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263
#263화
샤를로트 모헬.
어린 날 아라스의 연말 만찬에 초대받아 한 중위를 만났다.
날카롭고 무뚝뚝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의외로 겁 많고 보수적인 면모에 호감이 갔었다.
‘세상에 내가 첫 연애였을 줄은 몰랐는데.’
보통 사관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결혼, 혹은 약혼을 하던 당시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베르게르 모헬이 그때까지 경험도 없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오히려 좋았지.’
그래서 더욱 달려들었던 것 같다. 물론 제 발로 감옥 들어갈 작정 하고 아버지도 눈치 보던 총참을 들이받는 미친 인간일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어쩌겠나, 결혼한 것을.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운명이다 생각하고 데리고 살아야지.
이후 전쟁이 터지고 4년이 넘는 시간 동안은 신문에서 더 많이 남편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어디서 싸워 이겼다.
어느 지역을 탈환했다.
적이 얼마나 죽었고, 그에 비해 아군은 또 얼마만큼 죽었다.
수십, 수백 번 신문에 베르게르 모헬이란 이름이 올라왔지만 매일 아침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신문을 펼쳤다.
더 유명해질수록, 더 많은 전장에 나갈수록. 혹시나 죽었을까 봐.
단 하루의 아침도 긴장하지 않은 적이 없다. 어떤 때는 내일 신문이 나오는 아침이 싫게 느껴질 만큼 말이다.
그렇게 홀로 아이를 낳고 키웠더니.
“제발, 정신 차려!”
“…샤를로트?”
돌아온 남편은 정상이 아니었다. 얼마나 용맹했고 위대했는지 프랑스 전체가 떠들어댔지만, 정작 그녀의 남편은 유약하던 중위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 내 손에 왜 삽이….”
오히려 전보다 더 겁이 많아졌다.
마치 귀신이라도 봐서 정신이 나가버린. 그럼에도 그 귀신에 대해 남에게 차마 말하지 않고 홀로만의 비밀로 간직하는 사람 같았다.
“나, 식민지 파견 좀 갔다 올게.”
“…….”
전쟁이 끝나고 얼마 뒤 또 2년을 훌쩍 떠났다.
아버지도, 두 오빠들도 식민지로 나갔던 기억이 있으니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적어도 아들이 자기 아버지 얼굴은 기억해야 할 거 아닌가.
“나도 갈까?”
“아니. 절대.”
완강했던 당시 남편의 태도와 이후 리프 전쟁에 관한 소식을 들어보면 그리 안전하지 않았나 보다.
어쩌면 베르게르는 당시 자신의 정신이상 증세가 가족한테 영향을 미칠까 봐 미련 없이 2년이나 떠났던 것 같다.
2년 뒤 다시 만난 베르게르 모헬은 다행히 많이 좋아졌었다.
다시 한번 그녀가 알던. 아니, 어쩌면 오직 그녀만이 아는 베르게르 모헬은 평화에 젖어 행복하게 살았다.
[세 번째 원수, 베르게르 모헬.] [압도적인 선거, 예상된 결과. 베르게르 모헬 대통령 당선.]그 시기에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어쨌든 베르게르는 여전히 그녀가 알던 베르게르로 남아있었다.
재산이라면 그녀의 가문에도 차고 넘쳤고, 처음에는 남편이 가난한 줄 알고 자신이 먹여 살릴 계획도 세웠을 정도니 이후로 늘어나는 재산에는 크게 눈길이 가지 않았다.
군의 명예도 아버지를 보면 과연 그게 있다고 행복한지도 알 수 없었다.
중년에 이르러서는 은근히 전역하길 바랐으나.
“으아악! 페태애애앵! 포슈우우! 이 빌어먹을 늙은이들아!”
종종 서재에서 울리는 이름들이 이를 허용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 ‘영부인으로서의 삶이 만족스럽나요?’라고 묻는다면, 샤를로트는 영부인의 삶은 별로고 베르게르 모헬의 아내로는 만족스럽다고 답하고 싶었다.
정말 다사다난한 과거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이제는 자식들도 다 키웠고 남편도 젊을 적 철부지가 아니다.
“나, 아시아 다시 갈 거 같아.”
“…분명 저번 베를린에서 돌아올 때 다시 전장에 안 나간다며?”
“그랬지?”
“나한테 가스파르 눈을 볼 때마다 이제는 전장에 못 나가겠다며.”
“분명 그리 말했지.”
“근데 아시아로 간다고?”
“네.”
…분명 저 나이즈음 먹었으면 철이 들 법도 한데.
프랑스의 대통령이 되었다면 파리에 눌러앉아서 정치 할 법도 한데.
“이렇게 자주 자리를 비워도 되는 거야? 혹시 가스파르한테 물려주는 것 때문에 그래? 난 여전히 반대야. 내 아들을 당신처럼 일만 시키고 싶진 않아.”
“그, 그게 애국이라고! 우리 아들이 아니면 이 나라는 답이 없다니까? 아니, 일단 아시아를 가기로 약속했어.”
“허! 누구랑?”
“마셜, 처칠, 루스벨트, 등등?”
“…….”
과연 남편이 여전히 철부지인 걸까, 아니면 아내인 자신이 속이 좁아서 대단하신 남편의 선택을 존중하지 못하는 걸까?
매번 드는 생각이지만 한 인간의 능력과 성숙함은 별개의 문제 같다.
“하아, 내 뜻이 뭐가 중요하겠어.”
“…가지 말까?”
“아니, 약속했다며? 가야지 그럼. 딸은 미국에 있고, 아들은 어디 사라졌다가 돌아오더니 다시 무슨 일하러 간다고 떠날 준비하고, 남편은 아시아로 간다니 내 인생이 처량해서 그래. 우리 가족은 왜 모이는 법이 없을까.”
“나 안 갈게! 음, 안 가도 될 거 같아!”
이거 봐라. 이게 어딜 봐서 한 나라를 이끌 재목인가. 그냥 눈치나 살살 보는 겁쟁이지.
“가. 대신 다치지 말고.”
“빨리 올게.”
“그냥, 다치지만 마.”
아직도 애 같다. 이리 늙어서도 남편이 나가 다쳐 들어올까 봐 걱정할 줄이야.
그런 자신의 마음도 모르고 옆으로 쪼르르 달려와 앉아서 본인이 아시아에 가서 할 일을 떠드는 베르게르.
“그거 알아? 아시아 가면 아예 페탱 원수님이랑 같은 전장에 서게 될걸? 근데 웃긴 건 내가 상급자란 거지.”
“좋아?”
“내가 가서 군대는 짬이 아니라 계급이란 것을 똑똑히 알려주고 올게. 이래 봬도 군 통수권자라고!”
“하아….”
새삼 본인의 인생이 처량하게 느껴지는 샤를로트였지만 어쩌겠나.
세상은 십대 소년 같은 남편을 어렸을 때 읽던 위인전의 나폴레옹보다 더 뛰어난 인간이라고 떠드는데.
“흐흐, 페탱? 잽스? 전부 딱 대. 이 모헬이 간다.”
분명 30년을 넘게 같이 살았는데 여전히 변함없는 남편.
‘아니. 오히려 더 애처럼 변하는 것 같은데.’
젊을 적에는 그래도 눈치 보는 윗사람들이 많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눈치도 안 보고 철부지처럼 구는 것 같다.
문득 샤를로트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가 떠올랐다.
‘딸아, 네 남편은 이 나라의 왕이 될 사람이다.’
‘저 인간이요?’
뼛속까지 왕정복고주의자였던 아버지. 그땐 원수직을 달기도 전이었는데 아버지는 베르게르가 이 나라의 정점에 도달할 것이라 굳게 믿으셨다.
“그리고 갔다 오면 바로 임기 끝! 이거 너무 완벽한데? 캬아, 내 인생은 말년에 꽃피는구나!”
일단 하나 확실한 건. 저 인간이 개짓거리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건 여전히 늦출 수 없단 거다.
쉰다섯이나 먹은 남편이지만.
샤를로트는 여전히 방심할 수 없었다.
이쯤 되니 자식 셋을 키우는 기분이었다.
***
듀시엠 뷰로에서 시작해 통합된 정보부까지 무려 8년을 몸담았던 조직을 나온 가스파르.
국장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온 가스파르를 가장 먼저 기다린 건 그의 삼촌, 프랑수아 드라로크였다.
“축하한다. 드디어 저 거지 같은 건물을 나오는구나.”
“새 건물인데요?”
“하지만 모헬이란 성을 단 남자가 일하기엔 작지.”
“…….”
부담스러울 정도로 기대에 찬 저 눈빛을 볼 때마다 가스파르도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우리 삼촌은 내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를 나한테서 보는 것 같단 말이지.’
이제 겨우 말단 직원에서 벗어난 수준. 재건위원회도 가스파르가 계획, 설계를 주도적으로 해 무언가를 바닥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아닌, 그냥 가서 자연스레 녹아들어 묻어가는 상황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고 보니, 네 나이가 벌써 스물여덟이구나.”
“그렇죠?”
“슬슬 내 은퇴할 때가 되긴 했어.”
“예?”
본인의 나이와 삼촌의 은퇴가 무슨 상관인가 싶었지만 웃는 삼촌의 얼굴 속에는 진심이 묻어 있었다.
“그럼 나도 고생한 조카에게 선물 하나쯤은 남겨줘야지. 너도 정보부에서 일했으니 잘 알 거다. 불의 십자단이 어떤 구조로 돌아가는지.”
“어, 알긴 합니다.”
양지의 사람들. 그러니까 정상적으로 군에 은퇴했고 이후 다른 직업군으로 넘어가지 않은 채 여전히 비슷한 업종에 종사하고 언제든 복귀할 준비를 했던 이들.
‘사실 말이 안 되긴 해. 은퇴를 했는데 복귀할 준비를 시키다니?’
아마 이 또한 전쟁 대비의 일환이었겠지.
다음은 음지에 가까운, 그림자와 같은 이들.
간단하게는 깡패, 사채업자, 불법이민자 청소부터 민간 방첩, 프랑스 이권 보호, 위장 침투, 등등.
경찰과 정보부의 어두운 면모만 본받은 듯한 사람들.
딱히 그들을 부정하다 욕하진 않는다. 오히려 가스파르는 필요악에 가깝다고 보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사람 좋은 미소 짓고 있는 이 삼촌이, 백만이 넘는 불의 십자단 회원들을 이끄는 사람이다.
‘어떤 때는 오를레앙당 정치클럽처럼 보이기도 하던데.’
어느 정도 계급 좀 올리고 전역한 사람 중에 불의 십자단에 가입 안 한 사람이 있을까.
아무튼 이 불의 십자단이란 조직은 민간, 정부, 군. 세 곳 모두 발 걸친 특이한 조직이다.
“내가 사라지면 이 조직을 누가 이끌까 고민해봤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가만히 놔두면 오히려 커지면 커졌지 줄어들진 않겠더구나.”
“누구로 정하셨어요?”
“너. 네가 아니면 먼지처럼 없애버리고 오직 보훈과 사회활동 부분만 남길 거다. 그리고 어두운 부분은 전부 정보부가 이어받겠지.”
“…….”
“이미 정보부와 친숙한 너에겐 차라리 그게 나을 수도 있으니 물어보는 거다. 두 조직을 경쟁시켜도 좋고, 반복시켜도 좋아. 정보부가 통합되기 전처럼 영역을 나눠도 좋지.”
딱히 생각해보지 않은 부분.
모든 거리에는 최소 한 명의 불의 십자단원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규모는 크다. 다만 ‘내게 필요한가?’라고 고민해봤을 때, 가스파르는 그렇다고 답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 전에.
‘이 나라에 지금처럼 불의 십자단이 필요할까?’
전후에는 그 반대 아닐까.
“불의 십자단은 규모를 줄여야 하지 않을까요. 삼촌이 열심히 키우신 건 맞지만, 참전 수당 하나 챙겨주지 못하던 예전이랑은 다르잖아요.”
“원하는지를 물어봤는데 필요 유무를 답하다니…. 역시 조카는 제 아비를 닮았군.”
“아무튼, 전 잘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랑 상의하세요.”
불의 십자단. 돈세탁, 정보 수집, 전역자들을 통한 군의 영향력, 민간 통제. 저 조직으로 가능한 일들은 끝도 없이 많지만 이미 아버지 후광만으로도 차고 넘치는 가스파르는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다.
‘무슨 불의 십자단이냐. 오를레앙당 의원직만 시켜도 난 버거울 거 같은데.’
드라로크 삼촌이 입맛만 다시는 걸 보니 살짝 아쉬우신 것 같다만 역시 전후 평화의 시대에 불의 십자단의 역할은 크지 않다.
“전 내일부터 재건위원회 일원으로 합류하게 됩니다. 당분간 파리에 없을 거예요.”
“재건위원회라, 너한테 냄새 맡고 달려드는 쥐새끼들이 많겠어.”
“글쎄요. 제가 정보부 출신이라 그런지 의심이 많아서. 잘못 오면 다 타버릴 텐데.”
“흐흐, 역시 내 조카야.”
그제야 흡족한 미소로 화답하는 드라로크에 가스파르는 안심하고 걸어갔다.
“그럼 조카 자리 잡으면 나중에 한 번 베를린으로 삼촌이 또 가도록 하지!”
“…베를린? 위원회가 베를린에 있진 않은데요?”
“허나 재건의 중심은 베를린이지. 폴란드 부흥 계획도 결국 베를린을 배제하고는 불가능하니.”
베를린, 베를린이라.
갑자기 몰려오는 기이한 느낌과 미약한 흥분감이 싫지만 않다.
삼촌과 더 빨리 멀어지는 발걸음.
‘그래. 그쪽에 한쪽 눈알도 두고 왔는데 다시 한번 가봐야 할 거 아냐?’
8년간 정보부에서만 일해서 그런 걸까. 지금 가스파르의 머릿속에는 새로운 직장으로 빨리 떠나고 싶단 생각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