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134
136화
예희와 함께 파티 회장에 들어가자마자 본 사람은 다름 아닌 이정진 회장 부부였다.
이정진은 재환을 보고 반가운 기색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KG 회장님도 오셨군요.”
“구정혁 회장님과는 악연이 이어지고 있어서요. 전 안 오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네요.”
“하하, 그래도 구정혁 전 회장님이 강재환 회장님을 좋게 보는 모양이네요.”
이정진은 미리 회장에 도착한 사람들을 쭉 둘러봤다. 자연스럽게 재환은 그 시선을 따라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다.
자세히 보면 그들은 KG 계열사와 한 다리 걸치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기본적으로 KG 그룹에 호의를 가진 사람들이란 얘기다.
이정진 회장이 웃으며 그 부분을 제대로 짚었다.
“이번에 초대된 사람들은 KG 그룹에 호의를 가진 사람들뿐인 거 같으니까요. 구정혁 전 회장님은 지금 강재환 회장님에게 부족한 게 뭔지 정확히 아시는 모양입니다.”
“이거 참, 치부를 들켜서 부끄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애매하네요.”
재환은 쓰게 웃으며 그들의 얼굴을 보며 이름과 직함을 떠올리려 애썼다.
사실 재환에겐 이런 자리가 썩 불편했다.
차라리 적들이 득실거리는 소굴로 걸어 들어가는 게 재환의 입장에선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저들이 다분히 의도적인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건 알지만, 언제든지 등을 찌를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강재환 회장님은 사람을 믿질 못하시는 군요.”
“쉽게 못 믿죠. 겉으로 보여지는 것과 속내가 워낙 다른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재환의 뿌리 깊은 인간불신에 이정진은 쓰게 웃어보였다.
재환이 자신도 믿지 않으리란 걸 어렴풋하게 알아차린 탓이다.
하지만 이정진은 재환과 다르다.
“신뢰란 건 결국 쌓아온 것들에 의해 생기는 거죠. 제가 강재환 회장님과의 거듭된 만남을 통해 신뢰를 쌓은 것처럼 말이죠. 안 그렇습니까, 구정혁 전 회장님?”
이정진의 말에 뒤를 돌아보니 어느 틈엔가 도착한 구정혁이 삐딱한 눈으로 재환을 바라봤다.
재환은 그를 샐쭉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언제 왔습니까?”
“네가 인간불신의 끝이란 걸 부는 순간부터, 쭉.”
“나이를 드시더니 도청하는 취미도 생겼습니까?”
“여보.”
재환의 말에 구정혁이 한 마디 하기 전에, 옆에 있던 예희가 그를 다그쳤다.
예희는 재환의 앞에 나서 머리를 숙여보였다.
“죄송합니다. 그 이가 한 번씩 예의범절이 없어져서요.”
“허 참.”
구정혁은 재환과 예희를 번갈아보다가 혀를 찼다.
“대체 넌 전생에 나라를 구했냐? 어떻게 이런 참한 여자를 아내로 둔 건지, 원.”
“전생에선 나라를 구하려다 실패하고 떼굴떼굴 굴러다녔습니다만?”
“그랬으면 이렇게 착한 여자가 네 옆에 있겠냐? 하여간 문제가 많은 녀석이야.”
진실을 토로한 재환은 다소 억울했으나 크게 표출하진 않았다.
이 걸로 집에 가서 트집잡혀 바가지 긁히고 싶진 않으니까.
구정혁은 예희의 어깨를 한 번 두드리고 재환에게 다가가 넥타이를 콱 틀어쥐었다.
“따라와라.”
“아, 영감님. 거 가오 상하게.”
“가오 같은 소리하네. 빨리 따라오기나 해. 이 바깥양반 잠시 빌려 가지.”
구정혁의 손에 끌려 재환은 장내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계열사 1차 협력체 사장부터 시작해서 KG 그룹에서 하지 않는 사업을 진행하는 회사의 사장, 중견 기업의 사장들까지 만나며 재환을 인사시켰다.
그 장면만 보자면 구정혁이 KG 그룹의 회장이고, 재환은 그 뒤를 잇는 후계자 정도로 보였다.
한 차례 회장을 쭉 돌고 난 뒤 재환은 숨을 고르며 크게 기지개를 켰다.
“어우, 빡세.”
기자라는 직업이 사람을 만나는 게 일이라 사람을 대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재환을 힘들게 하는 건 그들이 재환을 보는 눈이었다.
재환이 잠시 한숨을 돌리는 사이 구정혁은 재환 몫의 샴페인까지 챙겨 다가왔다.
“그거 잠깐 돌았다고 지쳤냐? 이렇게 나약해서야 원.”
“오랜만에 옛 기분 나시는 영감님이 펄펄 나는 거죠.”
재환은 샴페인을 받아 한 모금 들이켰다. 약간의 수분이 목을 타고 들어가니 그제야 상당히 갈증 났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남은 샴페인을 쭉 들이킨 뒤 재환은 입가를 닦고 주위를 살폈다. 한 바퀴 돌면서 본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애쓰다가도 한숨을 내쉬었다.
재환의 한숨에 구정혁이 살짝 인상을 쓰고 물었다.
“마음에 안 드냐?”
“그럴 리가요.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신 구정혁 전 회장님께 감사할 따름이죠.”
“말에 영혼을 좀 담아봐라, 고얀 놈아. 써글 것.”
구정혁은 혀를 차며 재환의 뺨을 툭툭 쳤다. 재환은 날벌레라도 쫓는 듯 팔을 휘휘 저었지만 구정혁은 재환의 뺨을 계속 툭툭 쳤다.
“영감님, 말로 해요. 사람 얼굴 치지 말고.”
“궁금해서 그런다. 이게 사람 머리가 맞냐? 장식품이 아니라?”
“이 영감이 나하고 싸우자는 건가.”
재환이 투덜거리니 구정혁은 건조한 어투로 물었다.
“그렇게 삐딱한 자세로 나오면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못 얻어 갈 거다. 내가 그런 사소한 것 까지 떠먹여 줘야 아냐?”
“누굴 진짜 애로 아나. 아뇨, 안 그래도 됩니다.”
구정혁은 재환의 시큰둥한 대답에 싸늘하게 바라봤다. 사업가로서의 관록이 있는 구정혁은 재환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바로 알아 차렸다.
“하나만 말해주마. 네가 아니라 내 아들이었으면 별 다른 걸 안 해도 많은 것들을 얻어 갔을 거다.”
“……두 아들을 굉장히 고평가하시네요? 아니면 저에 대한 평가가 박한 건가요?”
“어느 쪽인 거 같냐.”
질문 같지만 사실상 답은 정해져 있다.
아무리 구정혁이 아들에게 관대하다고 해도 아들이 없는 자리에서 그들을 띄워줄 이유는 없으니까.
“후자겠죠.”
“왜 그런지는 아냐?”
재환은 곧바로 답하지 않고 주위를 쭉 둘러봤다. 슬쩍 눈을 마주치는 이들은 잔을 들어 보이며 재환에게 호의를 표출했지만 일반적인 호의와는 조금 달랐다.
마치 이용해 먹기 좋은 누군가를 꼬실 때 보이는 호의랄까.
사기꾼이 보이는 호의에 가까웠다.
그들의 반응에 적당히 대응한 뒤 답했다.
“바지 회장이라서 그런 거 아닙니까?”
바지 회장.
재환이 KG 그룹의 회장이 된 지도 곧 있으면 1년이 된다.
그 사이 KG 그룹 내에서 많은 일들을 벌이고, 그 결과로 상당한 이익을 냄으로써 재환이 우연히 회장이 된 게 아님을 증명해 보였다.
하지만 회장이 되는 과정이 다소 우악스럽고 비현실적인 면모가 있었기 때문인지 암암리에 이런 말이 돌았다.
재환은 어디까지나 얼굴 마담이고, 실제적으로는 구정혁이 아직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루머는 재환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서 살이 붙으며 덩치를 불려갔다.
그 결과 암암리에 재환을 바지 회장이라 부르는 이들이 생겨났다.
“이거 참, 제가 회장직에 어울리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그래, 회장직에 어울린다는 걸 보여주려 노력했지만, 딱 그 뿐이었지.”
구정혁은 샴페인을 내려놓고 재환을 올려다봤다.
마치 현자가 자신의 후학에게 가르침을 선사하듯 나긋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KG 그룹의 회장이 해야 할 게 뭐인지 아냐?”
“그건 간단하죠. KG 그룹이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도록 큰 결정을 내리는 게 할 일이죠.”
재환이 옳은 답을 했다고 생각하며 구정혁을 바라봤지만 그는 고개를 애매하게 끄덕였다.
“반쪽짜리 답이다.”
“……나머지 반은 뭡니까.”
“누구도 KG 그룹을 얕보지 않도록 해야지.”
구정혁은 전에 재환에게서 받은 재환의 명함을 꺼냈다.
재환의 이름 석 자와 함께 적힌 회장이란 직함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한 그룹의 회장이나 되는 사람을 얕잡아 보겠냐 생각할 법하지만, 너도 지금 봐서 알겠지.”
구정혁은 명함을 다시 챙겨 넣으며 주위를 쭉 둘러봤다.
지금이야 모두에게서 호의적인 시선을 받고 있지만, 그도 지금의 자신처럼 경계 섞인 눈빛을 받았다는 게 새삼 놀랍다.
“이 세계는 정글이다. 그 누구라도 약한 모습을 보인다 싶으면 잡아먹을 생각부터 하지. 그리고 산전수전 다 겪은 저들 눈에 넌 아주 맛있어 보이는 먹잇감이다.”
“그렇게 호락호락하진 않은데요.”
“글쎄다. 사업가의 눈으로 봤을 땐, 넌 그냥 뜨내기일 뿐이야.”
구정혁의 단호히 말한 뒤 살벌한 경고를 덧붙였다.
“저들은 널 잡아먹으면 KG 그룹도 손쉽게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할 거다. 이미 그런 생각을 가지고 움직이는 이들이 있을 지도 모르지.”
구정혁은 그런 생각을 가진 게 누군지 대충 아는 눈치였지만, 말해주지 않았다.
그 정도도 알아채지 못하고 대응할 수 없다면 재환의 자격이 부족한 거라 생각하는 거니까.
“네가 KG 그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대충 안다만, 그런 태도로 KG 그룹을 유지시키는 것도 한계가 있다. 이 회장이란 직함을 계속 유지하고 싶으면 좀 더 명석하게 굴어.”
구정혁은 필요한 말을 다 했는지 재환의 옆을 떴다.
재환은 구정혁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구정혁 회장이 보고 느낀 것처럼 그동안 재환은 KG 그룹을 경영하는 것에 대해 그다지 깊게 생각을 하지 않았고, 회장이란 직책에 집착하지도 않았다.
KG 그룹은 카르텔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힘일 뿐, 카르텔을 완전히 붕괴시키고 나면 떠날 곳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재환은 시선을 돌려 예희를 찾았다. 이정진 회장의 와이프와 같이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얼굴을 비추는 그녀는 조금씩 변해갔다.
대기업 사모님이 부담스럽다고 했던 예희지만 어느 덧 그 태가 나고 있다.
‘예희는 내가 회장을 그만두겠다고 하면 그러라고 하겠지만….’
재환은 예희와 두 아이들에 대해 고민하다가 결심했다.
결심을 했으면 이제 움직일 때다.
재환은 샴페인 잔을 하나 들고 가까이에 있는 이에게 다가갔다. 머리를 빠르게 굴려서 그의 이름과 소유 중인 회사에 대해 떠올렸다.
“이명한 사장님. 무슨 재미난 이야기를 하고 계신가요?”
“아, 강재환 회장님.”
이명한과 같이 있는 이들은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재환을 반겼다.
어쩐지 그 미소가 자신을 뜯어먹기 위해 드러낸 이빨과 같았다.
전이었으면 굳이 상대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무시했겠지만, 이번엔 다르다.
“이번에 국회에서 새로운 법률안을 내놓는다고 하는데, 그게 도움이 될 지 아닐지를 모르겠더군요.”
“뭐, 저희같은 중견 기업을 운영하는 이들에게나 문제지. 강재환님에겐 해당되지 않으니 모르실 수도 있겠군요.”
은근한 무시가 섞인 말에 재환은 빙긋 웃으며 차분히 답했다.
“이번에 중소기업과 중견 기업의 세율과 관련된 사안이면 저희도 지켜보고 있습니다. 중소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이기도 하지만 기존의 중견 기업들을 견제하기 위한 거기도 하죠. 근데 사실상 전체적인 세금을 더 받기 위한 수작으로 밖에 생각이 안 됩니다.”
재환이 줄줄 답을 하니 그들은 조금 놀랍다는 듯 한 반응을 보였다.
재환은 그 반응을 쭉 둘러보고 곧바로 말을 이었다.
“여기 계신 분들이 걱정할 건 앞으로 낼 세금보다 협력업체들의 생산량을 더 걱정해야 할 겁니다. 중소기업들은 적당히 없어 보이는 척을 하기 위해 사람 수를 줄일 거고, 자연스럽게 생산량이 줄어들테니까요.”
“그럼 다른 협력업체를 찾으면 그만인 일이죠.”
“번거롭게 매번 그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재환은 방금당한 무시를 그대로 되돌려주듯 입 꼬리를 말아올리며 이어 말했다.
“그보다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있는데… 살짝 알려드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