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76
076화
노엘 에두아르 중장, 해임.
새로운 3성 장군으로 필리프 페탱 등극.
그리고 그 사이의 베르게르 모헬 중령.
눈에 핏발이 선 조제프 조프르는 겨우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 이성이 무너지면, 자신이 쌓아 올린 모든 게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심. 그것이 그가 정신줄을 붙잡고 있을 수 있는 이유였다.
“이 조프르가 일개 중령의 눈치나 봐야 하다니. 우습기 그지없어.”
그리 말하는 조프르의 안면엔 조금의 미소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그런 총사령관의 태도에 그의 집무실 안에 서 있는 모두가 미동도 못 하고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
“미그렛 제2 참모장. 현재 정권 분위기는 어떤가.”
“그, 이런 말씀 드리기 어렵지만 다들 몸 사리기 급급합니다. 또 언제 페탱 중장이 모헬 중령을 파리로 보낼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쪽 인원들도?”
“어디 구분할 거 없습니다. 하원의 앙드레 마지노 의원은 지금 공식 석상에 모습조차 안 드러내고 있습니다. 보수의 중심이자 원로급인 강베타도 이번에는 손도 못 쓰고 있습니다.”
“결국 지금 신나서 날뛰는 건 저들에게 붙은 클레망소 의원뿐이군.”
저 거물이 페탱과 무슨 거래를 했는지는 둘째 치고, 이를 대비조차 못 하고 당한 것은 심각한 사안이다.
마지노같이 개전과 동시에 떠오른 신인들은 시민들의 분노에 언제 휩쓸릴지 몰라 제 옷자락조차 문밖으로 보이지 않고 있다.
총리까지 배출한 가문의 강베타 상원 의원도 파리의 분노가 자신의 농촌 텃밭까지 퍼지지 않을까 자신과의 만남조차 불편해하는 분위기.
‘하! 언제는 나한테 전쟁 이후까지 생각하라더니.’
페탱은 아예 파리에 오지도 않았음에도 클레망소의 철퇴에 자신이 맞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꼴이 퍽이나 우습다.
생각해보면 모헬 중령이 쓴 보고서의 제목부터가 클레망소를 따라 한 것이다만 조프르는 두 사람이 이리 과격하게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도 그럴 게, 지난 1년간 둘은 중앙 정치에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이젠 확실하다. 페탱과 모헬은 제거해야 할 적이다.
끓어오르는 분노는 제쳐 두고 여전히 드는 의문.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런단 말인가?’
자리를 원했다면 자리를 내줬을 것이고 더 큰 명예를 원했다면 명예를 만들어서라도 가슴팍에 달아줬을 거다.
그러나 아무런 요구도, 소통도, 관계도 없이 그들은 칼날을 내부로 돌렸다.
“클레망소와 급진파를 중심으로 일부 정치인들이 날뛰는 일은 당분간 막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잠시 여론이 식을 때까지 기다리시는 게….”
“나도 잘 아네.”
그러니 에두아르 중장이 해임당하는 날까지도 조프르는 항의 한마디 내뱉지 않은 것이다.
비록 큰 피해는 있었으나, 여전히 자신은 이 나라의 총사령관이다.
“갈리에니는. 분명 그라면 페탱을 곱게 보지 않았을 터인데.”
“장관직으로 하려던 일들이 전부 물건너 갔을 테니 분노가 만만치 않을 텐데도 별다른 반응은 없습니다.”
“방관인가.”
독일군조차 몰랐을 것이다. 천하의 조프르가 고작 일개 중령의 종이 몇 장에 시험대에 오르게 되리라곤.
이번 사건은 작년 포슈의 부상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모헬 중령은 모두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한 거다. 바로 페탱이라는 새로운 인간을.
‘감히… 날 대체할 수 있다 여기는 건가. 고작 네놈이!’
쓸모없어지면 버려지는 소모품으로 여긴 것이다. 고작 일개 중령이, 이 나라에서 가장 높은 자신을.
생각할수록 눈앞에 데려와 피스톨로 머리를 뚫어버리고 싶지만 불가능한 상상과 분노에 휩쓸릴 만큼 여유롭지 않다.
비록 무지한 시민들은 아직 거기까지 가지 않았을지 몰라도 조금이라도 눈치가 있는 이는 모헬 중령이 던진 화두가 무엇인지 모르지 않았다.
과연 총사령관에 적합한 자는 누구인가.
이는 페탱이 포슈와 같은 중장으로 진급함과 동시에 북부 사령관직을 이어받은 순간 피할 수 없게 된 구도였다.
“후우…. 페르디낭, 그 친구가 나서주면 조금은 편할 텐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는 페탱이라도 포슈를 까 내리진 못하리라.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페르디낭 포슈라는 인간은 개인적 친분 따위에 의사결정을 바꿀 인간이 아니다. 그는 설령 죽는 날까지도 중앙 정치를 독일군보다 우선시하는 일은 없을 거다.
그럼 결국 보여줄 수밖에 없다. 이 조프르가, 운 좋게 전쟁 호황에 올라탄 페탱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새로운 북부 전역 사령관의 취임 이후 행보는 어떤가.”
“새로운 보급로에 신경을 가장 크게 쓰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주 독립이라도 할 기세군.”
페탱이란 인간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러나 세상일이 어디 개인의 능력으로만 결정되는 일이던가.
“그 신무기 있지 않은가. 전차라고. 몇 번 보고는 받았지만 실사용은 이번이 처음이라 들었는데.”
“참호 돌파에 엄청난 효용성을 보인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그래 보이더군. 근데 그게 꼭 북부에만 필요한 건 아니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미그렛 차장은 바로 총사령관이 원하는 바를 알아챘다.
“마침 개발 계획도 포슈 장군님이 있을 때 하였다 하니, 한번 다른 전선 도입도 추진해보겠습니다.”
“그러도록. 워낙 필요한 곳이 많아 북부 배치가 언제 다시 될지는 모르겠지만.”
전차. 단순히 마차에 기관총 올린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물건이다.
조프르는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털어버릴 생각이었다.
정당한 명분을 등에 업은 총사령관의 권력으로.
“총사령관님, 그러고 보니 기관단총 생산 및 배치도 조금 이상한 면모가….”
“그렇다면 영국군이 의존하는 일부 물자도 북부가 알아서 조달하도록….”
총사령관의 확고한 의지가 드러난 뒤부터는 모두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좋아, 좋아.”
이 나라 최상위 엘리트들답게 각양각색의 의견이 계속 쏟아졌고, 그제서야 비로소 조프르의 몸에 여유가 약간이나마 돌아왔다.
그들에게 여태껏 내려준 자비는 이제 끝이다.
‘아주 제대로 까발려주지.’
조프르는 두 사람을 철저히, 국민 영웅에서 무능한 역적으로 만들 자신이 있었다.
***
요새 드는 생각인데, 사실 드골이 날 경계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예를 들면 처음으로 파리에 보낼 때.
‘이미지 쇄신하려고 했더니 되려 혁명가가 되어버렸지.’
나는 딱 ‘아아, 네놈들이 인간이라면 모헬이 불쌍하겠지.’라는 느낌만 원했다면 드골은 ‘캬아악, 모헬 화났다! 모헬, 기분 나쁘다! 모헬, 혁명 일으킨다!’ 수준으로 틀어버렸다.
거기까지는 내 그래도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골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방관했다만.
“그래서, 벨기에 전선이 뭐 어쨌다고?”
“하하. 전 이제 막 복귀해서 전선 소식은 잘 모릅니다.”
굳이 가만히 있는 페탱의 코털을 뽑아서 내 손에 올려놓는 행위는 어찌 설명해야 할까.
일러바치기? 장난?
글쎄, 난 20대 중반에 여론을 들었다 놨다 하는 드골이 아무런 이유 없이 날 엿 먹이기 위해 이런 짓을 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왜 뒤통수에 퍽치기를 당했는가에 대해 계속 탐구하고 싶다만 지금 난 손에 페탱의 코털을 들고 뽑은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다.
사실 페탱은 화가 났다기보단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상황에 가까웠다.
독일의 목을 죄는 밧줄은 더 단단해지고 있는데 왜 내가 작년과 별다를 게 없는 회계감사평가를 내렸는지 모르겠다는 거다.
“일단 참모장으로 말씀드리면 지금 하시는 방향은 절대 틀리지 않았습니다. 되려 완벽한 정답에 가깝지요.”
“난 아직 한 게 없다네.”
“하지만 확실하죠. 변수 없이 승리하시려는 것 아닙니까.”
“뭐, 그게 최상의 방법이긴 하지.”
우리 페탱 중장님의 장점은 뭘까? 누구도 생각지 못하는 전략 고안? 정보가 매우 부족한 전장에서의 심리전?
보통 이상은 당연히 한다만 그 어느 특별한 문장도 페탱을 대변할 수 없다.
필리프 페탱이란 인간이 수십 년간 쌓아온 능력을 한 줄로 대표한다면 난 이리 말하겠다.
철저한 손익계산.
보급부터 야전 배치, 전선에서의 모든 작전이 그렇다.
나처럼 요행을 바라지 않으며 오직 완벽에 가까운 통제로 적을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갉아먹고 있다.
그게 필리프 페탱이란 인간이 홀로 거대한 북부 전선을 통제할 수 있는 비결이라 생각한다.
‘여전히 신기하긴 해. 고작 한 사람의 뇌 속에 수십만이 싸우는 전장을 다 때려박고 결정하라는 꼴이니.’
그러나 끝을 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여전히 승리의 핵심이 무식한 용기와 똥군기라 생각하는 이 시대 보편적인 지휘관들은 절대 페탱을 따라잡을 수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는 커지고 상대는 조급해할 것이다.
이런 페탱한테 그가 생각하는 방안과는 전혀 다른 답을 내가 내린 거다.
“마치 끝이 정해진 것처럼 그리 말하니 의욕이 벌써부터 사라질 지경이야.”
“지금 눈은 불타고 계신 거 같은데요?”
“그럴 리가, 내가 누구처럼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도 아니고.”
부담스러워, 부담스러워, 부담스러워!
기차에서 먹은 거 내장에서부터 올라와 다 게워 낼 것 같아.
“미국은 음… 자발적으로 참전하는 용병 같은 겁니다.”
“장점인가?”
“매우 큰 장점이지요? 전쟁이 끝나면 도로 자기네 집으로 돌아간다는 점. 조금만 실수해도 스멀스멀 ‘이불 밖은 위험해!’ 여론이 올라온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설령 그들이 승전국이 되어도 저희 프랑스와는 부딪힐 일이 거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미국은 최고의 참전국 아닙니까.”
“그렇다고 치지. 근데 그들이 어떻게 바다를 건너 여기까지 오게 만들 건가.”
“어, 빡치게 만들어서?”
“…….”
반복되고 함축된 불꽃 눈빛은 짬찌를 불안하게 해요! 그리고 진짠데. 연합국이 7가지 맛 사탕을 들이밀어도 꿈쩍 안 하던 미국이 고작 몇 주 만에 현피 뜨러 대서양을 건너더라니깐?
“그걸 자네가 어찌 아는가.”
“뭐, 가능성일 뿐입니다. 저도 최대한 그리되도록 노력하는 것뿐이고요.”
“전에 말한 것처럼 독일 잠수함이 미국 상선을 공격하게 만든다는 의민가.”
“제가 시킨다고 하나요? 전 그냥 영국 해군에 빈틈이 더 많아지도록 도울 뿐이죠. 겸사겸사 우리 북부 전선에도 도움이 되도록 하고.”
“미친놈. 자기 마음대로 세상이 돌아가는 것 같나? 고작 그런 가능성에 영국 해군을 움직였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다 여겨?”
“하지만 움직였죠?”
아니, 그렇잖아. 내 의도는 빼더라도 영국 해군 움직였고 우리 북부에 도움 되었고 전략적으로도 전혀 이상한 선택이 아니네? 뭐가 문젠데요.
“어휴, 이딴 새끼가 내 참모장이라니….”
자기가 끌고 와놓고서는 괜히 나한테만 뭐래. 언제는 뭐 비선 실세라도 시켜줄 것처럼 말하더니 파리에 그 조금 머물렀다고 곧장 소환수 불러내는 술법 썼으면서.
“그냥 잘 달리는 말한테 베팅 한번 했다 생각하십시오. 되면 좋고, 아니면 뭐 아쉬운 거고.”
“허허, 이젠 영국 해군이 자네 말이야? 뭐 자네 가산을 다 팔면 한 척은 살 수 있고?”
“에이, 그 값은 이미 갈리폴리에서 치르지 않았습니까.”
공짜라구 공짜. 심지어 우리가 안 먹으면 조프르가 먹는데 그걸 어케 두고 봐! 다리 하나 없는 말이어도 무조건 일단 베팅하고 봐야지.
같이 정치질도 하기로 했으면서 괜히 저런다.
“후우… 난 슬슬 모르겠네. 이 이야기는 일단 포슈 장군한테도 말해봐야겠어.”
“아니, 그 양반들이 무슨 상관입니까? 방 뺐으면 이제 끝이지 무슨!”
“그 방 뺀 인간들이 자넬 지켜주고 있고, 잠재적인 협력을 하고 있으니까. 이 머저리야.”
“네?”
그리 말하곤 페탱은 자기 책상 위에 놓여있던 몇 가지 서류를 던졌다.
발송 날짜를 보니 아직 따끈따끈한 종이들이다.
“…이 시발롬이? 아, 죄송합니다. 다른 부대를 6사단처럼 만들어 전력을 강화하겠다니? 이게 무슨 소립니까?”
“뭐긴, 이젠 그쪽도 대놓고 나오겠단 거지.”
뭐라뭐라 온갖 개소리를 군사적 용어로 꾸며서 명령서를 내렸는데, 요약하면 ‘6사단이 써먹은 거 다 내놔’였다.
“시끄럽고. 일단 들어. 그걸 나보다 포슈 장군이 하루 빨리 받았는데 나한테 오기도 전에 문제가 터졌네. 그쪽에서부터 반발이 있었던 거지.”
“아….”
이건 좀 감동인데. 난 우리 포슈 장군이 언제 나 잡아먹을지 몰라서 벌벌 떨기만 했는데 또 이런 부분에서는 참으로 애정이 넘치시는구나. 역시 의리의 엘랑 비탈!
“정확히 무슨 일이었답니까?”
“음, 군 기강 문란, 명령 불복종?”
“예?”
“자네한텐 친숙한 단어들이지?”
“처음 듣는 단어들입니다만 그런 단어들이 붙을만한 사항이 있었단 말입니까?”
천하의 포슈 장군한테 감히 누가 그런 용어를 쓸 수 있는데? 이건 조프르가 드디어 미쳐서 선을 넘은 게 아닐까?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공식적인 문제는 아니고 요약하자면 그렇다는 거네.”
“그래도 무려 마른의 영웅인데.”
“아니, 포슈 장군 말고.”
“그럼 누가요?”
“하아….”
남은 수명을 내쉬는 듯한 한숨을 푹 내뱉은 페탱 중장님은 이내 이름을 꺼냈다.
“막심 베이강이.”
“아하!”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갑자기 개연성이 확 생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