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Treasure Sword RAW novel - Chapter 11
11
맥이 탁 풀린다.
이제는 정말 어쩔 수 없다. 뭘 하려고 해도 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원망은 않지?”
푸욱!
배에서 극통이 일어났다.
불에 달군 인두가 배를 뚫고 들어선다. 오장육부를 휘젓고, 온몸을 불사른다.
‘끄으으윽!’
해과월은 소리 없는 비명을 토해냈다.
푸욱! 푸욱! 푹!
수교빈은 그의 몸을 쑤시고 또 쑤셨다. 온몸이 피범벅이 되도록 계속 찔러댔다.
“앗! 이러면 안 됩니다! 아이쿠!”
다급히 뛰어 들어오는 옥졸의 음성이 들렸다.
그것으로 끝이다. 의식이 가물가물해지더니 끝내는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제3장 배신은 일어나고
1
지이잉!
검이 운다.
순간, 십여 명의 무인이 불숙 나타나며 일검견혼 주한극의 주위를 에워쌌다.
지이잉!
검이 또 운다.
“허허! 괜찮다. 이놈이 오늘 따라 극성인 것을 보니, 아무래도 피바람이 불 날인 것 같구나.”
주한극은 애검을 토닥거리며 말에 올랐다.
검명(劍鳴)은 죽음을 예고한다.
주인의 죽음이든 타인의 죽음이든 죽는 대상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다만 죽음을 즐긴다. 그래서 기쁨의 울음을 토해낸다.
무인들은 이런 현상을 두고 검에 영성(靈性)이 있어서 경고를 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천만에!
경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즐기는 것이다.
주한극은 오랜 경험으로 검의 소리를 구분하게 되었다.
살수가 지척에 있을 때, 검은 아주 강한 떨림을 보인다. 독이 있을 때는 가늘고 빠른 떨림이 있다.
살수가 강하거나, 독이 강하면 떨림도 강하다. 무시할 수 있는 정도면 떨림도 약하다.
이번에는 약하다.
떨기는 하는데 독이나 살수가 있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하다.
지이잉!
걸인이 잔칫집을 쓰윽 구경하고 지나갈 때처럼 아주 가볍게 투욱 던지고 지나간다.
주한극은 산전수전 다 겪었다.
그런 사람에게 이 정도의 경고는 입가에 미소가 그려질 정도의 심심풀이에 불과하다.
그가 말고삐를 낚아채며 말했다.
“소란 피우지 말고 가자!”
이상증세는 청천맹을 이십 리쯤 벗어나면서부터 발생했다.
“큭!”
주한극은 느닷없이 치민 가슴 통증에 한손으로 가슴을 부여잡고 쩔쩔 맸다.
“맹주님!”
주한극의 뒤꽁무니를 바짝 따라오던 탁좌량이 깜짝 놀라서 달려 나왔다. 탁좌량과 말머리를 나란히 하던 무인 십여 명은 재빨리 방원진(方圓陣) 형성하며, 맹주를 에워쌌다.
“괜찮으십니까!”
그들 중 한 명이 말했다.
“괜찮다. 소란 떨지 마라.”
주한극이 가슴을 쓸어내며 말했다.
창으로 찌른 듯 쿡 하고 치밀었던 통증이 말끔히 사라졌다.
하지만 주한극의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얼굴은 붉게 상기되고, 가슴을 부여잡은 손은 긴장으로 잔뜩 굳어졌다.
한 번의 심장발작이 얼마나 극통을 주었는지 여실히 읽혔다.
천하제일의 검사도 심장마비에는 속수무책이다.
그렇다. 심장 발작이 일어나면 신이라고 해도 꼼짝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정도 되는 무인이면 기혈 조정을 통해서 사전에 좋지 않은 부분을 점검할 수 있다.
심장에 무리가 간다는 건 있을 수 없다. 그토록 소중한 기관에 이상이 생긴 것을 모를 리 없다. 운기를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는데, 만약 이상이 있었으면 진작 발견했을 게다.
‘독!’
어떻게 혈황검의 영성을 뚫었는지 모르지만 독에 중독된 현상이다.
“돌아가셔야 합니다.”
탁좌량이 근심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그때,
지이잉!
또 다시 혈황검이 울었다.
이번에는 청천맹에서 말에 올라탈 때보다도 약했다. 검명이 아주 약해서 마침 혈황검에 신경을 쏟고 있지 않았다면 눈치 채지 못했을 게다.
맹주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가자.”
그가 다시 고삐를 쥐었다.
“정말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허허! 이젠 나도 늙었나 보구나.”
맹주 주한극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흘렀다.
“크윽!”
두 번째 통증이 왔다.
이번에는 조금 더 심했다. 말 등에 엎드려서 컥컥거리며 큰 숨을 들이킬 정도로 극통이 치밀었다.
“맹주님!”
“결전(決戰)!”
탁좌량은 맹주에게 달려왔고, 무인 십여 명은 검을 뽑아들고 사주경계에 나섰다.
이제는 확실해졌다. 누군가가 암습을 시도했다. 그리고 어처구니없게도 맹주께서 걸려들었다.
“맹주님!”
탁좌량이 맹주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려고 할 때,
지이잉! 지잉!
혈황검이 탁좌량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울었다. 강렬하게, 짧게, 그리고 소름끼치게.
“결국.”
맹주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가득했다. 눈동자도 새빨갛게 충혈 되어 핏물이 베인 것 같다. 마치 지옥불 속에 떨어진 사람이 피를 뚝뚝 흘리면서 기어 나온 형상이다.
“맹주님!”
호신위장(護身衛將)이 가까이 다가와 말고삐를 잡아챘다.
맹주의 상태가 말 위에 앉아있기도 힘들 정도로 위태로워보였기 때문이다.
맹주가 고개를 들어 탁좌량을 쳐다봤다.
“뭐냐?”
짤막한 물음, 많은 말이 담긴 물음.
탁좌량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맹주의 두 눈이 혈귀처럼 새빨개지는 것을 본 순간, 결심을 했다.
“비( )입니다.”
“비? 진드기 말이냐?”
“조금 독한 놈입니다. 흡착전비(吸着栓 )라는 놈이죠.”
“이익!”
호신위장이 검을 들어 탁좌량을 겨눴다.
방원진을 구성한 무인들도 절반은 돌아서서 탁좌량을 노렸다.
탁좌량의 말뜻이 무엇인가. 맹주를 암산한 사람이 자신이라고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맹주가 암산을 당했다. 아주 위험한 처지다.
“군장, 배신이오?”
호신위장이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
“배신? 후후후! 배신이라는 말은 신뢰를 등졌다는 뜻인데, 맹주께서 언제 우리를 신뢰한 적이 있던가? 그러니 배신은 아니고…… 그냥 맹주의 그늘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이라고 해두지.”
“좋소. 강을 건넌 것으로 알겠소. 쳐라!”
호신위장의 말이 떨이지기 무섭게, 그를 노리고 있던 검 다섯 자리가 맹렬하게 지쳐들었다.
쒜엑! 쒜에엑! 쒜엑!
다섯 자루의 검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뻗고, 거두고, 치고, 베고, 치올린다.
검은 다섯 자루이나 움직임은 하나다. 쾌속함은 번개 같고, 변화는 막측하다. 어디에서 검이 날아올지 예측할 수 없고, 검선(劍先)이 움직인다 싶으면 어느새 움직임을 끝내고 돌아간다.
이들은 무당파(武當派)의 도인(道人)들이다.
속인의 옷을 입었고, 머리도 틀지 않았지만 분명히 천(天) 자(字) 돌림을 쓰는 무당파 고수다.
그들이 평생 동안 갈고 닦은 오행검진(五行劍陣)을 펼치고 있다.
탁좌량은 털끝 같은 차이로 서너 개의 검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나서야 검을 뽑았다.
스릉!
그가 검을 뽑자마자 서슬 퍼런 한광이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단지 검광만 차가운 것이 아니다. 실제로 주위 공기가 피부로 감지될 만큼 서늘해졌다.
“한백신공(寒魄神功)!”
호신위장이 경고하는 의미에서 버럭 일갈을 내질렀다.
“후후후! 이놈들아! 검군 군장의 자리가 주둥이로 얻을 수 있는 자리더냐!”
쒸링!
검이 허공을 갈랐다. 등 뒤, 곤(坤)의 위치에서 막 검을 쳐내려던 무인을 향해 번뜩였다.
“컥!”
무인이 짧은 비명을 내지르면서 비틀거렸다. 그리고 마치 환상처럼…… 잘린 두부가 도마에서 미끄러지는 것처럼…… 무인의 머리가 몸에서 미끄러지더니 발밑으로 톡 떨어졌다.
스윽! 슥슥슥!
무인들은 동료의 죽음에 당황하지 않았다. 한 명이 피를 흘리면서 쓰러지자, 발길로 그를 걷어차서 뒤로 빼냈다.
네 명의 검세(劍勢)가 급변했다.
오행검진을 펼칠 때는 다섯 개의 검이 한 자루처럼 일사불란했는데, 이제는 각기 다르다. 한 자루는 베어오고, 한 자루를 찔러온다. 한 자루는 내리치고, 한 자루는 쳐올린다. 각기 다른 방향에서 다른 각도로, 다른 방식으로 공격해온다.
사상미검진(四象迷劍陣)이다.
꽈르르릉!
네 개의 검초가 어울려져서 한 개의 대변화를 일궈낸다.
“하하하! 부공부유(不空不有), 무후무전(無後無前), 부하부고(不下不高), 비단비장(非短非長)! 무형지상야(無形之相也)라! 이것이 싸움의 제일이다!”
쒜에엑!
차디찬 한기가 허공을 갈랐다.
비어있지도 않고, 있지도 않다. 물러서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는다. 위도 없고, 아래도 없다.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다. 이것이 바로 형이 없는 상(相)이다.
정형적인 초식에 매달리지 말라.
진형의 틀에 얽매이지 말라.
오행검진에서 사상자가 생기면 사상미검진으로 변형시킨다. 사상미검진에서 사상자가 나오면 삼기참진(三氣斬陣)으로 간다. 삼기참진에서 사상자가 나오면 음양검진(陰陽劍陣)을 전개한다.
진형의 맛을 아는 사람들은 좀처럼 진형을 깨지 못한다.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 두 사람보다는 세 사람이 힘을 합치면 더 큰 위력이 나온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다. 그래서 진형을 깨지 못한다.
까가가각!
탁좌량은 뒤와 오른 쪽에서 들어오는 검을 흘리고, 왼쪽을 맞받아쳤다. 그리고 전면에서 들어오는 검은 맞받은 탄력을 이용해서 맞이해갔다.
까각! 쒜에에엑!
검이 사람을 치지 못하고 허공을 쓸었다.
이번 일전에서는 누구도 우세를 득하지 못했다.
아니다. 이번에도 사상미검진이 손해를 봤다. 그들은 탁좌량의 옷 끝조차 건드리지 못한 반면에 탁좌량은 사상미검진을 벗어나 그들 전체와 마주보는 형국이 되었다.
“저희도!”
사주경계를 서고 있던 무인 다섯 명이 탁좌량을 에워쌌다.
“견디실 수 있겠습니까?”
“됐다.”
맹주는 괜찮다는 듯 손을 저었다.
그래도 호신위장은 부축한 손을 빼지 않았다.
흡착전비는 독고(毒蠱)다. 다만 독을 뿜어내지 않고 마비산(痲痹酸)을 뿜어낸다. 아주 조금씩 마비산을 흘려내는데, 인체에는 거의 무해하다.
한두 마리 정도에 물리면 티도 나지 않는다.
맹주의 몸에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도 수천 마리가 득실거리고 있을 게다.
양이 쌓이면 약하디 약한 마비산도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한다. 특히 마비산의 영향을 가장 깊게 받는 곳이 심장이라면 언제 절명하게 될지 알 수 없게 된다.
한시라도 빨리 털어내야 한다.
흡착전비가 싫어하는 구상초(九霜草)의 즙액을 바르고, 운기조식을 취하면 금방 깨끗해진다.
독도 아니고, 독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 혈황검이 그리 미미하게 울었던 게다.
“돌아가셔야 합니다.”
맹주는 고개를 저었다.
“군장이 본색을 드러냈네.”
그 말 한 마디로 모든 게 설명된다.
배신을 하는 사람이 본색을 드러낼 때는 때가 된 것이다. 숨통을 끊을 때가.
맹주가 웃으면서 말했다.
“후후후! 문득 궁금해지는군. 누가 나의 혈황검을 받아낼지.”
“수혼검사 아니겠습니까.”
“역시 그 사람밖에 없는 건가.”
“저도 문득 궁금해지는 게 있습니다. 수혼검사가 어떻게 혈황검을 받아낼지 궁금해집니다.”
두 사람은 같은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다른 이야기다.
맹주는 자신의 검초, 무공을 말했다. 호신위장은 혈황검 자체를 말했다. 누가 나와 겨룰 수 있느냐와 누가 혈황검의 날카로움을 견딜 수 있느냐의 차이다.
맹주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치민 듯 눈을 부릅떴다.
“비오…… 신장!”
그의 검을 만들어 준 사람이 생각났다.
물론 그때는 한참 젊었을 적이다. 그도 젊었고, 비오신장도 젊었다. 이제 두 사람은 나이가 들었다. 한 사람은 청천맹 맹주가 되었고,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은?
맹주가 호신위장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
“오늘 혈황검이 깨진다.”
“네? 그럴 리 없습니다. 소신들이 목숨을 바쳐서……”
“넌 지금 맹으로 돌아가라.”
“……?”
“가서 천문성 주위를 살펴라. 일을 꾸밀 자는 그 자뿐. 그 자 주위를 살피면 비오신장과 연관된 자가 있을 것이다.”
그는 ‘연관된 자’라는 말을 힘주어 말했다.
비오신장은 절대로 검을 만들지 않는다. 만약 검을 만들었다면 그의 아들이나 제자일 게다. 그리고 비오신장이 검을 만들도록 허락했다면…… 허락했으니 오늘의 배신이 벌어진 것이겠지만, 그 자의 제련술은 비오신장과 버금갈 게다.
“그 자가 누구이든 데리고 빠져나와라. 삼비(三秘)에서 보자.”
“맹주님!”
호신위장은 그럴 수 없다는 듯 부축한 손에 더 힘을 주었다.
맹주가 웃으면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