 안 할 뿐이지, 여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그 존재를 원자보다 더 작은 단위로 쪼개버릴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 할 수는 없다.
이 지름길이라도 빠르게 건너야 외부에 있는 이들의 부담이 줄어든다.
“후.”
앓는 소리를 한 스타이너지만 가장 먼저 구멍의 앞에 섰다.
“한 번 죽지, 두 번 죽겠냐.”
“글쎄다.”
“뭔 소리야?”
“아무것도.”
스타이너가 체념하며 한 소리가 문득 운성에게는 재밌는 농담으로 들렸다.
과연 자신의 이번 시도는 단순히 두번째일까, 혹은 기억만 하지 못 할 뿐 수천, 수만번째 도전일까?
중요한 것은, 이번 생에서 그 모든 것을 끝낸다는 것이다.
“시작은 내가 먼저 해주마.”
“거 참 눈물나게도 고맙군.”
먼저 구멍 속으로 뛰어드려는 스타이너를 제지하며 운성이 앞으로 나섰다.
굳이 그럴 필요 있나 싶지만서도 행동 하나하나에 분명한 의미가 담긴 그이기에 스타이너는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건 실제로도 의미가 있었다.
먼저 구멍으로 뛰어든 운성은 그 즉시 삼라만상을 한 곳으로 응축시켰다.
그 곳에는 수 많은 세계의 법칙들도 들어있었다.
단 두 가지의 상반되는 법칙만 모여도 세계는 비명을 지르고 현실이 붕괴되며 공간이 무너져 내린다.
헌데 운성의 주변에 모든 삼라만상이 모였으니 그 반동은 너무나 거대했고, 운성이 가는 길에 놓인 모든 것이 백지처럼 하얗게 지워졌다가, 다시 그 백지가 찢기든 찢겨나갔다.
구멍으로부터 통하는 길은 분명 지름길은 맞았으나 그 안에는 악의가 가득했다.
그 길을 지나는 모든 이를 죽이기 위한 그런 악의가.
허나 운성이 삼라만상을 한 곳에 응축시키며 나가니 그 모든 악의는 지워지고 찢겨지며 지리멸렬하게 붕괴되었다.
그 덕에 ‘지름길’마저 사라져갔다.
그러나 그 전에 이미 운성은 지름길의 시작점과 끝나는 점을 율의 권능을 통해보았고, 오히려 원래의 지름길 보다 더 가까운 지름길을 만들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시작점만 같지 전혀 다른 지름길이 된 것이다.
운성 다음으로 출발한 스타이너에게는 그 사이가 체감 시간으로는 끽 해야 3초도 안되는 시간이었으나 운성이 걸어간 구멍에서는 시공간이 뒤틀릴 때로 뒤틀려 몇 시간이나 지난 뒤의 일이었다.
모든 게 완전히 부서진 공간, 그런 공간은 분명 존재에게 위협적이나 그래도 대놓고 존재를 지우려고 들지는 않았다.
그 덕에 운성의 뒤를 따른 다른 이들은 생각보다 편하게 공간의 너머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 차이에 이상함을 느낀 스타이너지만 그저 눈 앞의 남자가 또 뭘 했구나, 하고 이해했다.
하나하나 따지고 들기에는 공간을 넘자마자 나타난 것이 너무나 거대했다.
“이게 마지막 놈인가.’
공간을 뛰어넘어 보인 것은 거대한 용이었다.
외부에서 들어난 도룡의 모습을 소형화시킨 것 같았다.
소형화시켰다고 해도 수km는 넘지만 그래도 지평선을 가득히 채우고도 남던 본체에 비하면 확실히 귀여운 수준으로 축소시킨 것이긴 했다.
다만, 이 도룡으로 추측되는 적은 머리야 2개가 짤려있었으나 온 몸에 칼이 박혀 있지는 않았고 그 대신 적색의 빛만이 감돌고 있었고, 온 몸이 사슬에 묶여 있었다.
붉은 용이 타오를 듯한 5개의 안광으로 그들을 노려봤다.
마주한 스타이너는 순간적으로 감각에 혼선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정신차려요, 스타이너!
허나 그에게는 무엇보다 든든한 초신경 회로 – 노아가 있어 혼선이 생기는 감각을 빠르게 해소시켰다.
“쯧, 보자마자 수작질이냐.”
“눈만 마주쳐도 현혹에 걸린다. 저 녀석을 좋아하게 되는 그런 건 아니고, 자신과 다른 모들 이들이 서로 헐뜯고 싸우게 되는 편리한 기능이지.”
“거 딱 어울리는 기능이네.”
그냥 모든 걸 개판으로 만들려는 악의.
그것이 확실히 느껴지자 스타이너는 그저 피식 웃었다.
그런 그의 웃음에 분노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원래 그러려던 것인지, 눈 앞의 붉은 용이 움직였다.
쿠웅!
붉은 용의 거대한 꼬리가 휘둘러졌다.
그 한 번의 동작으로 하늘의 일부분이 떨어져내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것만 같은 위력이었다.
허나, 여기 하늘 한 번 무너진다고 어찌 될 이들은 없었다.
***
다섯 번 째 머리의 핵에 구멍이 뚫리는 순간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폭주가 시작했다.
레이븐이 아이오닐이 열어준 길을 건너가는 순간 아이오닐은 일단 다른 잉들에게 위험에 대비할 것을 명하긴 했으나, 이전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폭주는 대비를 하려해도 도저히 대비가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다섯 번째 머리에 한정하여 일어나던 환상이 그들이 있는 전역을 뒤흔들었다.
태식이 전담 마크로 맡아서 처리하던 환상을 다른 이들이 직접 겪지 않는다고 주의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직접 당해보니 또 뼈저리게 느껴지는 고통이었다.
하늘이 무너지가 땅이 뒤엎어지는 그야 말로 세기말의 공간이 펼쳐지고 온갖 죽였던 적들과 죽어버린 동료들이 자신에게 원망과 분노를 품고 죽이기 위해 달려드는 모습은 아무리 단련된 인류제국의 이들이라도 한 꺼번에 감당하기에는 벅찬 느낌이 없지 않아있었다.
자신에게는 결코 지울 수 없는 기억인 소중했던 이가 자신을 지키지 못한 원망을 품고 달려들 때는 그 누구라도 순간적으로 멈칫거릴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이 자신에게 닿는 그 순간 몸통을 꿰뚫는 거대한 거검이 되면 거기서 한 목숨은 쉽게 죽어나갔다.
“여명은 방어선을 펼쳐라!”
깜짝 놀란 레나 마리사가 여명의 단원들에게 지시했으나 그 중에도 반응하지 못하는 이들은 많았다.
당장 그녀조차 그녀의 주변에서 아른 거리는 스틸 브라운의 목소리가 그녀를 괴롭게했다.
허나 그것에 멈춰 굼뜰거릴 수는 없었다.
그녀에게 그 기억은 이미 너무나 큰 고통을 주었기에 매꿀 수 없는 구멍이었고, 오히려 그렇기에 이런 환상따위로는 더한 충격을 줄 수 없었으니까.
========== 작품 후기 ==========
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