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Treasure Sword RAW novel - Chapter 142
142
귀사령이 용권풍의 하휴(夏休)를 잡아낸 것은 천운이다.
운벽슬의 정보력이 탁월하다고 해야 하나? 철저하게 비밀 속에 가려진 행동을 찾아냈다.
현재, 용권풍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다.
병기를 쥔 자가 없다. 병기가 다 무엇인가. 대낮인데도 술에 취해서 흥청망청 떠들어댄다.
“하하하!”
“호호호! 호호!”
술판의 흥취가 강변을 휘돈다.
용권풍은 기녀를 멀리 천 리나 떨어진 상양(相讓)에서 데려왔다.
기녀들은 그들이 머무는 순간부터 떠날 때까지 같이 숙식을 해야 한다. 열흘이고 한 달이고 간에 용권풍과 같이 생해야 한다. 보안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기녀를 대동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귀사령은 기녀와 같이 휴식을 취한 적이 한 번도 없고, 다른 곳은 검군이 전임맹주 주한극과 싸워서 엉망이 된 후에 딱 한 번 이런 휴식을 취했다.
대원들 중 이 할 이상이 손상되는 큰 싸움을 겪은 후였다.
피바람 속에 몸을 담가야 기녀가 주어진다.
용권풍는 그런 싸움이 없었는데도 기녀를 끼고 술을 마신다.
지금 무림은 태평하다.
주한극이 강서성과 광서성에서 난리를 피웠지만 청천맹이 한 일은 없다.
그런데도 용권풍가 기녀를 품고, 미주에 취한다는 것은 그만큼 청천맹 무인들의 기강이 해이해졌다는 뜻일 게다.
저들을 어떻게 베어야 할까?
귀사령주는 눈을 빛냈다.
예전 같으면 생각할 것도 없이 들이쳤다. 저들은 취했고, 자신들은 멀쩡하다. 저들은 완전히 무방비 상태고, 자신들은 최고로 긴장하고 있다.
이런 싸움에서도 진다면 말이 안 된다.
승률이 구 할 이상이다. 이토록 확실한 싸움을 앞에 놓고 망설여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은 망설인다. 다시 한 번 차분해진 마음으로 사태를 둘러본다.
귀사령주도 마찬가지고 귀사령 대원들도 같은 심정이다.
그들의 눈빛은 현유하다.
그들은 난폭하고 사나운 편이었지만, 지금은 침착하고 냉혹해졌다.
언제부터 이런 마음이 길러졌을까? 묵검…… 묵검을 소지한 후부터다. 차디찬 기운이 흐르는 묵검을 받아든 후부터 그들의 심정에 변화가 일어났다.
난폭함이 사라졌다. 대신 빈자리에 냉혹함이 들어섰다.
산만함이 사라졌다. 대신 지독하리만치 차가운 냉철함이 깃들었다.
믿기 어려운 말이지만 묵검에서 풍겨 나오는 차디찬 기운이 그들의 심성마저도 변화시켰다.
그들도 그런 점을 안다.
처음에는 묵검의 서늘함이 좋았다. 차갑고, 냉혹하고, 섬뜩한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분노가 치밀 일이 생기면 그들은 차분해진다.
화를 터트릴 일이 생기면 오히려 감정을 더욱더 안으로 추스른다.
그들은 말 대신에 검을 잡는다. 이 세상을 향해서 터트릴 분노가 있으면 말로 하지 않는다. 행동으로, 검으로 말한다.
그 검 앞에 용권풍이 섰다.
“파쇄진(破碎陣)으로 간다.”
귀사령주가 명령했다.
귀사령은 반대의견을 피력하지 않았다.
파쇄진은 대군을 앞에 둔 소수병이 옥쇄를 각오하고 펼치는 사진(死陣)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지금은 파쇄진을 펼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방심하고 있는 적을 들이치는데 진형을 갖출 이유가 무엇인가. 그럴 바에는 사방에서 동시에 진입하여 닥치는 대로 베는 것이 훨씬 빠르지 않겠나.
스무 명이 일시에 한 명씩만 죽이면 스무 명을 죽일 수 있다. 하지만 파쇄진을 쓰면 전면에 나선 서너 명만 검을 휘두를 수 있다. 즉, 죽는 사람도 서너 명에 불과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파쇄진은 말이 안 된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그렇다. 그런데도 귀사령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귀사령주를 믿는다!
‘함정!’
귀시령주는 고민했다.
용권풍는 쉬고 있지 않다. 쉬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살기 어린 눈들이 번뜩인다. 기녀들이 깔깔 거리지만 웃음 속에 즐거움이 없다. 웃음이 메말라 있다.
운벽슬이 이들을 유인해 냈다고 했는데…… 운벽슬이 속았다.
그렇다면 이들이 이곳에 진을 친 것은 사마소의 계획이다. 다시 말해서 용권풍를 먹이로 내놓은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잡기 위해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이런 점을 파악하지 못했다.
위험감각이 동물적으로 발달하긴 했지만 세세한 것까지 파악할 정도로 예민하지는 않았다.
이제는 세부적인 것도 살필 수 있다.
뚫어지게 쳐다보고, 또 쳐다봤다.
저들이 취한 모습, 낚시질하는 모습, 길가에 늘어져 있는 모습까지 모두 살폈다.
저들은 놀고 있지 않다.
용권풍 무인들이 습관적으로 펼치는 항마난석진(降魔亂石陣)을 펼쳐놓고 있다.
들어가면 죽는다. 잡힌다.
그렇다고 들어가지 않을 수도 없다.
주한극은 사사로운 움직임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의 명령대로 움직이고, 그가 시키는 일만 해야 한다. 잠도 그가 자라고 할 때만 자고, 밥도 그가 먹으라고 해야 먹는다.
주한극은 그런 통제를 즐긴다.
그런 사람이 딱 한 번 예외를 두었다. 이번 용권풍 척살 건에 대해서만은 마음대로 움직여도 좋다고 눈감아 주었다. 귀사령의 원한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용권풍을 뿌리 뽑지 않고는 귀사령의 불만을 달래줄 수 없다는 걸 안다.
주한극도 마찬가지고, 운벽슬도 같다.
귀사령의 모든 원한이 용권풍에게 모아져 있다. 만약 이 복수를 가로막는다면 그 자부터 베고 나갈 것이다. 주한극이 막는다면…… 글쎄? 그는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사람이니까…… 반대로 몰살당하겠지?
귀사령은 그런 선택을 한다.
그래서 주한극도 이번 일에 대해서만은 보고도 못 본 척 눈감아 버렸다. 마음대로 하라고 내버려 두었다.
이런 기회가 자주 주어지지 않는다.
운벽슬이 주한극의 손에 들어갔으니 귀사령 또한 행동의 자유를 잃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또 언제 용권풍 앞에 검을 들이댈 수 있을 지 기약할 수 없다.
‘쳐야해. 그리고 잠적!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으로 숨는 거야. 숨는 건 일이 아닌데…… 음! 저들과 정면으로 부딪치면……’
예전 같으면 정면 승부를 선택하지 않았다.
잔혹한 성정에 치열한 무공도 생존 조건이 아니다. 귀사령이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내지 않고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은 치밀한 계획 때문이지 무모한 싸움 때문이 아니다.
이번에는 사망자가 생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자신은 있다. 의지가 있고, 무공이 있고, 그리고 또…… 검! 묵검이 있다.
해과월이 만들어준 묵검은 모든 검을 제압한다. 모든 검을 잘라낸다. 검들의 왕이다. 천살검과 혈황검만 만나지 않는다면 절대검으로 군림할 수 있다.
저들은 묵검의 위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승산이 있어. 승산이 없다고 해도 어쩔 수 없고. 이번 기회를 놓치면 천추의 한이 된다.’
귀사령주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누구야?”
술에 취해서 늘어져 있던 자가 비틀거리면서 일어섰다.
“취했으면 뻗어 자.”
“응? 크크크! 왔구나.”
취한 자의 음성이 어느새 낭랑해졌다.
역시 함정이다. 사방으로 흩어져서 들이쳤더라면 꼼짝없이 걸려들 뻔했다. 일시에 스무 명을 쓸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저들에서 각개 격파당할 뻔했다.
슷! 스읏! 스슷!
귀사령들이 파쇄진을 형성했다.
강력한 송곳으로 널빤지를 뚫는다. 귀사령주가 제일 전면에 서고 나머지가 송곳 형태를 만들면서 늘어선다.
그들은 어둠의 검, 묵검을 들었다.
“넌 참 운이 없다.”
귀사령주가 취한 척 했던 무인을 보면서 말했다.
“흐흐흐! 네놈이 귀사령주냐? 그러잖아도 기다리기 지루했던 참인데 잘…… 크악!”
무인은 말을 다하지 못했다.
번쩍!
눈앞에서 차디찬 검광이 번쩍 흘렀다. 지옥문이 활짝 열리는 듯 온 세상에 어둠으로 뒤덮였다. 그리고 뜨거운 불길이 그의 머리위로 떨어졌다.
사내는 머리가 두 쪽으로 갈라지면서 쓰러졌다.
“운이 없다고 했잖아.”
귀사령주가 쓰러진 무인을 보면서 말했다.
저벅! 저벅! 저벅!
스물 한 명이 마치 한 사람처럼 걷는다.
귀사령주가 오른발을 들어 올리면 다른 스무 명도 동시에 오른발을 들어올린다.
서로가 심령이라도 통하는 듯 행동이 일치한다.
스스스스스스!
사방에서 커다란 낫, 대겸을 든 무인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귀사령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일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밖에서 보던 모습들이 아니다.
두 눈에는 정광이 어렸다. 손에는 진기가 가득하다. 온 몸에는 기력이 넘쳐흐른다.
이들은 싸울 수 있는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후후후! 이게 얼마만인가. 주한극이 쫓겨날 때 보고 처음이지?”
얼굴에 늘 음침한 미소를 띄우고 있는 자, 용권풍주가 뒷짐을 진채 나타났다.
“재미 좋았나 보군.”
귀사령주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했다.
“재미야 좋았지. 하루하루 사는 게 전부 재미잖아. 후후!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아! 우릴 잡아 죽이겠다고?”
“그렇게 재미 좋았나?”
“재미있었다니까. 아! 그때 그 팽수에서 있었던 일? 하하하! 사람도 참…… 그걸 묻는 거면 팽수라고 말할 것이지. 그때가 언제라고 지금까지 기억해. 하하하!”
“재미있었나?”
“재미있었지. 늙은이들이 뼈마디는 어찌나 억센지. 하하하! 그 중에는 네 에비 에미도 있었지? 이걸 어째. 사전에 좀 봐 달라도 했으면 네 에비 에미만큼은 깨끗하게 죽여줄 수도 있었는데. 난 그것도 모르고 모두 갈기갈기 찢어 죽였지 뭐야?”
“손맛이 좋았겠군.”
“말이라고. 원래 네놈들 뼈대가 억세잖아. 손맛이야 일품이었지.”
“모두 들었나!”
귀사령주가 쩌렁 일갈을 내질렀다.
“넷!”
“이 자들이 맛봤다는 손 맛, 이제 너희가 맛본다! 쓸어버렷!”
“넷!”
귀사령주의 명령에 스무 명이 한 목소리로 응답했다. 순간,
쒜에에엑! 파파파파팟!
송곳처럼 날카롭게 밀집되어 있던 진형이 마치 매미가 날개들 펴듯이 활짝 전대되었다. 그리고 쾌속한 검공이 단 한 톨의 인정도 담지 않고 신랄하게 펼쳐졌다.
“어딜!”
“알고 있었다, 이놈들아!”
용권풍 무인들이 파쇄진의 변화에 맞춰서 번개같이 반격해왔다.
까앙! 깡! 깡! 깡!
여기저기서 병기가 부딪쳤다. 그리고,
“커억!”
“크윽”
답답한 비명이 터지면서 순식간에 십여 명이 피투성이가 되어서 쓰러졌다.
촤아아아악!
매미날개처럼 펼쳐졌던 진형은 다시 송곳 형태로 돌아왔다.
일장의 겨룸이 있었다. 그리고 용권풍 무인들 중 십여 명이 피떡이 되어 누웠다.
귀사령 무인들 중에는 상한 사람이 없다.
이번 격돌은 완벽하게 귀사령 승리다.
“음! 그거군.”
용권풍주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면서 스물한 자루의 묵검을 쳐다봤다.
광채가 나지 않은 검은 검.
묵검은 어떤 쇠붙이든 모두 베어낸다. 천살검, 혈황검을 제외하고는 모든 병기에 우위를 점한다.
이번 격돌이 바로 그 좋은 증거다.
양쪽 무인들이 똑같이 격돌을 일으켰다.
그들 모두 한판의 격돌에 전신 진기를 모두 쏟아 부었다. 단 일격으로 상대를 끝장낼 결심이었다.
묵검이 용권풍 무인들의 병기, 열다섯 자 쇠사슬로 연결된 대겸을 잘라냈다. 그리고 저들의 육신마저 잘랐다.
검의 승리다!
3
용권풍 풍주 진사극은 흰 이를 환히 드러내며 웃었다.
“해과월 그놈이 사방에서 문제를 일으키네. 그놈이 만든 검 때문에 골치 아픈 사람이 한둘 아냐. 허!”
그는 일장의 격돌을 보고도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았다.
귀샤령에게 무적의 묵검이 있다는 소리는 귀가 따갑게 들었다. 무림의 녹을 먹고 사는 사람들 중에서 그런 소문늘 듣지 못한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천살검과 혈황검은 오직 한 사람만 가졌다. 하지만 묵검은 장장 스물한 명이나 가졌다.
스물한 명의 무적검대.
생각만 해도 짜릿하지 않은가.
이들이 거침없이 검을 휘두르기 시작하면 웬만한 문파는 버텨내기 힘들다.
귀사령은 묵검이 있기 전에도 무적이었다. 오죽하면 그 많은 싸움을 겪으면서도 단 한 명의 희생자조차 내지 않았겠나. 악착같고, 저돌적이고, 승냥이처럼 난폭하다.
그런 자들이 묵검까지 소지했으니 소름이 오싹 끼친다.
용권풍 백 명? 백 명으로는 귀사령을 막을 수 없다. 그들이 묵검을 들었다면 백 명이 아니라 오백 명이 막아서도 무인지경으로 뚫릴 것이다.
하지만 무림이란 검이 능사가 아니다.
스읏!
진사극이 팔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사방에서 활을 든 궁수들이 나타났다.
“병신, 할 건 다 하는군.”
귀사령주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흐흐흐! 병신? 네 놈은 그 말버릇이 항상 문제야. 사람을 어린애 취급한다고 할까? 그 말투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어. 언젠가 한 번 그 입을 뭉개줄 생각이었는데 잘 됐군.”
“병신. 주둥이만 나불거리지 말고 나서지 그래.”
“그러잖아도 그러려고. 그 전에 네 똘마니들부터 처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