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36
036화
혹시 또 죽으면 다시 태어나게 해주나 고민할 틈도 없이 내 몸이 저절로 반응했다.
“충성, 베르게르 모헬 소령입니다.”
첫 대면이기에 난 바로 자세를 고쳐 그에게 경례했다.
“페르디낭 포슈.”
짧게 자신을 소개한 포슈 장군은 다시 내 차례를 기다렸다. 마치 말 돌리는 건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그저 출전을 앞두고 걱정되어 내뱉은 시답잖은 소리일 뿐입니다.”
“우리 참모장이 그러더군. 자네가 살짝 우려된다고 말하면 좆됐다고 이해하면 된다고.”
그 말에 난 눈을 크게 뜨며 베이강을 쳐다봤다. 반대로 내 눈을 피하는 베이강을 보니 나에 대해 말한 게 사실인 거 같다.
베이강, 당신은 조금 있다가 다시 보자고.
차마 이 자리에서 따지진 못하고 당장이라도 쏟아내고 싶은 여러 폭언을 삼킨 채 난 다음 단어를 신중히 골랐다.
‘어중간하게 피하긴… 글렀네.’
마치 몇 년 전 막 임관하고 연대장 시절 페탱 사단장님을 만난 느낌. 적당한 답으로 만족시켜주고 끝낼 수준이 아니다.
“그러니까 음, 저희가 하려던 말은-”
“자네가 하려던 말.”
그래요, 내가 하려던 말.
아주 작정하셨구먼. 군단장이 몰아붙이니 소령은 피할 곳이 없구나.
“멈추면 더는 전진 못 할 거란 뜻이었습니다.”
“공세종말점이 멈추는 즉시 도래한다고 보는 건가?”
“아닙니다. 자국 내에서 공세종말점이 오는 국가가 어딨겠습니까?”
“호오, 그럼 적을 한 번에 밀어내지도 못한다라?”
“아….”
그냥 넘어가자 제발.
페탱, 도와줘요 페탱. 아무리 속으로 불러봐도 나의 참견쟁이가 나타나는 기적은 없었다. 아, 나타나도 아직 포슈한테는 안 되려나.
에라이,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난 뇌의 필터를 잠시 껐다.
“후우, 군단장님께서는 이번 전투에 얼마의 병력까지 희생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그런 말은 끝을 확정할 수 있을 때 하는 말이네.”
“반대로 무슨 대가를 치르든 그 끝을 내야 한다면 말입니다.”
“…모르겠군.”
“백만. 전 백만이 죽어도 아깝지 않다고 봅니다. 당연히 적도 그만큼 죽어야겠지만요.”
북부 공업지대를 되돌려 받고, 국경 너머로 적을 밀어내어 다시 처음 시작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백만의 프랑스 청년의 목숨을 제물로 바쳐도 아깝지 않다.
결과를 알기에 내뱉을 수 있는 말이기에 포슈 장군이 이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길 바라진 않는다.
“왜인가. 이게 아까 자네가 말한 멈추면 끝인 이유인가?”
“그렇습니다. 왜냐면, 다음 기회는 절대 없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현 상황대로라면 말입니다.”
“전장을 뒤집을 변수가 아예 없다는 말처럼 들리는군.”
정확하다. 그리 자세히 설명하지도 않았는데 이해하는 눈앞의 남자가 놀랍다.
이게… 트리플 크라운의 힘? 괜히 대전쟁이 끝나자마자 20년 뒤의 두 번째 대전쟁을 예고한 게 아닌 건가.
“그렇다면 아마 자네가 말한 참호전의 시작이겠군. 절대 뚫을 수 없는 전쟁의 시작.”
“돌파, 가능은 합니다. 가능은. 다만 계산기를 다시 두드려야지요. 예를 들면 1km 전진에 프랑스 청년 목숨 5만. 뭐 이렇게 말입니다.”
그리 먼 미래가 아니다. 지금부터 치러지는 마른강 전투가 끝나면 곧장 참호전의 시대가 도래하니까.
‘미국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굳은 시멘트마냥 고착화된 서부 전선은 변하기 쉽지 않지.’
다시 말하지만, 시멘트도 풍화작용의 영향을 받는다. 근데 딱 풍화작용 수준의 영향만 받을 거다.
이제 이 자리에서 더 날 족쳐도 토해낼 보물은 없을 거다. 잠시 이마를 찡그리며 골똘히 생각하던 포슈 장군에게 다행히 더 파고들려는 기미는 없었다.
“이래놓고 아까 회의에선 마냥 좋다고 말했단 말이지?”
괘씸하다는 듯이 날 썩은 미소로 쳐다보는 포슈 장군.
“그걸 마음에 담아뒀냐. 그럼 다 보는 앞에서 싫다고 말하리? 입꾹닫해야 나도 살 거 아냐. 시벌 알면서 물어.”
-라고 말하는 상상을 잠시 해봤다.
“하하….”
다시 포슈 장군이 입을 열려고 할 즈음에 종이 울렸다. 쉬는 시간이 끝났으니 모두 집결해야 함을 알리는 소리였다.
“다시 시작하려고 하나 봅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충성!”
누가 울렸는지 몰라도 감사함에 눈물을 질질 흘릴 거 같다. 조금만 늦게 울렸어도 저 소리가 내 인생 종 치는 소리가 되었을 테니.
다시 답정너로 돌아갈 때다.
***
“자네 말대로군. 매우 자조적이야.”
“처음부터 저런 친구였습니다. 마치 하나씩 포기하며 내려놓는 듯한 느낌이었죠.”
모헬이 떠나고 남은 베이강과 포슈는 시작을 알리는 소리에도 느긋했다. 회의에 조금 늦는다고 감히 페르디낭 포슈에게 뭐라 할 사람도 없다.
“참모장, 난 저 친구의 말을 흘려들을 수가 없네. 뒤늦게 모헬 소령이 쓴 ‘나는 고발한다’를 읽고 나서는 더더욱 말이야.”
방금까지 쥐구멍이라도 들어가려고 애쓰던 청년이 쓴 글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과격했던 보고서.
‘그보다 과격한 건 현실이었지만.’
감히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불과 3주 전의 자신조차 상상하지 못했다. 위대한 프랑스가 이리 진흙탕까지 처박힐 줄은.
총동원령이 완료되는 데 걸린 시간은 16일. 선전포고로부터 16일이 지난 8월 18일을 기점으로 올라온 내용에 따르면 징집만 186만 5천을 완료했다.
‘21개의 군단과 25개의 예비사단. 병력적으로는 독일과 거의 비슷했지.’
같은 병력으로 붙었음에도 이리 철저히 패배했다면 결론은 딱 하나. 전술적 패배다.
그 책임은 온전히 현 지휘부에게 있었고.
일개 중위가 이를 예견하고 비판할 때 현 군부는 그를 잔 다르크를 처형하려던 저 라이미 해적 놈들처럼 행동했다.
재판에 세우고, 당장이라도 눈앞에서 치워버리려고 했다. 잔 다르크는 죽어서 성녀가 되었지만 반대로 저 청년은? 살아있는 것 자체만으로 돌풍을 몰고 다니는 허리케인 그 자체다.
‘모헬 소령은 아직도 스스로가 어느 위치인지 모르는 것 같지만.’
지휘관 회의 때 모두가 모헬 소령이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다. 비판을 하든, 동의를 하든 무엇이라도 하길 바라며 말이다.
어쩌면 이를 잘 알기에 입을 닫은 걸 수도 있다. 그런 거라면, 더욱 가만히 놔둘 수 없다고 포슈는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모헬 소령은 날 만난 게 우연이 아님을 아나?”
“그럴 리가 있습니까. 저의 연기는 완벽했습니다.”
“음, 종종 부탁하지. 모헬 저 친구 날 피하는 것 같으니.”
“당연한 말씀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사실 베이강은 처음부터 모헬을 만나고 싶어 한 포슈 장군을 위해 다가온 거였다.
‘베르게르, 다 자네 업보이니 날 원망 말게.’
그러게 누가 군단장의 요청을 ‘긍정적 검토’ 같은 개소리로 거절하라 했던가. 그걸 또 군단장 앞에서 된다는 건지 안 된다는 건지 해석해야 했던 자신은 얼마나 고생했던가.
‘그냥 기관단총 몇 정 주고 추가 생산분이라도 뒤늦게 보내주면 될 걸 왜 돌아가게 만드는 게야.’
어차피 포슈 장군이 마음먹으면 그의 손에 쥐어진 사탕 따위 충분히 뺏을 수 있음을 모르진 않을 터인데.
그러니까, 이건 모두 다 모헬 소령 탓이다.
베이강은 일말의 양심이 찔리지 않을 수준까지의 합리화를 순식간에 완성했다.
그런 뒤, 뿌듯한 미소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발걸음을 움직였다.
페탱이 봤다면 혀를 찰 광경이었다.
***
“우욱….”
“괜찮으십니까?”
“아니, 전혀.”
“그냥 앉아만 있다 오신다더니 도대체 회의를 무슨 말 타면서 했습니까?”
파비앵이 등을 두드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차라리 말 타는 게 낫지. 어디로 도망가거나 낙마해서라도 빠지게.”
포슈, 그 사악한 자식. 겨우 자리를 피한 뒤 다시 시작한 회의에서 포슈는 전보다 더욱 집요하게 날 물고 늘어졌다.
‘그간 독일 제1군과 2군이 보여준 진격로를 고려해보면 끝까지 서로 분리된 채로 공세를 가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다는군, 모헬 소령. 자넨 어찌 생각하나?’
‘어…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크흠, 저 또한 두 집단군이 서로 다른 전장을 펼치리라 생각합니다.’
‘다시.’
노, 노이로제 걸릴 거 같아! 그놈의 다시. 거 시발 내가 무슨 또르마무냐고.
포슈 장군은 자신이 원하는 두께의 면발을 내 입에서 뽑아낼 때까지 ‘다시’를 시전했다.
부조리의 현장에서 상급 장교란 것들이 모두 귀를 닫고 눈을 돌리던 모습이란… 이러니 선진병영이 안 되는 거라니까.
“음, 역시 소령님을 보니 전 부사관에 만족하렵니다.”
“아니 왜 그렇게 결론 나는데! 파비앵, 넌 부사관으로 끝내긴 아까운 인재야!”
얼마 전에 슬그머니 ‘아조씨, 아니. 나랑… 장교 할래?’라고 물은 대답이 이리 돌아올 줄이야. 다른 부사관들한테는 일단 비밀로 해준다니까?
“상사 달았으면 슬슬 뒷짐 지고 부대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 지적이나 하면서 살랍니다. 아, 벌써부터 기대되네.”
“그러면 그 부대 사령은 죽어서도 내가 할 거네.”
“으음, 그럼 사곤데….”
으윽, 상사 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말투에서부터 시큼한 냄새가 난다. 이게 무슨 냄새지? 아, 짬 썩은 냄새구나.
난 파비앵의 등을 두드려 준 뒤 ‘다시 천천히 생각하고 와’라며 보냈다.
9월이 밝았다.
솔직히 매일같이 다음 전장 생각에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신경 쓰지도 못한다.
내가 더 안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난 강박증처럼 역사의 변화를 확인하려고 애썼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발 디딜 일도, 마주칠 일도 없는 동부와 남부가 어찌 돌아가는지.
새로 참전한 국가는 어디고 국제 정치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난 끊임없이 듣기 위해 귀를 열었다.
그리고 그간 한 달의 경과를 통해 내린 결론은 ‘변화는 없다’였다.
서부에 온 독일군에 변화는 있을지 몰라도 나로 인한 역사의 후유증은 시간이 꽤 지나야 드러날 것처럼 보인다.
“다행이지. 더 나서도 된다는 뜻이니.”
설령 역사에 중요한 사람이 죽어도 그 결과가 돌고 돌아 나한테까지 오는 데에는 아주 오랜 세월이 걸릴 거란 이야기다.
여기까지 결론을 내리게 되자 난 33연대를 어떻게 이끌지 생각하게 되었다.
“마음 같아선 소련의 종심돌파이론을 적용시켜보고 싶다만… 그랬다간 이론과 현실의 괴리만 일어나지.”
구멍 뚫었는데 거기에 집어넣을 전차도, 공수부대도, 전투 지원 병과와 따로 나눠서 써먹을 충격군 병력도 내겐 없다.
비록 몇 차례의 전투 경험으로 사기가 높아진 병사들이 있다만 목표와 병사들을 연결할 간부는 여전히 부재 상태.
결국 한번 한 대로 계속하는 군대 특성상 전처럼 우리 33연대가 선두를 달리고 6사단이 뒤따르는 그림밖에 안 나오는데, 문제는 이번에도 이랬다간 피해가 극심할 거란 거다.
아르덴 공세 때야 숲이란 전장 특성과 기관단총 덕 좀 봤다만 이번 전장은 아르덴 숲과 비교할 수 없이 넓다.
평지에서 선두를 달린다? 각도기 없어도 몰살각이 대충 눈대중으로도 나오잖아.
그간 우리 애들한테 딱 맞는 지휘는 무엇일까 깊게 고민해봤다.
‘역시 그거밖에 없지. 마침 포병과 손발도 잘 맞아가니.’
불과 며칠 뒤엔 시작될 전쟁. 더는 내게 주어지는 패는 없다면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이번 전투까지만 어떻게 넘겨보자고. 내 무슨 일이 있어도 참호에서 우리 애들 죽게 놔두진 않을 테니.”
페탱이 한 말을 마냥 다 믿는 건 아니다만 사령부가 좋은 패를 참호에 꼬라박을 미친놈은 아니라고 믿는다.
‘…에이, 설마 안 그럴 거야?’
부디 내 믿음을 배신하지 말아 주길. 만약 배신하면 그땐 조프르 막사 앞에서 바지 벗고 똥이라도 싸야 하나.
“후우… 이제야 진짜 시작이란 말이지.”
개전 29일 차. 어디 보자, 남은 날짜가….
절대 오지 않을 거란 걸 알면서 전역 날짜 계산하는 이등병마냥 내 머리는 거세게 돌아갔다. 그리고 나온 숫자는.
“1,529일….”
진짜, 오긴 오냐.
감히 백분율로는 계산할 수 없는 숫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