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54
54화
김현태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초조하게 왔다갔다했다. 양측의 이유로 스케줄이 몇 차례 미뤄졌지만 결국 이 날이 다가왔다.
“강재환 회장이 오늘은 안 아프데?”
“그런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다른 급한 일은 안 생겼고?”
“그런 이야기 또한 없었습니다.”
“내가 좀 아프면 안 될까?”
“안됩니다.”
옆에 서있던 비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원래부터 멘탈이 좋지 않은 인간이지만 강재환과 연루되면 유난히 더 멘탈이 박살난다. 그 이유를 한성 비서팀으로부터 전해 듣긴 했지만, 납득이 되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강재환 회장과 단독으로 만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어디까지나 중소기업 발전 지원을 위해 모이는 자리입니다. 한성 쪽에서 이강철 사장이 올 거고, YK 쪽의 중역도 온다고 했습니다.”
재환보다 카르텔이 더 많다. 애초에 이 사업 자체가 카르텔에 속한 이들이 이득을 취하기 위해 만든 사업이다.
의원직들은 사람들로부터 점수를 따고, 대기업들은 좋은 이미지 벌어간다. 물론 투자 받을 사업들 역시 카르텔에서 손을 뻗어둔 곳이다. 그러니 KG의 돈을 빨아들여서 돈을 불리는 효과를 일석이조로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마음 편히 가지시죠.”
“그래, 그래야지.”
김현태는 냉수를 들이켜고 마른 세수를 했다. 이런다고 나아지는 건 아니지만.
비서는 불안불안한 마음을 품고 시계를 확인했다. 이젠 가야 할 시간이다.
“시간 됐습니다.”
“그래, 가지.”
슬쩍 청심환 하나를 입에 털어넣고 비서를 앞세워서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에는 이미 재환과 이강철, LK에서 온 이사 한 명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험악했다.
“강재환 회장님, 하루만에 벼락부자가 된 기분이 어떻습니까?”
“금수저로 태어난 것보단 덜 기쁠 거 같네요. 금수저의 기분은 어떠세요? 아, 도금수저라 잘 모르시나?”
이강철이 재환의 심기를 살살 건드렸고, 재환은 지지않고 말대꾸했다. 분명 시비를 건건 이강철인데 털리고 있는 것도 이강철이었다. 옆에 앉아있는 LK 이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으로 차만 홀짝이고 있다.
김현태는 화장실로 도망가고 싶었지만 헛기침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바쁜 시간을 내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장님이 도와달라고 부르셨는데 당연히 와야죠.”
재환은 나름대로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지만 김현태 시장이 보기엔 악마의 미소나 다름없었다. 비즈니스용 미소로 맞대응을 한 뒤에 빨리 본론으로 들어갔다.
“나눠드린 자료 3면을 보시면….”
“아,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얘기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재환의 발언에 김현태 의원은 남들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강철이 옆에서 매서운 눈빛을 보냈지만 그러든 말든 재환은 제 할 말을 했다.
“이번에 선정된 업체들 중에 몇 업체는 분식회계 의혹이 있는 걸로 아는 데요. 그 부분은 제대로 확인해 보셨나요?”
“음…. 저희가 요구한 서류들을 확인해 보면 큰 문제는 없어보였는데, 증거가 있나요?”
“제가 허무맹랑한 소리를 할 이유가 없죠.”
옆에 있던 이강철이 코웃음을 쳤다.
“강재환 회장님, 이번에 기업들을 선정하는 데에는 한성의 전략기획팀에서 자체 제작한 가치 평가 솔루션을 사용했습니다.”
“저라면 그 전략기획팀을 불러서 모조리 시말서 써서 올리라 했을 겁니다.”
재환은 곧바로 서류 가방에서 몇몇 서류를 꺼내 펼쳐놨다. 서류 상단에는 큼지막하게 이번에 선정된 업체명이 적혀 있다.
“선정된 업체 열세 곳 중 다섯 업체의 창고에는 아직 판매되지 못한 재고가 남아 있더군요. 두 곳은 약속어음으로 수익을 부풀렸고요.”
“어음은….”
“거래 업체가 부도 직전에 돈을 지급할 능력이 없는 곳이란 게 문제죠. 아, 거기다 두 곳의 소프트웨어 회사의 경우 아직 프로그램의 프로토 타입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고요.”
재환이 조목조목 따지자 김현태는 인상을 한 번 쓰고 이강철을 바라봤다. 아까 이강철이 말한 대로 겉으로 봐서는 한성의 전략기획팀에서 만든 솔루션을 이용했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이강철이 말을 해야 할 시간이다.
이강철은 입을 잠시 벌리고 있다가 턱을 쓸었다. 재환이 저렇게 자세하게 조사를 했을 줄은 몰랐다. 그 만한 시간이 없었을 텐데 어떻게 저만큼 조사를 했는가.
“그 증거는 확실합니까?”
이강철의 말에 재환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이강철 사장님이 받아들이기 힘드신 거 압니다. 한성의 미래를 위해 힘쓰는 전략기획팀에서 실패했다고 믿기 힘드시겠죠.”
“실패가 아닙니다. 자그마한 실수죠.”
“실패든, 실수든. 그들의 실수로 20억이 허공으로 증발할 뻔 했습니다. 이건에 대해서는 어떻게 책임을 지실 겁니까?”
이강철은 눈을 부릅뜨고 재환을 노려보다가 흩뿌린 서류를 챙겨들었다.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노력하며 그는 말을 한마디씩 씹어 뱉었다.
“책임지고 전략기획팀에서 새로운 솔루션을 준비하겠습니다.”
“다음번엔 부디 제대로 된 솔루션을 가지고 오셨으면 좋겠네요.”
이강철이 이를 빠득 갈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가만히 있던 YK그룹의 이사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부터 만들어진 판에 대리로 사인만 하러 온 건데, 판이 엎어졌으니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두 사람이 떠나고 재환 홀로 남으니 김현태는 괜히 속이 울렁거렸다. 그런 호구를 보고 재환은 피식 웃었다.
“우리 시장님, 감기 기운 있으세요? 식은땀을 계속 흘리시네.”
“하하, 아무래도 몸이 안 좋은 가 보네요. 오늘은 먼저 들어가….”
“앉으시죠.”
일어나려던 김현태는 찍소리도 못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김현태는 재환의 눈치를 보며 놓인 차를 홀짝였다.
재환과 처음 만나고 반년이 지났다. 그 사이 김현태는 재환이 사라져 버리길 바랐지만 역으로 어마어마하게 성장했다. 카르텔에서 어찌 할 수 없는 공식 석상까지 마련해 자신을 찾아왔다.
그 때도 범상치 않은 녀석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 보니 더한 놈이다.
“전에 얘기했던 거 잊으신 건 아니죠?”
“나이가 있다 보니….”
“카르텔에 속한 이들의 정보 내놔요. 엮인 사람들, 거래 정보, 통과 준비중인 법률까지 전부.”
김현태는 잠시 앓는 소리를 내고 마른 세수를 했다.
“당장 모든 정보를 어떻게 알려드리겠습니까.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간 말이죠.”
재환은 손목시계를 한 번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번 회의까지는 그 안에 제가 말한 것들 전부 깔끔하게 정리해 주시기 바라요.”
재환이 회의실에서 나오니 밖에는 이강철이 서있었다. 다른 사람은 물린 건지 복도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강철은 재환의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로 성큼 다가왔다.
“언제까지 그렇게 나댈 수 있을 거 같아?”
“하는 꼬라지를 보니까 얼마나 나대든 문제될 건 없어 보이는데? KG 그룹을 먹을 거란 얘길 듣고도 아무것도 못했잖아.”
재환이 도리어 이강철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 접힌 옷깃을 정리해줬다. CCTV가 존재하니 주먹다짐이나 과격한 행동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압박감을 못 주는 건 아니다.
“눈 깔아, 새끼야.”
“이 새끼….”
“패배했으면 패배한 개처럼 꼬리 말고 알아서 기어 다니란 소리야. 자꾸 짖으면 된장 발라 버리고 싶어지잖아.”
나지막한 그 말을 남기고 재환은 복도를 떠났다. 뒤에서 이강철이 매섭게 노려보다가 다가와 재환의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제 나름대로의 분풀이인 모양이지만 재환에겐 어린애가 분을 못 참아서 행동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밖으로 나가보니 서진이 차 옆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강철을 너무 자극하신 거 아닙니까?”
방송국으로 돌아가는 중에 재환은 있었던 일을 서진에게 전해줬다.
“이강철은 겉으로 보이기엔 냉정하고, 차분하고, 이성적이지만 실제는 달라요. 형인 이한철보다 더 뜨거운 놈이죠. 어떻게든 복수를 하려고 칼을 갈고 있을 거에요.”
“그러니까 너무 위험한 거 아니냔 겁니다.”
“그냥 때리는 것보다 카운터 펀치가 아픈 법이잖아요. 게다가 저희 특성상 먼저 움직일 수는 없어요. 정당방위로 움직이는 수밖에 없죠.”
“그럼 이번 건은 제대로 박살 낼 수 있겠군요.”
서진은 보조석에 놔둔 신문을 재환에게 넘겼다. 재환이 회의에 들어간 사이에 나온 기사들이다.
조선, 중앙, 동아 세 신문의 1면에는 재환의 스캔들이 큼지막하게 실려있었다. 재환과 장미래가 TBS 1층에서 만난 사진을 두고, 추측성 내용을 써내려갔다.
“카더라 하는 기사지만 세 신문사에서 동시에 기사를 냈다는 점과 은근히 확신을 가지고 기사를 썼다는 점에서 문제가 될 거 같습니다.”
“반박 기사는요? 이동훈 대표가 가만 있지는 않을 텐데요?”
“그게…. 연락이 안됩니다.”
재환은 기사를 옆으로 치우고 자신의 휴대폰을 꺼냈다. 이동훈에게 직접적으로 연락을 했지만 여전히 받지 않았다.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잠수를 탄 건가? 이동훈 대표는 그 정도로 담이 작은 인간이 아니었을 텐데.
“지금 TBS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어요. 아무래도 대처가 필요하긴 합….”
“왼쪽!”
서진의 말이 끝나기 전에 덤프 트럭이 달려와 차의 옆을 후려쳤다. 차는 덤프 트럭이 밀고 가다가 건물에 부딪힌 후에야 멈춰섰다.
덤프 트럭이 도로를 막아 세운 탓에 도로는 아수라장이 됐다. 사람들은 멈춰서 웅성거렸고, 누군가가 112와 119에 신고를 했다. 혼란스러움이 점점 가중되어 갈 때, 덤프 트럭에 불이 붙었다.
“불이야!”
“차 안에 아직 사람 있어요!”
덤프 트럭에 붙은 불은 점차 커지더니 트럭 전체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트럭이 폭발했다.
콰광! 펑!
폭발로 불길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가까이에 있던 재환의 차에도 불이 옮겨 붙었다.
그 시점에서 재환은 정신을 차렸다. 깨진 유리창에 이마가 찢겼는지 피가 흘러 눈가를 덮었다. 피를 닦아내려 손을 들었지만 전신이 욱신거려서 원하는 대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하…, 흡!”
짧은 탄식을 내쉬고 숨을 멈춘 뒤 억지로 팔을 움직여 피를 닦아냈다. 그제야 주위가 눈에 들어왔다. 뜨거운 열기를 쏟아내는 불길이 사방에서 이글거렸고, 운전석에 있던 서진은 에어백이 터진 핸들에 머리를 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유서진, 서진아!”
힘껏 소리쳐도 소용없었다. 재환은 숨을 몇 번 고르면서 고통에 최대한 익숙해졌다. 참을 정도가 되고 나선 부서진 유리창을 마저 부수고 난 뒤 차에서 빠져 나왔다.
몇 번 더 굴러서 불길에서 적당히 멀어지니 소방관이 다가왔다.
“괜찮으세요? 데려가!”
“안에 사람 한 명 더 있어요!”
“도끼랑 망치 가져와! 폭발할 수 있으니까 본네트 쪽의 불부터 잡아!”
소방관들은 합심해서 불을 빠르게 진압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서진도 구출했다. 거기까지 지켜본 재환은 긴장을 풀고 다시 의식을 잃었다.
사건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남자는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돌아섰다. 그는 현장에서 적당히 멀어진 뒤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죄송합니다. 살았습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제대로 끝내두겠습니다. 아직 기회가 없어진 건 아니니까요.”
그는 대포폰을 반으로 부순 뒤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또 한 번의 폭발 소리를 듣고 골목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