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rld After the Withdrawal of the Warrior Party RAW novel - Chapter 19
EP.19 세번째 조건 – 2
예상했던 인원과 예상치 못한 인원들이 참가했다지만 공략법 자체가 바뀐 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베로니카가 참전했다는 거니까.
“그래서. 현자. 이제 어떻게 해야하나?”
창백의 달 이벤트를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결국 내가 중요하다는 것을 레오덴 장군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별다른 터치없이 이번 일을 나에게 맡길 생각인가보다.
나야 좋지.
업적작 방해하면 배제해야 하는데.
어쨌든 그동안 열심히 인간관계를 다져 놓은 보람이 여기서 나오는구만.
난 날 응시하는 이들을 둘러보았다. 세번째 단계가 충족되었으니 이제 네번째를 충족해야 한다.
창백의 달 이벤트를 진행하기 위한 네번째 단계가 바로 백월교 교도들과의 전투다.
백악의 야수들을 쓰러트리면서 자신들의 의식이 방해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이고.
그들과 싸우며 신전으로 가기 위한 길을 마련해야 한다.
“백월교도들이 나서겠지요.”
내가 말하기 전 베로니카가 차갑게 내뱉었다. 그것을 들은 레오덴 장군은 허리춤에 있던 검을 꽉 쥐었다.
“그렇다면 그들을 왕국군이 막아야겠군.”
레오덴 장군 입장에서 그들은국가 전복을 노린 반역자에 자신의 주군을 공격한 찢어죽여 마땅한 놈들이니 자기 손으로 잡고 싶을 것이다.
그러니 저렇게 부담스럽게 날 힐끔거리는 거겠지.
물론 그게 나에게 중요한 건 아니다.
“아뇨. 왕국군은 하던거나 하시고… 그들과의 전투는 교회에 맡기고 싶은데. 베로니카. 괜찮지?”
“사교와 싸우는 일은 언제든지 환영이지.”
진짜 듬직하다. 커다란 메이스를 꽉 쥐며 전의를 다지는 그녀를 향해 난 박수를 쳐주었고, 베로니카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럼 다음은?”
“다음은…”
백월교도들을 잡아 신전의 위치가 특정되면 마지막 단계인 달의 신전 공략을 시작해야 한다.
게임 내에서는 달의 신전이 일종의 던전으로 취급되기에 한정된 인원만 들어갈 수 있으니, 거기 들어갈 인원을 정해야 한다.
뭐,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지금은 백월교도들과의 전투가 중요하니까.
“달의 신전은 좀 많이 위험한 던전입니다.”
“항상 생각했는데 말이지. 현자씨. 댁은 어떻게 그런 걸 잘 알지?”
빗으로 닭벼슬 머리를 쓸어올린 리자드맨 연주가가 묻자 난 웃었다.
“내가 왜 현자겠어?”
“아. 그렇게 말하면 내가 또 할 말이 없지.”
“그냥 그러려니 해. 원래 세상 일이라는게 다 납득되는 건 아니니까.”
현자로서 용사 파티를 지원하며 나도 나름대로 이름이 알려졌고, 또 틈틈히 퀘스트와 이벤트를 치루며 명성을 높였다.
덕분에 내 말에도 꽤나 무게가 실린 탓에 그를 비롯한 다른 이들 가운데 추궁을 이어나가는 자는 없었다.
“역시 현자님! 정말 현자님은 대단한 것 같아요! 아! 그럼 현자님! 저희 마을에서 작은 문제가 생겼는데 그게 뭔지 아세요?”
“몰라. 어쨌든 너희 모험가들도 왔으니까 교회 쪽에 합류해. 아. 라크, 그리고 윌커스. 너희들은 나랑 같이 움직이고.”
얘들은 이번에 찾아 온 모험가들 중에서도 특별한 녀석들이다.
아주 특별한 트롤들이라 내가 관리하는게 파티 구성에 낫다.
물론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쌓이긴 하겠지만 말야.
“백월교도놈들을 잡을 때 왕국군이 싸울 필요가 없는 건가?”
“걔들 일단은 사교라서 사악한 기술을 쓰니까요.”
그걸 막기에는 역시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최고다.
그리고 모험가들이 가는 던전 같은 경우에 사악한 주술을 상대해야 하는 경우가 많으니 쟤들이 쓸만한 인원이라면 알아서 잘 싸우겠지.
“그렇군. 알겠네.”
그렇게 백월교도와의 전투에 대한 준비를 마쳤을 때 쯤.
“자, 잠깐!”
“어?”
내 설명을 잠자코 듣던 클레어는 번쩍 손을 들었다.
“현우야. 내가… 우리가 해줄 일은 없어? 아니… 베로니카 추기경과 저 모험가분이 약하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전투력으로 따진다면 마왕을 쓰러트리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자신들이 낫지 않냐며 클레어는 힘없이 말했다.
난 그녀와, 그녀의 옆에 서서 간절히 날 응시하는 레벤티아를 번갈아 바라 본 후 생각했다.
얘들이 할 일이라.
으으으음…
아무리 생각해봐도 딱히 없군.
각자에게 업무를 분담해주고 언제나처럼 잔업을 시작했다. 오늘의 잔업은 요리.
많은 인원들을 위한 요리를 만들고 배식까지 담당하던 나는 어느새 내 앞에 온 클레어를 보았다.
새치기 안하고 줄서서 온 그녀는 날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할 말 있어?”
“…정말 우리가 널 위해 할 일이 없어? 그들이 위험하다는 건 아는데…”
“너희가 할 일은 그냥 여기서 왕국군과 함께 마물들을 잡는 거 뿐인데?”
창백의 달 이벤트는 난도가 있는 편이고, 그 이벤트의 마지막인 달의 신전의 보스는 꽤나 강력하다.
일반적인 플레이어라면 당연히 많이 키워 놓은 용사를 파티에 포함시켜서 공략하지만.
명색이 나도 고이다 못해 썩은 물.
거기에 이 세계에 익숙하지 않던 초반과 달리 닳고 닳은 몸이다.
굳이 여기서 용사파티 애들을 빼 왕국군의 피해를 늘릴 필요는 없다.
창백의 달 이벤트가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마물들은 여전히 남아 있으니까.
“그, 그래…? 그렇구나…”
완전히 축 늘어진 어깨를 한 채 시무룩히 클레어가 타박타박 걸어가버렸다. 그것을 보던 나는 다음 순서인 기사의 식판에 소세지 야채볶음을 배식해 주었고, 다음 인원을 보았다.
“엥?”
베로니카였다.
이번에 추가된 교회 쪽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식사를 할텐데?
내가 바라보자 그녀는 빙긋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현자님께 배식받으니 옛날 생각이 나네.”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원래 창백의 달 이벤트를 진행했을 때, 백은 마을을 지켜낸 후 아침이 되고 식사를 준비한 후 내가 배식해줬었지.
그때 베로니카도 직접 식판을 들고 내게 배식을 받았었다.
그나저나 꽤 된 일인데 추기경님이나 되는 양반이 그걸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
“잊을 리가 없잖냐.”
“그래?”
“그토록 힘겹게 싸웠고, 그토록 절망스러웠고, 그렇기에 빛을 찾을 수 있었던 전투는 생전 처음이었으니까. 아마 빛께 갈 때까지 잊지 못할걸.”
씩 웃는 그녀에게 대충 마주 웃어주고 난 그녀의 식판에 소세지 야채볶음을 올려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응시하던 베로니카는 또다시 빙긋 웃었다.
그나저나 쟤가 저렇게 잘 웃는 여자였나? 게임에서는 웃는 씬이 거의 없었는데 말이지.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네.”
그녀의 식판에는 피망을 비롯한 야채들이 듬뿍 담겨져 있었다.
다른 이들이 본다면 괴롭힌다고 할 만한 배식이지만, 베로니카의 표정은 만족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네가 고기보다는 야채 좋아한다는 것 정도는 기억하고 있어. 이래봬도 현자라고. 기억력은 좋아.”
“하하. 그렇지.”
그녀는 사뿐히 고개를 끄덕인 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보였지만 뒤에서 기다리는 인원이 많으니까.
살짝 고개만 숙여 인사한 그녀가 떠나자 그 다음은 라크였다.
“어이! 현자! 추기경님 소세지 안받았지? 그만큼 내가 받으면 안되냐? 우리 사이잖냐!”
“아앗! 그건 제거에요! 현자님! 저한테 더 주실거죠?! 네?! 저랑 현자님 사인데! 제가 야채보다 소세지 더 좋아하는 거 아시잖아요! 예?! 소세지 좀 더! 야채 안 먹을테니까 대신 소세지 몇개만 더!”
세상에!
소세지 야채볶음에서 소세지만 처먹으려고 하다니?!
아니, 그보다 너네랑 나랑 무슨 사인데…
저녁 식사 시간이 끝나고 남는 시간에 가죽 세공 작업에 참가했다.
이렇게 틈 날 때마다 해둬야 업적을 따지.
언제나처럼 병사들이 할 필요 없다고 떠들어댔지만 막무가내로 끼어들자 그들은 결국 자리를 내어주었다.
“마물의 가죽을 벗기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닌데. 현자님께서는 괜찮으신겁니까?”
“뭐 어때.”
숫돌로 간 날카로운 칼로 외눈 소 마물의 가죽을 벗겨나갔다. 숙련된 가죽장인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기 있는 인부들은 대다수가 병사들.
그런만큼 숙련도 정도는 내가 더 높다.
그들보다 빠르게 마물의 가죽을 벗겨 따로 챙겨 놓은 내가 두번째 마물을 챙기려고 할 때 쯤.
“여기 있었나?”
베로니카였다. 지금쯤이면 성기사들과 기도라도 하고 있을 줄 알았던 그녀가 다가오자 난 검을 쥐고 다섯 뿔 사슴 마물의 목 쪽에 꽂아 넣었다.
-푸슛!
남아 있는 검은 피가 흘러내리며 가죽 앞치마를 더럽힌다. 그걸 지켜보던 베로니카는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디바인마크를 들었다.
“빛이여. 어둠을 정화하소서.”
은은한 성력과 함께 마물의 피에 남아 있는 사악한 기운이 정화되고, 또 그 피들로 인해 생긴 스트레스들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인부들의 표정이 한결 나아지자 베로니카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장의 상태가 꽤나 열악하군. 교회에서도 나름대로 사제들과 성기사들을 보내는 것으로 아는데.”
“여기까지 커버하기에는 모자라더라.”
“그래? 그럼 네가 해도 되지 않나? 너도 신성력을 쓸 수 있을텐데.”
“그렇긴 하지. 그래서 틈날때마다 하고 있어.”
“역시 넌 여전하구나. 백은마을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베로니카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고, 몇몇 인부들이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았다. 물론 그게 오래가지는 않았다. 내가 힐끔거리자 그들은 허둥거리며 작업을 이어나갔으니까.
“그래서? 뭐 할 말이라도 있나?”
“할 말이라…”
디바인마크를 만지작거리던 베로니카는 어깨를 으쓱였다.
“용사 파티와는 여전히 사이가 나쁜 모양이네.”
“응. 그래서? 불만이라도 있나?”
“그들이 뭔가 괴롭히거나 그런 건 없나?”
“없는데.”
귀찮게 하는 경우가 있고, 또 백악의 야수들을 잡느라 여기 머무는 사이 다가와 말을 걸려 하기는 했지만.
클레어를 제외한 레벤티아와 에반젤린과는 딱히 얘기하기도 싫어서 철저하게 무시로 일관했다.
베로니카도 나와 용사파티와의 관계를 알고 있는 만큼 걱정을 해주는 것 같지만, 솔직히 쓸데없는 걱정이다.
“내가 어디가서 괴롭힘당할 사람으로 보여?”
“넌 너무 사람이 무른 것 같아서. 이단심문관에 들어온다면 철저하게 단련될텐데 말야.”
“됐네요.”
난 그녀에게 보내던 시선을 다시 마물들의 사체로 돌렸다. 세번째 마물을 받아 가죽을 벗기기 시작하자 베로니카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전에 했던 제안은 아직 유효해. 이단심문관이 될 생각 없어?”
“없어.”
“아. 그런가.”
살짝, 실망한 어조였지만 난 그녀보다는 악어 머리에 사자 몸을 가진 마물의 가죽을 벗기는데 집중했다. 시선이 따갑게 느껴지는 와중에 고개를 들자, 베로니카는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내뱉었다.
“…혹시나 용사파티와 다시 함께 할 생각은?”
걔들이랑?
“그 또한 없지.”
“…그거 다행이군.”
“왜 다행인데? 교회랑 용사파티랑 뭐 있어? 둘이 싸워? 파워게임하나?”
그런 이벤트나 퀘스트, 업적 같은 건 없는데?
내 질문에 베로니카는 빙긋 웃었다.
“그런 건 아니야. 그저.”
천천히 한걸음 물러난 그녀는 날 똑바로 응시했다.
마치, 뭔가 중요한 이야기라도 하려는 듯 진지한 태도에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저… 아. 여기서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네. 괜찮다면 내 막사에서 차라도 한잔 하면서 할까?”
“흠? 뭐 그러지. 이것만 정리하고 갈테니 기다려달라고.”
지금 내가 다듬는 마물을 끝으로 더 이상 작업할게 없으니까. 난 베로니카가 기다리는 동안 작업을 진행했고, 마물 하나의 가죽을 완전히 정리한 후에야 앞치마를 벗었다.
“추기경을 이렇게 기다리게 하다니. 참… 대단하시네.”
“꼬우면 그냥 가셨어야지.”
“그런 것도 여전하구나? 자. 그럼 갈…”
가죽 누린내와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작업장에 쪼그려 앉아 있던 베로니카가 일어났을 때였다.
-콰아아앙!!
주둔지 끝 쪽에서 폭음과 함께 비명이 울려퍼졌다.
그것을 들은 나는 앞치마를 벗었고, 베로니카는 메이스를 꽉 잡았다.
창백의 달 이벤트.
네번째 단계.
백월교의 침입이 시작되었다.
“차는 나중에 마셔야겠… 헉.”
엄마 놀래라.
앞치마를 벗고 뛰쳐나간 나는 내 옆에 서 있는 베로니카를 보고 깜짝 놀랐다.
베로니카의 예쁜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LLDDJJ님 후원 정말 감사합니다 ㅎ
그럼 내일 만나요. 좋은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