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92
092화
대규모 병력의 이동은 매우 느리다.
단순히 방향을 바꿔 이동하는 데에 진형과 경계 및 경로까지 고려하다 보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 우리 북부군 지휘관의 사정을 알아준 것일까. 그간 코빼기도 안 보이던 것들이 이제야 보이네.
“적 기습이다!”
“산개하고 바로 공격 준비해!”
아무리 커봤자 대대급 전투였지만 어디서 저리 많이들 기어 나오는지 알 수가 없다. 계속되는 적의 지연전에 난 슬쩍 파비앵을 쳐다봤다.
“압도적 병력 차가 어쩌고 어째? 잘만 달려드는데?”
“······.”
내가 볼 땐 이거보다 확실한 증거는 없다. 적이 왜 지연전을 펼칠까? 그냥 우리가 조용히 사라져 준다는데.
“베르됭 병력이 우리를 향하고 있어.”
“전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저희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그러게.”
근데 세상이 원래 가치 따지면서 돌아가던가? 그럴 거면 확률론적으로 복권보다 더한 쓰레기는 없지 않은가.
보이진 않지만 알 수 있다. 나의 뒤통수를 향해 전력질주 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병참선으로 향할 거란 그들의 믿음을 배신했음에도 나와 보슈들 사이의 신뢰는 굳건했나 보다.
“아아···.”
홀로 이 시대에 떨어져 고독을 씹는 내게 이런 믿음을 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언제나 나는 이 시대 프랑스라는 국가에 소속되지 않은 외부인처럼 겉돌았으며 이는 과거 사회에 대한 무시와 불신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그럴진대.
“난···. 혼자가 아니었어.”
“와, 사람이 어떻게 저리 뻔뻔하지?”
“닥쳐, 파비앵.”
흠, 잠시 끊어진 나의 분위기를 다시 눈을 감고 고조시켰다.
아이가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듯, 나 또한 1916년 독일 지휘관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저 우리 모두가 그러하듯, 감사할 뿐이다.
그들에게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까.
“아냐, 그들은 보답을 바라고 이러는 게 아닐 거야.”
옆에서 ‘진심이세요?’라고 묻는 소리가 들렸지만 난 가볍게 무시했다. 파비앵은 모른다. 저들이 내게 보여준 엄청난 믿음을. 보답받지 못할 게 뻔함에도 저버리지 않는 신뢰를.
“그저, 조용히 사라져주는 게 맞겠지.”
“통수 치고 도망친다는 말씀을 뭐 그리 돌려서 하십니까.”
“자네, 혹시 무너진 전차 사단 재편 계획에 들어가고 싶나?”
어디서 감히 남자들의 진정한 ‘낭만’을 무시하고 있어. 넌 돌아가면 바로 서류 속에 처박아 버릴 거다.
아무튼, 이리 얼굴 한번 못 뵙고 떠나게 되니 동방예의지국 소울이 광광 울어대지만 어쩌겠나. 갈 사람은 가야지.
“우리를 붙잡는 이들의 손길은 사뿐히 즈려밟고 지나가겠소.”
길고 길었던 페탱 공세의 대장정.
끝끝내 우리를 붙잡으려는 일부 중앙군 병력까지 나타났지만 약해질 대로 약해져 참호나 겨우 지키던 놈들이 동서 양면 공격을 막을 순 없었다.
그렇게 북부군은 베르됭에 한 발짝 내딛지도, 베르됭 전역의 독일군과 싸우지 않고 돌아왔다.
그리고 정확히 나흘 뒤.
포슈 장군이 마지막 베르됭 요새를 점령했다.
***
베르됭 전역에 만족 못 하고 대대적으로 비어버린 독일군에 포슈 장군님은 곧장 그 아래 알자스-로렌 지역의 도시, 메스(Metz)까지 먹어버렸다.
이 정도면 프랑스 국경 인근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독일군을 몰아낸 셈.
메스를 먹고 포슈 장군님이 가장 먼저 하신 것은 바로.
“이 와중에 밤낮으로 군악대 연주라니. 거 참, 특이하시네.”
“자넨 모르나 보군. 하긴, 아직 어리니 그럴 수 있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페탱 사령관님은 피식 웃으며 군악대 연주가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듯 말했다.
“나와 포슈 장군님이 어릴 때의 전쟁은, 그러니까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라고 부르는 그 시기는 참으로 처참했다네.”
“뭐, 바로 뚫렸으니까 그랬겠죠.”
뭘 새삼스럽게 요즘은 안 그런 것처럼 말하신대. 그때도 고속도로 개통 당하고 파리에서 독일 대관식까지 치렀잖아.
“자넨 좀 그냥 듣게. 아무튼, 그때 후퇴하는 우리 프랑스군과 피난민들이 무엇을 들었는지 아나?”
“뭡니까?”
“독일 군악대의 후퇴곡. 참으로 비참하고도 우울한 음율 속에서 힘든 발걸음을 해야만 했지. 메스는 포슈 장군님이 어릴 적 살던 곳이라네. 어때, 이제 좀 느껴지나?”
“···. 와우.”
우리 장군님, 취향이 독특한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한 남자가 45년이 지나서 하는 복수군요. 소소하지만, 참으로 의미 있는.”
“자넨 그리 생각하나.”
“아닙니까?”
“내가 볼 땐 그냥 늙은이의 헛짓으로만 보이는데. 왜, 재밌지 않은가.”
“······.”
나보고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건데. 당신이 동화 펼쳐서 의미부여 했잖아.
저 나이 드시고도 하급자 놀리는 게 재밌는지 페탱 사령관님은 굳은 내 표정에 더더욱 밝아진 미소로 화답했다.
‘내 참, 더럽고 치사해서.’
나도 파비앵한테 써먹어야지.
독일의 거대한 한 방. 그리고 서로 달랐던 우리의 공세. 1월부터 시작된 치열한 전투는 3월, 겨울의 바람이 조금은 친절해지고 나서야 끝났다.
원래라면 1년을 넘게 이어져도 이상하지 않았을 베르됭 각축장이 간판 내리고 다시 프랑스 손에 되돌아가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달도 안 걸린 거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끊어진 진단서가 그리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만.
뒤처리를 위해 우리 북부군은 스당에서 잠시 피로를 풀고 있었다.
분명 그럴 텐데··· 왜 난 못 쉬고 회의에 끌려온 걸까. 이런 고민 따윈 진작 포기했기에 난 순순히 슈티른 대령님 옆 고정석에 자리했다.
“고작 2달 만에 우리 사상자가 60만에 이른다니.”
“3분의 2가 베르됭 전투에 관련된 피해입니다.”
승리의 주역임에도 조금의 밝음도 찾아볼 수 없는 슈티른 대령의 표정이 서부 전선의 상황을 말해준다.
매번 몇만, 몇십만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져 모두 익숙해졌을 거라 여기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현재 우리 프랑스군은 육해공 전후방 구분 없이 다 수치에 포함해도 200만을 넘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병력의 3분의 1이 비어버렸다면, 이는 단순히 피해와 슬픔의 문제가 아닌, 전쟁 구도에 즉각적인 영향을 준다.
“비록 장기적으로 보면 긍정적이나 우리 때문에 뒤바뀌어버린 전선, 죽은 동맹 병력, 소모한 물자와 전선 구도를 생각하면 좀 많이 힘들겠는데요.”
“후우, 어쩔 수 있나.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징집해야지.”
또 한 번의 대규모 징집.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얼마나 죽었더라. 백만 단위는 당연하고 앞의 숫자가 중요한데.
“키치너 장군한테 좀 더 빨리 보내달라고 하고, 일단 우린 일부라도 빨리 북부로 보낸다.”
“사령관님, 샤를루아까지 전선을 확고히 하실 생각이십니까.”
“난 한 뼘이라도 내줄 생각이 없어.”
“쓰읍, 그럼 당분간 바빠지겠군요.”
“자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내 잘 알아. 하지만 본분은 확실히 해야지.”
“불만 가진 건 아닙니다.”
사실 약간은 있다. 뭐랄까, 기껏 고생해서 음식 잘 차려놨는데 못 먹는 기분이랄까.
괜히 식으면 맛 어쩌지, 파리라도 꼬이면 어쩌지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자리에 모인 모든 북부군 지휘관들은 사실상 페탱과 나의 배에 탑승한 이들이다. 설령 아닌 이들도 있겠으나, 이제 와서 달라지는 건 없다.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이제 썩은 머리를 뽑아버리는 거다. 굳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만 모두가 잘 알았다. 아직 북부군의 전투는 끝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베르게르 모헬 중령.”
“말씀하십시오.”
“짐 챙겨서 다음 주 중으로 정리 끝나면 바로 떠나게.”
페탱 사령관님의 말에 난 흠칫 놀랐다. 날 이리 보내주다니?
아직 남은 서류들 한 장씩 이어붙이면 서부 참호보다 길 거 같은데 날 자유로 풀어준다고? 혹시 이게 19세기 횡행했다던 노예 풀어주고 잡는 놀이인가. 아니, 근데 그건 미국 아니었어?
당장 북부로 돌아가서 전선 정리하는 것만 해도 하루 이틀로는 어림도 없다. 당연히 손 하나로도 부족할 판에 이리 보내준다니 의심부터 솟아오른다.
“으음, 저 혼자 떠납니까?”
다 일하는데 혼자 휴가 보내버리면 미운털 박히는 건 둘째치고 내가 눈치 보인다고요.
눈동자만 요리조리 굴려서 둘러보니 다들 부러움과 시기심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다.
이 자리에만 후방 가서 가족 만나고 싶은 사람이 한둘이겠나. 조심스러운 내 물음에 페탱은 한마디로 분위기를 뒤엎었다.
“나도 정리되는 대로 슈티른에게 넘기고 따라가겠네.”
“···. 와우.”
히죽.
히죽. 이죽.
내가 이리 표정관리 못 하는 아마추어였나. 자꾸 입꼬리가 말을 안 듣네.
“흐흐, 최대한 빨리 와주십시오, 전 먼저 몇 명 챙겨서 가 있겠습니다.”
“그래, 그래.”
별거 아닌 것처럼 건성으로 대답하지만 내 이래 봬도 페탱 아래에서 구른 경력이 몇 년이던가.
보인다 보여. 웃음으로도 다 가릴 수 없는 살기 넘치는 눈동자가.
고생하는 영국군을 위해 일부 병력이 먼저 출발하고 나머지는 전선 정리와 뒤처리 작업에 착수했다.
그리고 난 전선 정리가 얼추 끝나자마자 곧장 스당에서 파리로 출발했다.
기차가 파리에 당도할수록 흥분을 감출 수가 없다. 기다리고 기다린 순간 아니던가.
“이게 포슈 장군님이 군악대 연주를 한 이유인가?”
어릴 적 기억을 45년 뒤까지 간직하다가 노년의 나이에 재현하니 얼마나 기분이 좋으셨을까. 이제야 공감이 확실히 된다.
옛말에 군자의 복수는 10년도 이르다 했다. 근데 난 군자가 아니니, 딱 3년 치만 하겠다.
우리 조제프 조프르 총사령관님 또한 부디 좋아하시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선곡은,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
프랑스인이라 그런가.
내 비록 두 평생 악기라곤 하나 다뤄본 적 없다만 저 노래는 왜인지 자신이 넘치네.
***
개전 초기에 잃어버린 영토의 9할 가까이 되찾았다. 나머지는 전부 국경선 따라 형성된 지역과 남부 지역. 당장 무리해서 찾을 필요는 없다는 게 포슈를 비롯한 대부분 프랑스 지휘관들의 생각이었다.
베르됭을 넘어 최대한 독일군을 밀어내고 영토를 수복했다. 여전히 이후 해야 할 일들은 널려 있다만 적어도 포슈의 우선순위에는 없었다.
“저희는 이제 어떻게 합니까?”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총참의 통제가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네.”
이 정도 일은 그여도 혼자 생각해서 판단하기엔 너무 복잡하고 거대하다. 그리고, 굳이 자신이 도맡아서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모헬 중령이 파리로 다시 떠났다고.”
“페탱 사령관님도 뒤따를 거랍니다.”
“그러겠지. 두 번 다시는 이딴 짓을 반복하고 싶진 않을 테니.”
아마 이번에 페탱 중장이 후방으로 돌아가면 다시는 야전으로 안 나올 수도 있음을 포슈는 직감했다.
아르투아 공세군. 거의 확정적으로 이번에 전선 정리 들어가면서 해체될 야전군이다.
포슈가 그간 이어오던 중앙 전선의 공세는 당분간 시도할 힘조차 없을 테니까.
“그럼 굳이 내가 떠안고 있을 이유는 없지. 베이강, 중앙에 전해. 니벨의 뒤를 이을 후임이 베르됭에 도착하는 대로, 난 아르투아 공세군 사령관직을 내려놓겠다고.”
“예? 그럼 어디로 가시려는 겁니까?”
베이강은 포슈가 느낀 거대한 회의감을 옆에서 지켜봤기에 자신의 상관이 총사령부로 돌아갈 것 같진 않았다.
‘설마 전쟁위원회로? 아니, 그 자리도 솔직히 안 맞다. 그럼 다른 자리가···.’
몇 군데 떠올려 봤지만 딱히 적합한 곳은 없어 보인다.
군인이 자리를 내려놓을 때는 오직 다음 자리가 결정되었을 때뿐이다. 그게 은퇴여도 말이다.
“일단은, 파리로.”
“파리··· 말씀이십니까. 사유는 어찌 전할까요.”
“내 아들과 사위 장례식.”
지금 포슈 장군의 태도만으로는 핑계인지 사유인지 모르겠다만 베이강은 단지 그게 전부가 아님을 잘 알았다.
“알겠습니다, 바로 전하겠습니다.”
아마 저 의지는 설령 사직당하는 한이 있어도 꺾이지 않겠지. 감히 누가 강제로 그럴 수 있겠냐마는.
홀로 기차 안에서 덩실덩실 춤추며 파리로 향하는 모헬은 상상도 못 하고 있었지만, 이리 페탱과 베이강의 파리행 또한 확정되었다.
베르됭 전역에서 승리하였고, 페탱 공세는 성공하였으나, 새로운 전운을 담은 이들이 속속히 파리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