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35
035화
아라스 제33보병 연대.
개전 이후로는 앞의 지역 이름 아라스는 더는 쓸 수 없지만 부대의 병사들은 언제나 스스로를 ‘아라스 33연대 출신’이라고 소개했다.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조차 그들의 애정이 드러난다.
평시에도 떠들썩한 일로 가득했던 33연대는 전시가 되자 더욱 불타오르는 핫 포테이토 그 자체였다.
병사라고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가 아니다. 되려 누구보다 자신들의 목숨이 걸린 일이기에 헛소문이라도 주워듣고자 한다.
그리고 개전한 지 한 달 차가 되자 병사들은 자신들이 속한 연대의 위치를 어렵지 않게 깨달았다.
‘교전 횟수에 비하면 엄청난 생존율!’
‘최강 사단. 그중에서도 선두를 달리는 연대.’
‘그리고… 또라이 지휘관.’
33연대 병사들 중에 모헬 소령의 스펙터클한 이야기를 모르는 자는 없었다. 온갖 헛소문에 조미료가 가미되어 얼토당토않은 소리까지 퍼졌지만 모든 내용의 결론은 하나로 귀착되었다.
‘눈 돌아가면 미친놈.’
이마에 건들면 문다고 적어놓고 다니는지 상급자들도 슬슬 피하게 만드는 인간.
그래서 싫어하는가 하면 또 아니었다. 그 아래 있던 병사들의 말로는 훈련이 고되다고 악명이 자자했으나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흘린 땀 덕에 피를 덜 흘렸다.
육군 곳곳에서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아르덴 공세가 끝나자 모헬 소령에 대한 평가는 끝도 없이 올라갔다.
딱 한 달. 모헬 소령이 병사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누구의 명령을 들어야 살 확률이 높을까.
과연 진정 뛰어난 지휘관은 누굴까.
자신들을 위하는 상급자는 누구인가.
이 모든 질문의 답에 어울리는 사람은 베르게르 모헬 소령밖에 없다.
생캉탱에서도 빠지며 후방에 자리 잡고 재정비를 하는 33연대.
식사 시간이 되자 병사들은 곳곳에 불을 피우며 통조림을 불 근처에 올려놔 데우기 시작했다.
“몇 분 됐지?”
“이제 5분. 아직 더 기다려야 해.”
시계가 없는 마르끄의 물음에 윌리암이 멍하니 불만 바라보며 답했다.
“그건 그렇고 말이야. 우리 중대장, 아 이제 아닌가?”
“모헬 소령님이 왜?”
“넌 소령님 이야기만 나오면 눈빛이 달라지냐. 아무튼 다른 지휘관이랑 좀 다른 거 같지 않냐?”
“당연한 소릴.”
김샜다는 듯이 윌리암이 다시 불로 시선을 돌리려 하자 마르끄는 설명을 추가했다.
“진급 속도가 말이 안 되는데 또 그 과정이 참 이상해. 우리보고 죽을 때까지 싸우라고 닦달도 안 해, 윗선에는 밉보여, 군사재판도 받았다며?”
확실히 모헬 소령은 다르긴 하다. 총알이 빗발치는 곳으로 돌격을 외치는 다른 지휘관들과 달리 총알이 날아오면 산개해서 몸부터 숨기라고 명령한다.
“능력은 좋으니까.”
“근데 왜 지금까지 아무도 몰랐던 걸까? 이상하지 않아? 우리도 솔직히 훈련받을 때 미친놈인 줄 알았잖아.”
“말조심해라. 그거 상관 모독이야.”
“아이씨, 꼬투리 잡지 말고. 솔직히 땅 파는 훈련을 들어본 적이라도 있어?”
“…없었지.”
언제부터 보병이 땅 파서 판자 깔고 모래주머니 쌓는 훈련을 했던가. 훈련이라고 부르기도 이상했었다. 모헬 소령은 한술 더 떠서 거기서 먹고 자고 싸게 했다.
“제식만 배운 3군 36식민여단은 전멸했다더라. 사상자 3천8백. 부대 해체.”
모헬 소령의 제식 혐오야 몇 년 전부터 아라스에 자자한 이야기였으니 새로울 것도 없지만 타 부대 소식을 들을 때마다 윌리암은 소름이 돋았다.
‘예전에 사소해 보였던 것들의 차이가 이제 와서 보니 너무 크다.’
모헬 소령의 악질 행위라고 생각해왔던 훈련들조차 어디 필요 없던 게 없었다.
“그걸 새로운 신병들에게 가르칠 거 생각 하면 어우… 난 못 해.”
“해야지. 소령님도 하셨는데.”
“그렇긴 했지. 그때 매의 눈으로 우리 쳐다보던 대대장도 이젠 뜨끔할걸?”
“파스칼 뒤헝 대대장 말이지. 매일같이 모헬 소령님 불러다가 뭐라 했다던데.”
“웃긴 건 한마디도 안 먹혔다는 거야, 크흐흐. 역시 모헬 소령님! 상관 명령을 곧이곧대로 들을 바엔 죽음을 택하실 분이지!”
같이 큭큭거리며 웃어대던 윌리암은 웃음이 가시자 베르게르 모헬 소령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봤다.
‘과연 우리가 모르는 모헬 소령은 또 얼마나 대단할까.’
소문으로는 고위 참모직도 거절했다던데. 어제 소위들 불러서 뭐라 하던 걸 보면 자신이 직접 지휘해야 병사들이 살 수 있으니까 그런 선택을 한 걸까.
‘너무 나간 생각일지 모르지만… 모헬 소령님이라면 진짜 그럴지도.’
베르게르가 들었다면 이 시대에 벌써 질소보다 과대 포장이 가능하다니 하며 감탄했을 말이지만 윌리암은 진지했다.
“소령님에 대해 잘 몰라도, 하난 확실해. 살고 싶으면 소령님 말대로 하는 게 맞다는 거.”
“당연하지. 난 크리스마스까지 살아남아 고향에 돌아가면 고백할 여인이 있다고.”
크리스마스. 과연 그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전쟁이 끝나기는 하는 걸까. 윌리암은 알 수 없었다.
‘뭐, 이제 여름이니까 겨울에는 끝나 있겠지.’
오를레앙에 혼자 남은 아내가 걱정될 뿐이었다.
***
내 예상은 이랬다.
어차피 위쪽에서 밑그림 다 그려서 어떻게 할지 다 정해놨으니 기동군 지휘관 회의에선 조율할 부분 조율하고 세부적인 작전만 손볼 줄 알았다.
내일 아침 출발인데 이제 와서 뭐 바꿀 수도 없으니까.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내가 입 뻥끗할 일 없을 거란 소리다.
“어떻게 생각하나?”
“예? 저 말씀이십니까.”
“그래, 베르게르 모헬 소.령.”
소령이란 단어에 힘주어 말한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생각하는 척 잠시 저 시선을 분석해보자면 적대도 아니요 호의도 아니요, 그저 순수한 의문이로다.
‘그니까 왜 나한테 진지하게 묻는 건데! 나 말고 사람 많잖아!’
우리 사단장님도 모가지에 힘 빡 주고 참여하는 자리에서 왜 일개 소령을 괴롭히시는 건데요.
일단 더 늦기 전에 난 입부터 움직였다.
“아주 좋습니다!”
“그냥, 좋다?”
“예, 그냥 매우 좋습니다!”
입가에는 긍정의 미소, 목소리는 밝은 톤으로. 존경을 섞은 열렬한 눈빛까지 무엇 하나 빠트리지 않고 답했음에도 다들 표정이 그리 좋지 않다.
“으음, 알겠네. 넘어가지.”
전혀 넘어가는 것 같지 않은 태도로 포슈 장군은 추궁을 멈췄다.
그러나 나의 고난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비단 포슈 장군만이 아니라 다들 새로운 안건이 나올 때마다 날 힐끔거리는 게 느껴진다.
그래도 꿋꿋이 표정 관리를 하며 난 무사히 중간 쉬는 시간까지 버틸 수 있었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지.”
제6군 사령관이자 이번 회의를 주도적으로 이끌던 마우리 장군이 잠시 휴식을 명했다.
입구와 가장 가까웠던 난 마우리 장군의 말이 끝나자마자 재빨리 탈출을 감행했다.
충분히 떨어진 곳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으니 오랜만에 익숙한 얼굴이 내게 다가온다.
“우리가 몇 달 만이지? 다행히 사지 멀쩡히-”
“잠깐. 거기 멈추십시오. 혹시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타파주의, 과학적 사회주의, 마르크스주의. 여기서 조금이라도 동의하는 게 있으십니까?”
“갑자기 왜 이러나?”
“대답이나 해주시죠.”
난 진지하다. 베이강, 당신같이 예의 바른 신사가 북방 바이킹으로 한순간에 변한 이유가 좀 색다른 ‘혁명’ 사상이라면 개연성이 딱 맞아떨어지지.
사단장님은 나한테 물들었다고 욕하지만 그럴 리가 있나. 어딜 봐서 베이강과 내가 비슷해?
인생의 평화를 찾기 위해 큰 여정을 하는 사내와 꼴리는 대로 싸돌아다니는 바이킹이 같겠냐구. 암, 그럴 리 없지!
내가 살아가면서 죽었다 깨어나도 안 믿는 인간 부류가 셋인데 그게 도박쟁이, 약쟁이, 그리고 빨갱이다.
베이강이 빨갱이라면 난 가차 없이 그를 끊어낼 생각이었다. 빨갱이는 죽음만이 유일한 치료제인 불치병이거든.
“음, 그런 사상을 가진 놈들은 국가 말아먹기 딱 좋은 놈들이지. 왜, 전쟁 터지니 그런 이들이 날뛴다는 소리라도 들었나? 군복 입은 나랑은 연관이 없는 이야긴데….”
“진짜입니까?”
“아 그렇다니까.”
불편하다는 듯한 그의 모습을 보니 거짓은 아닌 거 같은데. 일단 의심을 한 수 접자 베이강은 내 옆으로 다가와 담배를 물었다.
“그래서, 아까 회의에서는 내가 알던 그림하일드의 거울이 아니던데. 드디어 눈치라는 게 생긴 건가?”
“전 언제나 주위 눈치 보느라 전전긍긍하면서 사는데요.”
내 대답에 담배를 빨아들이려던 베이강은 입을 연 채로 날 뚫어지게 쳐다봤다.
뭐, 왜. 내가 어쨌다고.
“그리고 분위기가 저 섬나라 곱창 요리가 되었는데 왜 끼어들어서 욕먹을 짓을 하겠습니까.”
“하긴, 좀 어중간하긴 하지.”
“왜 그런 겁니까? 패색 때문은 아닌 거 같던데.”
“이게 짧게 요약하긴 복잡한데… 뭐 결론적으로는 책임 소재와 정치가 섞인 결과물이야.”
내가 다음 개비를 꺼내 다 피울 때까지 이어진 베이강의 설명은 이랬다.
한 달 만에 프랑스를 말아먹은 조프르는 한시라도 저 독일을 몰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계속 큰소리치며 떵떵거릴 수 있으니.
반대로 더는 두고 못 보겠다고 나선 노장 조제프 시몽 갈리에니 장군은 이왕 적을 끌어들인 거, 파리까지 끌어들여 아예 싸그리 가두리 양식을 해서 수확하자고 주장한다.
‘굳이 따지자면 갈리에니 장군의 의견이 낫긴 해.’
솔직히, 파리 이미 버렸잖아? 마지막 철도 수송이 오늘이다. 그 말은 즉 오늘부터 파리 무력화를 시행한다는 뜻이고.
“내부에서 의견 일치가 안 되는군요?”
“그 정도가 아니야. 안 그래도 며칠 전부터 총사령관님 날뛰는 게 심상치 않아. 조금이라도 무능하단 생각이 들면 싸그리….”
모가지 잘리는 손짓을 하며 베이강은 먼 곳만 바라봤다. 그가 내뿜는 게 연기인지 한숨인지 구분이 안 갔다.
그의 말대로, 지금 육군에는 유성우가 내리고 있다. 별빛이 우수수 내린다구, 아주 샤랄랄라 하구먼.
겉으로는 오직 실력주의만을 표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 눈에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우리 총사령관이 살고 싶어서 발악을 하는구나.’
책임 소재? 그거 제대로 따지고 들면 과연 누가 그 끝에 있겠는가. 당연히 처음부터 끝까지 조제프 자크 세제르 조프르다.
“그래서 갈리에니 장군도 파리에서 뛰쳐나왔군요. 파리 총독이 야전이라….”
“아, 그건 또 다른 사정이 있다네. 갈리에니 장군이 군정장관일 때 수도 방어하게 군단 3개를 요청했거든?”
“메시미 전쟁장관이 컷?”
“아니, 메시미 장관도 파리에 있었으니 동의했지. 다만 조프르가 거절했네. 사단 하나도 빼낼 수 없다더군.”
“와우.”
놀라운데? 이젠 천하의 갈리에니를 아주 개무시하잖아. 이젠 모 아니면 도다 이건가?
육군을 완벽히 제 손에 넣거나, 아니면 모든 책임 소재를 뒤집어쓰고 퇴역하거나.
총사령관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하나 확실한 건 똥줄이 아주 활활 타오르고 있을 거란 거다.
“그래서 이 사달이 났지. 오늘 아침에 파리에서 장군 둘이 잘렸고 야전에서는 넷이 잘렸네.”
하루 만에 갈리에니가 둘. 조프르가 넷. 이 정도면 땅에 떨어진 별 줍줍도 가능하지 않을까? 마침 우리 부대에 장교가 부족한데… 아, 되려 방해만 되겠네.
“이게 마냥 나쁘진 않다고 보네. 좋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아르덴 공세처럼 무리한 계획은 안 세울 테니. 그래서 난 진심으로 궁금해. 과연 자네는 지금 어찌해야 한다고 보나?”
“두 의견 중에 하나 택하란 말씀이십니까?”
“설마 다른 해결책이 있나?”
해결책은 없다. 다만 하나 확실히 아는 건 있는데.
“으음, 뭘 택하든 한 번이라도 멈추면 끝이란 건 아주 잘 압니다.”
“끝? 아, 설마 전쟁 대신 협상에 돌입?”
“아니요. 그냥 이 나라가 끝이라고요.”
“그거 재밌는 소리군.”
베이강과 내 뒤에서 갑작스레 들리는 노후한 목소리에 난 순간 고개를 획 돌렸다.
동시에 옆에서 베이강의 급박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구… 군단장님!”
“아, 신경 쓰지 말고 계속 말해보게.”
손을 휘적이며 편히 말해보라고 하지만 그의 눈은 전혀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얼굴, 의심할 거 없이 페르디낭 포슈 장군.
“그래서, 뭐라고? 아, 설마 아까처럼 매우 그냥 좋다는 건 아니겠지?”
“…….”
.
.
.
베르게르 모헬(1889~1914) 향년 25세.
R.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