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rld After the Withdrawal of the Warrior Party RAW novel - Chapter 122
EP.122 졸업 – 1
처리를 끝낸 나는 곧장 주둔지로 향했다. 분명 클레어가 복귀했을테니 한번 얘기해봐야겠다.
“클레어 어딨냐?”
“예? 아. 막사에 있습니다.”
“그래?”
난 바로 그녀의 막사로 향했다. 막사의 문을 열자.
“힉!”
구석에서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있는 클레어가 보였다. 계속해서 내 눈치를 살피는 그녀를 힐끔 본 나는 의자를 끌어와서 내밀었다.
“어…? 아, 앉으라고?”
“이것도 들라고.”
클레어는 울상을 지으며 의자를 받아 들었다.
명색이 용사라 이정도로 힘들지는 않겠지만 참 쪽팔릴거다.
그래도 다행인 줄 알아라.
남들 보는 앞에서 벌 세우는 건 아니니까.
“용사!! 복귀했…”
벌컥 문이 열린다.
레오덴 장군이었다.
용사의 수색을 나갔다가 이제 막 복귀한 것인지 그의 갑옷에는 마물의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지금 뭐하는 건가?”
“보면 모릅니까?”
“누가 그걸 몰라서 묻는 줄 아나…? 아니 용사에게 왜.”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법.”
“하지만 용사는 잡힌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간 것이니…”
“누가 그것 때문에 그러는 줄 압니까?”
“그럼?”
“보고, 연락, 상담. 유적을 마주쳤으면 복귀해서 바로 보고를 해야지. 왜 그걸 멋대로 들어가버린 건지. 너 찾으려고 몇명이 고생한 줄 알아?”
움찔.
클레어도 자기 죄를 알고 있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으음. 현자. 자네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용산데.”
“용사니까 이러는 겁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런 짓도 안해요.”
난 딱 잘라 말했고 결국 레오덴도 더는 말리지 못했다. 그렇게 내가 팔짱을 끼며 바라본지 얼마나 됐을까?
침묵을 이기지 못한 레오덴 장군은 도망치듯 나가버렸고 난 의자를 끌고와 앉았다.
“무슨 생각으로 거기서 그러고 있었는지 모르는 건 아니다만.”
“….”
“다시 한번 말할게. 절대로. 과거는 고칠 수 없어.”
“…정말… 이야?”
“그래.”
“거기서 봤어… 그리고…”
클레어의 목소리에는 물기가 담겨 있었다. 그녀가 뭘 봤는지는 나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이 세계로 들어왔을 때, 클레어가 나를 구해줬다면 생겨났을 미래를 본 것이다.
그러니 안타까울 수 밖에 없을거다.
“그랬을지도 모르지.”
고개가 숙여졌다. 클레어의 볼을 타고 한줄기 눈물이 흘렀지만 해야 할 말을 잊지는 않았다.
“하지만 결국 그것은 만약일 뿐.”
친의 말이 떠오른다.
만약 되돌리는데 성공했다고 치더라도 클레어에게 후회가 없을까?
한번 관계를 바꾸고 나면 욕심이 생겨 더 고치고 싶을 것이다.
좀 더 고치고, 고쳐서, 완벽한 행복을 얻어내고 싶을 것이다.
한번이라도 후회를 해본 사람이 다시는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삶에 완벽한 해답 따위는 없다는 것을 난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완벽한 답을 찾을 수 있다면…?”
“찾을 수 있다 하더라도 해서는 안될 일이다. 너 하나의 욕심 때문에 지금까지 사람들이 이뤄낸 것을 무너트릴 생각이냐?”
“그, 그건!”
“다시 한번 말할게. 아니. 이건 경고다. 클레어.”
클레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정도면 됐겠지?
“그거 내려놔.”
힘없이 의자를 내려 놓은 클레어에게 힐을 써주었다. 큰 부상은 없는 듯 보이지만 그래도 생채기라든가 체력 저하가 꽤 있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보던 클레어는 움찔하며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작고 예쁜 머리다.
태양과 같은 주황색 반짝이는 머리에 난 손을 올렸다.
“…에?!”
그리고 가볍게 쓰다듬.
얼마나 놀란 걸까? 클레어는 제대로 된 반응도 못한 채 멍하니 날 올려다보았다.
“뭐.”
“아, 아니… 쓰, 쓰다듬. 쓰다듬어써… 머리… 머리. 쓰, 쓰다듬. 쓰다듬어쩌…”
혀까지 꼬이는군.
잘 됐다.
“이 손길을 기억해두는게 좋을거야.”
“…으, 으으으. 응! 응! 녜! 녜헷!!”
어쩔 줄 몰라하며 클레어는 붕붕 고개를 끄덕였다.
난 쪼그려 앉아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주황색 눈동자가 기대감으로 떨리고 있다.
“크로노스와 손을 잡은 그 순간 이 손이 네 머리를 부숴버릴 거니까.”
“….헥!”
“뒤진다. 진짜.”
클레어가 딱딱히 굳어버린 것을 본 나는 다시 한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후 몸을 돌렸다.
“그럼 난 다른 곳에 볼 일이 있어서.
이정도 했는데도 배신하고 크로노스의 사도가 되면 나도 할 말 없다.
매우 아쉽지만 내가 고생 좀 해야지.
레벤티아와 에반젤린에게도 경고를 하고 싶었지만 얘들은 작전을 나가서 아직 안들어왔덴다.
저번 일 이후로 진짜 마물 처치에만 진심이 된 모양이다.
난 그녀들을 위해 편지를 써준 후 일단 대륙의 도시국가 중 하나. 연금술로 이름이 알려진 도시 알케인으로 향했다.
그곳의 아는 술집에 들어가 술 한병을 시켜 놓은 나는 자작하며 생각했다.
나는 아무 것도 안하다가 일 터져 남한테 징징거리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그러니, 일이 터질 것을 알고 있다면 최대한 대비를 해야겠지.
여덟 별의 추구자 중 크로노스와 손을 잡을 만한 이들이 누가 있을까.
놀랍게도 대부분 가능성이 있었다.
일단 클레어와 레벤티아, 에반젤린은 나와 엮이게 되며 생긴 일 말고도 그녀들의 스토리에 걸릴 만한 것들이 많다.
메인 스토리를 하다보면 알 수 있는데 클레어는 자신이 용사가 된 것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만약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용사가 되었다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자신이 용사의 검을 뽑지 않았다면 용사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을까 같은.
기사 레벤티아는 부친의 죽음에 대한 후회.
궁수 에반젤린은 동생과 사이가 나쁜 것.
이 셋은 얼마든지 크로노스의 손을 잡을 수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고 그건 다른 캐릭터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장 마법사 카린을 보자.
카린은 냉정하고 유능하지만 한가지. 세실에게 의존적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그런데 추종자들이나 마물, 크로노스에게 세실이 죽기라도 한다면?
그럼 카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녀를 살리기 위해 크로노스의 사도가 될거다.
그렇다면 주술사 사이론은?
얘는 확률이 낮긴 하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그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보면 알지만 그녀가 어렸을 적, 주술을 배울 때, 그녀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이끌어주던 사매가 있었다.
그런 그녀는 사이론이 자기 스승과 나갔다가 왔을 때 침입한 마물과 싸우다 죽게 되었다.
사이론은 그것을 되돌리기 위해 크로노스의 손을 잡았었다.
검사 레이시 역시 마찬가지로 낮은 확률로 크로노스의 사도가 된 적이 있었다.
특이한 점은 다른 이들과 다르게 구하지 못한 것 때문에 후회하는게 아니라 괜히 구했다는 것 때문에 후회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어렸을 때 자기 오빠를 위기의 순간에서 구했다. 그 이후 오빠와 척을 졌고 결국엔 후계자 경쟁까지 가게 되어 오빠를 자기 손으로 제거했다.
어차피 죽일 거였다면.
만약 그때 그를 구하지 않았다면 자연적으로 가문의 후계자가 되었을 것이고, 후계자 쟁탈전을 펼치며 죽지 않아도 될 많은 이들을 살릴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도둑 친은 어지간해서는 크로노스의 손을 잡지 않지만, 그라고 해서 마냥 안심할 수는 없다.
그는 과거를 후회하지만 결코 되돌리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크로노스의 추종자들이 그의 아버지나 다름없는 도둑길드의 길드장에게 독을 먹이고 해독제로 협박을 하게 될 경우 피눈물을 흘리며 크로노스의 손을 잡게 된다.
그리고 연금술사…
얘는 아무런 준비도 안한다면 크로노스의 사도가 될 가능성이 제일 높다.
하지만 대비한다면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오~ 현자님 아냐. 공사가 다망하신 분이이 여기까진 뭔 일이래?”
껄렁거리는 태도와 거친 걸음. 어린애 허리만한 두꺼운 허벅지와 통나무같은 팔뚝.
터질 것 같은 대흉근을 자랑하는 은색 비늘의 리자드맨이 웃으며 걸어왔다.
여덟개의 뿔 중 두개는 부러졌고, 두개는 붉은색으로 변색된 그는 털썩 내 앞에 앉더니 테이블에 놓여진 술을 잡아 벌컥벌컥 마셨다.
“푸하아~ 역시 32년산 골든 샤워야!! 입 안에서 감도는 맛이 마치 이스코른 백국의 여인이 탱고를 추는 듯 하군!”
“그거 25년산 로즈벨린데?”
움찔한 그는 꿈뻑꿈뻑 눈을 감았다가 뜨더니 라벨을 보고 크게 웃었다.
“푸하하하! 역시 25년산 로즈벨리야! 입 안에서 감도는 맛이 마치 이스코른 백국의 여인이 탱고를 추는 듯 하군!”
“싸구려 탁주나 마시는 거렁뱅이가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큭. 거렁뱅이 무시하지 마라.”
끝이 갈라진 혀를 날름거리며 그는 다시 술을 퍼마셨다. 순식간에 한병의 술을 다 마신 그가 내 눈치를 살피는 사이 난 손을 들었다.
“이거 세병 더 가져와.”
“예.”
정중하게 인사한 점원이 25년산 로즈벨리 세병을 가져온다. 눈을 빛내던 그는 다시 내 눈치를 살폈다.
“이 가게에서 제일 잘하는 생선요리도 가져오고.”
“예.”
그는 싱글벙글 웃었다. 꽤나 기분이 좋았는지 끝이 잘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그렇게 기뻐하던 그를 굳게 만든 것은, 꽤나 거친 목소리였다.
“어이 케루빔!! 술퍼마실 돈이 있으면 빌린 돈부터 갚아야 하지 않을까?”
하나같이 인상이 더러운게 딱 봐도 빚쟁이들이다.
난 시선을 피하는 케루빔을 보았다.
“너 또 돈 빌렸냐? 어쩜 이렇게 한심할 수가. 뭐할라고. 또 도박?”
“아니 내가 새로운 조합식을 발견했거든. 근데 그게 재료값이 만만치 않아서. 우헤헤. 근데 이 독 진짜 끝내줘. 한병 마시면 한달동안 계속 방귀와 딸꾹질이 동시에 나오는데…”
“어휴.”
난 눈에 더욱 많은 한심함을 가득 담아 케루빔을 보았고 그 사이 덩어리들은 테이블을 둘러싸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돈 갚을 생각 없으면 와서 약이나 만들어라.”
“아. 난 마약은 좀.”
“그럼 돈을 갚든가!!”
“얼만데.”
난 덩어리를 보며 물었고, 그는 날 힐끔거리더니 케루빔에게 속닥거렸다.
“저기. 저 사람 너랑 안어울리게 되게 귀한 사람 같아보이는데? 누구냐?”
“귀하지. 왕국 공주의 스승인데다가 마왕을 쓰러트린 몸이시니까.”
“마왕을…? 어, 그, 그럼 현자?”
덩어리는 움찔하며 놀라더니 내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난 그에게 품에서 꺼낸 보석을 내밀었다.
“너 얼마 빚졌냐?”
“딱 만 골드.”
“많이도 졌네.”
그정도면 진짜 어지간한 약재는 수레로 살텐데.
아무튼 난 덩어리에게 만골드치 보석을 내어주었고, 영수증을 받은 뒤 케루빔에게 말했다.
“너 나랑 일 하나만 좀 하자.”
“뭔 일?”
“만병치유약 좀 만들어야겠다.”
“그건 왜?”
“쓸 곳이 있어서.”
“흠. 현자님 요청이라면 무시할 수 없지.”
그래야지.
지금까지 네가 나한테 얻어먹은게 얼만데.
“그리고 한가지 더. 혹시나 나중에 너한테 돈 많이 준다고 하고 크로노스의 사도가 되라는 자가 오면…”
“얼마 준다는데?!”
이 자식이?
“….그런데 그거 하면 지금까지 네가 만든 약들 다 사라지는 거거든? 그 자식들의 목적은 시간을 되돌려 세계를 멸망시키는 거니까.”
“…오우. 그런 개자식들과는 절대 손을 잡아서는 안되지.”
그러더니 히죽 웃었다.
“근데 돈 많이 주는 건 좀 끌린다. 현자님이 말하는 걸 보니 비밀결사 비스무리한 놈들 같은데… 혹시 연구 재료도 막 주려나? 원래 연금술사들 꿈이 예산 신경 안쓰고 만들고 싶은 약 만드는거잖아?”
히죽히죽.
이 미친 연금술사는 과거를 바꾸는 것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원하는대로 약을 제조하기 위한 자금과 재료의 획득 뿐이니까.
난 여덟 별의 추구자 중 연금술사 캐릭터 중 하나이며 ‘가난’과 ‘과소비’라는 삭제 불가의 엄청난 패널티를 지녔지만 시작부터 모든 종류의 약과 독을 만들 수 있는데다가 기초 전투력도 어지간한 전사급인 ‘절대’의 연금술사.
케루빔을 향해 월광을 들이 밀었다.
“너 이새끼. 지금까지 나한테 얻어먹은 거 다 토해내고 원래대로 빚어서 내놓을래? 참고로 네가 나한테 얻어먹고 빚진게 지금 이걸로 87만골드를 넘겼다.”
참고로 87만 골드면 유니크 장비로 도배를 할 수 있는 돈이다.
물론 경매장에 유니크 장비가 나왔을 경우지만.
“헉… 내, 내가 무슨 돈이 있다고. 나 거지야. 당장 내일 먹을 빵도 없어…”
“크로노스 사도 할거야 안할거야?”
“아, 안하겠소! 닷시는 안하겠소!”
그래야지.
난 그에게 연금술사의 맹세까지 받아냈다. 이제 얘는 절대 배신 안할거다.
그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 연금술인만큼 배신시 연금술 스킬 삭제라는 패널티가 있다면 절대 안하겠지.
일단 믿을 만한 놈 하나는 확보했고…
“근데 그 만병치유약은 어디다가 쓰려고?”
“도둑길드장이 중독되면 써서 친을 빼와야지.”
조만간 두명째도 확보하겠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무슨 말 할지 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