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Treasure Sword RAW novel - Chapter 138
138
어둠 속에서 창노한 음성이 들려왔다.
“제길! 뉘신데 그런 걱정까지 해주실까? 오지랖이 꽤 넓은 양반이신가 보오?”
“허허허! 그놈의 입은……”
걸어오는 자는 적화자를 잘 아는 듯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식으로 말을 건네올 수 없다.
약간은 친근한 느낌? 약간은 얕보는 느낌?
“흐흐흐! 어떤 분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아!”
적화자는 어둠속에서 걸어오는 사람을 봤다.
그는 약간 당황했다.
다가오는 사람은 자신과 같은 신분이 아니다. 자신의 신분도 낮지 않지만 이 사람은 자신보다 높다. 적어도 한 신분 정도는 더 접어줘야 한다.
맹주 마출성!
그는 용두방주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소림사 방장이나 무당파 장문인과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다. 장문인들이 떠받드는 사람이라고 할까?
각 문파의 장로들도 장문인의 사형이요, 사제들이라지만 신분상 맹주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는 없다.
적화자는 검을 들어 올리려다가 주춤 물러섰다.
“맹주, 맹주께서 여긴 어쩐 일로……?”
불현듯 그의 머릿속에 몇 가지 사안이 후딱 스쳐지나갔다.
청천맹 무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유림도 모습을 감췄다.
그들 전부가 한통속이 되어서 달려들어도 네 사람을 어쩌지 못한다. 하지만 맹주라면…… 맹주라면 단신으로 와도 네 사람 정도는 너끈히 때려눕힌다.
마출성에게는 그만한 무공이 있다. 아니, 그렇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검이 있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자신에게도 명검이 있으니 검의 우위는 사라졌다. 하지만 상대적인 우위가 단지 검만으로 결정되겠는가. 맹주의 무공은 막강하다.
‘맹주가 오려고 그들이 물러갔단 말이군. 그렇다면 목적은 역시 해과월의 검……’
적화자의 눈빛에 기광이 번뜩였다.
마침 그의 눈길이 맹주의 허리에 닿았다.
그곳에 눈에 익숙한 검이 매달려 있다.
해과월이 만든 검은 특징이 있다. 치졸한 장식. 주변에 있는 소뼈를 이용해서 장식을 만들었기 때문에 단아하기는 해도 볼품은 없다. 문양도 조잡하고, 광택도 보석을 박은 것처럼 뛰어나지 않다.
해과월이 만든 것과 똑같은 검이 맹주의 허리에 매달려 있다.
‘설산일섬!’
가장 좋지 않은 상황, 최악의 상황이 눈에 확 그려진다. 그리고 더불어서 또 한 가지 생각도 퍼뜩 스쳐간다.
‘살인멸구(殺人滅口)!’
맹주의 의도를 알겠다. 어떤 마음으로 대장간을 찾아왔는지, 무엇을 하려는지…… 청천맹 무인들과 유림이 물러난 이유, 아주 강하게 감지되는 혈풍의 주인을 찾아냈다.
‘이래서 모두들 빠져나갔군. 때려죽일!’
“키키키! 맹주, 맹주는 정말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데는 선수요. 어느 날 갑자기 주한극의 뒤통수를 치고 맹주에 오르더니 오늘은 또 이곳에 왕림하셨어. 키키! 이 검이 그토록 탐나셨소? 쯧! 맹주라는 사람이 체면을 지키셔야지.”
“이보게, 적화자. 바둑 둘 줄 아나?”
“키키키! 왜? 훈수라도 한 마디 하시려고? 그냥 검이나 들지 그러쇼? 당신 같은 인간 말종에게 잠시나마 머리를 숙였다는 게 창피해서 미치겠으니까.”
“바둑은 앞 수를 내다보는 게 중요하다네. 한 수 앞, 두 수 앞…… 먹기 좋은 미끼가 눈앞에 있다고 해서 덥석 받아먹다가는 꼼짝없이 걸려들지. 자네처럼 말이야.”
“머리 안 좋은 놈, 생각하다 뒈지겠네. 우리 사람들이 알아듣는 말로 합시다.”
“허허! 이런 생각은 안 해봤나? 용두방주가 정말 지금 이 상황을 모를까? 그래서 손을 놓고 있을까?”
“점점 더 더 개소리에 가까워지는데……”
적화자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의 말을 왜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이해한다.
자신이 해과월 곁에 다가섰다. 그럼 해과월은 검을 만들어서 누구를 주겠는가. 자신을 줄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준 것은 개방에게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개방 입장에서는 전력을 다해서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모두들 뒤로 쭉 빠졌다. 보호는커녕 완전히 방치하고 있다.
왜 그럴까? 왜 개방이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것일까? 적화자가 검을 받으면 무사히 개방으로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누가 감히 적화자를 공격해. 이런 식으로?
아니다. 다 알고 있다. 거센 공격이 몰아칠 것이라는 안다. 그러면서도 보호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죽으라고 내놓은 것이다.
“키키키! 됐소. 머리 쓰는 것은 딱 싫으니까 검이나 씁시다.”
적화자가 검을 들어올렸다.
개방 용두방주…… 사형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다. 예견 정도가 아니라 단정을 내려버렸다. 적화자에게 실낱같은 희망만 있어도 당장 개방도를 보내서 보호했을 것이다.
주변에 개방도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반대로 말하면 자신이 검을 지닌 채 이곳을 떠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정내렸다는 뜻이다.
현실을 모르고 있는 게 아니라 너무 잘 알고 있다.
용두방주의 결단은 생각에서 나온 게 아니다. 정확한 정보에 의거해서 주변상황을 읽고, 냉철하게 판단한 결과 절망을 도출해낸 것이다.
맹주 마출성과 싸울 수 없다.
이런 경우, 용두방주의 최선책은 희생을 한 명으로 끝내는 것이다.
맞다. 맹주의 말이 맞다.
한 수, 두 수, 몇 수 앞을 내다보면 해과월 곁에 머문다는 것은 정말 미친 짓이다.
‘이놈아, 참고로 말해두는데, 난 바둑 아주 잘 둬. 기성(碁聖)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어, 이놈아!’
적화자는 진기를 끌어냈다.
용두방주가 그를 포기한 것이 아니다. 그가 방주에게 간여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런 걸 보고 살신성인이라고 한다. 피눈물을 흘리면서 죽어가는 사제를 지켜보아야 하는 용두방주의 입장은 생각해 보았는가? 그렇다. 살아서 돌아갈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런 점을 알기에 개방과 단절했다.
검 한 자루에 절대 고수 한 명이 탄생한다.
예전에는 주한극만이 초절정고수였다. 마출성은 그의 곁에 있으면서 늘 이인자로 만족해야만 했다. 항상 주한극 앞에서 두 손 모아 공손하게 말해왔다.
그런 그가 천살검의 위세를 빌어서 주한극과 동등한 위치로 올라섰다.
자, 이제 검이 또 탄생했다.
승천검이 있고, 이름을 정하지 않은 검 두 자루가 있고, 또 선장을 만들고 있다.
이 병기들은 모두 초절정고수를 만든다.
그러니 마출성과 주한극이 가만히 있겠나. 잠자코 지켜보기만 하겠는가. 당연히 공격해 온다. 그것도 치열하게…… 검을 가진 사람들이 누구라는 것을 아니까 그들을 제압할 수 있는 사람들을 보내온다.
그런데 상상 외로 거물이 나타났다.
맹주가 직접 나타나서 검을 휘두를 줄은 정말 몰랐다. 이런 예측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래도 맹주인데…… 이만한 일에 이만한 인물이 직접 끼어드는 것은 체면 문제인데.
맹주는 설산일섬을 처리했다. 그의 목숨을 빼앗았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손속에 사정을 베푼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생사(生死)가 촌각에 걸렸다.
적화자는 몸을 땅에 붙이듯이 낮게 가라앉히며 검을 추켜올렸다.
“검풍세(劒風勢)!”
마출성이 놀랍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제길! 명검까지 꿰뚫어 보는군.”
적화자의 표정이 암울해졌다.
맹주와 대화를 나눈 이 짧은 순간, 그는 몇 가지 확실하게 일어난 사실을 유추해냈다.
첫째, 검은 믿어도 좋다.
그는 설산일섬의 검법을 안다. 중원에서 제일 빠른 검이지 않나. 또 그렇게까지 빠르지 않다고 해도 마출성의 성격상 승천검의 단단함을 살필 것이고, 두 검이 부딪치는 일은 벌어졌을 게다.
어느 검이 강한가!
결과는 자신이 직접 보다시피 두 검 모두 무사하다.
해과월이 만든 검은 천살검에 잘리지 않았다. 설산일섬이 검을 뺏긴 것은 검이 약해서가 아니라 무공이 약해서다. 절정에 이른 점창 무학이 마출성에게 짓눌렸다.
둘째, 이번 싸움은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다.
살아남아야 한다. 설산일섬이 밀렸다면 자신도 밀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므로……
“키키! 키키키키!”
적화자는 검을 겨눈 채 이유 없이 웃었다.
아니다. 이유 없지가 않다. 이번 웃음에는 진기가 실렸다.
개방에는 두 가지 음공(音功)이 있다. 산비벽정(珊庇闢精)과 창룡음(蒼龍音)이다.
그는 웃음 속에 산비벽정을 가미시켰다.
음공이 조개 속에 감춰진 진주처럼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퍼져나간다. 하지만 그 속에 담겨진 진주는 온 세상을 환히 밝힐 정도로 아름답고 밝다.
일정한 목표를 향해서 날릴 경우, 은밀하면서도 정확한 타격력을 보인다.
“허허! 산비벽정…… 괜찮은 음공이군.”
맹주는 그의 웃음 속에 깃든 진기마저도 알아봤다.
목표로 정한 당사자가 아니면 절대 알아볼 수 없는데, 오직 당사자만이 조개를 열고 진주를 꺼낼 수 있는데…… 그래서 아무리 웃음을 흘려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데…… 그는 알아봤다.
‘잘못 걸렸다!’
설산일섬이 왜 당했는지 이제 이해된다.
맹주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무림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강한 초인이다.
번쩍!
백운진인은 눈을 떴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등줄기에 찬바람이 스며들고, 머리끝이 쭈빗 곤두선다.
‘뭐냐!’
그는 일어서기 전에 전신 감각부터 곧추세웠다.
귀를 활짝 열어놓는다. 눈을 부릅뜬다. 냄새도 맡아본다.
주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어느 정도나 심각한 일인지 추측해본다.
탕! 탕! 탕탕!
쇳덩이를 두들기는 소리가 요란하다.
대장간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망치를 두들기는 해과월이나 집개를 잡고 있는 일여화상이나…… 그가 잠들기 전과 다를 바 없다.
그럼 단순한 꿈인가? 악몽을 꾸었거나 가위에 눌린 것인가?
‘밖!’
그는 몸을 일으켰다.
잠들어 있는 그를 두들겨 깨운 것인 강한 진기다. 날카롭고, 무겁고, 확실하다.
그는 태연히 밖으로 걸어 나왔다. 하지만 대장간을 벗어나기 무섭게 신형을 깃털처럼 가볍게 해서 연청십팔비(燕靑十八飛,)를 펼쳤다. 전력으로 펼쳤다.
해과월이 선장을 만들고 있는데,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았다.
분명히 무슨 일인가 있다. 누군가가 진기로 자신을 불렀다.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할지라도 진기를 흘리기는 했다.
보아하니 일여화상은 아무 느낌도 받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자신에게만 쏘아 보낸 것이다.
적화자가 아니면 설산일섬, 둘 중에 한 명이다. 아니면 둘 다이거나.
‘이 정도면……’
대장간에서 십 장 정도 벗어났다. 이제는 마음껏 무공을 펼쳐도 해과월에게 방해가 안 된다. 그는 즉시 신법을 제종술(提縱術)로 바꿨다.
쒜에엑!
그의 신형이 빗살처럼 쏘아졌다.
마출성은 살심을 드러내면서도 공격하지 않았다.
적화자도 굳이 모험을 감행하지 않았다. 마출성이 공격해 오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감지덕지다.
‘기다린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키킥! 키키킥!”
적화자는 마출성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조용히 웃었다.
마출성의 마음이 변해서 지금이라도 공격을 해온다면 매우 위험할 것 같다.
설산일섬이 당했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파아아아앗!
산비벽정이 대장간을 향해서 쏘아졌다. 누워서 잠자고 있는 한 인간을 향해서 맹렬하게 돌진해갔다.
‘호랑말코 도사놈…… 빨리 좀 와라. 형님이라고 불러줄 테니까 빨리 좀 와. 피가 바짝바짝 마른다. 말라.’
일 대 일의 승부라면 힘들겠지만, 이 대 일의 승부라면 해볼 만하다. 그때는 서로가 무공 싸움이다. 병기의 우세는 어느 쪽도 없다. 오직 무공만으로 싸운다.
무당파와 개방의 절학이 호흡을 맞춰서 쏟아져 나온다면…… 그래, 맹주라도 자신 있다. 그때,
쒜에에엑!
파공음이 일어나면서 백운진인이 날아 내렸다.
“휴우! 키킥! 왔구나, 왔어.”
적화자가 죽은 사람이 깨어난 듯 반색했다.
“무슨 일…… 엉? 맹주?”
백운진인은 맹주를 보고 의아해했다. 아니, 맹주에게 검을 겨누고 있는 적화자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맹주의 손에 들린 천살검을 보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그는 이내 모든 사실을 짐작해냈다.
두 사람이 서로 검을 겨누고 있는 것, 그리고 맹주의 허리에 승천검에 매달려 있는 점으로 지난 사실들을 유추해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런!’
백운진인의 입에서 노기가 흘러나왔다.
4
차앙!
백운진인은 망설이지 않고 검을 뽑았다.
“됐는가?”
마출성이 적화자를 보면서 피식 실소를 흘렸다.
적화자가 산비벽정을 펼쳤다. 그것을 알고 있다.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그런데도 기다려 주었다. 백운진인이 도착해서 사태를 완전히 파악하고 검을 뽑아들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렸다.
너희 둘 정도야.
마출성의 자신감이 두 사람을 압도했다.
“이제 검 두 자루군.”
그가 백운진인이 들고 있는 검도 보았다.
그들이 들고 있는 검은 누가 봐도 한 사람이 만든 검이다. 검의 모양이 비슷하다. 장식도 흡사하다. 광택을 낸 소뼈로 단아하게 장식을 했다는 점도 같다.
검에서 살기가 뿜어지지 않는다는 공통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