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97
98화
재환은 구정혁 전 회장을 찬찬히 뜯어봤다. 목소리만 들었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 많이 늙었다. 아니, 이제야 얼굴이 원래 나이를 찾아간 것처럼도 보였다.
이전에는 정정하다 못해 중년의 나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었으니까.
“구정혁 회장님, 많이 늙으셨네요?”
“누가 회장이냐. 내 자리는 네놈이 뺏어 갔잖아. 써글 놈.”
외견이 바뀌었다고 그래도 사람이 완전히 바뀐 건 아니었다. 여전히 그는 구정혁이었다.
재환은 그를 아련하게 보다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저 데스크 가봐야 해서 바쁜데.”
“다 알면서도 능청은. 그 데스크 가는 일 때문에 왔다.”
예상 범위 내의 일이다.
구정혁은 몸을 앞으로 내밀며 말을 꺼냈다.
“네가 우리 두 아들 볼모로 넘긴 것에 대해선 넘어가마. 그 땐 그게 최선이었을 테니까. 까놓고 말해서 우리가 안전해져서 나쁠 건 없었지. 하지만 이러면 얘기가 좀 다르지.”
“이재명 회장이 뭐라 합니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짜증나는지 혀를 한 번 찼다.
회장일 때 경쟁 상대였던 이재명이었는데, 지금 그의 밑에서 눈치보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럴 만 했다.
“무조건 막으라고 하더군. 나한테 시켰다는 건 일이 안 풀릴 시 너하고 나의 관계를 터트리겠다는 협박일 거다.”
“그 정도도 모르겠습니까.”
“그럼 내가 부탁할게 뭔지도 알겠지?”
구정혁의 눈에는 간절함이 깃들어 있었다. 재환과 구정혁의 관계가 폭로되면 당연히 구준표, 구준열의 판결문도 같이 폭로될 것이다. 언론이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지 않아 조용히 묻혔던 그 판결이 밝혀지면 재환도 재환이지만, 구씨 일가는 확실하게 끝이다.
“한 발 물러나 줘라, 재환아.”
“하…. 구 회장님, 이번에 YK를 잘라내는 게 길게 보면 구 회장님한테도 이익인 거 아시죠?”
결국 구정혁과 두 아들이 한성에 볼모로 잡혀서 못 나오는 건 깡패들 때문이다. 그 깡패들의 지휘조직인 YK가 사라지면 볼모로 잡혀 있지 않아도 된다.
정확히는 빠져나와도 막을 사람이 없는 것이지만, 결과는 같다.
“차라리 제가 안전가옥을 제공해 드릴 테니 그 쪽에서 지내는 게 어떠십니까?”
“그게 가능할 거 같냐? 그 놈들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는데 말야.”
그는 그리 말하고 가슴께에 달린 브로치를 가리켰다. 저 브로치에는 GPS 기능이 달려있어서 정해진 루트를 벗어나면 곧바로 감시 인력에게 연락이 가게 되어 있다.
벗어날 방법은 없다.
“애들을 데리고 빠져 나오려면 한성 건물을 통째로 무너트려야 할 거다.”
“차라리 그럴 까요?”
“미쳤냐?”
구정혁의 힐난에 재환은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진심인데요.”
재환이 테이블에 마련된 수화기를 잠시 들었다가 놓자 서진이 안으로 들어왔다. 서진의 옆에는 건장한 체격의 보안팀 직원들이 있었다.
“준비 됐습니다.”
“회장님, 맡겨만 주십쇼.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가슴을 두드리며 자신있게 말하는 보안팀 직원을 보니 듬직하면서도 묘하게 미안했다.
이런 일하라고 고용한 직원들이 아니었으니까. 나중에 인센티브를 두둑이 챙겨줘야겠다 생각했다.
서진과 보안팀 직원을 번갈아 본 구정혁은 설마 하는 눈빛으로 재환을 바라봤다.
“진심이냐?”
“진심이라 했잖아요.”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상황이었기에 재환은 대응책도 준비를 해 놨다. 그 대응책이 다소 과격했지만, 짧은 시간에 효율적인 효과를 내려면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보안팀 직원들이 무력 진압을 하는 동안 두 아드님 데리고 나오시면 됩니다. 비서실장님이 차는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아버지, 브로치 저에게 주시죠.”
GPS기능이 달린 브로치는 서진에게 넘어갔다. 이제 서진이 시간을 끄는 사이 구정혁과 보안팀은 구 씨 일가가 구속된 곳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시간은 1시간 드릴 수 있습니다.”
“실패하면? 만약, 내 아들들이 빠져나오지 못하면 어쩔 거지?”
그럴 가능성도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다.
“만약 시간 내에 비서실장님을 만나지 못하시면 비서실장님이 저에게 따로 연락을 주실 겁니다. 그러면 제가 어느 정도 시간을 조정하겠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기사가 나가기 전까지 안 되면… 폭로는 강행할 겁니다.”
이번만이 기회인건 아니다 .기다리면 YK를 무너트릴 기회는 또 올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고, 또 다른 변수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니 지금 확실하게 꺾는 게 맞다.
“인정머리 없는 놈.”
“너무 그런 말 마시죠. 제 나름대로 열심히 계획을 짠 건데요.”
“이렇게 부실한 걸 계획이라 할 수 있겠냐.”
구정혁은 혀를 차고 턱을 괴었다. 시간을 생각하면 당장 움직이는 게 좋을 텐데도 그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재환과 서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구정혁은 뒷방 늙은이가 아니라 KG 그룹의 최정상에서 사업을 전두 지휘하던 때의 모습이 비춰졌다.
1분이 3분이 되고, 3분이 10분이 되어 갈 즈음 구정혁이 말문을 열었다.
“지금 도울 수 있는 보안팀 직원은 둘이 전부냐?”
“무리하면 한 명 정도 더 부를 순 있습니다.”
“그럼 한 명 더 불러와라.”
“네.”
“아, 제가 무전 넣겠습니다.”
보안팀 직원이 오자마자 구정혁은 본래 계획에서 보강된 계획을 내놨다.
“거기 깡패들은 순찰을 돌긴 하지만 안전 불감증이라서 어디 구석에 박혀서 시간을 때우고 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지금 시간은 교대 시간이야.”
“적당한 때에 들어가야 한다는 거군요.”
“그렇지. 그러면 최소한의 충돌로 탈출할 수 있을 거다.”
재환은 이야기를 듣고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저 탈출하는 부분은 구정혁과 보안팀 직원들이 합을 맞춰야 할 일이다.
재환은 자신이 할 일만 잘 하면 된다.
“뭐, 구 회장님이 알아서 잘 하십쇼. 전 연락 오면 그 때 움직이겠습니다.”
“회장 자리는 네가 가져갔다고 했지 않냐. 싸가지 없는 놈.”
“구 회장님이란 말이 입에 붙어서 잘 안 떨어지네요. 그리고 싸가지 없는 건 잘 아시면서.”
구정혁은 재환에 대해 몇 번 더 궁시렁거리다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걸 보고 재환은 서진의 어깨를 두드렸다.
“위치는 아시죠?”
“네.”
이번 계획에 있는 안전 가옥은 재환이 예전부터 준비해 놓은 것이다.
재환은 힘들게 쌓아 올린 이 자리는 자신의 진짜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기에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한성에서 구 씨 일가를 카드로 내세웠을 때, 그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
때문에 자신의 신변에 이상이 생길경우 예희와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 가옥을 준비해뒀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가짜 신분도 마련해둔 상태다.
‘죽어도 일정 시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단 걸 알았으니 필요 없어졌다 생각했는데, 이런 방식으로 쓸 수도 있었네.’
열심히 준비해온 자신을 칭찬하며 재환은 데스크로 내려갔다.
자신은 자신의 자리에서 할 일을 하면 된다.
구정혁은 서진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다른 보안팀 직원들은 미리 차를 대기하러 내려갔다.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상당히 멀리 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어색하고 무거운 공기가 감도는 엘리베이터에서 먼저 말을 꺼낸 건 구정혁이었다.
“지낼 만 하냐?”
뭐라 답해야 좋을까.
잘 지낸다고 하면 자기 아버지의 사업을 제 손으로 부수고 잘 지내는 천하의 망나니가 될 터고, 못 지낸다하면 비슷한 이유로 욕먹을 거 같았다.
어떤 답안을 바라는 걸까 고민하다가 서진은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말했다.
“네, 일감이 늘어나서 힘들긴 하지만 전보다는 낫습니다. 심적으로요.”
“……그러냐.”
다시 무거운 공기가 이어졌고, 이번에는 서진이 말문을 열었다.
“힘들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알긴 아는 구나.”
구정혁은 짜증을 담은 타박을 한 번 하고 엘리베이터의 남은 층수를 바라봤다. 서진과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본심을 토로했다.
“미안했다.”
그 짧은 한 마디에 많은 감정이 담겼음을 서진은 알 수 있었다. 어떤 일이 있었던 서진은 가장 오랫동안 그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좌했던 인물이니까.
지하 주차장으로 가기 전에 엘리베이터는 멈췄다. 아까 구정혁이 말했던 타이밍을 위해 서진은 나중에 차로 가기로 했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아버지.”
아버지란 말이 이렇게 낯설 수가 있나 싶다. 그건 구정혁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그래.”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고 구정혁은 얼굴을 한 번 쓸었다. 아직 뭘 시작도 안했는데 피로가 밀려왔다.
지하주차장에 도착하니 그의 휴대폰에 전화 한 통이 왔다. 발신인 미정이었지만 누군지는 뻔했다.
“구정혁씨, 아직입니까?”
1층에서 기다리고 있는 감시원의 목소리에 그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TBS에 들어온 지 30분도 채 안됐는데 닦달하는 꼴이라니.
그만큼 그들에게는 지금 상황이 악재라는 걸 수도 있다.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다. 놈이 배짱을 부리는 군.”
“강재환을 잘 회유하는 게 좋을 겁니다. 두 아드님 생각을 하셔야죠.”
“그 딴 말 안 해도 잘 아니까 초치지 말고 기다리기나 해.”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고 나니 보안팀 직원이 짙게 썬팅된 차를 끌고 다가왔다. 구정혁은 휴대폰을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차에 올라탔다.
“가지.”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 * * * *
이재명 회장은 턱을 괴고 앉아서 TV를 가만히 지켜봤다. 평소라면 거들떠도 보지 않을 TBS지만 지금만큼은 달랐다.
이번에 TBS가 YK 건을 보도 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앞으로 많은 것이 바뀐다.
카르텔은 중요한 패 하나를 잃어버리는 셈이고, 재환은 조커 패 하나를 또 손에 쥐는 셈이 되니까. 그러니 구정혁을 이용해 압박 넣었지만 잘 될지는 미지수였다.
‘구정혁 그 늙은이가 지 자식은 끔찍하게 싸고돌지. 그러니 허튼 짓을 하지 않을텐데…. 모르겠군.’
구정혁의 행동은 행동 방식은 파악이 가능했지만 재환이 어떻게 나올 지 알 수 없었다. 지금까지 해오던대로 언론 플레이도 불가능하니까.
재환이 할 수 있는 건 없어야 했다.
‘이번 건만 넘기면 YK를 다른 놈에게 넘기고, 다시 키우면 돼.’
잘 됐을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플랜을 짜는 중 전략 기획팀 직원이 서재로 뛰어 들어왔다.
“회장님!”
그 다급한 외침에 자신의 불길함이 현실이 됐단 걸 깨달았다. 하지만 어떻게 그게 이루어졌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보고해.”
“구 씨 일가가 전부 도망쳤습니다.”
“그걸 모를 거 같아! 어떻게 빠져나갔냐고! 경호 인력도 충분히 대기하고 있었잖아!”
“그, 그게….”
직원은 절대로 말하기 싫은 진실을 말해야만 했다.
“직원들이 잠시 한 눈을 팔았다고 합니다.”
이래서 태생이 깡패인 새끼들은 안 된다!
부글부글 화가 치밀었지만 이재명은 침착하게 물었다.
“GPS는? 휴대폰 위치 추적도 해놨을 거 아냐!”
“GPS는 부서졌고, 휴대폰은 TBS 지하 주차장에서 찾았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후우….”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이재명은 TV를 바라봤다. 타이밍 나쁘게 때마침 재환이 화면에 잡혔다.
이재명 회장에게는 그야말로 악몽같은 시나리오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