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93
093화
조프르는 끝이다.
이 명제는 논리학적으로 참이라 판명 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다만 어찌 끝낼지는 온전히 나와 페탱 사령관님 손에 달렸을 뿐.
고작 권력 이양이나 그의 사직 따위로는 성이 안 찬다. 총참의 삽질로 죽은 아군을 생각해서라도 그를 편안히 군에서 내보낼 순 없었다.
“에두아르처럼 한번 물어뜯게 놔둬?”
아니지. 고작 욕 몇 번 먹고 끝날만큼 내가 기다려온 순간은 가볍지 않다.
온전한 파멸. 난 이 나라가 조프르라는 인간을 떠올릴 때마다 치를 달달 떨 만큼 분노하길 원한다.
더는 그와 같은 인간이 나오지 못하도록. 그리고 그 분노가 온전히 새로운 자리에 오를 페탱의 원동력이 되도록.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느낀 게 있다면 바로 분위기부터 현 군부에 적대적이라는 것이다.
페탱과 조프르 사이에서 슬쩍 간만 보던 푸엥카레 대통령조차 전쟁의 승리를 축하한다는 서한을 바로 보내왔었다.
푸엥카레 대통령의 메시지는 상급자의 격려나 예의를 가장한 친분 다지기 따위가 아니다.
그가 페탱에게 보낸 메시지. 그건 바로 결투 우승자의 손을 높게 들어준 거다. 겸사겸사 자기가 공정한 정치인이었음도 강조하고.
어차피 내가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필리프 페탱이란 인간이 파리에 도착하는 순간 게임은 끝이다. 페탱은 자신의 승리를 수거하러 오는 것이니까.
그렇다 한들, 이대로 보내주고 싶지 않다. 비록 내가 총사령관과 사적인 친분은 없지만 우리가 또 싸워온 정이 있지 않은가?
우리 조프르의 마지막을 어찌 보내줘야 할까 고민하던 차,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작년 초, 조프르의 권력이 물올랐을 당시 뜻대로 안 되면 언제나 푸엥카레 대통령을 찾아가 써먹은 그 방법.
“그땐 선택지가 조제프 조프르밖에 없다고 여겼을 때지.”
그리고 지금 프랑스에 남은 선택지는 필리프 페탱뿐이다.
그렇다면 나도 한번 시도해도 되지 않을까.
성공하면 나야 목적을 이룰 수 있어 좋고,
아님 말고.
***
온다. 큰 게 온다.
나락으로 떨어진 니벨 공세의 멱살을 쥐고 하늘 높이 끌어올린 한 사람이 파리에 당도했다.
그의 이름은 베르게르 모헬. 고작 27살밖에 되지 않은 청년이나 그의 젊음은 압도적인 명성을 수식해주는 또 다른 장치였지, 절대 결점으로 작용하지 않았다.
같은 세대로부터는 동경과 추앙을, 오랜 세대로부터는 가슴 떨리는 추억과 자신들의 과거 치욕을 씻어주는 회복을.
그런 그가, 어김없이 서부 전선 전역을 유유히 유린하고 돌아와 단상 위에 자리했다.
모두가 달려들어 그를 취재하고자 했고, 그의 목소리를 이 나라 시민들이 한시라도 빨리 듣고 싶어 한다.
그런 그가, 무거운 입을 떼고 첫 문장을 터트렸다.
“먼저, 나는 오늘부로 프랑스 제3공화국의 군인으로서의 국민들에게 사직을 청합니다.”
아니다. 너무 큰 게 와버렸다.
수많은 기자들. 그 인파 속에 끼인 아서 렌섬은 순간 사진 찍는 것조차 까먹고 열심히 적던 손을 내려버렸다.
방금, 역사에 다시 없을 전쟁의 귀재가 전쟁을 안 하겠다고 선언한 것인가?
단상 위의 모헬 중령과 그의 거리가 꽤 있음에도 절로 ‘왜…’라는 질문이 튀어나왔다.
질의를 받을 생각도 없다는 게 벌써 느껴졌지만 당장이라도 방금의 폭탄 발언을 해석해주길 바랐다.
모두가 충격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음에도 모헬 중령의 연설은 계속되었다.
“국민들에게 묻겠습니다. 당신들은 승리를 원합니까? 만약 필요하다면, 오늘날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승리한 전쟁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까?”
승리, 그 달콤함 뒤에 숨어있는 윤리를 건드리는 걸까? 그렇다기엔 단어 하나하나가 광오하고 직설적이다.
수많은 이들을 취재해오고 다양한 기사를 써온 랜섬으로서도 연설의 종착점이 어디일지 알 수가 없었다.
“진정 승리를 원한다면 이 나라 군인들의 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진정 자녀들의 미래를 위협하고 우리의 머리를 자신들 발아래에 두고자 하는 저들과 맞서려 한다면, 지금으로는 부족합니다.”
지금의 군인으로도 부족한 전쟁.
‘아, 그렇다면…’
추가 징집 연설인가. 아마 지금 서부 전선에 부족한 병력을 메꾸기 위함이겠지.
그간 발언 하나하나가 유럽을 떠들썩하게 하던 모헬 중령치고는 참으로 순한 맛이 아닐 수 없다.
그리 랜섬이 기사의 틀을 생각하려던 차, 또 한 번 모헬은 바로 기자들의 예상을 부숴버렸다.
“그 부족함을 저로서는 메꿀 수 없기에, 저는 오늘날 한계를 느끼고 자리에서 물러나려 합니다. 전장에서 독일군을 끊임없이 학살하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끝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모두가 그의 능력의 한계점을 보지도 못하고 있거늘 스스로는 한계를 느꼈다라. 이상하다. 이건 그간 자신감 넘치고 설령 참혹한 전쟁을 마치 마땅하고 당연하게 생각하던 그가 아니다.
“우리가 적 10만을 죽여버리면! 아군은 20만이 죽어 있습니다. 저로서는 이 현상을 이해할 수 없었고, 감당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의 한계를!”
자신의 한계? 아니다. 그는 자신의 한계가 아닌 마치 이 나라의 군대를, 프랑스라는 나라가 가진 한계를 말하는 것같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여러분이 승리를 원한다면 스스로 강한 의지를 보이십시오. 마지막 승리가 우리 프랑스의 손에 들어오길 바란다면 가만히 지켜보지 마십시오.”
아, 이제야 알았다. 이건 그가 토해내는 분노다. 너무 많은 죽음에.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는 아군의 무능력함에.
자신이 적을 밀어내면 어딘가의 아군은 밀려나 버렸다.
수많은 적을 도살하고 돌아온 그가 마주하게 된 것은 더 많이 죽어버린 서부 전선이었다.
몇 년이나 반복되어 왔던 일련의 사건들에 그가 신물을 느낀 거다.
“국민 여러분, 진정 승리를 원한다면 결연히 일어나 폭풍을 일으키십시오. 군인인 저는 할 수 없지만, 여러분은 할 수 있습니다.”
그리 말하며 모헬은 짧은 연설의 종점을 찍었다.
군인은 명령에 복종하나 국민은 복종하는 존재가 아니기에 그는 차마 자신이 하지 못한, 아니 해서는 안 되는 과업을 국민들에게 부탁한 거다.
“군부를 하나로 묶지 않고 분리했으며 자신은 군을 떠나겠다라.”
적군이 아닌 이상 모헬 중령이 군을 떠나길 바라는 사람은 없다. 아, 아니 ‘그들’ 빼고.
무능력하고.
권력을 탐하며.
수많은 장병들을 사지로 내몬 그들.
랜섬은 이제야 이 연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이건… 그래, 마치 1914년의 각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던 감정의 총집합체.
고작 징집을 위한 호도나 국민 고취 따위가 아닌,
선전포고문이었다.
***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라는 심정이긴 했다만 솔직히 안다.
내가 지금 군바리에서 짤린다고? 물론 무릎 꿇고 108배 절을 올릴 수도 있다만 그럴 리가 있겠냐.
이젠 이 나라에서 날 자르는 것보다 총리 바꾸는 게 더 쉬울 거다.
높은 곳일수록 크게 떨어진다만 난 떨어지는 와중에 대충 아무 나뭇가지나 붙잡아도 여전히 높은 곳일 테니까.
“아냐,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야…. 군인이 폭동을 주도하다니.”
“왜, 내가 최초도 아니구먼. 너무 걱정하지 마.”
“중령님이 나폴레옹입니까! 그리고 나폴레옹은 대위였지 지금 중령이 이딴 사고를 치는 게 말이 되냐고요!”
“어허! 나랑 그 사람은 사정이 다르지!”
그 인간은 끝내 자기가 권력을 쥐려 했던 거고. 반면 나는?
“불 끄러 곧 소방관이 올 건데 무슨 걱정이냐구.”
왕좌에 페탱이 앉는 차이가 있다.
이게 은근 그림이 좋은 게 나는 권력욕이 없고 오직 공의를 위해서만 행동하는 것처럼 묘사되잖아.
난 개인적으로 인간이 가진 권력욕을 무시하지 않는다. 비록 내가 돌발행동을 할 때가 있다지만 언제나 이는 주위 권력을 깎지 않는 선이다.
심지어 내 아래여도 말이지.
대표적으로 나한테 붙은 가믈랭? 그 인간이 왜 붙었겠어. 이왕지사 페탱 왕좌에 앉으면 어디 내시 자리라도 하나 해먹고 싶어서 그런 거겠지.
눈물까지 삼키며 나를 대변해준 샤를 드골? 비록 우정을 무시하진 않으나 그놈은 뼛속부터 권력 냄새 기가 막히게 맡는 놈이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지금 파리에서 나는 이 타는 냄새. 설령 뒤늦게 맡았더라도 이 레볼루숑의 횃불이 보인다면 움직이라는 거다.
시민들? 아니 아니, 우리 유권자들께서는 기름 같은 거고.
그간 방관해왔던 나머지들. 권력을 조금이라도 맛본 인간이라면 어서 결연히 일어나 물어뜯으라고.
[니벨 공세안, 그 추악한 계획 이면의 모습은?] [우린 지금 군부와 정부의 유착 속에 살고 있다!] [파리 대규모 시위, 경찰과 충돌로 5명 부상!] [베르됭 전투를 예견한 수많은 신호들.]“화려하게 타는구나. 아주 보기 좋아.”
조금이라도 나한테 안 좋은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괜찮아, 지금이 기회니까 어서 태세전환 해봐.
나랑 적대하는 정치인이었어? 괜찮아! 너의 진정한 애국심을 한번 보여줘.
당신이 전쟁터에 자식을 보내 잃었어도, 기업이 망한 것도, 여태껏 나를 오해한 것도 다 괜찮다. 그건 전부 총사령관과 그 머리의 탓이니까.
근 3년간 내가 느낀 답답함과 분노. 과연 나만 느꼈을까? 우리 4천만 시민들은 다 멍청하고 말 잘 듣는 사람들이라 가만히 있던 걸까?
“내가 세운 전공, 명성. 아예 나라는 사람 자체를 자기들 뒤처리 하는 용도로 써왔잖아. 이제 값을 치러야지. 그리고 누가 보면 내가 막 반군부 인사인 줄 알겠어?”
“군대에 누구보다 많은 불만을 품고 계신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한데, 난 머리만 뽑자는 쪽이라서 괜찮아.”
힘들게 시스템을 바꾸자는 것도 아니다. 전에 없던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는 리스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딱 지금 대가리들만, 갈아치우자는 거다.
난 이보다 완벽한 준비는 없다고 본다. 심지어 대안까지 완벽하다면 말이다.
나와 파비앵이 이른 아침부터 시끄러운 파리의 시위대를 구경하고 있을 때, 오늘 자 신문이 배달왔다.
“오, 오늘은 무슨 소식이 있으려나.”
“보나마나 뻔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보는 맛이 있지.”
마치 누군가 내 작품에 댓글 달아주는 기분이 이런 걸까. 자꾸 확인하고 스크랩하게 되네.
가위 들고 신문으로 다가가는 내 모습을 파비앵이 변태처럼 바라보지만 이젠 숨길 생각도 없다. 난 내 취미에 당당한 남자니까!
언제나 그렇지만 메인디쉬가 처음부터 헤드라인으로 나오는 신문 특성상, 이 순간이 가장 짜릿하….
“왜 그리 가만히 서 계십니까.”
몇 초간 내가 신문을 손에 쥔 채 가만히 있자 파비앵이 다가와 어깨 너머로 신문을 읽는다.
“…페르디낭 포슈, 사임? 그, 그니까 자리를 내려놓으셨다고요? 아니, 왜?”
“내가 묻고 싶다.”
난 어차피 탈출 못 할 거 알고, 아니. 그냥 연설로만 끝날 걸 잘 알기에 뱉은 말이다만 포슈 장군님은 다르잖아.
“어제 도착해서 하신 말씀이라 적혀 있습니다.”
“나도 눈이 있네. 적혀 있잖아, 베르됭 전장에서 환멸을 느끼셨다고.”
덤으로 그답지 않게 감정적인 대답도 있다.
“드디어 자식 장례식을 치러줄 수 있게 되었고, 더는 의미 없이 다른 부모의 아들들을 죽일 수가 없다라…”
“매우, 그것도 매우 감정적이네요.”
어, 음. 왜 이렇게 된 거지. 난 그냥 시민들한테 ‘모헬 화났따! 모헬 못 참겠따! 모헬 떠난다!’라고 말하려던 건데… 어차피 페탱이 붙잡을 게 뻔하다만.
근데 여기에 포슈 장군이 ‘싯팔 나도 떠난다.’라고 얹어버리니 왠지 내 탓같이 느껴진다. 아니, 분명 누군가 내가 스타트를 끊어서 그런 거라고 말할 거다.
예를 들면, 우리 페탱 사령관님이라든가, 필리프 페탱이라든가, 북부 총사령관이라든가…
“음, 좆 됐네. 머리만 바꾸려고 했는데 척추까지 다 뽑히겠어.”
“중령님이요? 무슨 당연한 말씀을?”
“아니, 나도 그런데…. 이 나라가.”
그래도 일말의 희망은 있다. 설마 진심이시겠어? 누구보다 프랑스를 사랑하는 양반인데 분명 생각이 있겠지. 근데 나처럼 판 벌일 사람은 아닌데. 아, 모르겠다.
“파비앵, 짐 챙겨. 바로 떠나게.”
“어디로 말씀이십니까?”
“불 끄러 가야 할 거 아니야.”
내 예상보다 너무 번졌다. 지금이라도 쓸데없는 곳까지 번진 불씨는 꺼봐야 하지 않겠나.
“페탱 사령관님이 언제 오신다고?”
“다음 주입니다.”
“시발… 일단 포슈 장군님부터 뵙자. 장례식장 위치부터 알아 와!”
“조용히 가족들만 모일 거라고-”
“그게 중요하냐! 난 죽은 장군님 아들이나 사위보다 내 목숨이 더 중요해!”
분명 파리에 온 페탱 사령관님이 이 꼴을 보신다? 자신의 손을 떠난 불길에 그냥 날 집어넣고 같이 태워버리실 거다.
‘…. 난 포슈 장군님한테 한 말이 아니라고요!’
왜 당신이 날 따라 하는 건데. 정말 미치겠네.
오늘도 하나 배웠다.
레볼루숑은, 전염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