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96
97화
그들은 재환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들이 갑이라고 여기자마자 관계가 뒤바뀌었다. 처음부터 갑이 될 거라 생각한 건 아니지만 받았다가 뺏기니 더 기분이 나빴다.
“뭘 원하시는 겁니까.”
“여러분과 YK 그룹간의 관계. 거짓을 조금도 보태지 않은 진실만을 말해요. 돈 얘기까지 다 한 시점에서 모른다고 잡아떼지는 않으시겠죠?”
“하….”
낚였다는 사실을 알아챈 그들은 기분이 팍 상했다. 자신들은 주먹으로, 힘으로 누군가를 짓누르는 쪽이지 짓눌리는 쪽은 아니었다.
그렇다보니 그들의 본성이 서서히 드러났다.
“우릴 가지고 노는 거냐?”
“가지고 놀다뇨. 어디까지나 당신들의 위치를 확인 시켜드렸을 뿐입니다. 근데 그런 것도 모를 정도로 멍청하면 얘기가 안 통하겠는데?”
“사람을 무시하는 건 재벌 특징이냐?”
“너희가 사람을 무시하니까 똑같이 대해주는 거야.”
재환은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며 비릿하게 웃었다.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가. 자신과 그들의 격차가 얼마나 큰 지 인지시켜줄 필요가 있어 보였다.
“사람이 좋게 대해줄 때 좋게 나왔어야지.”
“한 대 맞으면 말도 못할 게.”
“그렇게 생각하면 덤비던가.”
재환이 주먹질에는 자신이 없지만 웨이트를 꾸준히 해왔다. 깡패들에게 무작정 처맞을 정도로 나약하지는 않다.
물론 그럴 필요도 없다. 방에는 사각이 없도록 CCTV가 달려있다.
지시를 전달받은 경호팀이 이 방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니 주먹을 한대라도 날리는 순간 방에 들어와 그들을 즉각 제압할 것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깡패들은 주먹을 들어보였다.
“내가 중학생 때 너 같은 새끼들 많이 밟아봤거든? 쳐 맞으면 찍소리도 못할 것들이 말만 많았지. 그러니까 너 같은 놈들은 매가 약이란 거지.”
“8, 90년대에 생각이 멈춰 있는 사람인가 보네요. 거 참.”
당장이라도 주먹다짐이 일어날 상황이었지만 재환은 여유로웠다. 한 대 맞고 일이 잘 풀린다면 그보다 좋은 게 없다.
“야, 진정 좀 해.”
“그래 돈은 받아야 될 거 아냐.”
그나마 이성적인 다른 이들이 한 명을 말렸다. 성질대로 움직인 남자는 다른 이들이 막아서자 짜증을 냈지만 말을 들어 먹긴 했다.
쉽게 갈 수 있었는데, 아쉽다.
“제 동기가 무례한 태도를 보여 죄송합니다. 그 정보만 알려드리면 돈을 받을 수 있는 겁니까?”
“거짓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 돈을 주지.”
재환은 그들이 볼 수 있도록 옆에 마련해 둔 돈 가방을 가리켰다. 탐욕이 눈에 번져가는 걸 보니 다음 말을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 지 기대가 된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주는 정보가 거짓인지 아닌지를 내가 알 수 있어야겠지?”
“확인할 방법이 있다는 것처럼 말씀하시는 군요.”
“있지. 죄수의 딜레마라고 아나 모르겠네?”
딜레마가 뭔지 모르는 사람도 한 번 쯤은 들어봤을 만한 게 죄수의 딜레마다.
“제가 옆방으로 갈 테니 한 명씩 와서 내가 원하는 정보를 말하면 돼. 세 명이 번갈아가면서 들어오면 1시간 내로 끝나겠네.”
“그거면 됩니까?”
그렇다면 세 명이 말을 맞춰서 거짓 정보를 넘겨주는 게 베스트다. 상부인 YK에 할 말도 생기고, 회사는 멀쩡히 굴러갈 거고, 돈도 받을 수 있으니까.
그 정도 잔머리는 있는 사람들이다.
“세 명의 정보가 일치하면 이 자리에서 일시불로 현금 지급 해주지. 아까 당신들이 말한 금액에는 못 미치겠지만, 인당 2억 정도면 나쁘지 않은 제안이겠지?”
인당 2억이란 거금을 통 크게 주겠다는 말에 그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하는 법이다.
“대신 정보가 다르다면 내가 따로 조사를 하지. 그리고 진실을 말한 사람에게 3억을 주겠어. 당연한 말이지만 거짓을 말한 사람에겐 아무것도 없어.”
다 같이 2억을 받느냐, 혼자 3억을 받느냐.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다같이 2억이 이익이다. 하지만 그들은 동료의식 따위 없는 이들이다. 오히려 아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제일 많이 받아야 돼.’
‘저런 놈보다 내가 못 받을 수는 없지.’
재환은 불씨를 던져 넣고 돈 가방을 챙겨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비된 사람부터 옆방으로 들어와라. 뭐, 돈 생각 없으면 그대로 돌아가도 상관없고.”
여기서 돌아간다는 선택지를 고를 이는 없을 거다. 그게 이후를 생각하면 최선의 선택이란 걸 알면서도 아무도 그 선택지를 고르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그들은 뒷일을 생각하고 움직이는 이들이 아니니까.
재환이 응접실을 나오니 서진이 빈 옆방으로 안내했다.
“5분이 지나도 아무도 안 오면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그래요.”
재환이 빈 방으로 들어가고 서진이 응접실로 들어갔다. 재환이 나간 지 몇 초 됐다고 그들은 가면을 뒤집어쓰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뱉고 있었다.
“우리가 지시받은 사항만 전부 전달하자고. 그럼 모두가 2억을 받아 갈 수 있잖아?”
“고작 1억에 동료를 저버리지 말자고.”
“1억 더 늘어나 봤자 할 수 있는 것도 없어. 그거 받고 뒷산에 묻히는 것보다야 셋이 손을 잡는 게 훨씬 낫지.”
진심이 담기지 않은 허망한 대화를 지켜보던 서진이 문을 두드려서 주의를 끌었다.
“한 분 씩 안내를 도와드리겠습니다.”
서진은 안 봐도 이후의 상황을 알 거 같았다.
* * * * *
“도움이 안 되는 새끼들!”
최행열은 현장에서 있었던 일을 듣고 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그 놈들이 허튼 소리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정확했다.
“끄으으….”
“닥쳐!”
최행열은 신경질 적으로 신음을 흘리는 남자를 걷어찼다.
재환과 대면했던 셋 중 하나였던 그는 쇠파이프와 각목으로 두들겨 맞은 터라 몸이 성한 곳이 없었다. 얼굴이 뭉개진 걸 보자면 절로 동정심이 일 법도 했지만,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그런 마음을 가지지 않았다.
이 인간 때문에 모든 일이 망했다고 봐도 무방했으니까.
최행열은 몇 번 더 발로 걷어 찬 뒤 물었다.
“그러니까 너희는 메뉴얼대로 하기로 말을 맞췄는데, 한 놈이 안 그랬다는 거지?”
“마, 마읍이다….”
“그게 누군지 모르고?”
남자는 더 맞기 싫다는 일념 하에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최행열은 마른세수를 한 번 하고 옆에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다른 두 놈의 행방은?”
“도망치기 직전에 확보했습니다.”
“그럼 당장 안 데려오고 뭐하고 있어!”
최행열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다른 깡패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재환과 만났던 다른 두 깡패도 끌려 왔다.
그 과정에서 다소 폭력적인 조치가 이루어졌는지 두 사내의 얼굴은 피떡이 되어 있었다.
최행열은 그런 사정따위 봐주지 않고 다른 깡패가 들고 있는 몽둥이를 뺏어들었다.
“자, 지금부터 자수 하는 놈은 살려준다. 누구야?”
“사장님, 전 아닙니다. 한 번만 봐주십쇼.”
“저 놈 가방이 제일 무거웠습니다! 믿어주십쇼!”
깡패들은 어떻게든 살기 위해 자신이 하지 않았다며 발뺌을 했다. 그게 최행열의 화를 더 돋웠지만 죽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최행열은 그들의 말을 듣고 있다가 결국 몽둥이를 휘둘렀다.
“이 버러지 같은 새끼들!”
복날의 개를 패듯 북 터지는 소리가 연이어 들리다가 멈췄다. 당장 중환자실에 실려가도 이상할 게 없었지만 그들은 무릎을 꿇고 손을 싹싹 빌었다.
최행열은 담배를 꼬나물고 물었다.
“더 볼 것도 없겠네. 이것들 다 묻어버려.”
“회장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회장님!”
“강재환 그 놈이 이미 알고 있었단 말입니다! 오히려 저희가 모르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질질 끌려 나가던 깡패들은 어떻게든 살기 위해 발악했다. 최행열은 담배연기를 뱉고 고개를 까딱했다.
그 짧은 행동에 깡패들의 명줄이 조금 더 늘어났다.
“거짓말 하는 순간 다음 숨은 땅 밑에서 쉴 줄 알아라. 거기 빡빡머리. 강재환 회장이 다 알고 있었다고?”
발악하듯 말을 뱉었던 빡빡머리 깡패가 목이 부러져라 고개를 흔들었다.
“저희가 받은 용역 금액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이미 정보가 새어 나갔는데, 확인 차원에서 저희를 부른 겁니다! 아니면 제 앞에 들어갔던 이 놈이 전부 불었던가요!”
“회장님! 전 아닙니다!”
“넌 조용히 해.”
항변을 하려던 깡패의 입에 천쪼가리가 들이밀어졌다. 그 작은 천으로 인해 깡패는 제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강재환이 또 뭘 알고 있었지?”
“YK 그룹이 이번 일에 사활을 걸었다는 것과 또… 아! 오늘 뉴스가 나가면 이런 상황이 생길 거라고 했습니다!”
“……뭐?”
빡빡머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이렌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최행열은 순간 당황했지만 침착했다. 어차피 경찰은 자신의 편이다. 망보라고 세워둔 녀석들도 있으니 시간만 끌면 된다.
“이것들 전부 가둬놔. 뒷길에 차 준비해 뒀겠지?”
심문을 멈추고 현장을 빠져나가려던 최행열에게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이곳에 도착한 건 경찰만이 아니었다.
“빨리 찍어!”
“이거 다치면 보험처리 해주는 거죠?”
“잔소리 하지 말고!”
TBS의 다큐멘터리 PD와 기자, 거기에 한결까지 TBS의 직원들이 현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최행열은 쉼없이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에 할 말을 잊었다. 이건 진정한 의미로 체크메이트다.
자신의 인생은 끝났다.
조금 지나서 재환은 한결로부터 현장 상황을 전달받았다.
“이번엔 진짜 죽는 줄 알았다.”
“뭘 죽어. 카메라가 거기 몇 대인데, 거기 기자들하고 PD 실종되면 난리 나는 건 당연한데.”
“그거야 너한테 좋은 거고, 내 목숨은 하나잖아.”
“경찰들도 경호로 빠방하게 데리고 갔으면서 말은 많아.”
재환은 한결의 투정을 받아주면서 기사의 마지막 문장을 써넣었다.
YK 그룹의 실체란 제목을 단 기사는 내일 자신이 직접 보도 할 것이다. 이 기사가 나가면 YK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가 이뤄질 것이고, 거기에 연루된 부정이 폭로 될 것이다.
그러면 YK 그룹의 주가는 폭락하게 될 거고, 사업도 줄줄이 접게 될 거다.
완벽한 승리다.
“파업 쪽은 잘 해결 됐냐?”
“노조 측 대표를 만나서 얘기했어.”
YK그룹에서 작정하고 흔들려고 한 것이기에 그들도 어떻게 보면 피해자였다. 그 점을 이용해서 협상을 차분히 풀어나갔다.
이번 일이 발생한 원인은 YK그룹에게 있다. 그러니 이번 파업 자체를 없던 일로 하는 게 어떠냐. 자칫 사건이 커져서 노동자들이 다치는 건 우리도 원하는 바가 아니다. 보상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처우 개선을 위해 좀 더 힘써주겠다.
노조 입장에서는 썩 마음에 드는 답변이 아니지만 알겠다고 하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잘됐네.”
“맞아. 잘 해결됐어.”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갔다. 지나치게 순조로워서 기이할 정도다.
카르텔에게 있어서 더러운 짓을 해줄 인력은 필수 불가결하다. 그런데 YK 그룹이 없어지면 그 일을 해줄 역할이 사라지는 거니 적극적으로 막아설 텐데, 묘하게 조용했다.
‘이대로 끝나면 나한테는 이익이지만….’
예상대로 그렇게 흘러 갈 리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뉴스가 시작되기 전 재환을 찾아온 인물이 있었다.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오셨네요.”
“쯧.”
재환을 찾아온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구정혁 전 회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