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94
094화
나라를 구한 국부라 불러도 손색없는 포슈 장군의 장례식 위치는 놀랍게도 교외에 위치한 한 작은 예수회 성당이었다.
역시 포슈 장군의 성향답게 가족끼리 모여서 조용히 추모하고 끝내려는 것 같다.
동시에 치러진 사위와 아들의 장례식. 수많은 이들의 시선과 관심을 끌었으나 정작 성당 근처로는 군인들의 삼엄한 경계 때문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했다.
“조용히 만나긴 힘들겠는데요.”
“그냥 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만약 페탱이 왕좌에 앉고 나서 심히 어지러운 파리를 보게 된다면 난 종신복무형에 처해질지 모르는 일이라고. 남 시선 따위 지금은 중요하지 않다.
“못 들어가십… 충성.”
“조용히 추모하고 나오겠네.”
지키던 위병들은 잠시 고민하더니 끄덕이며 옆으로 비켜줬다.
이미 이틀째인 포슈 가(家)의 장례. 난 검은 양복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조용히 성당 안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뒤늦은 추모에 흘릴 눈물도 없는 가족들과 성당 가장 앞자리에 홀로 널브러진 노인이 보였다.
2년간 자식과 사위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내심 시체라도 찾고 싶은 게 그의 심정이었으리라.
차마 이런 곳까지 찾아온 게 미안했지만 난 조용히 포슈 장군에게 다가갔다.
인기척 때문인지 고독해 보이는 포슈는 약간의 생기와 함께 나와 파비앵을 쳐다봤다.
“여기까지 찾아오다니, 자네도 참 눈치가 없어.”
“장군님 때문에 온 게 아니라, 함께 싸운 이름 모를 장병을 추모하기 위해 온 겁니다.”
“어디 말은 못 할까.”
생기 없는 그의 웃음이 당장이라도 바스라질 것만 같다. 그런 포슈 장군의 상태를 보고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놀라움이었다.
‘이 양반이… 이런 모습도 있었나?’
내가 아는 포슈 장군은 이렇지 않은데.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무자비한 공세를 이어가던 페르디낭 포슈란 인간은 설령 가족의 죽음이라 할지라도 한 치의 고민거리도 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의 포슈 장군은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 모든 짐을 벗어 던지고 마침내 자유에 이른 암 말기 시한부 환자처럼 보인다.
파비앵은 물리고 조용히 나는 그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밝은 전구 빛보다 성당의 스테인글라스와 촛불이 더욱 어울리는 포슈 장군은 그가 살아온 시기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드디어 가족들을 편안히 보내드릴 수 있겠습니다.”
“편안히라, 자넨 내가 편안히 보냈을 거 같나.”
“…. 실언이었다면 죄송합니다.”
“아니, 진심으로 묻는 거야.”
그가 순수한 의문으로 묻는다는 것을 깨닫자 난 포슈 장군이 조금은 달라 보였다.
그는 슬픔에 빠져 있지도, 다 산 늙은이처럼 죽음을 기다리는 것도 아니었다. 되려 가만히 다가올 인생의 죽음이 아닌 무언가를 담대히 기다리는 듯한 기분을 받았다.
“내 유일한 아들 제르맹의 실종을 죽음으로 인정했을 때, 그러니까 마른 전투 직후 내가 무슨 느낌을 받았는 줄 아나?”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공감. 말로만 외치는 고통이 아닌 처음으로 이 프랑스인들이 겪는 고통을 느꼈다네.”
전혀 그런 낌새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 또한 빨간 피가 흐르는 인간이니 통감은 했을지언정 자식의 죽음에 매달리는 사람은 아니라 나 또한 여겼던 것이다.
“그래도 꼴에 이 나라를 이끄는 장군이라도 대접받아서인지, 아니면 한평생 가르쳐온 의지와 공세 때문인지 모르겠다만 그저 넘겼네. 아니, 넘기려 했네.”
“이젠 아니신가 보군요.”
“그래, 이래선 안 된다고 스스로 여겨왔지만 문득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정확히 무슨 말씀이신지…”
“왜 사위 베코트가 죽었을 때. 아니, 그다음 해 시린 겨울날 아들의 죽음을 확신하게 되었을 때 왜 난 가만히 있었을까. 프랑스인들이 겪는 고통을 알면서도 외면했고 나 스스로조차 속인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네.”
“…….”
여전히 포슈는 순수한 의문으로 스스로에게 묻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괴리감에 난 순간 소름이 끼쳤다.
너무 오랜 슬픔은 이미 그의 가슴 속에 묻어버리고 그 위에 피어난 것은 어느 한 프랑스인 아버지의 분노였다.
차마 그 소름 끼치는 분노를 더 파헤치고 싶지 않아 난 본론으로 들어갔다.
“장군, 제가 왜 찾아오셨는지 아시죠?”
“알지, 자기가 알 수 없는 변수가 생겼으니 놀라서 헐레벌떡 찾아온 게 아닌가.”
“…. 그게 아니라 잘만 해오시던 분이 갑자기 옷을 벗으려 하시니 그렇지요.”
뭐 내가 세상만사를 수치로 계산해서 살아가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인 줄 아나. 그리고 당신은 변수가 아니라 프랑스를 집어삼키는 화염이라고. 뻔히 그 끝에 있을 내 파멸이 보인다니까?
나야 어떻게든 멱살 잡히고 끌려가겠다만 포슈는? 누가 그의 멱살에 감히 손이라도 얹을 건데?
오늘 장례식장을 오면서 느낀 바다만 생각보다 이 나라 상태가 심각하다.
원래 심각했는데 지금은 진짜 도화선에 불붙이고 어디 터지나 안 터지나 시험하는 수준이란 말이다.
물론 나 또한 불을 붙인 책임이 있다만 설마 이미 붙은 도화선을 누가 새치기해서 더 앞에서 붙일 줄 알았냐고.
“정말 은퇴하실 겁니까?”
“은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난 여전히 이 나라를 수호하기 위해 매일 아침마다 군복을 입는다네.”
“근데 왜 기사에서는…”
“아, 그거. 나도 한번 해보려고.”
“뭘 말씀이십니까?”
“자네가 하는 거.”
음? 이미 하시지 않았나? 나야 뭐 대중 앞에서 여론 몰이 좀 했다만 포슈 장군이라고 딱히 다를 바 없다.
되려 기자들은 그간 미뤄왔던 장례식의 의미를 추측하며 ‘Hoxy…. 빡쳐서 은퇴?’라는 결론으로 가고 있지 않나.
“필리프 페탱 그 친구가 곧 파리로 온다지.”
“예, 다음 주 중으로 오십니다.”
“좋아, 좋아. 그 친구라면 괜찮지.”
“뭐가 괜찮다는 말씀이신지?”
“아, 자넨 몰라도 되네.”
“아뇨!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아는 지식이 아닌 본능적 직감이 경종을 울린다. 별거 아닌 게 아니라고.
“음… 딱히 비밀도 아니네만. 문자 그대로 자네들을 보면서 난 희망을 본 거야. 더는 야전에 처박혀서 후방의 어느 누군가가 제대로 해주길 바라는 입장은 없을 거란 이야기네. 어때 감이 오나?”
일개 전선을 맡지 않으며 후방에서 하는 일이라. 그간 포슈의 행적, 그리고 내가 아는 행적을 더하면 답은 하나밖에 없다.
‘더는 갈만한 보직이 없어. 그렇다면…’
“최고연합위원회 설립. 그러니까 연합군 전체를 통솔하는 위치로 가실 겁니까.”
“역시. 자네라면 알아챌 거라 생각했네. 싹 갈아엎고, 새로 판을 깔기엔 최적의 방안이지. 아, 걱정은 말게. 자네 상관하고 부딪힐 일은 거의 없을 것 같으니.”
“하, 하하. 설마 그런 걱정을 제가 하겠습니까.”
역시 계급이 다르니 스케일이 다르다 이건가. 이건 뭐 파리만 뒤집고 모가지 따려는 수준이 아닌데?
아예 새로운 몸을 만들어서 그곳으로 갈아타겠다는 느낌이다.
최고전쟁위원회(Supreme War Council).
지금 프랑스의 전쟁위원회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다만, 수준 자체가 다르다고 할까.
이미 작년부터 데이비드 조지 영국 총리를 비롯해 우리 갈리에니 장군까지 모두가 연합군을 통솔할 한 기관의 필요성을 외쳤다.
다만 너무 다양한 연합군 내부의 정치적 입장 차이로 아직까진 현실화되진 않았는데…
“페탱이라면 영국 친구들하고 사이가 그리 나쁘지 않지. 나도 그러하고. 게다가 그 친구는 총사령부가 목적 아닌가.”
“그래서 겹칠 일이 없다고 하신 건가요.”
“그래. 이젠 군사의 방향이 아닌 국가의 방향을 움직일 때야.”
과연 포슈 장군의 광오하지만 현실성 넘치는 발언 속에 정치 욕심이 얼마나 함유되어 있을까 계산 때려 보지 못했다.
어차피 그의 의지는 굳건하다. 그의 말마따나 나와 페탱한테는 도움이 되었으면 됐지, 안 좋을 건 없으니까.
“이런 말 해서 미안하지만, 난 아무리 필리프 페탱이 총사령관 자리에 앉아도 독재하도록 놔둘 생각이 없네. 이 나라를 스스로를 위해 이용하려는 자가 있다면 난 과감히 쳐낼 것이야. 설령 그게 나라도 말이지.”
“이거 참, 위로하러 온 하객한테 수류탄을 던져버리시네요.”
“자네가 폭탄을 달라 하지 않았나?”
“그건 그렇긴 합니다만.”
언제 일어났는지 힘없이 의자에 기대어 겨우 앉아있던 노인은 또 한 번 바다로 나아가 청새치를 잡을 준비가 끝나 있었다.
몇 걸음 걸어나간 그는 시체조차 들어있지 않은 그의 아들의 관을 쓰다듬었다.
“부디 이 관과 함께 묻힐 때는 후회가 없도록.”
마지막 말은 의지를 드러내는 발언이었으나 왜인지 알 수 없는 광기까지 느껴진다.
아들의 슬픔에 미쳐버린 아버지? 너무 무능한 아군에 돌아버린 지휘관? 그보다 더 다양하고 깊은 감정들이, 페르디낭 포슈라는 인간 내면에서 섞여 저 발언으로 튀어나온 것 같았다.
그 자리에서 무언가 더 할 수도, 해서도 안 된다는 직감에 난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여전히 기자들은 많았고 시민들은 포슈 장군의 슬픔을 공유했지만 난 하나만큼은 확실히 알고 떠나게 되었다.
페르디낭 포슈는 더는 가만히 앉아 슬퍼하고 있지 않는다.
축척되고 응집된 한 장군의 분노는 아주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장례식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난, 알면서도 아무것도 못 한 채 그다음 주를 맞이했다.
필리프 피탱, 나의 시원섭섭한 임께서 파리로 오셨다.
***
요리사 페탱께서 파리의 상태를 보시더니 조금 뜨겁지만 참으로 잘 달궈졌다 말하더라.
이에 종놈 모헬이 답하여 이르길, ‘아, 홀로 달구려 하였으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집을 다 태워먹을 뻔했나이다’ 외치더라.
요리사 페탱이 국자를 내려놓고 채찍을 들며 묻거늘 ‘어찌하여 판을 이따구로 벌려놨느뇨?’ 하니.
종놈이 다짜고짜 변명하여 이르길.
“아니, 전 진짜 억울하다고요!”
이에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길.
“모두 잘 듣게, 앞으로 모헬 중령이 홀로 못 움직이게 하도록. 아니, 아예 단독 행동을 금한다. 감히 포슈 장군을 움직여?”
왜 이리 분노한 거야. 이럴 때가 아니라 포슈 장군이랑 빨리 만나서 합의를 보든 선을 긋든 아무튼 대화를 나눠봐야 할 상황 아닌가.
“아니, 진짜 저는 아무것도 안 했다니까요?”
“아하, 그럼 자네가 쇼를 하고 곧장 포슈 장군이 우연히, 그것도 자발적으로 아무 이유 없이 동참했다?”
“결과적으로는… 예, 그렇습니다.”
“또, 또 거짓말을! 네놈의 간사한 혓바닥으로 슬픔에 잠긴 장군을 구슬렸겠지!”
“예? 아니 제가 말하면 뭐 구슬려질 분입니까?”
“방안은 내가 물어봐야 할 질문이고!”
이번엔 진짜 억울하다.
길거리에 깨진 창문들과 광장을 채운 시민들? 그래, 의도했지. 근데 내가 적당히 하다가 마무리하려 했다면 포슈 장군은 시위가 아닌 폭동을 일으킨 수준이다.
난 천천히 포슈 장군과의 대화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여 설명했다.
“어차피 하실 거, 포슈 장군의 손을 거든다고 생각하십시오. 나쁘진 않습니다.”
“최고전쟁위원회라…. 필요하긴 했지. 다만 국가정상급 대화라 자칫 한순간에 잘못된 판단에 휩쓸려야 할 수도 있단 건데.”
“포슈 장군, 그리고 클레망소 의원이라면 충분히 저희 뜻대로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두 사람이 동시에 국가를 말아먹을 오판을 한다? 차라리 영국이 미스터 갈리폴리를 대표로 내세우는 게 현실성 높다고 본다.
“후우, 장군의 뜻이 정말 강력한가 보군. 괜히 불편하다고 막을 명분도 없고.”
“무엇보다… 믿을 만하지 않습니까.”
“그렇긴 해.”
아무리 페탱이라지만 홀로 모든 권한을 독차지한 채 이 나라 군대를 돌릴 순 없다.
복잡한 동맹과의 관계, 그리고 서로의 정치적 입장을 잘 조율해서 작전을 펼치기 위해선 조력은 필수다. 단지 그 조력자 리스트에 포슈를 더 얹는 것일 뿐이고.
“비록 그 과정과 원동력은 약간 뒤틀렸을지언정 포슈 장군의 목적은 오직 승리에만 있습니다.”
“오… 자네도 그게 뒤틀렸다는 것을 인지는 하고 있군?”
“당연하죠?”
“으음, 아니 제대로 인지는 못 했나.”
의심 섞인 눈으로 왜 날 쳐다보실까. 왠지 나와 포슈 장군을 투영해서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괜한 의심은 떨쳐버리고 난 다시 사령관님께 물었다.
“그래서, 뭐부터 하십니까.”
“일단 청소부터. 이미 준비는 끝났네. 내일 발표날 거야.”
“무슨 발표 말씀이십니까?”
“조제프 조프르 총사령관의 군사재판.”
“오, 대박….”
오자마자 바로 시작하는 게 총사령관의 군사재판이라. 크으, 역시 이게 우리 사령관님이지. 오랫동안 갈아온 칼을 바로 휘둘러 버리네.
재밌다. 진짜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재밌어 미치겠다.
듣자마자 입꼬리 통제를 실패한 모습을 보이자 페탱은 같이 씨익 웃으며 물었다.
“어때, 자네가 원하는 형식이지?”
“딱, 제 취향입니다.”
나로선 이보다 완벽해 보이는 수단이 없다.
재판이라니, 정말 취향저격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