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289
#289화
중동에 도착한 모리스 가믈랭은 현 사태를 면밀히 분석해봤을 때, 모든 원흉은 플랑댕이 아닌 처칠이란 결론을 내렸다.
‘여기저기 다 찔러보다가 갑자기 발을 빼? 심지어 뒤처리는 안 하고 떠났어?’
인도는 방치했으며, 이란은 버렸고, 그 위쪽은 부푼 꿈만 마구마구 불어넣었다.
게다가 자치를 해본 적 없는 팔레스타인들을 방치하고 그 옆에 버젓이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세우겠다니.
여기서 핵심은 국가를 세워주는 것이 아닌 세울 수 있도록 ‘허락’만 했다는 점이다.
안 그래도 불안정한 아랍권에 이스라엘 건국은 인종 차별을 뛰어넘는 종교 모독으로 다가왔고 이들의 반발심은 빨갱이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이었다.
“차라리 국가를 깔끔하게 세워주고 국경을 가르든가. 그것도 아니면 시기를 좀 잘 정하든가.”
예멘과 사우디의 분쟁은 10년 넘게 장기화되고 있고.
한때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던 지역이기에 튀르키예가 눈독 들이며.
아랍권 전역이 강국들의 파워 게임에 의해 변하고 있는 하필 지금, 이스라엘 건국이라니.
심지어 저 위쪽 사건사고들 다 빼고 아라비아 반도만 봐도 무책임하게 처리 할 수 없는 게, 예멘은 이탈리아와 친하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영국을 뒷배로 두었다. 문제는 두 나라가 세계 대전에서 함께 싸운 연합국이란 사실.
이런데 갑자기 자기네 힘들다고 반도에서 병력을 빼? 정말 무책임함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아랍 국가들의 불안정한 국경과 이슬람권 내부의 분쟁 격화.
그리고 모든 도화선에 불을 붙여버린 이스라엘의 건국.
이 구도에서 아라비아 반도에 땅 한 뼘 가지지 않은 프랑스가 영향력을 얻는 방법은 하나.
“이스라엘이 잘못했네.”
“미국과 영국은 이미 이스라엘의 건국을 지지하지 않았습니까?”
“근데 우린 안 했잖아?”
“각 민족은 독립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지. 정확히는 자기 땅에서 독립하는 거지. 남의 땅에서 영토를 뺏어서 독립하는 게 아니라.”
가믈랭 본인은 이 구도가 어찌 흘러갈지 모르겠으나 플랑댕의 계획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친미 국가로 반도에 꼭 있어야 할 필요악이라고 하였다.
‘미국과 이스라엘, 아랍권과 프랑스.’
여기에 아랍권 국가들 중 강자를 하나 둘 정도 키워주면 된다.
영국이 갈라쳐서 지배하는 분할통치를 통해 확장했다면 프랑스는 반대로 통합통치. 강력한 중심축을 세워 그들의 권력을 인정하고 나아가 키워줌으로써 간접적인 지배력을 키워 왔다.
그러기 위해선 악을 규정하고 그 악과 직접 대립이 아닌 간접 대립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할 수 있는데.
‘…쉽지는 않군.’
일단은 세상 물정 모르는 유대인들에게 현실의 무서움을 알려주는 일부터.
“프랑스의 중재를 따르겠다고 하던가?”
“선조들이 받은 가나안 땅은 본래 12지파가 나누어 다스리던 옛 영토로-”
“거절이군. 분쟁을 그만둘 생각이 없나.”
“아직 미국의 제재나 영국의 반대가 없어서 그런 듯합니다.”
“저런,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이야.”
세상의 연민을 한 몸 받았던 유대인들은 끝내 선을 넘어버렸다.
‘불쌍함 하나로 국가를 날름 세우려 하다니. 너무 나갔군.’
차라리 폴란드처럼 민족적인 저항을 보여주든가. 아니면 독일처럼 전력에 보탬이라도 되든가.
나치 빠진 독일을 프랑스가 정상국가 취급하니 되려 보이콧처럼 참전을 안 해버린 유대인들.
홀로코스트의 아픔은 이해하는 바이나 그걸 프랑스가 한 건 아니지 않나.
결국 지난 4년이 넘는 전쟁 기간 동안 프랑스인들에게 유대계는 ‘쓸모없음’이라는 결론만 내리게 되었다.
딱 선악구도 선전용.
인도주의적인 봉사 대상.
허나 남의 영토를 뜯어 독립이라니. 프랑스의 영원한 평화 기조에는 절대 맞지 않다.
“압둘아지즈 왕에게 전하게. 항구에 나온 물건 전부 받아가라고.”
유럽을 떠돌아다니는 집시들에게 나라를 세워줄 필요가 없는 것처럼.
한 손 거들지 않은 유대인들을 위해 아랍권에 종교 폭탄 국가를 투하할 이유가 없다.
한때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을 구해줬던 프랑스가 이번에는 유대인들을 과감히 버렸다.
***
외교 대사들이 수십 번 만남을 통해 서로 약속된 한 문장을 겨우 뽑아내지만, 모헬과 루스벨트는 며칠 동안 빠르게 다양한 결론들을 손쉽게 도출해냈다.
“중립국들도 UN에 끌어들일 수 있습니까?”
“어렵습니다. 핀란드나 덴마크를 제외하면 스위스나 북유럽 국가들은 반공에 참여하지도 않았으니까요.”
승전국들의 리그가 아닌 국제 기구라는 이름답게 가능한 많은 수의 회원국을 끌어들이려 했으며.
“재건위원회를 아시아에도 건설하실 겁니까?”
“그럴 여력이 안 됩니다. 독일-폴란드 재건에도 꽤나 많은 재원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아시아 전체를 단기간에 재건할 순 없습니다.”
“하긴, 저희도 그래서 일본을 키워 확장하려는 것이지요.”
이젠 서로를 너무나 잘 알아 숨기거나 블러핑 할 필요도 없었다.
‘프랑이 아시아에 퍼지게 놔두고 싶진 않은데….’
‘우리가 독일 키우는 것처럼 너희도 일본부터 키우라고. 나머지는 나중에.’
소련처럼 양측의 의견이 확실히 엇갈리는 주제만 아니라면 대화는 물흐르듯 매끄러웠다.
“독재자를 세우는 건 쉬워도 끌어내리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니 처음 세울 때 버릇을 잘 들여야 하는 겁니다.”
“이슬람 극단주의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분명 발목을 잡을 겁니다.”
“그러게 왜 유대인들을 중동에 이민을 보냅니까. 적당히 시아파와 수니파 사이에서 지내면 되는 걸.”
“…저도 무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을 허락하시든 뭘 하든 상관없지만, 지중해를 안정화 시키려면 아랍권을 압박해선 안 됩니다. 되려 한편이 되어야지요.”
“이 이상의 지원은 없을 겁니다.”
모헬이 강경하게 선을 그으면 루스벨트는 천천히 끄덕이며 한발 물러났고.
“이탈리아의 사상적 확장은 여기까지가 좋아 보입니다.”
“단속하겠습니다. 아시아 민주적 제도를 전부 단임제로 생각하시던데 이것도 독재자 방지입니까?”
“중임제는 위험성이 큽니다.”
“그럼 저희도 일단 단임제로 가겠습니다.”
모헬 또한 엄한 곳에서 억지 부리지 않았다.
대화와 타협. 주장과 근거에 기반한 협상은 빠르게 합의점에 도달하는 지름길이었다.
두 사람이 어느 때보다 빠르게 하나씩 전후 세계의 토대를 완성해 갈 때, 저 동토는 조금 분위기가 달랐다.
“전 세계가 전쟁을 외친다! 제국 주의자들은 전쟁에 중독되었단 말이다!”
“저, 최근 기아 문제가 심각하니 서유럽 국가들로부터 식량 수입을-”
“네놈도 제국주의자로구나! 저 자식 끌고 가!”
“서기장 동지? 서기장 동지!”
더 강한 전차. 더 높고 멀리 나는 전투기.
동토의 특성을 고려한 중형 전차급 자주포 개발에도 성공.
붉은 군대의 규모를 따라가지 못하던 보급 능력을 고려해 대량 생산 체계와 빠른 전시 전환이 가능한 공장 설립.
프랑스가 모스크바까지 노크하고 돌아간 지 3년이 지난 지금.
모헬만큼 절대 권력을 구축한 스탈린은 또 한 번의 숙청 없이도 권좌를 삐까뻔쩍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그 원동력이 유일무이한 공산국가, 마지막 남은 세계의 희망이란 사상적인 부분을 제외하고도.
그냥 슬라브 민족 전체가 언제라도 르노 전차에 짓밟혀 다진고기가 될지 모른다는 공포는 그의 권력에 도전하는 자가 나타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직 인내와 준비만이 이 나라가 살아남는 길이다!’
종전 협상 당시 모헬이 반쯤 비웃듯 했던 말은 우습게도 현실로 나타나고 있었다.
전간기 프랑스가 그러했듯. 소련은 자신들의 멍청했던 과거를 곱씹으며 공업 능력을 기반으로 매일 성장해 나갔다.
“비, 비누가 총보다 비싸다고?”
“저는 피부가 민감해서 다른-”
“어차피 주어진 제품 종류는 하나요. 그냥 하나 집어가쇼.”
비록 그것이 사치품은커녕 생필품조차 사라지게 만드는 결과였지만 적어도 국가의 생존 확률 만큼은 나날이 고공행진 중이었다.
제일 싼 물건은 군용품이란 인식이 생길 만큼 국가 내부 시장이 뒤틀려도 전당대회에 올라오는 이야기는 어떻게 하면 붉은 군대를 키우냐는 주제 하나뿐이었다.
“미국은.”
“일단 연합국의 군축에 발을 맞춰주겠다 약속하면 한번 다른 국가들한테도 통상을 제안해보겠다고 합니다.”
“리트비노프가 생각보다 성과가 없군.”
“분명 프랑스가 뒤에서 꽉 틀어막고 있을 겁니다.”
공산 국가라고 타국과의 무역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국가의 모든 산업을 한 공동소유 기업체로 대할 뿐, 지갑 여는 손님 자체를 쫓아내진 않는다는 의미다.
당연히 전쟁이 끝났으니 스탈린은 미국에 여러 차례 통상을 찔러봤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조금 더 생각해보겠단 빈말뿐이었다.
“우크라이나에 있던 프랑스군이 일부 국제 기구 산하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물러났습니다. 이것이 화평의 신호라고 봐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일시적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미코얀, 부의장이란 자가 그런 근시안적인 시각을 가져서 쓰나. 더 먼 미래를 봐야지. 당장 3년, 5년이 아닌 10년, 20년 뒤의 미래를 말이야.”
그러면서 자신은 그 미래를 확신하고 있다는 듯한 스탈린의 눈은 부의장의 말 따위 침투할 틈조차 없었다.
‘설령 내 대에 힘들다면 그다음 대에는 가능하도록. 너희가 방심했을 때 우리 소련은 궐기하리라.’
지금은 똘똘 뭉친 연합국이 소련을 완벽히 가두고 통제하고 있다 착각할지 모르나.
결국 시간이 흐르면 변하기 마련.
스탈린은 대계를 서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누구보다 천천히. 그러나 하나씩 확실하게 나아가리라 다짐했다.
그것이 정답이니까. 그것만이 유일한 해결 방법이니까.
‘…마치 프랑스가 그러했듯.’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으나. 수백, 수천 번 속으로 울분과 함께 삼켜온 그 말.
당연히 거기까지 도달하는 원동력이 바로 저 제국주의자들이었다.
그때까지 소련이 살아남으려면 나라 전체에 저 제국주의자들의 끔찍함을 끊임없이 설파해야만 한다.
설령 그런 사상적인 부분이 아니어도 스탈린은 프랑스가 다음 전쟁을 계획하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베르게르 모헬이란 인간이 평화? 그것도 영원한?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
저 인간은 잠시 중국, 일본같이 전력이 될 만한 국가들이 크는 데 시간을 주고 있을 뿐, 절대 전쟁을 멈출 인간이 아니다.
이탈리아를 침범하고 라인란트 국경을 넘을 때 명분이 얼마나 빈약했는지 생각해보면 딱 답이 나온다.
그리스? 조약 위반? 덴마크? 그딴 게 수백, 수천만이 죽을 만한 명분이 된단 말인가.
이러한 관점으로 볼 때 모헬이 모스크바를 앞두고 물러난 이유는 딱 둘.
하나는 미국이 아시아 전장을 하루빨리 열고 싶어 했기 때문이고.
다음으론 모스크바를 점령해도 동토 전체를 점령하긴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다.
저 악마가 언제 이 땅을 침입할지 알고 싶다면 하나만 잘 보면 된다.
대육군과 그 주위 것들이 붉은 군대를 압도하고 동토 전체를 점령할 수 있는 무력이 생길 때.
그때가 다음 대전쟁의 시기다.
그러니 붉은 군대의 성장은 설령 당장 전쟁하지 않아도 다음 전쟁을 연기하는 효과가 있다-고 스탈린은 굳게 믿었다.
면밀한 분석에 근거한 스탈린의 확신은 누구도 돌이킬 수 없어 보였다.
“적자 재정이라니! 임기 시작하자마자 적자 재정이라니이!”
“오를레앙 당과 연계해 채권 추가 발행을-”
“이미 세 번이나 채권 발행했어! 으아아아! 군축! 이 빌어먹을 군축 하루라도 빨리 해달라고 말해봐!”
“그, 원수님들께서 진행하시는 일을 감히 저희가-”
“내가 간다! 내가 총참 바닥에서 웃통 까고 삼 일 싹싹 빌면 빨리해 주겠지!”
“그건 좀….”
“난 군부 출신도 아니라고!”
수십 년만의 군축.
“더 찍어내! 그냥 마구마구 찍어내!”
“어차피 프랑은 전 세계가 쓰는 통화다! 지금 재건위원회가 매일 뿌려대는 돈이 얼만 줄 알아?”
“통화 신뢰? 아아, 그건 우리 대육군의 강력함이 증명해줄 것이다.”
가히 10년으로도 부족해 보이는 재건.
“우, 우리 해군 선박 건조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뤽 제독님. 지금 민간 선박 건조에 도크 다 찼습니다. 정 급하시면 원수님들 찾아가서 한번 말씀해보시는 게….”
“지금 군축하는 괴물들한테 가서 직접 말하라고요?”
“아니면 의회를 통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샤를 드골-”
“그 개새끼!”
“음, 전 당수님이신 드라로크-”
“그 미친 새끼!”
“흠흠. 정 그러시면 플랑댕 총리님-”
“그 깐깐한 새끼!”
정작 프랑스는 다른 일이 바빠 아예 다음 전쟁 따위 신경도 안 쓰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국제 기구에 소련에 관련된 일은 다 떠넘기고 한발 빠진 모헬은 조금의 관심도 주지 않았지만.
“젠장, 이대로는 안 돼! 최악의 경우 아시아와 유럽에서 양면 전쟁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 또한 대비하라!”
“완벽한 준비! 그 준비가 부족할 것에 대한 대비! 오직 예비만이 살길이다!”
소련의 쉐도우 복싱은 이미 챔피언 벨트를 앞둔 선수와도 같았다.
스탈린은 진심이었다.
마치 과거 모헬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