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498
497화 살려야지 죽이지 말고(生而勿殺), 기쁘게 해야지 노하게 하지마라(喜而勿怒)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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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표군 군영.
군영이라고 해봐야 제후군과의 거리가 가까워 언제든 버리고 갈 수 있는 허술한 군막 몇 개가 다였다. 다른 병사들은 삼삼오오 모여 무기를 정비하며 싸움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병사들은 적병과 싸울 생각에 다들 말이 없었다. 완성을 떠나올 때 유표가 백성들을 지키겠다고 했던 말 때문이었다. 물론 실제로 야전을 벌이게 될지 말지는 모를 일이지만······.
따그닥! 따그닥!
등에 백색 소기를 꽂은 전령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군영으로 들어왔다. 전령은 곧장 유표의 군막 앞까지 달려가 말에서 뛰어내렸다.
“보고요!”
전령의 외침에 군막을 지키고 있던 호사 하나가 군막의 휘장을 걷어 길을 열어주었다. 전령은 황급히 군막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유표와 괴월이었다.
“보고합니다! 적군이 완성을 떠나 남하하고 있습니다!”
전령의 보고에 유표는 침음성을 터뜨렸다.
“음······! 결국 싸움은 피할 수 없단 말인가?”
유표의 혼잣말과는 상관없이 괴월은 전령에게 눈을 맞추며 물었다.
“채 장군에게서 다른 말은 없었느냐?”
“첫 번째 작전은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하시며, 곧 두 번째 시도가 있을 거라 전하라 하셨습니다.”
전령의 말을 듣자마자 괴월은 급히 백우선으로 입을 가렸다. 전령에게 자신의 입가에 맺힌 미소를 보여주기 싫었기 때문이다.
“수고했다.”
괴월은 그리 말하며 한 손을 열심히 내저어 축객령을 내렸다. 그러자 전령은 두 손을 모아 들어보이고는 그대로 군막을 나가버렸다.
다시 둘 만 남겨진 군막을 잠깐 동안의 침묵이 가득 채웠다.
“선생, 생각보다 원술의 출병이 이른 것 같지 않소?”
“소신은 원술이 완성에서 오래 머물지 않을 거라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건 너무 빠르지 않소?”
“그만큼 그들의 군량사정이 여의치 않다고 보시면 됩니다. 얼마나 급하면 벌써 완성을 나섰겠습니까?”
유표는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선생, 채모에게 무엇을 시킨 거요?”
“아, 그거 말입니까? 피난민들 사이에 자객을 좀 섞어보았습니다.”
“자객?”
“놀라실 일이 아닙니다. 어차피 원술이 자객에게 당할 리가 없잖습니까?”
유표는 반박하지 못했다. 하기야 원술 같은 명망과 지위를 지닌 자라면 암살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할 터. 하지만 그간 원술이 자객의 습격을 받았다는 소문이 난 적은 없었다.
“암살하지도 못할 거라면 왜 자객을 쓴 거요?”
“자객을 쓰는 것은 제 책략에 반드시 필요한 양념입니다.”
“뜬구름 잡는 소리 말고 좀 자세히 말해주오.”
“간단합니다. 피난민 무리에 자객을 섞어 원술이 보이면 기습으로 위협을 하는 겁니다. 피난민들을 그저 쉽게 볼 수 없도록 말이지요. 소신의 생각대로만 된다면 원술은 피난민들만 봐도 그 무리 중에 자신을 노리는 자객이 있을지 모른다고 의심하게 될 겁니다.”
괴월이 자객을 쓴 것은 바로 그 점을 노린 것이다.
유표가 형주의 지존이 되고, 백성들 사이에서 인의군자로 칭송받게 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원술이 백성들을 해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천하를 노리는 군웅이 백성들을 해친다는 것은 민심을 잃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원술도 바보가 아니니 웬만해선 백성들을 향해 창칼을 휘두르려 하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자객을 쓴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괴월은 원술을 계속해서 자극하여 그가 실책을 범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악귀의 속삭임이라는 게 있다면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 * *
제후군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피난민 무리를 만났다.
원술은 그들 사이에 또 자객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두 번씩이나 자객에게 습격을 당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미 한 번 자객의 기습을 받았었기에 호사들의 대응이 빨랐다. 이풍을 앞세운 호사들이 순식간에 자객들을 참살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자객들의 시체를 보며 원술이 분통을 터뜨렸다.
“유표는 생각이 없는 놈인가? 자객을 같은 방법으로 두 번씩이나 쓰다니 멍청하기가 짝이 없구나! 아니면 이 원술을 하찮게 봤거나!”
세 번째 피난민 무리를 만났을 때 원술은 그만 잘못된 판단을 하고 말았다.
원술은 그들을 보자마자 수하들에게 명했다.
“한 놈도 살려두지 말고 모조리 죽여라! 백성으로 가장한 자객이다!”
이에 염상이 화들짝 놀라며 원술을 만류했다.
“주공, 백성들을 해치시면 아니 되옵니다. 백성이야 말로 천하의 근본이라 하지 않습니까? 백성을 해치면 민심이 주공께 등을 돌리게 될 겁니다. 민심을 얻지 못한 자가 어찌 천하를 얻겠습니까?”
“선생,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요? 벌써 두 번씩이나 유표가 보낸 자객들이 백성들로 가장하여 나를 노렸단 말이오!”
“저들의 어디가 자객으로 보이십니까? 저들은 그저 피난민들에 불과합니다.”
염상은 원술이 백성들을 공격하는 우를 범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사슴을 좇는 자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판이다. 실력을 갖추고 있다 해도 덕망이 없는 자가 천하를 얻으면 필시 오래 지키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이 덕망이라는 게 쌓기는 정말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날려버리는 것은 한 순간이다.
원술이 백성들을 도륙낸다면 지금껏 공들여 쌓아올린 명망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 터였다. 무슨 일을 해도 백성들을 도륙낸 사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원술은 괴월의 계략에 휘말려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티가 나면 어디 자객이라 할 수 있소? 자고로 노인과 아이, 그리고 여자를 조심하라고 했소. 자객이란 놈들은 사람을 방심하게 만드는 수법을 연마한 자들이 아니오?”
“태공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롭게 해야지 해롭게 하지 말고, 이루게 해야지 실패하게 하지 말며, 살려야지 죽이지 말고, 줘야지 빼앗지 말며, 즐겁게 해야지 괴롭게 하지 말고, 기쁘게 해야지 노하게 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염상은 원술에게 민심을 얻는 문도(文蹈)에 대해 간했다. 하지만 성현의 말씀으로도 원술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하기야 염상이 강태공이라면 원술은 문왕이 아니라 혼군 주왕이라 할 것이다.
“여봐라! 저들은 백성으로 위장한 자객들이니 한 놈도 빠짐없이 모조리 주살하라!”
원술의 명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창칼을 들고 피난민들을 공격했다. 군령은 선악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정의로운 군대와 불의한 군대는 오직 수장의 결정에 의해서만 정해지는 것이다.
“주공의 명이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말고 모조리 죽여라! 백성들로 위장한 자객들이다. 손속에 여지를 두지 말라!”
수백에 달하는 피난민들이 병사들의 창칼아래 하나둘씩 쓰러졌다. 장정은 말할 것도 없고, 여인도, 노인도, 심지어 아이들도 피를 뿌리며 고꾸라졌다.
그 참혹한 광경을 보다 못한 염상은 가슴을 치며 안타까워했다.
“아······! 하······! 이제는 정말로 끝이다, 끝! 어찌 눈이 있는데 바로 보려하지 않고, 귀가 있는데 바로 들으려 하지 않는가?”
염상의 탄식은 백성들의 비명소리에 파묻혀 원술에게 전해지지 못했다. 덕분에 그는 원술의 처벌을 피할 수 있었으나 기쁘지만은 않았다.
염상으로서는 주군인 원술의 만행을 막을 수도 없었고, 적군 군사인 괴월의 귀계도 간파하지 못했다. 그러니 지금은 목숨이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의 문제가 된 것이다.
괴월의 귀계는 염상의 예상을 넘어설 만큼 고단수였으며, 동시에 집요했다. 세 번째 피난민 무리에도 자객을 섞어 넣었던 것이다.
고작 세 명에 불과했지만 그들의 존재는 원술의 악행에 명분을 주었다.
물론 백성들을 해친 시점에서 이미 원술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저 원술이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가지도록 할 뿐이었다.
고작 세 명의 자객을 베기 위해 수백에 달하는 백성들을 참살하고도 원술은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했다. 오히려 자객들을 미리 해치울 수 있었던 자신의 혜안을 자랑했다.
“흥! 내 예상이 맞았군. 유표놈이 완으로 가는 길을 나무와 바위로 막더니 신야로 가는 길은 자객으로 지체하게 만드는구나! 여봐라! 앞으로 피난민들이 보이거든 즉시 참하라!”
* * *
원술의 만행은 유표군 척후에 의해 목격되어 곧장 유표와 괴월에게 보고되었다. 전령의 보고를 듣고 괴월은 주먹을 움켜쥐며 벌떡 일어섰다.
“주공, 채모, 왕위 장군을 출전시켜야겠습니다. 주공께서도 준비를 하시지요.”
괴월의 말에 유표가 전령에게 명했다.
“채모와 왕위에게 육양으로 오라 전하라! 그리만 전하면 된다.”
육양은 신야에서 북쪽으로 삼십 리 밖에 있는 작은 현이었다. 문제는 그곳이 육수를 기준으로 서쪽에 있다는 점이었다.
제후군은 완에서 바로 육수를 건너 신야로 향하고 있었다. 강 건너로 활을 쏘아도 화살이 닿지 않을 텐데 육양에서 무엇을 한단 말인가?
유표는 갑주를 입으며 출전을 준비했다. 이미 군영의 위치로 보자면 채모, 왕위군이 올 육양과는 지척이었다. 역시 그들 사이는 육수에 가로막히겠지만······.
전령은 괴월에게 붙잡혀 몇 마디 전언을 더 듣고 난 후에야 비로소 군막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는 물 한 사발 겨우 들이키고 다시 말에 올랐다.
전령은 유표와 괴월의 말을 되뇌며 열심히 말을 달렸다. 극양에서 한 번 말을 바꿔 타고 육수를 건너 열양으로 향했다. 열양에는 왕위군의 군영이 있기 때문이다.
왕위군은 열양이니 육양으로 가는 길이 그리 멀지 않다. 게다가 왕위군은 전원이 기병이니 금세 달려갈 수 있을 터였다. 전령은 왕위에게 군령을 전하고는 다시금 채모군이 있는 곳을 향해 말을 재촉했다.
채모는 유표군 수군을 이끄는 수군 총사였다. 야전보다는 역시 수전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제후군은 배는커녕 강을 건널 때 잠시 뗏목을 쓰는 정도에 불과했으니 수전을 벌일 리는 없을 테고 당연히 이렇다 할 전공을 올리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육수(?水)를 지키는 오백여 척의 전함을 그냥 놀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채모는 수군으로 전공을 쌓기 위해 괴월과 상의해 군략을 마련했다. 그것은 바로 전함 오백여 척을 나누어 그 중 이백여 척을 육수 상류 동무정(東武亭) 부근에서 닻을 내리고 대기하도록 했다.
나머지 삼백여 척은 육양 남쪽 십 리 밖에 두었다. 그리고 채모 자신은 이천의 병력과 함께 열양의 왕위군 군영과 멀지 않은 곳에 군영을 세우고 있었다.
전령에게서 군령을 듣자마자 채모는 장윤과 진좌를 불렀다. 장윤이야 금탯줄을 잘 잡고 태어난 데에다가 천생신력을 타고난 자라고 해도 결국은 아직 애송이에 불과했다.
마음만 앞서는 햇병아리 장윤과는 달리 진좌(陳坐)는 백전연마의 장수였다. 진좌는 본디 수적 출신이다. 그것도 수십 수백 명 정도의 작은 무리를 이끄는 것이 아니었다.
휘하를 수천씩이나 두고 있었으며, 한 때는 장호(張虎)와 함께 양양을 집어삼키기도 했던 큰 도적이었다.
진좌는 장호, 여개와 함께 황조의 휘하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황조의 이름을 선두에 두고 세 명의 부장을 합해 강하사걸(江夏四傑)이라 했다.
“장윤, 명이다! 육양 남쪽의 전함 삼백 척을 이끌고 육양의 포구로 가서 주공의 명을 받들라!”
“존명!”
“진 장군은 동무정의 전함을 이끌고 남진하라!”
“총사의 명을 받드오!”
채모는 진좌가 돌아서기 전에 한 가지 명령을 더 내렸다.
“진 장군은 하루에 두 번씩 전령을 보내 위치를 보고하오.”
그러자 진좌는 돌아선 것도 아니고 채모를 바라보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각도에서 슬쩍 두 손을 모아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채모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뒷맛이 영 씁쓸했다.
‘너무 뻣뻣해. 황조의 위세만 믿고 지금은 기세가 등등하지만 조카가 형주의 주인이 되기만 해봐라.’
어느 군벌 할 것 없이 자식들이 있다면 후계 문제가 없을 수가 없었다. 특히나 유표처럼 임지와 출신지가 다른데다가 두 아들의 지지기반이 다를 경우는 더욱 그렇다.
원소의 장남 원담이 예주에 지지기반을 두고 있다면 삼남 원상은 기주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유표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장남 유기의 경우 장자승계의 원칙에 따르면 후계 순위에서 절대적인 우위에 있다 할 것이다. 하지만 기반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차남 유종은 그 어미가 남군의 명문 채 씨 혈통으로 남군의 호족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채 씨의 군사력과 괴 씨의 재력이 없었다면 오늘의 유표가 없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유종이 후계를 이어받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다만 차남 유종을 지지하는 기반이 너무 확고하고 두텁다보니 남군의 호족가와 대립하고 있는 자들이 유기를 지지할 뿐이다.
유기가 좋다기보다는 유종을 지지하는 남군의 호족들이 싫다고나 할까?
유표군의 가장 큰 문제라면 채모와 괴량의 대척점에 맹장 황조와 문빙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 중 문빙은 남양 출신으로 맹장 소리를 들을 만큼의 무예와 용맹을 지닌 자였으나 고지식한 면이 있었다.
고향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가득 찬 그는 유표가 백성들의 안위를 위해 분연히 일어서자 크게 감명을 받았다. 그는 원술과의 일전에서 선봉을 맡겠다며 유표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