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Treasure Sword RAW novel - Chapter 101
101
천애비검(天涯飛劍) 5
제21장 기동(起動)
1
아침이면 산속을 돌아다니면서 산책을 즐겼다.
어제까지 느꼈던 세상은 사라지고 없다. 오늘 보는 세상은 최소한 어제까지 그가 봤던 세상은 아니다.
그에게는 진기가 있다.
언제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본인도 모르는 진기가 몸속에서 굽이굽이 흐른다.
빛이라고 느꼈던 것이 진기이며, 통로라고 생각했던 곳이 경략이다.
진기는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서 소주천(小周天), 대주천(大周天)을 이룬다.
앉으나 서나, 걷고 있으나 뛰고 있으나…… 몸속에 진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감지한다.
그 느낌은 매우 좋다. 마치 부드러운 기류가 온 몸을 휘감고 있는 것 같다. 손과 발에 힘을 주고, 눈을 밝게 해주고, 후각을 강화시켜 준다.
이런 느낌은 예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진기라는 것이 무엇인지, 진기라는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어떤 방식으로 운용되며, 어떤 힘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 진기에 대한 이해가 정립되자 세상 전체가 달라보였다.
대자연으로부터 진기를 받아들이며, 백회혈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맑고 활기찬 기운을 감지하며, 그리고 그것들이 몸속에 있음을 확인하면서 천천히 걷는다.
귀사령주는 운공조식이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심공도 가르쳐 주었다.
자신의 밑천이 틀림없을 내공심법인데, 그는 참고삼아서 듣기만 했을 뿐, 운용은 하지 않았다.
진기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론상으로 정립했으면 됐다.
귀사령주가 수련한 내공심법과 자신이 받아들이는 진기는 성질이 다르다.
다른 것을 같은 방식으로 운용할 수는 없다.
귀사령주는 운공의 시작점을 단전으로 잡는다. 하지만 자신은 백회혈이다.
방식도 다르고 진기 형상과정도 다르다.
이제는 모두 다 알았다.
쇠만 다룰 줄 알았던 사람이 이제는 진기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참 웃기지 않은가. 진기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것을 사용했으며, 또 그런 진기를 활용해서 비성검문 수호자들을 죽였다니…… 봉사 문고리 잡기도 이만하면 감탄 할 만하지 않은가.
산책에서 돌아오면 장작을 팼다.
땔감은 몇 년 쓸 만큼 많이 쌓였다. 그래도 또 장작을 팬다.
천천히…… 천천히……
진기가 몸의 움직임에 따라서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살피는 게 목적이다.
도끼를 들어올린다.
최대한 천천히 들어올린다.
손끝에서부터 팔꿈치, 그리고 상박에 전해지는 압력이 각기 다르다. 왼팔과 오른팔의 압력도 다르다.
그런 다름 속에서 진기의 흐름을 감지한다.
예전에는 경맥이라는 것을 몰랐는데, 이제는 눈으로 보듯이 찾을 수 있다. 예전에는 빛이 흘러가는 통로가 경맥이구나 싶었는데, 이제는 어떤 경맥을 흐르고 있는지 알아낸다.
그는 진기를 완전히 이해했다.
이 이해라는 말은 매우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이해했다’고 하는 말은 단지 알았다는 뜻이 아니다. 신이 구름 위에서 지상을 굽어보듯이, 이해한 부분에 대해서는 늘 여유를 가지고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
천천히…… 천천히……
굳이 장작을 팰 필요는 없다. 도끼를 들어올리고, 내리치는 한 동작이 완벽해지면 어쩔 수 없이 장작을 두들긴다. 허나 일부러 기를 쓰고 장작을 패지는 않는다.
해과월은 도끼를 들었다.
“굉장하군요.”
지다성 운벽슬은 눈을 빛냈다.
해과월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들 중에서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공을 사용하지 못했다. 아니, 일초반식조차 배우지 않았다.
기연을 만난 것도 아니다.
그는 늘 쇠와 불만 쳐다보며 살았다.
오늘은 어떤 짓을 하나. 오늘은 또 어떤 검을 만들까? 혹여 녹영철이라도 구하지 않을까?
이것이 그를 바라보는 눈이었다.
그런데 그가 절정고수로 변모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무공의 무자도 모르던 사람이 느닷없이 청천맹 대주들과 버금가는 절정무인이 되어서 나타났다.
이런 일을 이해할 사람은 없다.
그가 비성검문 검사들과의 싸움에서 상처를 입고 죽음 직전까지 치몰린 것은 당연하다.
그는 무공은 강해졌을지 몰라도 경험이 없다. 무인이라는 사람들이 이해득실에 따라서 얼마나 사악해질 수 있는지 전혀 모른다. 때에 따라서는 초절정고수라는 자들조차 합공을 서슴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러니 당한다.
비성검문 수호자가 그의 몸에 검을 꽂았다.
그런데도 목숨을 구했다.
이 부분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
직접 그의 몸에 검을 꽂은 자가 해과월이 멀쩡하게 살아있는 모습을 봤다면 눈을 비비고 또 비볐을 것이다.
물론 그가 살아난 데는 자신의 공이 크다.
그녀가 유림의 비약(秘藥)을 꺼내오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 죽었거나 반병신이 되어 있을 것이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지금 저렇게 서있을 수는 없다.
검에 관통당한 자가, 그것도 사혈(死穴)을 꿰뚫린 자가 살아났다.
놀라움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한다. 쇠만 아는 장인이 절대 강자의 면모를 띄기 시작했다.
도끼를 들어 올리는 모습…… 저것은 최상승 검도다.
“내공심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후후! 수련하지 않더군. 귀사령의 무공이 외면당했어. 후후후!”
귀사령주가 쓴웃음을 흘렸다.
“비비를 대하는 태도는 어때요?”
“진심이야.”
“홍화문은 정말 재주가 비상하군요.”
운벽슬이 고개를 설래 설래 저었다.
필요하면 다가서고, 볼일이 끝나면 냉정하게 돌아선다. 그런데도 사내들은 그녀들을 잊지 못한다.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을 것처럼 헤어졌다가도 모습을 드러내기만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찰떡궁합이 된다.
그녀도 여인이지만 홍화문의 재주에는 혀가 내둘러진다.
‘그것이 꼭 재주뿐일까……’
귀사령주는 목구멍 밖으로 새어나오려는 음성을 꾹 눌러 삼켰다.
홍화문의 진산비기는 진심이다.
홍화문에서 제일 먼저 가르치는 것이 절대 가식으로 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런 가르침을 베풀기 때문에 준비가 덜 된 여인은 내놓지 않는다. 또 준비가 완벽하게 끝난 여인이라고 해도, 설사 수십 번에 걸쳐서 임무를 완수한 백전노장이라고 해도 언제든 애정사에 휘말릴 위험이 내포되어 있다.
귀사령주는 말을 아꼈다.
그가 보기에 조카는 이미 애정사에 휘말렸다.
해과월이라는 젊은 장인에게 자신을 완전히 내주고 있다.
실례로 홍화문 여인들은 남자와 정사를 나누더라도 절대 임신은 하지 않는다. 특정한 목적이 있어서 임신까지도 이용해야 할 상황이 아니라면 모를까, 절대 주의한다.
그녀들은 사내와 정사를 갖기 전에 약을 복용한다. 좀 더 정확한 방법으로는 독각녹사(獨角綠蛇)의 독액을 희석시켜서 밀궁에 뿌리기도 한다.
어떤 방법이든 효과는 뛰어나다.
헌데 비비는 그런 방책을 쓰지 않는다. 남몰래 쓰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방책으로 쓰이는 약냄새가 일절 풍기지 않는 것은 확실하다.
그녀는 이미 애정사에 휘말릴 것 같다.
역시 조카를 불러내면 안 되는 거였다.
그녀의 뜻이 홍화문에 있다면…… 해과월과 또 다시 신방을 꾸며주면 안 되는 거였다.
운벽슬이 해과월을 지켜보다가 말했다.
“내일은 비무 한 번 해보세요.”
“꼭 그래야만 하나?”
“어느 정도의 고수인지 확실히 알아야겠어요. 내 짐작이 맞는다면…… 우린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해요. 지금 벌이는 일을 일체 중지하고 다시 계획을 짜야 해요.”
“그 정도인가?”
“전 저 사람이 주맹주를 상대할 수 있다고 봐요.”
“뭐, 뭣!”
귀사령주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
그는 너무 놀란 나머지 하마터면 경악성을 토해낼 뻔했다.
해과월이 절정고수라는 것은 그도 안다. 사연은 모르지만 자신과 필적할 만한 고수로 발돋움한 것은 분명하다.
그런 점이 놀라운 것은 아니다.
운벽슬의 말은, 그녀가 말한 뜻은 해과월로 하여금 주한극을 상대하게 만든다는 뜻이지 않나.
해과월로 주한극을 친다.
해과월을 무림 영웅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 힘으로 마출성을 상대하게 한다.
운벽슬의 머릿속이 환히 읽혔다.
“저 놈이 고수가 된 것은 확실하지만 맹주를 상대할 정도는 아니라고 보는데.”
“그러니 확실히 알아야죠. 내일은 비무를 해보세요. 심공도 전수해주셨으면서 그까짓 비무 한 번 못해줘요?”
“흠!”
“호호호! 걱정 마세요. 령주께서 지더라도 소문내지 않을 테니까.”
운벽슬이 농담을 건네 왔지만 그는 농담으로 받지 못했다.
해과월이 진정 주한극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큰 것일까? 아무리 봐도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좋아. 내일 기회를 봐서 해보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쒜엑! 타악!
도끼가 장작을 팼다. 아니, 패는 것이 아니라 나무의 성질과 쇠의 성질이 하나로 합쳐졌다. 그러다가 나무의 성질이 두 개로 갈라져서 툭 떨어져 나갔다.
패는 것이 아니다. 가르는 것이 아니다. 원래 갈라져 있던 것을 떼어냈을 뿐이다.
해과월은 진기의 묘용 속에 깊이 빠져들었다.
‘재미있군.’
재미있는 일은 또 있다.
삼십 장 정도 떨어진 숲속에 일남일녀가 있다. 귀사령주와 운벽슬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
귀사령주는 모습을 드러낸 사람이다.
모옥에서 같이 숙식을 하면서 이것저것 무공에 대한 것들을 세심하게 가르쳐 준다.
운벽술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는 숲속에 숨어서 지켜본다. 늘 있는 것은 아니고, 필요에 따라서 왔다 갔다 하는데 자신 앞에 나서지 않는다. 아마도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싶은가 보다.
그녀의 존재를 오래 전에 찾아냈다.
그녀의 냄새가 풍긴다. 비비와는 다른 여인의 냄새가 숲속에서 풍겨온다.
언뜻 눈으로 식별할 때도 있다.
그녀는 자신이 보고, 냄새 맡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하다.
하기는 그런 점에서는 귀사령주도 마음을 놓고 있다. 자신에게 힘을 주는 근원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 힘의 묘용도 모르는 게 당연하다.
운벽슬은 오랜 만에 왔다.
한 달 만인가?
오래 전에 와서 자신의 모습을 살피고 간 후에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자신을 보고 있다.
‘떠날 때가 됐는가……’
그는 도끼를 들어올렸다. 허나 도끼가 보이지 않는다. 차디찬 쇳덩이 위에 비비의 얼굴이 그려진다.
두 사람, 언제든 이별할 준비를 해왔다.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비비가 없을 지도 모르겠다. 간다는 인사도 없이 가버릴 지도 모르겠다. 몸이 다 나았으니 지금 당장 떠난다고 해도 하등 이상하지 않다.
이것은 자신이 그녀를 보는 눈이다.
그녀는 다른 눈으로 이별을 본다.
해과월의 상처가 다 나았다. 그러니 이제 소용되는 곳으로 가야 한다. 예전에는 장인이었기 때문에 굳이 떠날 일이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그는 비성검문 검사를 상대할 수 있다. 주한극 맹주에게 검을 들이댄 사람이다. 외삼촌이 그를 살리라고 그녀를 불러낸 것, 약을 제공해 준 것…… 이 모든 일이 끝을 볼 때다.
그녀는 그런 눈길도 해과월 봤다.
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을 나눴다.
서로 말을 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이번 사랑이 마지막 사랑이 될 수도 있다는 심정에서 절실하게 사랑을 나눴다.
시간이 지나가는 게 아깝다.
밤이 새는 게 아쉽다.
그러다가 잠이 들고, 눈을 뜬다. 그리고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떠나지 않았구나.’
그랬는데…… 이제는 정말로 이별을 나눌 때가 온 것 같다.
그는 진기를 감지하지 않고 힘껏 도낄르 내리쳤다.
쒜엑! 퍼억!
장작이 마치 철퇴에 짓뭉개진 것처럼 우지끈 부서져 나갔다.
운벽슬이 찾아왔다.
사람을 결코 편안하게 내버려두지 않는 여인이 찾아와서 긴 이야기를 나눈다. 자신을 유심히 지켜본다. 아주 유심히…… 긴 시간동안 지켜본다.
해과월은 도끼를 내려놨다.
2
아침 기운이 매우 상쾌하다.
일찍 일어나 아침이슬을 밟는 게 좋다. 아침의 맑고 차가운 기운이 살갗에 적셔드는 느낌이 좋다.
귀사령주는 문을 밀치고 나섰다. 헌데,
“……!”
그의 눈에 이채가 번뜩였다.
마당에 해과월과 비비가 앉아있다.
다른 때 같으면 침상에 틀어박혀 꿈나라에 젖어있을 시간이다. 두 사람 중에서 비비가 먼저 일어나는데, 그녀가 일어날 시간도 반 시진쯤은 더 남았다.
두 사람은 모옥을 향해서 앉아있다.
해과월은 장중한 모습으로, 비비는 다소곳이 앉아서 땅만 쳐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