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8 Books of the Court's Drama RAW novel - Chapter 125
125. 남만 원정 완료… 남중 재편(남정편 끝.)
“공께서는 하늘의 위세를 지닌 분으로 감히 이길 자가 없습니다. 더는 우리 남인(南人, 남만족)들이 배반하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맹획은 자신의 패배를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나는 맹획이 패배를 자인하며 아국에 대항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자 속으로 쾌재(快哉)를 외쳤다.
‘됐어! 맹획의 마음을 치는데 성공을 하였어!’
이렇게 속으로는 만족을 하면서도 나는 짐짓 얼굴에는 그런 감정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그러며 나는 맹획을 손수 일으켜 자리를 하게 하면서 그를 위로하였다.
“대성이 참으로 어려운 결정을 하였소. 이제부터 대성과 이곳 남중의 백성들은 아국의 보호 아래 번영을 누리게 될 것이오!”
이에 맹획은 자신과 남만족의 귀부 의사를 밝혔다.
“공께서 허락을 하신다면 저와 저를 따르는 무리들이 촉에 귀부를 하여 촉의 진정한 백성이 되고 싶습니다. 원컨대 공께서 허락하여 주십시오.”
맹획이 스스로 귀부(歸附)를 청하자 나는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동안 남만인은 아국인 촉의 통제를 받고는 있었으나, 마음속으로는 따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데 이렇게 남만의 대호족인 맹획이 스스로 아국을 따르겠다고 하니 칠종칠금을 하여 공심위상을 한 것이 주효(奏效) 한 것이다.
하여 나는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좋소. 내가 대성과 남만 백성의 귀부를 대왕께 상주하겠소!”
* * *
이렇듯 내가 맹획을 사로잡았다가 풀어준 일에 대해 이 역사의 뭍사람들은 이를 두고 원 역사에서처럼 ‘칠종칠금’이라 불렀다.
여기서 어째서 맹획을 잡았다가 풀어준 횟수는 다섯 번이었는데, 이 역사에서도 ‘칠종칠금’이라 칭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잠시 설명을 하자면.
나와 맹획이 싸운 횟수는 총 7회였으니, 뭍사람들은 내가 맹획을 일곱 번 잡아 일곱 번 풀어준 것으로 윤색(潤色)을 하였고, 이로써 이 역사에서도 ‘칠종칠금’의 신화가 후세에까지 전해지게 된 것이다.
한편, 나는 성도에 즉시 표를 올려 진압군이 남중 반란을 완전히 평정(平定) 한 사실과 장수들의 공을 보고하였다.
그리고 원 역사의 제갈량이 그리했던 것처럼 남중 지역을 7개의 군으로 재편하는 안 또한 함께 상주를 하니, 그리하여 재편된 남중 지역의 7개 지역은 다음과 같다.
우선 성도와 크게는 촉 전체를 아우르는 명칭인 익주와 이름이 겹치는 익주(군)을 그 지칭부터 없애고, 건녕으로 이름을 바꿨다. 또한 건녕군의 치소를 전지에서 미현으로 옮기게 하였다.
거기에 기존의 남중 4군(또는 5군)에 운남과 흥고를 신설하여 남중을 7군으로 재편을 하였으니, 이에 7군은 월수, 영창, 주제, 장가, 건녕, 운남, 흥고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월수에는 서막의 사위 왕준을 불러 그를 월수태수로 삼아 언제 다시 발생할지 모를 수족의 반란에 대비를 하였다. 이어 영창은 아국에 배신하지 않고 이엄을 도와 반란군과 싸워 승리한 공이 큰 여개를 영창태수로 삼았다.
그리고 남중에서 비교적 촉 조정의 영향력이 큰 주제에는 성도의 관리 중 한 명을 태수로 임명하여 등방이 이끌던 병사들에 일단의 병력을 더하여 파견하였다.
운남과 흥고는 신설된 남중의 군으로, 월수와 영창 지역에서 일부 땅을 떼어내 운남군을 신설하고 역시 익주군과 장가군에서 일부를 떼어 새로 흥고군을 설치한 것이다.
그렇게 새로 만들어진 남중의 군 중 운남은 영창군승이었던 왕항을 운남태수로 임명하였다. 또한 흥고에는 중앙관리를 태수로 파견하고 병력을 두었으니, 이는 새로 신설된 이 지역이 언제든 다시 *반란의 싹이 돋을 수 있다 판단하였기에, 아국의 관리와 병력을 두어 통제를 한 것이다.
[* 비록 칠종칠금으로 맹획의 마음을 쳤다고는 하나, 촉 조정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남중 지역이기에 원 역사의 제갈량과는 다르게 관리와 병력을 둔 것이다.]그리고 마충을 장가군 태수 겸 내강도독(내항도독)으로 삼아 남중 지역 전체를 통할하게 하였는데, 이는 장가 지역이 오와 맞닿아 있기에, 오나라와 오에 포섭된 교주의 사섭을 동시에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이어서 항복한 옹개, 고정, 맹획 등의 병사들 중 정예 1만을 추려 성도로 이동하게 하고 그들을 오부군에 편성하였으니, 앞으로 위와 오와의 대결에서 이들의 활약이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거기다 나는 코끼리 부대를 아군에 편입하였는데, 코끼리에 철갑옷을 입혀 진정한 전투 코끼리 부대로 재편하고, 기수 또한 아군의 철갑의을 입혀 적의 점사 공격에 대비를 하였으며, 여기에 코끼리 한 마리당 궁수병을 한 명 더 추가하여 코끼리 부대의 공격력을 향상시켰다.
이러한 아군의 신설된 전투 코끼리 부대가 향후 전장에서 어떠한 맹활약을 펼치게 될지 나는 벌써부터 상상이 되었기에 즐겁기만 한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포로가 된 남만의 수만 병력 중 약 1만 명은 성도로 보내 제갈량의 사업을 돕게 하였고, 나머지는 모두 남중의 둔전을 일구는데 투입을 하였다.
건녕군 미현에 오부도위를 신설하여 이곳에서 둔전의 일체를 관리하게 하였는데, 이는 거대한 담수호인 전지와 유원지를 활용한 것으로 이로써 남중에서 상당한 군량미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이 역사에서도 이때부터 전지 지역이 남중 지방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문화의 중심이 되었으니, 훗날 전지에서 곤명으로 이름이 바뀌며, 이 지역이 운남(남중 지역은 후세에 운남으로 통칭된다.)의 중심지로 우뚝 솟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리고 중앙에서 파견한 관리가 건녕태수를 겸하며 오부도위를 관장하게 하였는데, 이 건녕태수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으니 후술하도록 하겠다.
앞서 살핀 것처럼 끝까지 아국에 대항하던 남만 지역은 아국의 관리와 병력을 파견하여 직접 통제에 나선데 이어, 칠종칠금으로 아국에 귀부한 맹획을 성도로 불러 원 역사에서처럼 어사중승으로 임명하여 중앙관리로 삼으니, 이는 여전히 남만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맹획이 아국에서 높은 관직에 오름으로써, 남만인들의 불만을 어느 정도 해소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거기에 나는 남중 호족들의 자제를 성도로 불러 교육을 하는 정책을 시행하니 일종의 기인제도(其人制度)였다.
이를 통해 남중 호족들이 반란을 획책할 가능성을 낮아지게 될 터였다. 거기다 아국의 교육을 받은 호족의 자제들이 아국에 동화가 될 것이기에, 향후 그들이 자신의 지역으로 돌아가게 되면 아국의 문화를 전파하는 첨병의 노릇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작금 영창군 태수로 있는 이엄의 일을 이야기해야겠다.
이엄은 원 역사에서처럼 그의 특기나 다름없는 보급을 맡기기 위해 중앙으로 불러들였다.
이는 위와 맞서는 전선이 대폭 확대된 결과 앞으로 전선의 보급이 문제가 생길 수 있기에, 보급 담당자가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원 역사에서 제갈량도 이엄의 보급 능력은 이엄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기 전까지 인정을 하고 맡겼다.
작금의 상황에서 장안의 대경성이 올해 안에 건설이 완료되면, 그곳이 이제 아국의 수도가 되어, 성도의 세자 유선의 분조가 합쳐지게 되며 장안으로의 천도가 단행될 것이다.
또한 아국의 실질적인 승상인 제갈량도 대왕 유비가 있는 장안으로 이동하여 옹양주를 관리하고 위나라를 견제하게 될 터였다.
그리되면 성도의 보급을 따로 담당할 관리자가 필요했기에, 나는 이에 이엄을 추천한 것이다.
제갈량도 나의 이런 추천의 의미를 이해하였는지 곧 장안의 유비에게 상신하여 이엄을 담당 관리로 임명하였다.
거기다 이엄은 제갈량에 이어 성도에서 보급 이외에 도강언의 관리까지 도맡게 되었으니, 실제로 제갈량은 이엄이 성도로 돌아오자 이와 관련한 모든 사항의 인수인계를 성심껏 하였다.
그리고 나는 이엄이 남중에서 영창을 잘 다스린 것을 확인 바 있다.
장안으로 천도를 하게 되면 필히 익주를 담당할 이가 필요할 것이므로, 나는 유비에게 이엄을 아예 익주자사로 천거할 생각이다.
원 역사에서 유비는 이엄을 탁고대신으로 삼을 정도로 신뢰를 하였고, 이번에 내가 직접 이엄의 정치력과 행정력을 보았기에 충분히 그가 익주자사의 임무를 잘 수행할 것이라 믿는다.
* * *
나는 반란을 진압하자 남정군을 우선 남중 지역에 배치를 하였다.
영창에는 기존의 수천 병력이 이미 있었기에 다른 남중 지역에 병력을 배치하였으니, 영창과 월수의 땅을 떼어내어 신설한 운남에 우선 2천을 두었다. 그리고 월수의 왕준은 수족의 반란에 대비해야 했기에 5천 정예를 맡겼다.
이어 건녕지역은 남중의 둔전에서 군량의 생산과 아국의 타 지역으로의 보급이 중요한 지역이기에, 남정군이 아닌 성도에서 직접 신임 건녕태수가 병마 5천을 이끌고 오도록 하였다.
오나라와 그리고 손권의 사주를 받아 남중 지역을 혼란케 한 교주와 맞닿은 장가와 신설된 흥고군에는 아국의 관리들이 파견되었고, 내강도독 마충에게 1만 8천여 병마를 주어 만일에 있을 오나라와 교주 사섭의 침입에 대비하게 하였다.
이에 마충은 병력의 배분에 대해 허락을 구하여 1만을 장가에, 나머지 8천을 흥고에 두었다.
이렇게 남중 진압군 중 2만 5천여 병력이 남중에 배치가 되었으니, 이 병력은 서황이 훈련한 신병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7천여 병력은 나와 생사고락을 함께 한 장비의 파서군 5천 등의 2군 주력군으로 나는 이들과 또 다른 싸움을 준비해야 했기에, 다시금 이 병력을 이끌고 성도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이 회군에는 새로 선발한 남만 정예병 1만도 함께 데려가기로 하였다. 선발된 정예 1만의 남만 병사들은 이제 촉군의 일원이, 그것도 따로 선발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거기다 그들의 수장이었던 맹획이 ‘하늘의 위세’를 지닌 분이라 말할 정도로 전투만 하면 승리로 이끄는 촉의 장수인 나 법정을 따르게 된다는 것에, 남만 병사들은 벌써부터 기대와 흥분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노수에 도착하여 아군의 대함대를 마주하게 되었고, 처음 보는 거대한 군함의 위용을 본 남만병 모두는 눈과 입이 모두 커질 정도로 놀라 다물 줄을 몰랐다.
거기에 나는 코끼리 부대 수백도 함께 성도로 데려갔던 것이니, 배 몇 척에 코끼리와 기수만을 따로 실어 이동하였다.
이렇게 남중의 일을 모두 마친 나는 장비 등의 제장과 함께 홀가분한 마음으로 노수로 향하였고, 마침내 노수에 다다랐다.
성도로 돌아가는 길은 남중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움직였던 길의 역순으로 노수에 정박하고 있는 아군 함대에 올라타 노수를 거슬러 올라갈 예정이었다.
우리가 노수에 당도하자, 나의 명을 받은 마량이 노수의 아군 함대에 군량과 마실 물을 잔뜩 싣고 이미 떠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마량은 우리가 도착하자 한달음에 달려와 우리를 반겼다.
나는 잠시 동안 아군 1만 7천여 병사와 코끼리 부대가 쉴 수 있는 시간을 갖기로 하였는데, 이때 마량이 긴히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며 나에게 시간을 내어달라 청하는 것이 아닌가.
‘마량은 평소 입이 무겁고 웬만해서는 보고 이외에는 나를 따로 만나 이야기를 할 사람이 아닌데. 무슨 일이기에 이리 나에게 시간을 내어달라 청하는 것일까. 음…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는 수밖에 없겠군…’
그리하여 나는 마량의 요청을 받아들여 면담을 하게 된 것이니, 과연 마량은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