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116
115화 낙양에서 온 현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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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성 안. 원외의 집.
그곳에는 원외를 만나러 온 각지의 명사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원외를 찾아온 것은 원소가 천하 각지로 보낸 격문 때문이었다.
이미 한 번 격문을 돌렸다가 쓴맛을 본 원소는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 번 격문을 또 돌린 것이다.
“대인께서 오셨다!”
누군가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치 정전을 방불케 하는 대청에 모여 좌우로 줄지어 앉았는데 상석에는 원외가 원기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와 앉았다.
“무슨 일로 이, 원 차양을 찾아오셨는가?”
원외가 좌중을 쓸어보며 묻자 좌중의 인사들 중 하나가 나섰다. 그는 원유 백업이라는 자로 원외의 조카이자 원소의 종형이 되는 사람이다.
“숙부님께 인사 올립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오냐오냐! 원 백업이로구나.”
“조카가 아니라 한조의 앞날을 걱정하는 선비로서 여쭙겠습니다. 본초의 격문에 따라 거병해야겠습니까?”
그러자 좌중의 인사들은 원외의 대답을 기다리며 그만 바라보고 앉았다. 이윽고 원외의 입이 열렸다.
“내 뜻은 변함이 없다. 본초, 그 아이와 엮이면 흉사가 끊이질 않을 것이다. 원 씨의 명성을 등에 업고 천하 맹주 노릇을 하고 싶은 모양이다만은 본초에게는 그만한 기량이 없느니라.”
원외가 내놓은 답은 아리송했다. 원소의 격문에 움직일 필요는 없으나 군을 일으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 다소 모호한 답이었다.
하지만 원외의 말은 좌중의 인사들을 안심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당장 원유만 해도 일찍이 출사하여 산양 태수의 자리에 올랐으나 동탁의 입경 후에는 태수의 인수를 반납하고 군마를 기르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 모인 다른 이들도 원유와 비슷한 처지였다. 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르는 자들이나 군웅이라 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새끼범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천하 만방에 떨치는 것을 원하는 것이지 원소를 맹주로 모시며 그의 수족 노릇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원가의 명성이 워낙에 대단하다보니 원가의 이름으로 보낸 격문을 따르지 않는다면 사교계에서 배척당할 것을 염려했던 것이다.
그런데 원외가 이 같은 대답을 내놓았으니 원소의 격문을 따르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이다.
“소질이 하나 더 여쭙겠습니다.”
“오냐, 그리 하거라.”
“그러면 누가 천하 맹주의 기량을 가지고 있습니까?”
원유의 물음에 원외는 입을 닫고 침음성을 흘렸다. 그가 즉답을 내놓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이미 원외는 이유에게 매수되어 원소의 격문이 힘을 쓰지 못하게 하는데 협력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누군가를 천하 맹주에 추천한다면 동탁을 적으로 돌리게 되는 것이니 이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게다가 자신이 알고 있는 군웅들 가운데 천하 맹주에 걸맞은 기량을 갖춘 자도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이제 원외의 말에도 무게가 실리지 못할 터였다.
“음······!”
벌써 두 번째 침음성이 터져 나오자 좌중의 시선이 원외에게로 모였다. 온몸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원외는 말문을 열었다.
“천하 대의를 위해 근왕하여 한조를 바로 세우자는 말만 듣고 움직이는 자는 어리석은 자다. 하지만 천자의 교지를 손에 쥐고 그런 말을 한다면 그 자를 응당 천하 맹주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원외는 딱 집어 누구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좌중의 인사들은 고개를 끄덕여 그의 말에 동의했다.
원소의 말대로 동탁이 역적이라 할지라도 천자의 허락 없이 군대를 일으킨다면 그 역시 역적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좌중의 인사들은 원외의 말을 듣고 안심하며 돌아갔다.
* * *
동탁이 천거한 인재들로 조정이 쇄신되어 낙양에도 새바람이 불고 있었다. 본래의 역사에서도 동탁은 한직에 머물거나 관직을 얻지 못한 인재들을 대거 중용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많은 인재들을 발탁하여 조정을 쇄신하게 되는데 이는 여포로 인해 동탁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서량 출신들로 요직을 채우려 했다. 그러나 여포의 용맹과 인망을 접하고, 열 배나 되는 병력차를 극복하고 천정관을 지켜낸 학소의 경우를 대하게 된 탓에 동탁은 마음을 달리 먹게 된 것이다.
도처에 관직을 내리는 교지를 들고 다니는 사자들이 분주하게 오갔다. 이를 본 낙양의 백성들은 조정이 구태를 벗어 천하를 평안하게 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동탁은 여포가 자신의 수하에게 기도위 벼슬을 내려 줄 것을 청하는 상소에도 부응했다. 관직을 받는 자나 그 배후를 위해서라도 보통 고관이나 명사를 조정의 사자로 보내 교지를 전하는데 이번에 병주로 가게 된 자는 위위 정립이었다.
위위(衛尉)라 함은 궁성을 지키는 무관직인데 그 휘하에 각 문을 지키는 문사마와 위사들을 거느리는 중이천석의 고관직이었다.
하진이 궁성 안에서 참변을 당한 후로 동탁이 입경할 때까지 궁 안팎의 소요로 인해 위로는 위위부터 아래로는 말단 위사에 이르기까지 그 씨가 말랐다.
게다가 동탁은 궁성의 수비를 모조리 서량병으로 채워넣었기 때문에 위위라 해도 이름 뿐인 자리였다.
정립과 같은 명사를 천거하여 조정에 묶어는 두어야겠고, 마땅한 자리는 없으니 위위 자리라도 주어 이렇게 교지나 전하러 먼 길을 가게 만든 것이다.
늦은 밤, 정립의 집.
수 일째 자신을 괴롭히던 불면증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정립은 간만에 깊은 잠에 빠졌다. 그는 좀처럼 꿈을 꾸지 않는데 꿈을 꿨다하면 항상 같은 꿈이었다.
꿈속에서 그는 항상 태산 위에 서서 천천히 떨어지는 태양을 받치고 있었다. 뜨거운 것은 느끼지 못했는데 태양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온 몸이 으스러질 것만 같은 고통을 느끼며 잠에서 깼다.
그런데 오늘 꿈은 달랐다.
하늘에서 천장(하늘의 무장)이 정립에게로 내려와 그의 머리 위에 해를 올려놓고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정립은 불길이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해에 깔릴 수 없어 이를 떠받쳐 들었는데 태산을 짊어진 듯 태양의 무게가 그의 몸뚱아리를 찍어 눌렀다.
태양의 열기에 정립의 몸이 순식간에 활활 타올라 몇 번이고 까무러치고 싶었으나 그것도 허사. 온몸이 타오르는 극악의 고통 속에서 정립은 눈을 번쩍 떴다.
“헉! 헉!”
기이한 악몽에서 깨어났을 땐 이미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흉몽이다. 이번 일을 맡지 말아야 하나?’
정립은 찝찝한 기분으로 관복을 입고 길을 나섰다.
* * *
병주성.
여포와 초선의 혼례일을 며칠 앞두고 혼례 준비를 위해 한창 바쁜 이 때, 조정에서 사자가 왔다. 팔척 장신의 거구이나 무장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청수함이 묻어나는 중년의 사내였다.
고순이 그들을 성문에서부터 호위해 자사부로 들이자 소식을 들은 여포가 그들을 맞이했다.
조정의 사자에게 읍을 하려는데 여포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여포 봉선이 정 대인께 인사드리오. 정 대인께서 이 먼 곳까지 와주실 줄은 몰랐소.”
여포의 말에 정립은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였다.
“여 장군은 나를 아시오?”
“연주의 현사 정욱 중덕을 모를 수가 있겠소?”
여포는 그를 알고 있었다. 그가 바로 조조의 모사 중 군진에서 최고라는 정욱이기 때문이다.
여포는 그를 만난 것은 두 번 만났다. 한 번은 조조가 아비 조숭의 복수를 빌미로 서주를 치러 출병하자 여포가 조조의 근거지인 연주를 공격했을 때였다.
연주 대부분을 집어 삼킬 수 있었으나 정욱은 연주의 전략적 요충지인 동아현과 범현, 그리고 초창기 조조의 거점이었던 견성을 끝까지 지켜내며 여포에게 고배를 들게 했었다.
그리고 또 한 번은 여포가 하비성에서 사로잡혀 백문루의 치욕을 당할 때였다.
순욱은 조조에게 여포를 최대한 치욕스럽게 죽이고, 목숨을 구걸한 것으로 후대에 전하여 조조에게 역사마저 지배하라 조언했다.
반면에 정욱은 여포가 당대의 영웅호걸이며 조조의 호적수였기 때문에 자진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말했다.
물론 조조는 순욱의 조언을 받아들였고 여포는 그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장군께서 잘못 아셨소이다. 소생은 정립 중덕이오.”
정립은 여포가 괜히 아는 척을 하다가 망신을 샀다 여겼다.
‘아닌데······. 이자는 정욱이 분명한데······. 정욱이 쌍둥이었나? 글자를 써서 보여주며 형제가 있냐 물어봐야겠다.’
여포는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돌연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손가락으로 ‘욱(昱)’자를 썼다.
‘이 글자가 맞던가? 아닌가?’
여포는 ‘욱’이라는 글자 중 가장 쉬운 ‘욱(昱)’자를 썼다가 어떻게든 유식해보이고자 하는 마음에 좌변에 불 ‘화(火)’자를 더해 ‘욱(煜)’자를 완성했다.
그러자 정립이 역정을 냈다.
“사람을 세워두고 이 무슨 실태요?”
이에 여포는 몸을 세워 두 손을 모아 들었다.
“죄송하게 되었소. 그런데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소?”
“그러시오.”
정립의 허락이 떨어지자 여포는 자신이 쓴 글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혹시 이 글자를 이름으로 쓰는 형제가 있소?”
정립은 여포가 쓴 글씨를 보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 이름자에 해를 가리키는 ’일(日)‘자가 있고, 좌변에 불 ’화(火)‘자가 붙었으니······.’
정립은 분명 이곳으로 출발하기 전날 밤에 꾸었던 꿈을 떠올렸다. 해를 떠받들어 온몸이 활활 불타오르는 끔찍한 악몽이었기 때문에 잊히질 않았던 것이다.
여포가 쓴 글자를 파자해보니 그 날의 꿈과 똑같아 정립을 당황케 했다.
하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은 정립이 여포에게 답했다.
“소생은 독자이외다. 사실 낙양성을 떠나기 전날 밤에 해를 떠바쳐 소생의 몸이 활활 타오르는 꿈을 꾸었는데 장군께서 ‘욱(煜소)’자를 써보이시니 참으로 신기하오.”
“묘한 꿈이오. 내가 모시는 여러 선생들 중에 점복에 능통한 사람이 있는데 꿈풀이를 한번 해보시겠소?”
“배려에 감사드리오. 우선 천자께서 내리신 교지를 전해야 하니 장군 휘하의 ‘저수’라는 분을 불러주시오.”
* * *
저수는 그날 기도위 벼슬과 함께 은사를 수놓은 화려한 전포를 하사받아 장수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저수를 위해 준비한 갑주까지 더해지니 화려하기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갑옷에, 은사 전포, 벽도목(霹桃木)으로 만든 사만대에 패용한 병주의 병부까지······.
겉모습만 본다면 수수하게 차려입은 여포보다 저수가 더 높은 사람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그렇게 교지까지 전해지고 이어진 주연이 끝난 후 여포는 정립에게 단목영과의 만남을 주선해주었다. 꿈풀이를 위해서였다.
단목영은 정립에게서 꿈의 내용을 자세하게 전해 들었다. 그런 연후에 단목영은 죽간에 ‘욱(煜)’이라는 글자를 쓰고 정립에게 물었다.
“정 대인의 이름이 ‘립(立)’인데 꿈에서 해를 떠받들었으니 ‘욱(昱)’이 되었고, 거기에 몸이 불탔으니 ‘화(火)’자가 더해져 ‘욱(煜)’자가 되었는데 이를 여 장군이 써서 보여주었다 이 말씀이 아니오?”
“그렇소.”
“음······!”
“어찌 그러시오? 풀이가 좋지 않소?”
“아니오. 그런 게 아니라······.”
“편히 말씀하시오.”
그러자 단목영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태양을 떠받들었다는 것은 명군을 주군으로 모시게 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 좋은 꿈이외다.”
“해가 너무 무거워 받쳐 드는 것이 무척 힘들었소.”
“맡겨질 소임이 막중하다는 뜻이오.”
“그럼 몸에 불이 붙은 것은 무엇을 뜻하오?”
“몸에 불이 붙은 것은 몸이 귀하게 될 것을 의미하오. 하지만 이 꿈풀이가 들어맞으려면 ‘욱(煜)’으로 개명하셔야하오.”
꿈풀이는 흡족했으나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는 말에 정립은 긴 한 숨을 내쉬었다.
유가의 법도를 따르는 한나라에서 점복술사의 말만 믿고 조부께서 지어주신 귀한 이름을 바꾸는 것은 불효한 일이기 때문이다.
단목영도 이를 알기 때문에 종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포는 생각이 달랐다.
“그냥 서있는 것보다는 명군을 떠받치는 것이 좋고, 몸이 귀하게 되는 것은 더욱 좋지 않겠소? 게다가 부모에게 받은 이름은 그대로 두고 두 글자를 더하는 것이니 불효한 일이 아닌 듯한데······.”
여포의 말까지 듣고 난 정립은 결심을 굳혔다.
“여 장군께서 소생의 이름을 달리 알고 계셔서 의아했으나 이는 하늘이 꿈으로 천명을 준 것이니 개명을 할 것이오. 도움을 주셔서 감사하오.”
그의 개명은 충동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껏 주인을 찾지 못했다. 동탁의 부름에 응해 위위 자리에 오르기는 했지만 동탁을 명군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문관인 자신을 궁궐 수비를 책임지는 벼슬을 주는 자를 어찌 명군이라 하겠는가.
원소가 천하 각지에 격문을 돌린 얘기는 이미 경성에도 널리 퍼졌다. 정욱은 이제 반동탁의 기치 아래 천하의 제후들이 자신의 깃발을 세우면 그들 중 하나를 주군으로 고를 생각이었다.
이미 그의 나이 마흔을 바라보니 이제 한 번 주군을 섬기면 바꾸기는 힘들 터. 한번의 선택이 최선의 선택이 되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개명을 선택한 것이다.
원래의 역사에서 정립은 조조에 의해 정욱(程昱)으로 개명하는 것이나 지금은 여포의 도움으로 ‘욱(昱)’자의 좌변에 ‘화(火)자를 더해 ’욱(煜)‘으로 개명하게 되었다.
여포와 단목영, 그리고 정욱이 이름에 관한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던 그 밤. 정욱을 따라 낙양을 떠나온 자들 중 하나가 몰래 숙소를 빠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