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150
150화 신뢰와 사기 (3)
로드릭에게 있어서는 언제 나와 같은 평범하고 고요한 밤이었다. 퇴임 후 시골로 돌아온 그의 삶은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이상한 녀석이 꼬이긴 했지만.”
보안국 일을 그만둔 사람에게 와서 보안국 지부 중 하나를 알려달라고 하다니. 웃기는 놈이었다. 거기에 더해 말뽄새도 상당시 싸가지가 없었다.
하지만, 로드릭이 싫어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실력이 뒷받침되는 놈이었으니까.
‘조사 결과도 실존하는 인물에다가, 비밀정보부에서 보낸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있었고.’
더 확실하게 알기 위해서는 비밀정보부에 연락을 해야 했지만. 경쟁 부서라는 건 아무래도 그렇게까지 협조적으로 일을 진행할 수 없는 법이다.
이럴 때는 제국도 공화국처럼 하나의 기관으로 정보기관을 통합하는 게 어떨까 싶지만. 그렇게 쉽게 될 일이 아니다.
조직이 합쳐지면 나가야 하는 사람이 생기고, 제일 윗자리에 누가 앉는지에 대한 갈등이 생길 테니까.
“어쨌든.”
잠깐의 소란은 지나갔으니, 다시금 조용한 시간이 이어지겠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말이야.”
자리에서 일어난 로드릭이 안방을 나와 어둠에 잠긴 거실에 섰다.
“이리 나오게. 무슨 의도로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 차 한 잔은 대접할 테니.”
일견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조용한 공간이지만, 로드릭은 인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
복면을 쓴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눈에 보더라도 젊은 여성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체형이었고, 제법 오랜 시간 검을 단련했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혼자만 대접받을 생각인가? 동행자도 나오는 편이 어떨까 싶은데.”
대답 대신, 로드릭의 등 뒤에서 야타간이 휘둘러졌다.
“루나시커였나.”
공격을 피하며 식칼을 휘둘렀지만, 허공을 로드릭의 공격은 무위로 돌아갔다. 하지만, 휘둘러진 칼날만 보고도 로드릭은 상대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녹턴 1번. 야타간 형태의 배틀기어를 사용하는 조직을 로드릭이 모를 리 없다.
“요즘 왜 이리 나를 찾는 녀석들이 많은지.”
야타간을 휘두른 상대의 체형은 어린 소녀였다.
“아무리 내가 퇴물이라 해도, 이제 막 요원이 된 애송이를 보내?”
“진정하는 게 좋은데. 나 싸우고 싶은 생각은 없어.”
라고 말하며 이어지는 공격을 피한 로드릭이 헛웃음을 지었다. 말을 걸어서 위치를 혼란시키고는 대뜸 뒤통수를 노리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냥 애송이가 아니야.’
단 두 번의 공격과 회피였지만, 로드릭의 생각보다 상대의 실력이 뛰어나다. 이제 막 임무를 시작한 요원의 수준은 아니다.
“별일을 다 보겠….”
뒤이어, 방금 전까지 가만히 서 있던 여자가 로드릭을 노린다.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로드릭은 몸을 움직였다.
“?!”
하지만, 그 움직임을 알고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검의 궤적이 변하며 로드릭의 목을 노린다.
지금 그의 목숨을 노리는 건 일레나와 노라다. 그리고, 이 두 명의 실력은 로드릭이 별거 아니라는 듯이 가볍게 제압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건 보여.’
일레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계속 움직였다. 로드릭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고, 거기에 더해 노라의 움직임도 알 수 있다.
아군이 어떻게 움직일지, 그리고 그 아군의 움직임에 적이 어떻게 대항할지. 일레나는 알 수 있었고, 당연히 그 속에서 자신이 취해야 할 움직임도 파악할 수 있다.
완벽한 협공이라는 건, 일레나와 같은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는 오랜 연습이 필요한 기예가 아니었다.
“아가씨는 루나시커가 아닌 것 같은데. 왜 이리 합이 잘 맞는가.”
하지만, 그런 사실을 로드릭이 알고 있을 리 없다. 그의 경험에 미루어 판단할 때, 방금 전 일레나와 같은 움직임은 오랜 시간 서로 합을 맞춰본 사람들만이 가능한 움직임이었으니까.
대답 대신, 일레나는 복면을 쓴 채 검지를 들어올려 쉬이, 하는 소리를 냈다. 굳이 목소리를 낼 필요는 없으니까.
“말하고 싶지 않겠다는 걸로 알겠네.”
이제는 로드릭도 긴장하고 있었다. 꽤나 정이 들었던 이 집이 엉망이 되는 건 물론이고, 스스로의 부상 또한 각오했다.
‘그 새끼. 설마하니.’
루나시커가 어떻게 자신의 위치를 알아냈는가. 그 의문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일전에 찾아왔던 남자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이길 거야. 그리고 아저씨는 여기서 죽어.”
노라의 목소리와 함께, 벼락같이 휘둘러지는 야타간. 회피하자마자 로드릭이 마주한 것은 자신의 목을 노리고 벌새처럼 날아드는 일레나의 찌르기였다.
회피, 그리고 이어서 다시 회피. 일레나의 검은 집요하게 로드릭의 움직임을 추격하는 동시에, 노라가 공격할 틈을 만들어낸다.
‘환장하겠군.’
두 명의 합이 기이할 정도로 잘 맞는다. 적이 한 몸으로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까지 들 정도다.
어디로 움직여도 일레나의 검이 쫓아오고, 그로 인해 만들어진 빈틈을 노라의 야타간이 독사처럼 파고든다.
“흐읍!”
로드릭이 테이블을 붙잡고는 노라에게 집어 던지며, 식칼을 휘둘러 일레나의 다리를 노린다.
노라의 몸을 테이블이 강타하며 우직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아니었다. 테이블이 아작나는 소리다. 일레나는 당연하다는 듯 로드릭의 공격을 피하는 동시에 검을 내려찍는다.
공중제비를 돌며 피하는 동시에, 로드릭은 손에 잡힌 포크와 나이프 따위를 일레나에게 집어던진다.
고속으로 날아든 포크와 나이프는 가벼운 쇳소리와 함께 일레나의 검에 막혀 바닥에 떨어진다.
“좋아. 계속하자고.”
공격과 방어가 이루어지는 속도에 점차 가속이 붙는다.
빠르면서도 가벼운 움직임. 일레나와 노라는 그 무수한 공격들 중에서 반드시 막아내야 하는 것들을 골라내고, 그에 맞춰 대응한다.
눈을 깜박이는 타이밍조차 조절해야 한다. 잘못된 순간에 눈을 감으면, 가볍고도 빠른 죽음이 덮친다.
서로의 눈동자 움직임까지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집중한다.
협공 속에서, 로드릭은 조금씩 수세에 몰리고 있었지만 놀라울 정도로 차분했다.
‘지금!’
로드릭의 몸이 순간이동하며 일레나의 뒤를 노린다. 이 둘 중 실력이 더 뛰어난 건 노라지만, 가장 성가신 건 일레나였으니까.
실력이 뛰어난 녀석은 급습으로 목을 따기 힘들지만, 성가신 녀석은 급습을 통해 목을 딸 수 있다.
일레나가 죽으면 노라는 순식간에 압도할 수 있다는 것이 로드릭의 계산이었다.
“흠.”
하지만, 순간이동을 활용한 급습은 일레나의 비웃는 것 같은 짧은 숨소리와 함께 막혀버렸다.
‘알고 있었다고?’
라는 생각을 이어갈 여유도 없이, 로드릭은 자신의 정수리를 내려찍는 일레나의 팔꿈치를 가까스로 막아냈다.
“이제 못 날뛰겠네?”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야타간의 칼날이 로드릭의 허벅지를 핥았다.
피가 흘러내린다.
상처는 어떻게든 대동맥을 비껴갔지만, 근육을 다치게 할 정도로 깊었다. 움직일 수 있어도, 방금 전과 같은 날렵함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
‘이제 슬슬.’
물론, 노라가 원했다면 대동맥까지 따서 느리지만 확실한 죽음을 선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당면한 목표는 로드릭의 죽음이 아니다.
“괜찮으십니까!?”
쾅! 하고 문이 열리며 카이루스가 들이닥쳤다. 예정된 시간에, 예정된 수순에 따라 벌어진 일이었다.
카이루스는 대뜸 배틀기어를 뽑아들고 노라와 일레나에게 달려들었다.
“이 새끼들이 감히!”
쾅! 하는 소리와 카이루스가 휘두른 검이 일레나의 검과 격돌한다.
‘이제 가라.’
‘조금 더 있다가.’
적의감 가득한 목소리와는 달리, 두 사람의 시선은 부지런히 서로를 향해 신호를 던진다.
“자네!”
이런 상황을 알 도리가 없는 로드릭 입장에서는 갑자기 튀어나온 카이루스가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숨겨둔 일격이 들켜서 역공을 당했고, 심지어 다리에 상처를 입어 패색이 짙은 상황이었으니까.
“괜찮으십니까?”
“문제없어. 빨리 이 자식들부터!”
카이루스의 실력은 이미 검을 나눠본 로드릭도 알고 있다.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는 확신 속에 그는 다시금 식칼을 거머쥐었다.
‘약간 더 교전을 해야겠군.’
여기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일레나와 노라가 후퇴해버리면 뒷맛이 살짝 애매해진다. 기왕 의심을 털어내기 위해 이러한 습격을 꾸며낸 만큼, 더 확실하게 일을 처리할 필요가 있다.
카이루스는 로드릭과 보조를 맞춰가며, 일레나와 노라를 서서히 압박해나갔다.
제한점이 많아서 제대로 된 실력을 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로드릭을 보조하는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쉬지 않고 싸움이 이어지며 점점 로드릭의 집안 꼴이 개판이 되어간다.
“….”
이즈음 하면 되겠지. 카이루스가 슬쩍 노라에게만 보이도록 수신호를 보냈다. 노라와 일레나는 잠깐 서로 시선을 교환한 다음,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어딜 도망가려고!”
“지금 쫓아가시면 위험합니다!”
기세를 탄 로드릭은 일레나와 노라를 추격하려 했지만, 카이루스가 제지했다.
“왜! …막는 건가.”
순간 울컥했던 로드릭이었지만, 그 또한 카이루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서 살아나갈 수 없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화를 억눌렀다.
“상처부터 치료해야 합니다. 이대로 두면 큰일 날 겁니다.”
카이루스의 말에 로드릭이 자신의 다리에 난 상처를 바라봤다. 죽을 상처는 아니지만, 이대로 둔 채 계속 움직이면 더욱 악화되어서 종국에는 영구적으로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우선 치료부터 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안방을 뒤져보면 응급상자가 있을 거야.”
말이 응급상자지, 이런 경우를 대비하기 위한 바늘이나 실 같은 것도 있을 정도다.
부르파 같은 작은 마을에 제대로 된 병원이 있을 리 없으니, 이 정도는 대비를 해둬야 한다.
“다행이군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카이루스는 곧바로 안방을 뒤져 로드릭이 말한 것들을 챙긴 다음, 치료를 시작했다.
말이 치료지 그냥 썰린 곳을 소독하고 봉합할 뿐이다.
“내 평생 상처 입을 일이 없었는데 말이야.”
청와기사단 출신은 일반적으로 상처를 입지 않는다. 한 대라도 맞으면 치명상이 되어버리는 특성상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이 정도로 끝나서 다행입니다. 잘 조치하면 분명히.”
“낫겠지.”
봉합은 깔끔하게 끝났다. 카이루스가 이 정도 상처도 봉합하지 못하는 게 이상하니까.
“근데, 자네는 무슨 일로?”
잠깐 자신의 상처를 살펴보며 고민에 빠져 있던 로드릭이 가볍게 지나가는 듯한 어투로 카이루스에게 질문했다.
물론, 그 손은 언제든지 배틀기어를 뽑아들 수 있도록 대비한 상태였다.
“아, 그렇지 참. 잠시만요.”
카이루스가 까먹고 있었다는 듯이 웃으며 문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뒤, 로드릭 앞에 커다란 술병을 하나 내밀었다.
“…?”
“머루주입니다. 촌장에게 받았지요. 좀처럼 만날 기회가 없는 분 아니십니까. 혹시 생각 있으시면 술잔이라도 기울이면서 로드릭 씨의 과거 이야기를 들어볼까 했는데.”
카이루스의 말을 듣고 있던 로드릭이 헛웃음을 흘렸다.
“거 더럽게 실없는 녀석이군.”
“…어렵겠습니까?”
카이루스가 슬쩍슬쩍 눈치를 보자, 로드릭은 나쁘지 않은 기분이 되었다. 자기 이야기 듣고 싶어서 술을 챙겨온 사람인데, 거기에 더해 죽을 뻔한 상황에서 구명줄 역할까지 해주었다.
“부엌 찬장을 살펴보면, 이전에 선물받은 어란이 있을 거야. 얇게 썰어서 먹으면 술안주로 좋지.”
“아, 바로 챙겨오겠습니다! 그나저나, 상처를 입으셨는데.”
카이루스의 말에 로드릭이 손을 휘휘 저었다.
“술 몇 잔 마신다고 상처가 덧나 죽을 팔자는 아니니 걱정 말고.”
“감사합니다!”
카이루스는 기쁨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실제로 기쁨에 가득 차 있었다.
원하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다른 잡다한 썰까지 다 들어줘야 하지만.
결국 로드릭은 카이루스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하게 될 거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