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738)
“안녕히 가세요.”
한교동은 미소를 지으며 여자를 배웅해 주었다.
“네, 들어가세요.”
여자가 택시를 타고 떠나자 그의 얼굴에서는 숨길 수 없는 함박웃음이 피어올랐다.
“아자!”
느낌이 좋았다.
이대로 잘만 하면 만남을 이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상당한 미녀다.
“내 인생 핀다!”
한교동이 그렇게 주먹을 불끈 쥐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좋냐?”
“응? 으억!”
노형진과 손채림이 뒤에 서 있었다.
“너희가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은. 이 옆이 우리 회사야.”
“어?”
“우리 회사라고.”
“그, 그래?”
“그래서, 좋냐?”
“어…… 음…… 어디부터 봤냐?”
“‘안녕하세요.’부터.”
처음부터 봤다는 소리다.
한교동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비밀로 해 주라. 그래도 맞선은 좀…… 그렇지 않냐?”
노형진은 한숨을 푹 쉬었다.
딱 봐도 이번 만남에 기대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을 알려 줘야 한다.
“그게 말이다…….”
노형진은 입맛을 다셨다.
“왜 그래? 혹시 네가 아는 여자야?”
“그건 아니고.”
노형진은 말을 하는 대신에 손채림을 바라보았다.
“얘가 아까 화장실에서 그 여자와 마주쳤거든.”
“화장실?”
“그래.”
손채림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설명했다.
노형진이 설명하는 것보다는 직접 설명하는 게 나을 테니까.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한교동의 얼굴에는 진한 실망감이 떠올랐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알바라니?”
“그러니까 그냥 횟수 한 번 차감하려고 대충 나왔다는 소리야.”
“그, 그럴 리 없어……. 얼마나 잘 대해 줬는데…….”
“알바니까 그렇지.”
좋게 대해 주고, 다음번에 안 보면 그만이다.
여기서 짜증을 부리면 컴플레인이 들어가니까 자기도 귀찮다.
“지금도 맞선 보러 간 거야.”
“서, 설마…….”
“미안하다.”
“…….”
혼이 나간 듯한 한교동.
믿고 싶지 않은 눈치이지만 어쩌겠는가, 현실인 것을.
“아니…… 도대체 왜 그런 게…….”
말을 더듬어 묻는 한교동.
이런 게 왜 알려지지 않았냐는 소리인 듯했다.
“이거 엄밀하게 말하면 범죄야.”
노형진은 그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그놈들이 사기를 치는 건데 걸리게 하겠어?”
절대 걸리지 않게 조심할 게 뻔했다.
애초에 맞선이라는 구조의 특성상, 걸리는 게 힘든 것도 사실이다.
한 번 만나고 여자가 애프터 신청을 거절하는 것은 흔하게 있는 일이고 불법이 아니니까.
“아니야……. 그럴 리 없어…….”
“확실해.”
“…….”
한참 침묵을 지키던 한교동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어딘지 알아?”
“응?”
“어딘지 아냐고. 그냥 너희들 말만 믿을 수는 없잖아.”
“알아.”
손채림은 안타깝게 말했다.
“가자.”
“내일도?”
“내일?”
“그래, 내일도 있더라. 내일은 어딘지 모르지만.”
한교동은 오만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마음을 강하게 먹었다.
“가자.”
* * *
“안타깝네.”
이틀간 한교동과 노형진, 손채림은 그녀의 동선을 따라다녔다.
그날은 알고 있으니 그곳에 가면 되는 것이었고, 다음 날은 그녀를 미행해서 따라다녔다.
“개자식들.”
그 결과 한교동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자신에게 말한 모든 게 거짓이었다.
심지어 사는 곳도 서울이 아니라 분당이었다.
“이건 빼도 박도 못하는데.”
노형진은 사진을 펼치면서 한숨을 쉬었다.
“진짜 너무하더라.”
손채림도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너도 봤지?”
“그래.”
그녀를 따라간 곳.
보통 맞선이 많이 이루어지는 장소들이었다.
나름 운치 있고 두 사람이 이야기하기 좋은 커피숍.
그런 커피숍이 많은 건 아니니까.
“그중 몇 명이나 알바일까?”
“모르지.”
그곳에 갔을 때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누가 봐도 맞선을 보는 듯한 사람들이었다.
한두 커플이 아니다.
주말을 이용해서 선을 보러 나온 사람들.
그들은 얼굴에 한가득 기대를 안고 선을 보고 있었다.
“어쩔래?”
“어쩌기는, 소송해야지.”
한교동은 차갑게 말했다.
“내가 그곳에서 벌써 세 번째야.”
“세 번째 맞선이라는 거야?”
“아니, 세 번째 가입이라고.”
“세 번째? 잠깐만, 그 말은……?”
“그래, 900만 원이나 냈어.”
“이런…….”
“그런데 매번 이런 식이었던 거라면…….”
어찌 보면 맞선까지 봐 가서면서 결혼하기에는 이른 나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집에서 가능하면 빨리 결혼하기를 원해서 그렇게 노력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다니.
“그 돈 찾아와야지.”
“증거가 애매하기는 한데.”
노형진은 턱을 문질렀다.
일단 한 건은 확실하다.
문제는, 확실한 건 한 건이라는 것뿐이다.
“더군다나 이건 너 하나의 문제가 아니야.”
손채림은 한교동의 말에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니라니?”
“내가 들은 회사는 다른 회사였어.”
“뭐?”
“한두 곳이 이런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거지.”
손채림은 한숨을 쉬었다.
“여자들끼리 있는 인터넷 카페에서 물어보면,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기 마련이거든.”
손채림은 여초 카페에 가입해서, 슬쩍 이런 알바 제안이 들어왔는데 해도 되는 거냐고 글을 올렸다.
“그런데 의외로 그런 알바 하는 사람이 제법 있더라고.”
“허.”
“대부분은 그거 사기 치는 거라고 하지 말라고는 하는데…….”
일부 짭짤한 알바라고 적극 추천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유부녀인데 그 알바 한다고 하더라.”
“유부녀가?”
“그래. 거기에다 그런 알바 하는 남자들도 있는 모양이야. 하긴, 이런 사기가 남녀 따지겠어? 아주 개판이야.”
유부녀가 맞선 자리에 나가는 경우도 있을 뿐만 아니라, 아예 그 알바비조차도 아깝다고 직원을 대타로 보내는 회사까지 있다는 것이다.
“그건 진짜 사기인데?”
“그런 알바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해.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더라고.”
“끄응…….”
노형진은 신음이 절로 나왔다.
가끔 사람들은 범죄를 너무 쉽게 생각한다.
“어떤 여자들은 그냥 나가서 밥이나 한 끼 얻어먹고 기분 좀 맞춰 주다 오는 게 어떠냐는 식이야. 그 바람에 싸움까지 났다니까.”
“응?”
“그냥…… 그렇게 되더라고.”
그게 범죄라는 여자들과, 그건 그냥 알바라고 주장하는 여자들끼리 댓글로 싸움까지 났다는 소리에 노형진은 혀를 끌끌 찼다.
“하여간 이리저리 알아보니까 알음알음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그래?”
“맞선 업체에 다닌다는 여자 말로는 회사마다 다른데, 보통 20~30% 정도는 그런 알바라고 봐야 한다고 하더라고. 그나마 메이저는 좀 덜한데 작은 곳은 심각한 모양이야.”
“심각한데. 맞선 시장이 얼마나 되지?”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못해도 500억은 되지 않을까?”
그러면 못해도 100억 이상이 사기로 버는 돈이라는 뜻이다.
노형진은 턱을 문질렀다.
“와, 이거 엄청 심각한데.”
매년 100억씩 사기를 친다.
결혼 시장에 맞선 업체가 등장한 것이 1990년대다.
그러니 20년이 넘게 그런 것이다.
“소송, 너희한테 맡기고 싶다.”
한교동은 착잡하게 말했다.
그냥 당한 게 너무나 억울했다.
“소송하는 건 어렵지 않은데…… 이기는 게 쉽지가 않아.”
“어째서?”
“우리가 가진 건, 네 상대로 나온 여자가 이틀 동안 맞선을 네 번 봤다는 것뿐이잖아.”
그리고 맞선의 횟수는 총 다섯 번.
그들이 그걸 한꺼번에 몰아서 한 거라고 하면 자신들은 할 말이 없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
“그럴 수는 없지. 아까 채림이도 말했잖아. 매년 이런 식으로 사기 치는 곳들이 한두 곳도 아닌 것 같은데.”
“그러면?”
“이건 기획 소송 쪽으로 가야 할 것 같아.”
“기획 소송?”
“그래.”
피해자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을 테니 전부 모아서 움직여야 하는 사건이었다.
“아무래도 이번 사건은 좀 힘들겠는데?”
노형진은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