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Treasure Sword RAW novel - Chapter 197
197
“검류?”
“주한극 맹주가 펼친 무공이 검류에요. 오성이 채 안 되는 무공이라고 하더군요.”
“오, 오성! 그 무공이 오성!”
홍화문주는 그들의 놀라움을 뒤로 하고 말을 이었다.
“홍화문은 새우에요. 고래 싸움에 낀 새우. 고래들이 싸우다가 휴전하고 싶으면 새우에게 말을 걸죠. 저쪽에 가서 휴전하라고 해. 그럼 저희가 반대쪽에 가서 중재를 서요.”
“그런 일이!”
“저들은 홍화문이라는 존재를 말을 전하는 도구로 이용해 왔어요. 홍화문에서 기무영이 말살된 후부터 지금까지.”
“음!”
백운진인이 또 신음을 토해냈다.
이들은 원래 삼각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으리라. 그러다가 불균형이 일어난다. 음살문과 비성검문의 세력이 커진다. 홍화문은 간발의 차이로 삼강 구도에서 이강일약의 구도로 떨어진다.
이럴 경우, 일약의 몰락은 당연하다.
헌데 음살문과 비성검문은 홍화문을 몰락시키지 않았다. 힘의 근원인 기무영만 제거했다. 그리고 그들의 말을 전하는 중재 도구로 활용해 왔다.
그런 도구를 없애고자 한다. 말살시키려고 한다.
‘전쟁이다!’
이것은 전면전이다. 비성검문에 대한 음살문의 선전포고다.
세 사람…… 아니, 무린 정세를 잘 알지 못하는 해과울까지도 진한 피비린내를 맡았다.
홍화문 싸움은 한 문파의 존폐만 걸린 게 아니다. 전 무림의 안위가 걸린 전초전이다.
“자세히 좀 이야기해 보시게.”
적화자의 음성이 매우 진중해졌다.
그들은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홍화문주는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모두 말했다. 깨알 한 톨도 숨기지 않고 모두.
말이 끝난 건 축시(丑時), 그러나 인시(寅時)를 넘어서 묘시(卯時)를 지날 때까지 다섯 사람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입도 벙긋거리지 못했다.
이 난관을, 이 숙제를 어떻게 푼단 말인가!
2
“처남이 염사검을 얻었다는군.”
“염사검? 염사검이 뭔데?”
소문주는 이 백치 같은 여자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머릿속에 든 것이라고는 오직 정사밖에 없는 여자가 혼천음양마공을 어떻게 수련했는지 궁금하다.
그가 생각하는 ‘정사’라는 개념은 혼천음양마공을 수련한 이후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 전…… 혼천음양마공을 수련하기 이전의 상태를 말한다.
수교빈의 본성은 음탕하다.
그녀의 근본을 샅샅이 뒤지면서 심하게 실망했던 기억이 아직도 뚜렷하다.
‘하필이면 이런 여자가……’
그녀에게 혼천음양마공을 전수한 이주 마출성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하필이면 하고 많은 여자들 중에 닳고 닳은 계집에게 절정 공부를 전수했는가.
어떤 여인이든 혼천음양마공을 수련하면 요부가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근본이 탕부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많이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모두 이미 지나간 일이요, 생각이지만.
그가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염사검을 모르나?”
“아이, 그렇게 물으니까 창피해. 나, 무림에 대해서는 속이 텅 빈 강정이라는 거 몰라?”
‘무림에 대해서만인가. 정사를 제외한 모든 것에 대해서 그렇지.’
소문주는 피식 웃었다.
수교빈은 모욕하고자 하는 뜻은 없다. 그녀가 비록 머릿속에 든 것은 없지만, 그와는 영원한 단짝이다. 수교빈을 제외한 그 어떤 여자도 온 세상을 얻은 것 같은 충족감을 안겨주지 못한다.
“염사검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주려면 밤을 새워도 모자라고…… 흠! 이렇게 말해주면 되겠군. 처남이 염사검의 정화를 모두 받아들였다면……”
“받아들였다면?”
“우리 두 사람을 상대할 수 있어.”
“피잇! 그런 거짓말이……”
수교빈은 말을 하다 말고 소문주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정말?”
“그래.”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그렇다니까.”
“어멋! 무슨 검이 그래? 염사검도 인검처럼 무공의 일종인가?”
“혼천음양마공보다 더 지독하지. 백면서생도 염사검만 쥐었다 하면 천하제일고수로 등극하니까.”
수교빈이 배시시 웃었다. 허풍이 너무 심하다는 듯이.
“처남이 누구를 벴는지 말해줄까?”
‘말해주면 알기나 하려나.’
다른 무인들에게는 한 마디만 해도 척하고 알아듣는데, 수교빈은 수십 마디를 해도 알아듣지 못한다.
이번에도 그렇다.
수교군에게 죽은 자들은 무공이 매우 뛰어나다. 그래서 무인들치고 그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헌데 수교빈은 모른다.
수교군이 그들을 죽였다고 하면 모든 무인들이 경악성을 토해낼 것이다. 헌데 수교빈에게는 죽은 자들이 어떤 인물이었는지부터 설명해야 한다.
소문주는 심심파적으로 말했다.
“순간을 열로 쪼갠다는 분광십자.”
“정말! 정말 교군이가 분광십자를 죽였어?”
“분광십자를 아나?”
이런 기가 막힐 일이! 이 여자가 분광십자를 알아?
소문주는 누구나 아는 사실을 수교빈이 안다는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멋! 사람을 뭘로 보고. 세상에 분광십자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후후! 그렇군. 하하하! 당연한 말인데…… 하하하! 그래, 처남이 분광십자를 일초 만에 죽였다는군.”
“하아!”
수교빈이 그제야 입을 쩍 벌리고 감탄했다.
“염사검이 대단하네. 그런 걸 정말 그 애가 얻은 거야?”
“그렇다니까.”
“어떻게 얻었을까? 아무 것도 손에 쥔 게 없었는데?”
“근원이 단철장일 것이라는 추론이더군.”
“단철장? 단철장…… 호호호! 호호호! 그랬구나. 단철장…… 그 애가 드디어 날개를 얻은 거야. 호호호! 혼자 단철장에 두고 와서 못내 마음 아팠는데, 잘 된 거야. 호호호!”
수교빈이 기분 좋게 웃었다.
소문주는 눈쌀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수교빈은 맑은 개울물에 얼굴을 씻고 있다. 얼굴이 더러워서 씻는 것이 아니다. 길을 가다가 너무도 시원해 보이는 개울물이 나타나자 맑은 탄성과 함께 말에서 뛰어내렸다.
그녀의 충동성은 매우 강하다.
수교군의 충동성도 누이에 못지않을 것이다.
‘바보 같은 놈!’
수교군을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조금만 생각이 있는 놈이라면 지금 염사검을 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 것이다.
염사검은 갓 탄생했다.
영검(靈劍)이 이제 막 영기(靈氣)를 띄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염사검의 영기는 겁화(劫火)에 뿌리를 두고 있다. 탄생의 근본이 살겁이다.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이 한과 공포심을 차곡차곡 쌓아놓은 검이다.
그런 검을 인간이 소지하기 위해서는 정화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 지금 염사검은 정화과정을 거치고 있다. 인간을 매개체로 해서 살기를 깎고 다듬는 중이다.
염사검이 제대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수십 명이 목숨을 잃어야 할 게다.
죽고 죽이면서 핏속에 검날을 푹 담근다.
원한을 피비린내로 달랜다. 그렇게 한을 죽여 간다. 살기를 다듬어 간다.
지금 염사검을 집어 든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 또한 검의 제물로 내놓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할 짓이 없어서 살기를 달래주는 도구가 된단 말인가.
수교군의 앞날이 환히 보인다.
‘저 여자…… 내 여자다. 염사검…… 있으면 좋겠지. 바보 같은 놈 때문에 피 좀 흘리게 생겼군.’
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왕 행동할 바에는 한시라도 빨리 하는 게 좋다.
“들어라!”
“넷!”
이무도 없는 허공에서 다부진 대답소리가 들려왔다.
“가라!”
“존명!”
그들은 어디로 가냐는 말을 묻지 않았다. 가서 무엇을 하냐는 말도 하지 않았다.
주인의 심정을 읽는다.
지금 주인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으며, 무엇을 요구하는지 안다.
주인은 수교군을 염사검의 주인으로 만들고자 한다. 염사검이 주인을 바꾸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혹여 수교군을 위협하는 자가 나타나면 그들이 대신 처리해야 한다.
쿵!
등 뒤에서 묵직한 것이 떨어졌다.
“이 애는 놓고 가겠습니다.”
소문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막 얼굴을 씻고 일어서는 수교빈을 쳐다보는 중이었다.
“어! 재……”
수교빈이 소문주의 등 뒤에 떨어져 있는 여인을 발견했다. 그리고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귀엽군.’
소문주는 피식 웃었다.
그녀는 수하들의 동태를 낱낱이 읽는다. 오귀를 장난처럼 죽여 버린 그녀다. 하물며 오귀보다 훨씬 떨어지는 수하들을 읽지 못할 리 있는가.
수교빈은 그들이 떠나는 것을 감지했다. 그들이 떠나면서 비비를 놓고 가는 것까지도 파악했다. 그러면서 짐짓 아무 것도 모른 척 연극을 한다.
무엇을 숨기거나 얻어내기 위한 연극이 아니다. 그런 표정을 소문주가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지어낸 애교일 뿐이다.
“귀찮다고 놓고 가네. 죽여 버리지?”
“아니. 살려둬야 해.”
“굳이 해과월 면전에서 죽일 정도로 애증이 깊었나?”
“애증? 호호호! 애증은 무슨…… 그놈…… 뭐랄까? 그놈은 우리에겐 노예 같은 놈이야.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 그런 놈이 다 컸다고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게 불쾌해.”
“그것뿐이야?”
“뭐가 또 있겠어?”
수교빈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그것밖에 다른 감정은 전혀 없는 것 같다.
소문주는 또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수교빈을 믿는다. 혼천음양마공을 수련한 사람은 다른 자에게서 쾌락을 얻지 못한다. 자신에게 그녀가 필요하듯, 그녀도 자신을 유일한 남자로 여긴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잡티 한 올 섞이지 않은 순수한 쾌락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러한 쾌락은 두 사람의 손발을 영속의 끈으로 묶어놓는다.
상대를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다.
그런데…… 그런 점을 알면서도 비비를 살려놓는 그녀를 보면 질투가 샘솟는다.
해과월에 대한 애증이 혼천음양마공의 쾌락을 넘어서는가?
수교빈과 해과월 사이에는 그럴 만한 애증이 없다. 속된 말로 말해서 서로 몸도 섞어보지 않았다. 수많은 사내와 관계를 가진 그녀였지만 해과월에게는 손도 내주지 않았다.
정말로 비비를 살려놓는 이유가 분노심 때문일까?
그렇다면 신경 쓸 일이 아닌데…… 그런데도 마음 한 구석이 서늘해진다.
‘좋지 않아. 저런 건 빨리 죽여 버리는 게 홀가분한데.’
그는 비비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비비를 구할 기회가 없다.
‘이제는 더 힘들어졌어.’
귀사령주는 암울한 눈으로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을 지켜봤다.
두 사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는 짐작된다. 저들은 홍화문을 찾아가고 있다.
지금 당장 비비를 구할 이유는 없다.
허나 구하지 않는 것과 구하지 못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비비가 소문주의 수하들에게 잡혀 있을 때, 그와 그들은 심한 견제를 했다.
그들은 귀사령주의 존재를 눈치 챘다. 그래서 일부러 비비를 내놓기도 하고, 거둬들이기도 했다. 미끼로 풀어놓는가 하면, 고문을 행함으로써 그를 잡아당기기도 했다.
그는 비비를 구하지 못했다.
소문주의 수하들은 결코 만만한 자들이 아니다. 귀사령을 모두 데리고 왔다면 혹여 모르겠는데, 단신으로는 어림도 없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생각이 든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저들이 흩어져 있다면 당장 치고 들어갔을 게다. 하지만 서로가 뭉쳐 있는 한, 그가 뚫고 들어갈 공간은 전혀 없었다.
원살염귀진(圓煞炎鬼陣)!
소문주의 수하들은 전설의 마진을 펼치고 있다.
열두 명의 사내들이 일심동체가 되어서 움직인다. 어디로 어떻게 움직이던 간에 월살염귀진의 원형을 흩트리지 않는다. 그들은 늘 자로 잰 듯 일정한 방위와 거리를 유지한다.
귀사령주는 아주 강한 반탄력을 감지했다.
원살염귀진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구축된 진에서 퉁겨나오는 반탄력이 심상치 않다.
개개인의 무공을 판단하면 오귀보다 훨씬 못한데, 한데 뭉쳐 놓으면 오귀도 감당할 수 없는 성벽이 된다.
‘뚫고 들어갈 수 없다!’
그의 판단이었다.
비비가 두 사람에게 인계된 지금은 더더욱 어렵게 됐다.
이제는 진이 아니라 검과 부딪쳐야 한다. 두 사람의 합공을 견뎌내야 한다. 하니, 인검과 싸워야 한다.
수교빈을 이길 수 있는가?
그는 이 물음에 자신하지 못한다.
그녀가 오귀를 어떻게 죽이는지 봤다. 자신이 직접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경쾌했다. 손속에 일말의 군더더기도 붙어있지 않았다.
굉장히 정교하게 다듬어진 살초(殺招)!
그는 그런 검을 받아낼 자신이 없다. 굳이 인검과 싸우라고 한다면 정교한 초식 대신에 정신을 뒤흔들어 놓는 마구잡이식 공격이 더 유용할 듯 싶다.
그는 두 사람을 쫓아서 걸었다.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고, 멀찍이 떨어져서 뒤만 쫓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이 전부다.
허억! 하악! 헉헉!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뜨거운 교성이 울려온다.
입으로 내뱉는 음성보다 자신도 모르게 흘리는 뜨거운 숨소리가 귀를 간질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