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295
#295화
제국.
공산.
독재.
과거로부터 영국, 프랑스, 미국 앞에 놓여있던 선택지.
난 언제나 브레이크 없는 욕망덩어리 제국은 버리고 한 인간만 정신머리 제대로 박혀있으면 멈출 수 있는 독재를 택해왔다.
그것이 신생 국가를 대할 때이든 동맹을 대할 때이든 영국과 미국이 선택지에 없는 ‘이상적 민주주의’를 찾을 때 현실적인 독재를 택해왔단 의미다.
그리고 오늘, 다시 한번 내 앞에 선택의 시간이 도래했다.
다만 차이점은 그 선택이 남의 국가 아닌 나의 조국 프랑스라는 점이다.
“잽스들은 공화정과 제국주의가 공존할 수 있다고 믿었다만….”
성향이 다른 두 이념을 억지로 뭉쳐봐야 시민들이 먹기 어려운 괴식이 될 뿐이지.
오만하지만 역으로 난 이 나라의 공화정을 수호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과격한 민족주의나 프랑스 우월주의가 퍼지지 않도록 단속했고 조금만 과격해도 ‘극단주의다!’라고 낙인찍어 왔다고 자부한다.
또한 나라는 규격 외의 권력자를 기존 공화정 체제에 어설프게 이식하려 하지 않았고 언제나 떨어져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게, 샤를은 반대로 내가 공화국에서 오히려 떼어낼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리고 난 그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이제는 내가 프랑스에 걸림돌이 되는 날도 오는군.”
“그런 게 아님을 아시지 않습니까.”
“빅터, 전쟁이 없다면 나라는 인간도 필요가 없는 거야. 근데 버릴 수는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거고.”
박수 칠 때 떠나고, 떠날 수 있을 때 떠나려 했는데. 애당초 그건 나의 망상이었을 뿐이었나.
샤를에 대한 분노가 고스란히 실망감으로 치환되어 날 잠식했으나 여전히 난 선택을 해야만 한다.
“나를 위한 선택. 프랑스를 위한 선택.”
정말 이대로 이용만 당하다가 죽음으로만 자유를 맛볼 수 있는 건가.
진정 나도 다른 원수들처럼 죽어서야만 끝날 수 있는 건가.
“전역이… 없다니.”
샤를의 설명을 인정하고 나니 남은 내 현실의 처량함이 느껴진다.
결국 뒷배 노릇만 해도 일은 일. 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결국 임기가 끝나도 행동거지 하나에 정치적 의미가 내포될까 조심스러워해야 하며 개인 베르게르의 삶은 없다시피 하게 되는 상황.
그것도 일시적인 것이 아닌 얼마 있지도 않을 여생 전체가 그러할 터.
“서, 설마 이것도 악독한 포슈 원수의 거대한 설계-”
“각하, 독일에 유행하는 배후중상설도 그 정도는 아닙니다.”
“자네가 몰라서 그래. 날 원수로 올리는 계획도 다 그 양반이 짠 거라니까? 그 인간은 20년 뒤에 일어날 전쟁도 설계한 인간이라고!”
아니면 설마 페탱? 또 페탱 그 노인네인가? 내가 늙어서까지 부려 먹었더니 복수심으로 상황을 뻔히 알면서 여기까지 오도록 두고 본 거야. 그래, 분명 그 양반이라면 진작에 이 상황을 예견했을 터인데 팔짱 끼고 수수방관한 거지!
“조선의 문화를 받아들여 우리도 앵발라드를 파헤쳐서 부관참시를 하는 게….”
“각하? 각하!”
빅터마저 인지하지 못한 듯하다. 그 정도로 이 노친네들의 대계는 거대했던 거다.
“…이 베르게르 모헬이 이리 무너질 것이라 여겼다면 착각입니다. 비록 지금은 한발 물러나지만, 두고 보십시오. 난 죽기 전에 탈출하고 말 터이니.”
두 번의 세계 대전에서도 살아남은 나다. 죽음으로 완성? 그딴 말장난에 굴복할 만큼 무능력하지 않다.
3년 안에 어렵다면 좋다. 10년, 아니 20년이 걸리더라도 내 기꺼이 벗어나줄 터이니.
***
쨍.
맑은 유리잔이 부딪쳐 내는 소리가 성당 종소리보다 더 맑게 울리는 한 저택.
“짧은 반란의 끝이군.”
“성공했으니 반란이 아닙니다만.”
이곳에는 분명 자택에서 근신 중이어야 할 드골과 최근 언론에도 얼굴을 비추지 않는 사람과 대화를 나눴다.
“그래서, 성공한 기분이 어떤가.”
“다들 제가 모헬의 분노에서 살아남았다고 치켜세워 줍니다만, 글쎄요. 진짜 그 뒤에 누가 있었는지 알아야 할 텐데 말입니다.”
“나야 은퇴했으니 전면에 나서면 안 되지.”
“근데 이번 사건 뒤에 당수님이 있었다는 것을 파요레 국장이 몰랐을까요?”
“이 드라로크를 감시? 아무리 정보국이라도 감히 그럴 수 없지. 아직 불의 십자단이 그리 죽진 않았고 설령 알았다 한들 그 친구라면 알아도 모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했을 거야.”
당수직에서 잘리지 않은 드골 앞에는 전 당수, 프랑수아 드라로크는 흐뭇하게 자신의 후임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수님은 기분이 어떠하십니까?”
“이로써 나의 매제는 온전한 파시스트로 거듭났네. 이젠 그 어떤 법과 체제도 그를 끌어내릴 수 없지.”
“끌어내려질 일도 없었습니다만.”
“사람이란 간사해서 수십 년이 흘러 세대가 바뀌면 과거 위인들을 까내리기 마련. 권력이란 내려놓는 즉시 공격받을 위험이 생긴다네.”
기승전 파시즘 이야기에 드골은 떨떠름하게 동의를 표했지만 이번 일에 여야 의원들을 움직이고 대의를 위한다는 분위기를 순식간에 퍼트린 드라로크의 능력 하나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뒷방 늙은이는 개뿔. 당수에서 물러난 것도 결국 모헬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서였어.’
자기 위치를 알기에 시기적절하게 물러났다? 아니, 이 파시즘에 미친 인간은 처음부터 모헬을 프랑스의 수호신으로 만들 심산이었다.
조금의 흠도 없는 완전무결한 존재로 만들기 위해, 자기 자신마저 연금술 재료로 사용한 거다.
“우리 각하께서는 기형적으로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경향이 있었지. 난 그 특성을 시대에 맞춰 살렸을 뿐이네.”
“저도 친우 하나 잘 둬서 대통령 되었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이번 일을 기반으로 저만의 국정을 운영할 수 있게 되겠지요.”
베르게르가 깔끔히 물러나고 7년간 개혁만 주야장천 하다가 온갖 혼란과 문제의 주범으로 몰릴 바엔, 차라리 ‘전쟁 가능성’ 같은 큰 문제는 모헬에게 떠넘기고 내정만 잘해보는 게 드골로서도 바라는 바였다.
비록 서로 목적은 달랐을지언정 결론은 같았다. 모헬을 붙잡아 두는 것.
떠나는 모헬의 발에 족쇄를 채우는 쇼를 기획한 드라로크와 직접 뛰어다니며 실행한 드골은 결과에 만족하며 잔을 채우고 비웠다.
“후우. 이제 계획하신 바는 끝입니까?”
“그렇지. 혹여나 프랑스라는 거대한 열차가 탈선한다면 모헬이 돌아올 여지는 충분하네. 난 알 수 없지만 혹여나 있을 전쟁에 대한 충분한 대비도 되겠지.”
“그럼 이젠 뭐 하시렵니까. 진짜 일선에서도 물러나셨는데 어디 여행이라도 떠나시나요.”
“아니지, 내 일은 끝나지 않았네.”
물러난 지 꽤 되었고 계획도 성공리에 끝났음에도 드라로크의 눈은 모든 걸 내려놓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자네가 남았잖아. 이제 자네가 모헬의 파시즘에 해가 되는지. 내 조카의 길을 망치지 않는지 감시해야지.”
“…진심이시군요.”
“난 언제나 진지하다네. 이것이 파시스트의 최종인간을 목도한 자의 사명이지. 날 광신도라 욕해도 좋고 커튼 놀이에 미친 인간이라고 비난해도 좋아. 그러나 언제나 그래왔듯, 결과가 증명한다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말. 드라로크의 사상에 동조하진 않으나 드골은 본인이 모헬보다 국정을 잘 이끌 수 있다고 자만하진 않았다.
“그리고, 난 믿을 수 없는 인간의 손에 핵무기 발사 버튼이 들어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무기는 애초에 베르게르가 만든 겁니다. 당연히 그보다 잘 쓸 사람이 없지요.”
“물론 내 매제라면 진짜 수도별로 하나씩 쏴버릴지도 모르지만, 만약 그리된다면 응당 필요한 일이겠지. 이 또한 날카로운 양날의 칼이니 프랑스가 담당해야 할 일이야.”
거기까진 아니라고 답하고 싶었지만 드골은 최대한 드라로크 앞에서는 반대를 아꼈다.
어쩌면 이 프랑스에서 가장 신념이 강한 인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지독한 인간.
누가 모헬의 가족 아니랄까 봐 드라로크의 뒤틀린 신념은 드골조차 쉽사리 건들 수 없었다.
“혹시 당수님께서 복귀하실 경우는 없습니까?”
“왜, 내가 돌아갈까 무섭나?”
“아뇨, 그래도 자리를 하나 예비해둘까 싶어서 그렇습니다.”
“없네. 가스파르의 시대가 도래하면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질 거야.”
역시 자기 자신에게마저 엄격한 것이 절대적으로 돌려선 안 되는 부류다.
“이제 내각을 새로 조직할 때 전쟁부 장관 같은 자리에 빅터 드베니를 앉히게. 그 친구는 무색무취라 걱정할 것도 없지. 오히려 그자가 날뛴다면….”
“그건 장관 빅터가 아니라 원수 부관 빅터가 날뛴다고 보겠지요.”
“이 역시 모헬과의 끈이 되어줄 것이네.”
대화할수록 지독하단 표현도 모자라 경악스럽게 느껴진다.
‘베르게르, 넌 어쩌다가 로크 가문과 결혼한 거냐.’
모헬이 들었다면 ‘그것도 페탱의 음모였어?’라고 놀랐겠으나 안타깝게도 드라로크 당수는 절대 자신의 신념을 모헬에게 드러내지 않았다.
쨍.
다시 잔을 부딪치며 드라로크는 성공을 자축했다.
“프랑스를 지켜줄 우리 원수를 위하여.”
“종신 원수를 위하여.”
뭐가 되었든 같은 편이라는 사실에 드골은 감사할 따름이었다.
***
그 실체가 빈껍데기였고 대숙청으로 인해 러시아 제국 시절 우라 돌격에서 그리 발전하지 못했음이 겨울 전쟁에서 여실히 드러났으나 그것도 옛말.
42년을 기점으로 아예 무너진 붉은 군대는 6년이 넘게 흐른 오늘 과거의 부실하던 군대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동토를 뒤덮는 우리의 기갑은 장담컨대 프랑스와 붙어도 뒤지지 않으리라!”
“모신나강도 제대로 보급 못 하던 우리가 드디어 자동화기까지 도입했다고!”
“세계 최대 규모의 붉은 군대가 현대화까지 마쳤다! 이제 우리가 세계 최강이야!”
비록 군인들의 집에는 여전히 굶주린 배를 움켜쥐는 가족들이 있었지만. 월급은커녕 최소한의 배급만 받으며 목숨을 연명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제 과거 무능력하던 군대는 사라졌으니까. 적이 온다는 소식만 들어도 손이 벌벌 떨리던 두려움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자부심이 채웠으니까.
소련이란 국가 자체가 그들을 위해 존재한다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48년도 소련의 붉은 군대는 다시는 모스크바 앞을 내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프랑스는 대놓고 전력을 깎는 군축을 감행하고 있으며 미국은 서서히 징집병들을 집으로 돌려보낼 궁리만 하고 있다.
즉, 끝내 대규모 군대를 감당하지 못한 저 두 나라와 달리 소련은 오늘도 강해진다.
‘이대로라면 우리가 세계 최강이 되는 거 아냐?’
‘결국 제국주의자들은 무너지길 마련. 공산화의 꿈은 끝내 이뤄지리라.’
절대 근거 없는 자만이 아니었고 모든 지표가 명백히 소련의 국력이 강성해지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러니 몇 년만 지나면 천하의 프랑스도 감히 쉽사리 전쟁 위협으로 소련을 동토에 처박아두지 못하리….
“교차 검증까지 완료되었습니다. 핵무기는 최소 8발. 최대 15발까지 생산되었으며 현재 미국과 프랑스만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NKVD에서 틀렸을 경우는 없나.”
“없다고 확신합니다. 서기장 동지, 제국주의자들 손에는 도시 하나는 지도에서 흔적도 없이 지워버릴 무기가 들려있습니다.”
“…….”
처음에는 몇 번이나 의심했던 정보. 허나 하나씩 무기에 대한 정보가 들어올수록 내용은 그 충격과 달리 현실성이 넘쳐났었다.
그리고 이제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판명 났다.
미국과 프랑스의 군축은 감당하지 못할 군대를 없애는 게 아니었다.
“저 악마가 당장 내일이라도 소비에트 연방을 없애버릴 수 있다, 이 말인가. 버튼 하나로?”
“…그렇습니다.”
‘어째서 아직도 모스크바가 불타지 않았는가’라는 의문은 차마 꺼내지도 못한 채, 스탈린은 눈을 감고 지난 6년을 되돌아보았다.
치욕과도 같은 날들. 하루하루 소련의 모든 인민들이 공포에 떨던 날들.
겨우 눈물을 머금고 다시 일어섰다고 자부했는데, 아니었다니.
그들은 ‘아직’ 죽지 않았을 뿐, 언제라도 악마의 손짓 한 번에 죽을 수 있는 운명이었다.
과거의 모든 노력이 완벽히 부정당하는 순간.
이루어 말할 수 없는 허탈감에 웃음과 눈물이 동시에 나올 것만 같았으나 조용히 그를 지켜보는 시선이 너무 많았다.
서기장이란 자리는 그에게 우는 것조차 허용치 않았다.
그저, 한없이 속으로 좌절을 곱씹을 뿐이었다.
베르게르 모헬, 그자는 스탈린 본인에게 자기처럼 수십 년 준비해 오라고 엄포를 놓았으나 정작 그 길마저 끊어버렸다.
이제 소련은 프랑스처럼 수십 년을 준비해도 동토에서 나올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