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106
108화
재환의 말에 서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꺼냈다.
“박학도 사장과 무슨 거래를 하신 겁니까?”
“한성 전자를 가져오면 절 지지하겠다더군요.”
한성 전자 얘기를 먼저 꺼낸 건 재환이지만 교묘하게 말을 비틀었다. 서진은 턱을 쓸면서 박학도 사장을 떠올렸다. 누구보다 KG 전자의 앞일을 생각하는 사람이니 그런 욕심을 부릴 법도 했다.
“그래서 사이비 종교의 자금 루트로 한성과 거래하시려는 겁니까?”
“네. 한결 선배한테 큰 소리로 보도할 거라 말했지만,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죠.”
물론 재환은 당장 보도를 안 할 뿐 언젠가는 할 생각이다. 구체적으로는 카르텔을 무너트릴 때, 같이 터트릴 계획이다.
서진은 홀로 머릿속에서 계산을 해보고 재환의 계획이 가진 문제점을 짚었다.
“카르텔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재환이 쌓아 올린 힘이 카르텔에 위협적이 된다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그게 카르텔이 가진 세력과 동등하느냐 하면 그건 또 다르다.
그저 카르텔 세력을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이지.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일로 카르텔을 또 찌르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이번 건은 YK 건과 달리 정보나 근거가 빈약합니다. 언제든 카르텔이 발을 뺄 수 있고, 역으로 회장님을 공격할 수단이 됩니다.”
“역으로 공격한다고요?”
“처음 회장님이 KG그룹의 회장이 되면서 한 일이 뭐였습니까.”
재환은 불과 몇 개월 전의 이야기를 떠올려 봤다.
자신이 KG 그룹의 회장과 TBS의 대표를 역임할 때, 생길 문제점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 KG 그룹 내부 비리를 직접 폭로했다.
그 과정을 통해 재환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는 성공했다.
“그 일로 인해 사람들은 KG 그룹에도 비리가 있다는 걸 확신했고, KG 그룹의 주가가 출렁였죠.”
“뭘 말하려는지 알겠네요.”
그 일이 있고 시간이 또 흘렀다.
당시의 비리를 저지른 사람을 전부 뽑아냈고, 구조도 개편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유지 될까.
재환이 확인은 안 해봤지만 또 다른 비리가 있을 수도 있다.
“한성에서 사람을 꾀어내서 저희를 엮을 수도 있을 거고요.”
“그럴 가능성도 인지하고 있어서 내부 감사를 꼼꼼히 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사각지대는 존재하는 법이니까요.”
그런 일이 생길 여지를 없애는 게 최고다.
“그에 대한 대책을 먼저 세우고 움직이시는 게 좋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재환은 서진을 내보내고 수첩을 펼쳤다.
마땅한 수가 있을까. 고민을 거듭하다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의원들 중에 카르텔과의 관계를 끊어내고 재환 쪽에 붙으려는 이들이 생겨났다. 그런데 그게 비단 의원들뿐일까?
“한성 내부의 첩자를 심을까.”
거기에 생각이 닿으니 때마침 아주 좋은 인물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 * * * *
이한철은 이재명을 마주했다. 부자가 서로를 안 본지 1년도 되지 않았지만 몇 십 년은 된 것 같았다.
이재명은 이한철이 가져온 서류를 보며 비웃었다.
“이게 뭐.”
“아버지의 뒷돈. 맞죠?”
“회장님이라고 불러!”
이재명의 다그침에도 이한철은 꼼짝하지 않았다. 어차피 문화 재단으로 좌천당하면서 더 물러날 곳도, 잃을 것도 없다.
“아버지. 이게 언론에 터지면 꽤 곤란하시죠? 그것도 TBS에서 터지면 아주 곤란하실 거 같은데요.”
이한철의 협박에 이재명은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하니 회장 후보에 다시 들고 싶어서 제 아비에게 칼날을 들이댈 줄이야. 미숙해도 자기 피를 이었다는 건가.
이재명은 서류를 톡톡 두드리다가 쓰레기통에 내던졌다.
어차피 따로 백업 파일이 있을 테니 이건 그저 쇼일 뿐이다.
“이런 작은 돈을 이슈화 시킬 수 있을 거 같으냐?”
“그걸 발표하는 게 다른 이도 아닌 강재환이면 어떻겠어요?”
언론인으로서 완전무결한 인간이 강재환이다.
이슈화 시킬 수 있는 건 당연하고, 한성의 기둥뿌리를 뽑아 흔드는 것도 가능하다.
이재명은 숨을 길게 뱉고 이한철의 눈을 마주봤다.
둘의 눈싸움이 몇 초간 이어지다가 이재명이 입을 열었다.
“원하는 게 뭐냐.”
“뭐일 거 같아요?”
“이강철하고 다시 겨루게 해 달라?”
“아뇨.”
이한철은 욕심 가득한 눈으로 이재명을 가리켰다.
“그 자리를 주세요.”
“바람 좀 쐬라 했더니 머리에 헛바람이 넣어 왔나? 이게 언론에 터지면 어떻게 될지 모를 정도로 멍청하진 않을 텐데?”
이재명은 비아냥댔지만 이한철은 물러나지 않았다. 이게 자신의 마지막 패니까.
“알죠. 잘 압니다. 한성의 주가는 또 나락으로 처박힐 테고, 지금 준비 중인 프로젝트를 여럿 접어야 겠죠. 투자자들은 한성의 이름을 믿지 못하게 될 거고, 발을 뺄 거고요. 아, 물론 진성 투자자들은 여전히 붙어 있겠지만, 떨어져 나가는 수가 적지는 않겠죠.”
이한철은 비릿하게 웃으며 잠깐의 텀을 줬다.
“그리고 회장님의 그 자리가 위태로워질 거고요.”
“그러면 네가 이 자리를 차지하겠단 거냐?”
“제가 어떻게 그 자리를 얻겠어요. 이강철이 단단히 버티고 있는데요.”
이강철은 지난번 일이 터지고 한성 물산 내부에 문제가 없는지 파악하는 한편, 한성 전자 쪽에도 영향력을 키워나갔다.
다음 한성 회장은 사실상 이강철로 낙점 찍힌 상태니, 이재명이 물러난다고 이한철이 회장이 될 가능성은 없는 셈이다.
오히려 이강철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이한철을 잘라낼 궁리를 할 거다. 사고사든 병사든 적당한 이유를 들어서.
“거기까지 생각을 하는 놈이 이런 짓을 벌이는 이유가 뭐냐.”
“가만히 앉아 있다가 늙어 뒤지긴 싫거든요. 판을 뒤집을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거기에 판돈을 걸어야죠.”
이한철의 말에 이재명은 인상을 찌푸렸다.
다 같이 죽자란 말을 이렇게 할 수도 있나.
이재명은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까딱했다.
“이 자리는 못 준다. 네 수준이 빤한데 너한테 넘겨주면 반발도 심하겠지. 내가 물러나는 것보다 더 크게 주가가 흔들릴 거다.”
그리고 이재명은 이한철이 그 주가를 안정시킬 수 없을 거라 판단했다.
차라리 이강철이 낫지. 이한철은 수준 미달이다.
“이강철하고 다시 겨룰 기회를 주마.”
“그 걸로는 부족하다고!”
이한철이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그 소음을 듣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전략 기획팀 팀장이 들어왔다.
상황 파악을 바로 한 그는 이한철을 제압하려 했지만 이재명이 손짓으로 기다리라 명했다.
“그 자리 아니면 협상의 여지는 없어요. 알겠어요, 아버지?”
“눈에 뵈는 게 없구나.”
“눈에 뵈는 게 없으니까 이 짓을 하죠.”
이한철은 흐트러진 옷깃을 정리한 뒤 돌아섰다.
자신의 앞을 막아선 팀장을 밀치고 고개만 돌려 이재명을 바라봤다.
“현명한 판단, 하시길 바라요.”
그 길로 본가를 나온 이한철은 묘한 열기에 들떴다.
그도 알고 있다. 이 패로 회장직을 노리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무리한 요구를 했다는 자각은 있다. 하지만 그 덕에 자신을 한낱 체스 말로 보지 않는 아버지에게 한 방 먹였다.
그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요 몇 달간 쉴 새 없이 몰려오던 음주의 유혹도 지금만큼은 떨쳐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았다.
본가에서 몇 블럭 떨어진 곳에 주차된 차량을 보니 인상이 찌푸려졌다. 하늘을 나는 것만 같던 기분이 다시 시궁창으로 떨어졌다.
마음 같아선 저 차를 무시하고 가던 길을 가고 싶었다.
그런 이한철의 마음을 읽은 건지 타이밍 좋게 차 문이 열렸다. 아니, 처음부터 이한철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것 같다.
이한철은 문을 연 인물을 빤히 바라봤다.
차 안에 타 있던 재환은 그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
“뭐 해, 안타고. 시간은 금인 거 몰라?”
“……쯧.”
재환의 명령조에 가까운 지시에 그는 별 수 없이 차에 올라탔다.
두 사람을 태운 차는 조용히 도로로 나아갔다.
몇 블럭을 지나간 뒤 재환이 먼저 말을 꺼냈다.
“표정을 보니 잘 풀렸지?”
“재수없는 새끼.”
“그래서 그 재수없는 새끼하고 거래한 머저리는 누구?”
재환의 비아냥에 이한철은 당장 멱살을 틀어쥐고 싶었다. 하지만 앞에 탄 서진이 백미러로 이한철의 행동을 주의깊게 살폈다. 여차하면 사고라도 일으켜서 허튼 짓을 못하게 만들 각오가 되어 있다.
재환은 여유롭게 손을 까딱했다. 저 손목을 잡아 꺾어버리려다가 참았다.
“거래를 잊진 않았지?”
“……그건 내가 한성 전자에 돌아가고 난 다음이라고 안 했었나? 기억력이 영 나쁜 모양이네.”
“뭐든 선금이 있으면 매끄럽게 굴러가는 법 아니겠어? 하긴 그런 간단한 것도 모르니 이강철한테 밀렸지.”
시종일관 재환이 자신의 속을 박박 긁어대니 이한철은 거래고 나발이고 당장 차에서 내리고 싶었다.
이 악마와 손을 잡은 게 잘못이 아닐까 생각하며 이한철은 재환이 자신을 찾아온 날을 떠올렸다.
이한철이 종교 단체에 후원금을 명목으로 빼돌린 비자금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얼마 후였다.
이 비자금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 지 고민하던 차에 재환이 직접 그를 찾아왔다.
“일시적으로 손을 잡는 게 어때.”
재환의 제안은 심플했다.
자신을 한성 전자로 복귀하게끔, 한성 회장 자리를 놓고 다시 겨룰 수 있도록 판을 깔아 주겠단 거였다. 그 대가는 한성 전자의 지분 일부, 혹은 핵심 기술들 몇 가지 였다.
어느 쪽이든 한성 전자의 일부를 거래로 삼았다는 점이 그는 걸렸지만, 이한철이 확신하는 게 하나 있었다.
자신의 손에 있는 건 그저 숫자와 문장의 나열이지만, 재환의 손에 들어가면 누군가의 목을 베어낼 훌륭한 칼이 된다.
저울질을 하는 와중 재환이 그의 심기에 불을 당겼다.
“아니면 여기서 평생 썩던가. 이미 종교단체로 돈을 빼돌렸다는 건 나도 알거든.”
네가 가지고 있는 정보가 무의미하게 버려지길 원하느냐.
협박에 가까운 말에 이한철은 결국 재환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온 결과가 이거였다.
“전에 말했지만 내가 사장자리로 돌아간다 해도 특허권이든 지분이든 쉽게 넘겨줄 수는 없어.”
“그런 쓸데없는 걸 걱정하고 있네. 당연히 적당한 값을 치러서 가져갈 거야.”
적당한 값이란 일반적으로 거래되는 가격보다 저렴한 가격을 의미했다.
이한철로서는 속이 쓰렸다.
재환은 채찍을 적당히 휘둘렀으니 당근을 줄 차례라 판단했다.
“그 적당한 값은 돈이지만 다른 것도 되지.”
“또 무슨 짓거리를 하려고.”
“돈 대신 전에 이재명 회장과 거래하면서 한성이 스마트폰 사업을 손 뗀 건 알지? 근데 그걸 풀어줄게. 우리 이한철 사장님. 한성 전자의 사장 자리에서 만족할 건 아니잖아요?”
재환의 말에 이한철은 다시 셈을 했다.
한성 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을 포기한 데에 재환이 연루되어 있다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내용이다.
그런 사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것도 KG 전자의 기술을 바탕으로 시동을 걸 수 있다면 자신의 지반을 다시 다질 수 있다.
“그거 마음에 드네.”
“그럼 그렇게 거래하는 걸로 하자. 아,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허튼 생각하면 곤란해.”
두 사람을 태운 차는 한성 문화 재단 앞에 딱 멈춰 섰다. 서진이 문을 열어주는 사이 재환이 이한철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그 정보를 다른 방식으로 활용할 수도 있단 걸 잊지 마.”
그 한직에서조차 쫓겨나고 싶으면 알아서 하란 말을 남긴 뒤 재환은 문을 닫았다.
재환에게 휘둘릴 대로 휘둘린 이한철은 그 날 또 술을 마셔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