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ampire went to Murim RAW novel - chapter (86)
86화
역시나 정면에서 풍기던 살기가 서서히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그 살기는 장원 내 공간과 공간을 가르는 내벽(內壁)을 마주하고 멈췄다.
둘.
엇비슷하지만 좀 더 농후한 내력을 가진 이가 뒤로 한걸음 물러나는 동시에, 살수의 내력이라고 하기에는 거친 기운이 앞으로 다가왔다.
내벽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선 독고결과 장춘.
독고결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수월하게 정리가 되겠군.’
독고결은 가볍게 손을 털어 손목을 감싸고 있는 비갑(臂甲) 형식의 가죽 띠에 꽂혀 있는 비침 하나를 손에 쥐었다.
‘그럼 놀아 볼까?’
독고결은 비침에 내력을 담아 내벽으로 쏘아보냈다.
픽!
비침은 내벽을 뚫고 마주 선 장춘의 어깨를 노리고 날아갔다.
‘후후.’
독고결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비록 그 어떤 소리도 담장 너머로 들리지 않았지만 그의 기운이 급격히 울리는 것을 느낀 것이다. 독고결은 장춘의 기운을 따라 옆으로 움직이며 몇 개의 비침을 더 날렸다.
“쯧.”
느긋하게 상황을 주시하던 야현이 가볍게 혀를 차며 잔을 내렸다.
“살수에는 어울리지 않는 성정을 가졌군.”
나름 허를 찌르는 작전이기는 하지만 장춘이 내세운 수는 살수들의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음살문주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송구합니다.”
“그대 탓은 아니지.”
“살수에 어울리지 않는 녀석이지만 제 욕심에 살수로 키웠습니다.”
음살문주가 야현의 잔을 채우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웅심이며 가진 재능은 뛰어난 녀석입니다.”
“그래 보이는군.”
“내치지는 말아주십시오.”
“뭔가 오해를 하고 있나 보군.”
야현은 음살문주에게서 술병을 넘겨받아 그의 잔에도 술을 채웠다.
“본인은 본인에게 검을 겨누지 않는 이상 내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음살문은 비살문 아래에 두게 될 터이니.”
야현은 고개를 돌려 막 시작된 독고결과 장춘의 싸움을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저 녀석은 무인으로 키워 봐야지. 안 어울리는 옷을 입게 놔둘 수는 없지 않은가?”
야현이 음살문주를 향해 잔을 들어 올렸다.
“그보다 저 치는 누군가?”
야현은 일살과 마찬가지로 뒤에서 관망을 하고 있는 음살문 최고 살수인 갈위를 가리켰다.
“본문 최고의 살수입니다.”
“저 친구에게 음살문을 맡겨야겠군.”
“본문에 딸린 식구가 많아 어쩔 수 없이 손에 많은 피를 묻혀온 녀석입니다. 이 일을 끝으로 은퇴하고 싶어 합니다.”
“은퇴라…….”
야현은 의미 모를 미소를 지으며 독고결과 장춘의 싸움을 다시 지켜보기 시작했다.
갈위는 독고결과 장춘의 싸움을 보며 가슴이 무거워졌다.
비살문주의 무위는 생각 이상이었다.
그러나 이대로 질 수는 없었다.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무력시위는 보여야 한다.
갈위는 둘의 싸움을 보면서도 자신을 경계하는 일살을 흘깃 쳐다보며 소맷자락 안에 감춰진 단검을 쥐었다. 동시에 지붕 위에서 문주와 대작하고 있는 야현을 눈에 담았다.
퍽!
묵직한 파음.
“큭!”
장춘의 신음.
‘합!’
갈위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소리 없는 기합을 터트리며 단검을 독고결에게 날렸다.
캉!
기다렸다는 듯 일살이 단검을 쳐내며 갈위의 신형을 막았다.
일살도 일살이지만 갈위의 노련함은 깊었다. 끊임없이 독고결을 노리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다가 한순간 일살을 제치고 야현이 있는 곳으로 달려 나간 것이었다.
“컥!”
때마침 뒤에서 들려온 장춘의 짧은 비명. 그리고 더는 격한 파음이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독고결의 일격을 이기지 못하고 장춘이 정신을 잃은 모양이었다.
‘반드시 뚫어야 한다.’
허무하게 무릎을 꿇는다면 음살문의 미래가 어두울 수밖에 없는 상황.
갈위는 입술을 깨물며 단전이 찢어져도 좋다는 심정으로 내력을 온몸으로 폭사시키듯 끌어올렸다. 어차피 이 작전을 끝으로 은퇴할 생각을 가졌기에 그는 몸을 아끼지 않았다.
비록 폐인이 될지라도.
“크으!”
몸이 부서져 나가는 고통이 느껴졌지만 갈위는 멈추지 않았다.
야현이 있는 낮은 담장을 밟고 허공으로 신형을 띄운 순간.
‘……!’
발아래서 자신을 덮쳐오는 두 기운이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담장 아래 은신해 있던 또 다른 살수 둘이었다.
작전에 참여하지 않고 마지막 보류로 남겨놓았던 비살문 특급 살수 구살(九殺)과 십살(十殺)이었다. 일살과 독고결이 다급히 뒤따라 붙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 둘 때문이었다.
‘상처만 내면 된다. 저들의 몸에.’
갈위는 다리와 등을 베어 오는 구살과 십살의 검을 피하지 않았다.
‘어차피 죽이지는 않는다!’
다만 몸만 슬쩍 틀어 중상만 피했다.
사각!
‘큭!’
다리와 등이 베이며 고통이 머리를 뒤흔들었지만 갈위는 멈추지 않았다.
파밧!
오히려 더욱 강하게 땅을 박차며 야현이 있는 곳으로 뛰어올랐다.
쐐애애액!
뒤늦게 독고결이 따라붙었지만 이미 갈위는 지붕으로 뛰어오른 상태.
쐐애애액!
독고결은 갈위의 등을 향해 단검을 날렸다.
사혈을 피해 던진 터라 죽지는 않겠지만, 중상을 입을 수도 있는 공격. 중상을 입히려 날린 단검이 아니었다.
그의 걸음을 단 한 순간만 세운다면 그를 막아설 수 있기에 그리한 것뿐이었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 있는 공격이기에 갈위가 몸을 틀어 단검을 쳐낼 것이라 여기며 독고결은 그에게로 신형을 날렸다.
푹!
“……!”
하지만 갈위는 피하지 않았다.
단검이 그의 등에 박히며 몸을 한 차례 바르르 떨었지만 그는 기어코 지붕 위에 올라선 것이다.
“음살문은 지지 않았습니다. 쿨럭!”
갈위는 피를 토하면서도 야현을 향해 묵묵히 말했다.
“음살문은 졌어.”
“……!”
갈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긴 건 그대뿐이야.”
“그 무슨…….”
“말 그대로야. 음살문은 졌어. 그대는 이겼고. 하지만.”
“……?”
“그대가 음살문이라면 음살문은 지지 않았어.”
“……!”
“우선 치료부터 하지. 그러면서 천천히 생각해 봐.”
야현은 갈위를 보며 흡족한 눈빛을 감추지 않았다.
* * *
광동성 성도 광주.
어수룩한 밤이 찾아온 주색가에 야현과 베라칸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을이 찾아왔음에도 여기는 덥군.”
쌀쌀함을 전혀 찾을 수 없는 후텁지근한 날씨인지라 이곳 사람들은 여전히 얇은 옷차림들이었다.
야현은 광주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청루인 남화루에 자리를 잡았다.
“저기로군.”
야현이 오 층 남화루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붉은 기와의 대장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혈랑문.
사도련 내에서도 서열 십 위 안팎을 오르내리는 대문파였다.
혈랑문을 대표하는 독문 무공은 문주로 이어지는 아수혈랑권(亞獸血狼拳)과 아수혈조강(亞獸血爪?)이었다.
“참으로 멋지지 않나? 늑대의 이름이 붙은 무공이라.”
“그렇습니다.”
“늑대의 움직임을 본 따 만들어지고 후세에 가다듬어진 사파에서도 알아주는 상승무공이라. 정말이지 적랑 기사단을 위해 만들어진 무공이란 생각이 들어.”
야현은 턱을 괴고 혈랑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주군.”
“응?”
“이리 움직일 이유라도 있으신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이상한가?”
“저희를 거둘 때와는 확연히 달라 여쭤보는 겁니다.”
서방에서의 야현은 지금과 달리 직접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수하들을 거뒀다. 그러나 지금은 뭔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그저 관조하는 모습이었기에 베라칸이 물어본 것이었다.
그 질문에 야현은 차를 들며 미소를 지었다.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니까.”
“……?”
“그저 본인과 내 사람들이 편히 지내는 것이 그때의 목표였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리고 내 사람들이라고 해도 엄밀히 내 사람이라 칭할 수 있는 이는 몇 되지 않아.”
야현은 찻잔을 내리며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본인이 원하는 조직은 거대하지. 서방의 제국보다도 더 거대한.”
야현은 베라칸을 쳐다보았다.
“이곳의 밤을 가지고, 그것을 기반으로 서방의 밤을 가진다. 제국 이상의 조직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지.”
베라칸은 묵묵히 야현의 말을 경청했다.
“본인은 혼자야. 본인이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없어. 내 사람들이 구심점이 되어 많은 이들을 이끌고, 본인은 그런 내 사람들의 구심점이 되어야 해.”
쪼르르르.
야현이 빈 찻잔을 채우며 말을 이어갔다.
“전처럼 끈끈한 무언가로 조직을 채울 수 없어. 스스로 납득하고 스스로 조직에 섞여야 나중에 탈이 없어. 본인은 그런 시간을 주는 것이야.”
베라칸은 왜 야현이 비살문과 음살문 사이의 정확한 관계를 정해 주지 않고 길을 떠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스스로 합치란 소리다.
서로 부딪치고 양보하여, 하나가 되어 오란 뜻이었다.
“음살문주는 연륜이 있으니 본인의 뜻을 파악했을 거야. 결도, 갈위란 녀석도 아둔한 자들이 아니니 답을 내겠지. 한 번이 어렵지, 그다음부터는 쉬워질 거야.”
그 시각.
약 기운에 잠이 들었던 갈위가 깨어났다.
“몸은 괜찮으냐?”
“윽!”
음살문주의 목소리에 갈위가 몸을 일으키다 등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신음을 삼키며 낯을 찡그렸다.
“꽤 상처가 깊다. 무리하지 말고 누워 있어도 된다.”
음살문주는 갈위를 다시 눕혔다.
“어찌 되었습니까?”
“…….”
음살문주는 갈위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흡수되는 것입니까?”
음살문이 졌다라는 야현의 말을 떠올리며 갈위가 침통하게 물었다.
“그건 아니다.”
“……?”
“음살문은 졌어도 네가 이겼지 않느냐?”
음살문주가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가 이겼으니 음살문은 지지 않았다.”
갈위의 표정이 굳어졌다.
“문주님.”
“주군께서 이 노구한테 잘못이 없지 않으니 당분간 일선에서 뛰라 하시더군.”
“……?”
“그게 무얼 뜻하는 것이겠느냐?”
“그, 그건.”
갈위는 한순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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