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Treasure Sword RAW novel - Chapter 153
153
죽음을 기다릴 수는 없는 일…… 죽음의 그늘이 뒤덮인 후에는 발악조차도 필요 없어진다. 그때는 죽음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방법 이외에는 할 것이 없다.
죽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그는 인위적으로 죽음을 일으켰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죽음을 만들어버리자. 수교빈이라는 함정이 죽음이 일어난 후에야 떨어져 나간다면, 가짜 죽음을 만들어서 미리 떨궈버리자.
그에게는 그럴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대라쌍검문은 마문(魔門)이다.
마인들의 집단으로 낙인찍혔고, 그래서 전 문도가 피눈물 나는 악투 끝에 몰살당하고 말았다.
이 말을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어떤 특정한 집단의 사람들에게 이 세상은 적이 되었다. 눈에 띄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을 죽이려고 한다.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
그렇게 얼마나 오랫동안 버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살 수 있는 모든 방법은 다 강구해봤다. 사람 발길이 끊어진 곳으로 숨어들기도 했고, 두더지처럼 땅 속 지하세계로 파고 들어가기도 했다.
외형적인 변화만 추구한 것도 아니다.
무공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강함을 추구하는 무공에서 생존을 위한 무공으로 주요 관심 분야가 바뀌었다.
단 한 모금의 진기만 남겨놓으면 살 수 있다.
일모기생시부환(一毛氣生尸復還)!
쇠털 한 가닥만한 진기만 있어도 주검에서 되돌아 나올 수 있다.
일명 일모기환술(一毛氣還術)이라고 한다.
죽음을 늘 곁에 두고 살았던 사람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찾던 끝에 그나마 최적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남겨두었던 마지막 비기다.
일모기환술이 그를 죽음에서 끌어냈다.
물론 정상적으로 환생하지는 못했다. 마출성의 일지(一指)가 사혈(死穴)을 두 군데나 파괴시켰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도저히 살아날 수 없다.
그래도 살아난다. 대라쌍검문 무인들은 이런 방법을 모두 고려했다. 사혈이고 마혈이고 모두 부셔질 것이다. 작심하고 죽이고자 달려드는 사람들이 이런 저런 사정을 남겨두겠나.
중원 무인들의 살수는 잔혹하다.
그들은 사혈만 골라서 벤다. 목을 잘라내고도 사혈 한두 군데쯤은 더 찌른다.
그런 경우는 어쩔 수 없다.
천하에 다시없는 기공이라고 해도 머리가 잘려나가는 데는 속수무책이다.
허나 다른 경우라면 어떻게 해볼 수 있다.
사혈이란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죽음에 이르는 치명적인 혈도라는 뜻이다. 그러니 잘못 건드리지 않게 만들면 된다.
무림에서는 이와 같은 연구가 많이 진행되어왔다.
이혈(移穴)로 사혈 자체를 옮겨버리는 기공이 탄생했다. 붕혈(崩穴)로 사혈을 없애버리는 기공도 나왔다.
사혈에 직접적인 타격이 가해지지 않게끔 만들어 주는 공부가 수 없이 출현했다.
대라쌍검문은 사혈을 완전히 버리는 폐혈법(廢穴法)을 쓴다.
육신의 모든 혈도를 적들에게 맡긴다. 내 목조차 맡겨야 하는 판인데 이혈을 한다고 소용있겠나. 육신이 난자되는 마당인데 붕혈인들 힘을 발휘하겠나.
그러니 모두 내버린다.
단전도 파괴될 것이다. 명문혈(命門穴), 기해혈(氣海穴)…… 주요 혈들 중에서 어떤 혈이 파괴될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모두 버린다.
단 한 군데…… 적들이 가장 치기 어려운 곳, 그리고 실제적으로 타격을 가하지 않는 곳…… 양물과 항문 사이에 위치하는 혈…… 인체 중에서 가장 은밀한 곳에 숨겨져 있는 혈…… 회음혈(會陰穴))에 생명의 바탕이 될 수 있는 한 가닥 진기만을 남겨놓는다.
무공을 잃을 것이다. 사지를 모두 잃을 수도 있다. 향후에는 벌레처럼 땅을 기어 다니면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숨은 구할 수 있다. 삶만은 도모할 수 있다.
오직 살고자 하는 일념에서 창안된 무공이 일묘기환술이다.
“쿨룩! 쿨룩!”
탁좌량은 격한 기침을 터트렸다.
생기가 사기를 밀어낸다. 혈맥에 따듯한 피가 공급되면서 짜릿한 전율이 일어난다. 움직이지 않던 폐가 다시 움직임을 시작하면서 폐기를 쏟아낸다.
그는 다시 돌아왔다.
푸른 하늘이 보인다.
눈을 감을 때도 푸른 하늘이었는데, 또 다시 푸른 하늘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옆에 수교빈이 없다는 것, 그녀가 떠났다는 것이다.
가슴 한켠이 알싸하게 아파온다.
그녀를 다시 안을 수 없다는 절망감이 가슴을 찢어놓는다.
그녀의 위험으로부터 이제 막 벗어났는데, 육신은 아직도 그녀를 원하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녀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혼천음양마공이 부리는 조화를 그리워한다.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로 탈백(奪魄)이라는 말이 있다.
넋이 나간 것 같은 상태…… 그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혼천음양마공이 알려준다.
정신이 사라지고 없다. 이성이 없다. 오직 육신의 쾌락만이 온 몸을 휘감는다. 만약 정신에 어떤 기능이 남아있다면, 그 기능들은 오로지 쾌락만을 탐미한다.
색(色), 색(色), 색(色)……
색에 대해서 아주 치열하게 집중한다.
바로 옆에서 부모형제가 죽어간다고 해도 모른다.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도 모른다. 오직 색만을 추구한다. 온몸의 말초신경이 색에 집중된다.
그런 쾌락을 한 번이라도 맛보면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다.
이것이 혼천음양마공의 무서운 점이다.
노름꾼이 도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듯이, 술꾼이 술 중독에 휘말려 있듯이…… 그런 상태보다 훨씬 지독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린다.
죽음의 위기를 느끼고 일묘기환술까지 펼치면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육신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녀를 그리워한다. 그녀의 몸뚱이를 연상한다.
그녀를 그리워하는 게 아니다. 그녀와 나눈 정사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는 손을 들어봤다.
손끝이 부들부들 떨린다.
진기는 모두 빠져나갔다. 단전은 피폐해졌다. 육신에 흐르는 진기가 이제 갓 내공을 배운 풋내기보다도 못하다. 아니, 풋내기는 기본이라도 충실하지…… 그는 기본적으로 밑바탕에 갈려있는 기운조차도 모두 빼앗겨 버렸기 때문에 황량하기 그지없다.
“크큭! 크큭!”
그는 실없이 웃었다.
죽산일미 수교빈, 한낱 촌구석에서 한량들을 상대로 뱃놀이나 하던 계집.
그 이름은 이제 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누워서 하늘을 쳐다봤다.
서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갈 곳도 없고…… 엉망이 된 몸을 다시 회생시킬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급하게 생각하면 좌절만 밀어닥친다. 길게 생각하고, 평생 동안 몸만 고친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입신양명은 강 건너에서 피어나는 꿈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
“크큭! 크크큭!”
웃음만 새어나온다.
죽음의 마수를 벗어나려면 경계심이 높아야 한다.
항시 주의해야 한다. 우물에서 물 한 그릇을 떠먹을 때도 암습을 받을 우려가 없는지, 우물에 독이 풀어져 있지 않은지 예의 주시해야 한다.
대라쌍검문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탁좌량 앞에 한 사내가 섰다.
그는 탁좌량이 정신을 차린 후에도 무려 하루나 더 지난 다음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잘 버텼다.”
“사부.”
“너도 안 되는구나. 너라면 어떻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컸는데.”
“죄송합니다.”
“아니다. 인력으로 안 되는 것을 어쩌라고.”
사내가 팔을 내밀어 탁좌량을 안아들었다.
“혼천음양마공…… 후후! 이상한 놈에게 당했구나.”
“죄송합니다. 너무 방심했습니다.”
“그래, 방심이야. 이제는 다 됐다고 생각해서 방심한 거야. 앞으로는 절대 방심하지 마라.”
‘앞으로? 앞날이 있을까?’
“오늘을 잊지 마라. 절대로.”
‘잊지 않아서 어쩌라고? 뭘 할 수 있는데?’
“그리고 또 이 말도 명심해 둬라. 네 대(代)에서 일을 도모하지 못하겠다고 판단되면 후인을 거둬라. 그리고 후인에게 단단히 당부해 놔라. 절대로 방심하지 말라고.”
‘후인? 후후후! 이제 나는 끝났다는 말이군. 끝났다…… 후후!’
“면목 없습니다.”
탁좌량이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앞날은 없다. 무엇을 하기에는 몸이 너무 망가졌다. 마출성이 직접 사혈을 쳤다. 맹주의 일격을 당했다. 그런 상황에서 살아난 것만도……? 살아나? 맹주가 손을 썼는데?
‘아차!’
탁좌량의 표정이 급격하게 변했다.
“사부!”
“쉿!”
“사부, 이건 함정!”
“조용히 해라.”
사부는 침착했다.
사부는 대라쌍검문의 문주다. 또한 탁좌량의 아비다. 헌데 그는 아비라는 말을 쓰지 못하게 했다. 늘 사부라는 말을 사용하게끔 조련 당했다.
“시간이 얼마 없으니 잘 들어라. 지금 네 상태로는 평생 재기하지 못한다.”
사부의 음성이 속삭임으로 바뀌었다.
말이 아주 빨리 흐른다. 평소 한 마디 할 시간에 열 마디가 쏟아져 나온다.
사부도 이것이 함정이라는 사실을 눈치 챘다. 그를 살려줌으로써 대라쌍검문의 잔당을 모두 색출해 제거하겠다는 고구마 캐기 수법에 걸려들었다.
아니, 사부는 알면서도 모습을 드러냈다.
하루 동안 경계를 거듭했다. 주의 깊게 주변을 살폈다. 그러니 위험을 모를 리 없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대라쌍검문 문주가 주변에 흐르는 악기(惡氣)를 탐지하지 못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앞으로 벌어질 일이 일목요연하게 보인다.
사부는 죽는다. 자신은 또 버려진다. 재기할 수 있는 몸이 아니니 길가에 버려지거나 사부와 같이 죽는다.
사부가 급히 손을 움직였다.
타탁! 타타탁! 타타탁!
전신 혈도가 타격된다.
혈도를 안마하는 수준에서 훨씬 벗어나 충격까지 주고 있다. 아예 혈도를 뭉개버리겠다는 듯 아주 강력하게 타격한다. 너무 세게 맞아서 뼈마디까지 욱신거린다.
‘사(死)!’
일묘기환술의 마지막 비기, 죽음이다.
이 수법을 펼치면 일다경 가량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회음혈에 깃들어 있던 한 모금의 진기가 평소보다 다섯 배 빠르게 전신 경맥을 휘돈다.
그 후로는 죽음이다.
한 모금의 진기조차도 모두 써버렸기 때문에 죽음밖에 돌아올 것이 없다.
“가랏!”
사부가 탁좌량의 등을 탁 쳤다.
일다경, 탁좌량에게 주어진 시간이다.
마출성이 직접 심어놓은 암살자들로부터 신형을 뽑아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다.
어림도 없다고? 엉망이 된 몸으로 맹주의 암살자에게서 어떻게 벗어 나냐고? 그것도 일다경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것 밖에 남지 않았다.
“사부, 살아! 꼭!”
쉬이익!
탁좌량은 가장 짧게, 가장 진한 말을 남겼다. 그가 사부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이 전부였다.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신형을 쏘아냈다.
푹! 푹푹! 푹!
등 뒤에서 파육음이 들린다.
그가 몇 걸음 떼어놓지도 않았는데, 벌써 파육음이 터진다. 귀를 대고 자세히 들은 것처럼 섬뜩한 파육음이 명확하게 들린다.
평생 검을 쥐고 살아온 탁좌량이 어찌 그 소리를 알아듣지 못하겠나. 검이 육신을 뚫고 틀어박히는 소리다.
사부…… 살아!
그의 바람은 바람으로 그쳤다.
애당초 바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사부의 몸은 자신처럼 엉망이다. 중원 무인들에게 난자당해서 겨우 숨 한 모금을 가지고 살아간다. 무공을 펼치기는커녕 육신을 돌보기도 어렵다.
그런 분에서 밀마(密碼)를 남겼다.
수교빈의 마수를 짐작했을 때…… 일묘기환술을 펼쳐야겠다고 작심했을 때…… 그때부터 밀마를 남겨왔다.
마출성의 암습자는 생각하지 못했다. 사실, 마출성이 그 자리에 나타날 것이라는 것조차 예측하지 못했다.
수교빈에게 진기를 갈취당하고 쓰러진다. 자신은 한 줌의 진기로 목숨을 보존하고, 그때 사부가 나타나서 움직이기 힘든 그를 이끌어 간다.
이 정도만 생각했다.
사부는 암습자들을 막을 수 없다.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파육음이 거칠게 일어났는데, 소리로 들어보면 적어도 여섯 검 이상을 맞았는데, 아주 아팠을 텐데…… 비명을 토하지 않는다.
‘병신…… 살으라니까!’
탁좌량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럴 시간에 한층 걸음을 빨리해서 앞으로 쏘아나갔다.
쒜에에엑!
바람 가르는 소리가 화살소리처럼 들렸다.
‘더럽게 빨리 쫓아오네.’
4
탁좌량은 정신없이 뛰었다. 어디가 어디인지 구분할 정신도 없었다. 일다경은 금방 끝난다. 평소 같으면 몇 번 웃고 나면 지나가버리는 시간이다.
그 시간에 목숨이 달렸다.
그는 뛰고 또 뛰었다.
툭! 데구르르!
소위 무인이라는 사람이 돌멩이에 발부리가 걸려서 넘어졌다.
망신? 물론 개망신이다. 하지만 그런 점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벌떡 일어나 뛴다. 뒤를 돌아볼 시간도 아껴라. 돌아봐서 무엇하나. 잡힐 때가 되면 잡힌다. 그 전에는 오로지 앞을 향해서 치달려야 한다. 오직 질주만 생각하라.
쉬익! 쒸이이익!
그는 무공을 수련한 이후, 가장 절박하게 움직였다. 몸은 말을 듣지 않는데, 마음만 급했다.
‘조금이라도 더 멀리!’
스읏! 스읏!
조용히…… 검이 겨눠졌다.
그들은 모두 다섯 명이다.
전면에서 검을 들었지만 투기(鬪氣)가 느껴지지 않는다. 조용한 마음만 느껴진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 마음의 움직임을 고요하게 짓누를 정도로 일신의 무공이 빼어나다.
“가게 내버려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