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505
504화 여포, 천하의 근심을 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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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조가 돌아오며 여포에게 죽간 하나를 건넸다. 여포는 죽간을 펼쳐 몇 자 읽지도 않았는데 헛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참!”
“여 장군, 어찌 그러오?”
“조 대인, 이 죽간을 좀 보십시오.”
“어디 봅시다. 음······! 이건 결투장이 아니오? 장군과 생사결을 벌이고 싶다고······.”
응조가 받아온 전서는 여포에게 결투를 청하는 도전장이었다.
“참으로 희한한 자들이오. 방사가 생사결이라니······. 내가 무슨 유협도 아니고······. 그리고 경사제일검 왕월? 참나! 어디제일검이니, 어디 제일궁이니 하는 자들 치고 제대로 된 놈을 본 적이 없소이다.”
여포가 투덜거리자 가후가 그를 달래듯 말했다.
“장군의 명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으니 장군을 꺾어 양명하고자 하는 자들이 많이 생겨났겠지요. 그들 중 하나가 도전장을 보낸 것 뿐입니다. 경사제일검이라니 이름 한 번 거창하군요.”
여포와 가후의 말이 끝나도록 조충의 눈은 죽간에 쓰인 이름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왕월······ 왕월······. 굉장히 낯이 익은 이름이다. 분명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인데 어찌 가물가물할꼬?’
조충은 왕월의 이름을 두고 한참을 생각한 끝에 기억 한 구석에 놓여 있던 일을 떠올릴 수 있었다.
“여 장군, 경사제일검이라는 말은 허명이 아니오.”
조충의 말에 여포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가후 역시 왕월의 명성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하기야 왕월이 명성을 날렸던 시기를 생각하면 당연한 반응이다.
사실 백파적의 두령들도 왕월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소개를 받은 후에도 그 실력을 의심하지 않았던가.
“조 대인, 왕월이라는 자가 정말 경사제일검이란 말입니까?”
“왕년에 그의 검예를 당해낼 자가 없었소. 환제 때 대장군 양기를 지키던 열두 고수가 모두 그의 검 아래 목이 떨어지고 말았지.”
조충은 기억나는 것들을 하나씩 풀어 놓았다. 왕월이 이미 젊어서 경사제일검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양기를 도모하기 위해 환관일파가 재물을 아끼지 않고 그를 영입했던 일도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조충도 깊이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굵직굵직한 사건들만을 나열하듯 말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분명 왕월은 전대의 절대 검호였다.
“그런 고수가 왜······?”
“장군, 소신의 생각에는 백파적이나 하동 호족들이 그를 초빙한 것 같습니다.”
“나를 상대하자고 전대의 검호를 불렀다? 정신이 나간 놈들이 아니오? 양기면 대체 언제적 사람이란 말이오? 나이 든 사람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말이야 바른 말이지 한창 때보다 기력이 딸리는 건 사실이잖소?”
“노욕(老慾)이겠지요. 물러날 때를 아는 자야 말로 진정 현명한 사람인 것을······. 소신이 왕월이라면 경사제일검의 명예를 안고 관에 들어갈 겁니다.”
하지만 조충의 생각은 달랐다.
“여 장군, 노부의 생각으로는 왕월을 쉽게 여겨서는 안 되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도전장을 보낼 정도라면 오십 합은 거뜬히 펼칠 수 있을 거요. 왕년에 왕월의 검 아래 스무 합을 버틴 자가 없었으니 그는 자신의 승리를 의심치 않을 테지.”
“정말 가 선생의 말마따나 노욕입니다. 세상에 기인이사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많은 세월이 지나도록 자신이 제일일거라고 자신하다니······.”
여포는 자기가 말하고도 마치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아 내심 놀랐다. 자신 역시 천하제일을 자처하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주군! 이, 고순에게 맡겨주십시오. 주군께서 직접 나서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에헤이! 이, 서 공명이의 부월이 오래 놀았잖소? 당연히 내게 우선권이 있는 거지. 고순 형은 내게 양보하시오.”
“어디 사내들이 함부로 설치느냐? 집에 가서 애나 돌보거라. 고석왕 연제 저고님께서 해결하겠다.”
고순부터 서황, 저고까지 서로 자기가 나서겠다 투닥거렸다. 하지만 여포는 이들에게 싸움을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아니다 내가 직접 상대해주어야지. 경사제일검이었다지 않느냐?”
무장들이 경사제일검의 이름에 흥분할 때, 가후는 미소를 머금은 채 하동의 지도를 떠올리고 있었다. 이번 하동 정벌은 지금까지의 싸움과는 달랐다. 부담이 없다고나 할까?
백파적이야 조정에서는 토벌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세력이지만 여포군에게는 손쉬운 상대에 불과했다.
흑산적에 비하자면 백파적은 어린 아이 수준 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그 수가 많다고는 하나 제대로 된 군대가 아니라 도적의 무리일 뿐이다.
하동 호족들은 영채를 세우고 농성하고 있으나 성을 공략하는 것에 비하면 이 역시 쉬운 일이다.
그러니 가후는 두툼한 살코기를 구워 먹을지 삶아 먹을지 고민하면 되는 것이다.
* * *
여포는 부푼 기대를 안고 병마를 재촉했다.
무장으로서의 호승심은 당장이라도 적토를 타고 바람처럼 달려가고 싶게 했다. 하지만 여포는 스스로를 무장이라 여기면서도 일군을 이끄는 총사임을 잊지 않았다.
도전장을 보낸 자가 절세 검호이니 자신과 그의 대결을 장졸들에게 보여줄 생각에 군대와 함께 가고 있는 것이다.
패배 따위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저 장졸들이 고수들의 싸움을 보고 깨달음을 얻길 바랐다.
군협지나 유협담 속의 고수들처럼 하늘을 날고 땅을 가르는 싸움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것을 기대할 사람은 어차피 없었다. 다만 고수들 간의 공방을 보며 그들의 수법을 훔쳐 배울 수만 있다면 언제고 한 번을 쓰일 때가 있을 터.
여포의 뒤를 따르며 가후는 서황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서 장군.”
“장군 소리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선생.”
“자사부를 나서면 장군이신 거외다.”
“편하실 대로······. 한데 어찌 소장을 찾으셨습니까?”
서황이 용건을 물었다. 그러자 가후는 기다렸다는 듯 본론으로 들어갔다.
“하동 정벌에 관해 장군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오.”
“여 장군이 나선 이상 소장은 향도관(嚮導官) 역할 밖에 할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소생은 하동을 정벌하는 일에 강공을 펼쳐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소. 백파적은 갱생의 가능성이 있소?”
가후가 묻자 서황은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저었다.
“백파적은 천하의 해악일 뿐입니다. 곽태가 백파곡에서 봉기하기 전에도 하동을 중심으로 병주와 옹주를 노략질하던 도적의 무리였지요.”
“보기보다 오래된 도적떼인가보오?”
“황건적이 기승을 부릴 때에는 머리에 황건을 두르고, 재물을 주면 호족들의 개가 되며, 조정의 대신들은 자신들이 전면에 나서지 못하는 더러운 일을 그들에게 맡기기도 합니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자들은 휘하에 들여도 언제 배신을 할지 모른다. 가후는 백파적의 본질을 알자 그들을 어찌 상대할지 감을 잡았다. 이제 다음 문제는 하동의 호족들이었다.
“그럼, 서 장군. 하동의 호족들은 어떻소? 하동의 호족들은 하내의 호족들과는 경우가 다르오. 너무 손을 더럽혔지. 하나 소금 생산에 차질을 빚어서는 곤란하오.”
가후는 백파적과 마찬가지로 하동의 호족들을 쓸어버려야 할지 말지를 고심하고 있었다.
“하동 호족들은 조정에도 줄을 대고 도적의 무리와도 손을 잡고 있는 악질들입니다. 나라에서 손을 놓고 있으니 하동의 백성들만 불쌍한 것이지요. 하동에서는 호족들이 천자나 다름없으니까요. 여 장군에게 귀부한다해도 도움이 안 될 겁니다.”
“그렇다고 모조리 죽일 수는 없지 않겠소? 나라에서 전매를 할지 안 할지 알 수는 없으나 분명히 여 장군이 하동을 평정한다면 조정에서는 숟가락을 얹으려 들 것이오. 그러니 소금 생산에는 차질이 없어야겠지.”
어차피 한실부흥의 대의를 기치로 걸고 있는 이상 여포로서는 피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이를 테면 이번 하동 정벌로 얻게 될 염호가 그렇다.
이미 관녕이 소금 전매로 국고를 채우는 시책을 조정에 냈다. 그러나 아직 이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가후는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는 셈이다.
“소금은 호족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은 염호에서 일하는 일꾼들이 만드는 것이지요. 염방(鹽?)을 아십니까?”
“실은 잘 모르오. 군사가 되어서 모르는 게 많으니 부끄럽소이다.”
“소장이야 하동 사람이니 아는 것일 뿐 사람이 어찌 세상 모든 일에 밝을 수 있겠습니까? 염방은 쉽게 말하자면 염호에서 소금을 생산하는 일꾼들의 조직입니다.”
“그런데 염방의 이름을 입에 담은 이유가 무엇이오?”
가후가 묻자 서황은 기다렸다는 듯 답을 내놓았다.
“염방만 손에 쥐면 호족들 따위가 없어도 소금생산에는 지장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럼 호족들이 하는 일이 뭐요?”
“생산된 소금을 보관하고 파는 일이지요. 재물은 얻는 것도 지키는 것도 모두 중요한 것이 아닙니까?”
가후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다가 뭔가 떠오른 모양인지 다시 말문을 열었다.
“하동의 호족들이 쓸모없는 존재라는 것은 알겠소. 하지만 그들을 명분 없이 멸문시킬 수는 없는 일이오. 여 장군과 그 군대는 언제까지나 정의롭다 여겨져야 하오.”
“음······! 그거라면 소장이 한번 고심해보겠습니다. 하동의 호족들은 소금과 관련하여 하동 백성들에게 못할 짓을 많이 했을 터.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만은 하동의 호족들을 털면 구정물이 쏟아질 겁니다.”
* * *
가후와 서황의 대화가 끝나갈 때쯤 여포는 길을 막고 있는 방사들의 무리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선두에는 자리를 깔고 앉은 노인이 있었다.
그의 곁을 지키는 방사들은 모두 젊었기에 여포는 그 노인이 바로 경사제일검 왕월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가부좌를 틀고 있는 모습만으로도 그의 체구가 장대하다는 짐작이 갔다.
왕월은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가 여포를 향해 안광을 쏟아냈다. 화산의 도관에서 이락과 호재가 보았던 것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왕월은 지난 며칠 동안 잠을 설쳤다. 여포가 정말 자신의 검예를 당해낼 수 있을지 기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절대자의 자리는 고독이 함께 하는 법. 그토록 그리던 호적수가 나타나기만을 바라고 또 바랐다.
하늘은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방천화극을 든 장대한 체구의 거한이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이다.
‘여포가 화극을 쓴다고 했었지?’
그는 저 멀리 여포가 다가오는 모습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굳이 검을 섞어보지 않아도 강자는 강자를 알아보는 법. 여포의 기도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벌써 온 몸의 털들이 반응하고 있었다.
팡!
왕월은 바닥에 깔린 자리를 후려치는 것만으로 단숨에 몸을 띄워 일어섰다.
‘전력을 다해 일백 합을 겨루어 볼 만 하다.’
왕월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소리쳤다.
“여포! 경사제일검 왕월이 천하제일을 자처하는 네 솜씨를 보러 왔으니 어서와 겨루어보자!”
하지만 안타깝게도 방천화극을 들고 있는 자는 여포가 아니었다. 고순은 굳이 여포에게서 받은 곤룡창을 수하들에게 맡겨두고 여포의 애병인 방천화극을 들고 있었던 것이다.
왕월은 고순을 여포로 착각한 것인데 충분히 그럴 만 했다. 고순은 여포 휘하 팔건장 중 수장이니 용맹과 무예로 따지자면 어디 내놓아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고순은 왕월이 자신을 여포라 부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어이가 없다는 듯한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나는 여포군 팔건장의 고순이다!”
고순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자 왕월은 깜짝 놀랐다.
‘여포가 아니라고?’
그는 시선을 옮겨 여포를 찾았다. 그리고는 서황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쳤다.
“네놈이 여포렷다? 방천화극을 쓴다고 하더니만 어찌하여 선화대부를 들고 있는 것이냐?”
“나는 여포군 군리 서황이다!”
“군리? 이런 미친놈을 보았나!”
“군리가 어때서? 늙은 놈이 감히 여포군 군리가 어떤 자리인 줄도 모르고 망발을 일삼는 게냐!”
왕월은 어리둥절했다.
‘내가 오래 폐관을 했더니 군리가 내가 알던 그 군리가 아닌가? 아니면 여포군의 군리는 상장을 이르는 말인가?’
왕월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쯤 여포가 나섰다.
“노인장이 경사제일검 왕월이오?”
“어린놈이 예의도 모르는구나. 다른 사람의 이름을 물을 때에는 자신의 이름부터 먼저 밝히는 것이 예가 아니더냐?”
여포는 고순의 곁을 그냥 지나치며 말했다.
“노인장, 길을 막고 있으면서 예의를 따질 처지는 아닌 것 같은데?”
“어린놈이 입심은 제법이로구나. 입심만큼 무예도 쓸 만한지 경사제일검 왕월이 평해주마.”
“이, 여포 봉선의 무예를 평가한다고? 노인장, 왕년을 생각하다가는 제 명에 못 죽는 수가 있소.”
“어린놈아, 네놈이야 말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천하제일을 운운하다니 가소롭다.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가르쳐주마.”
왕월은 검받이를 손가락으로 살짝 밀어 검신을 반 치 쯤 드러냈다. 그것만으로 여포는 왕월이 발검부터 맹공을 퍼부을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포는 여유로웠다.
“노인장, 노인장이 한 번 골라보시오. 내 화극에 목이 달아나고 싶소? 아니면 검에 심장이 꿰뚫리고 싶소? 내 원하는대로 해드리리다.”
“어차피 내 검에 목이 떨어질 놈이 무엇을 수중에 쥐고 있든 무슨 상관이냐? 네 편한대로 하거라.”
그러자 여포는 적토의 등에서 내려서는 녹로를 뽑아들었다.
“내 검은 길어서 발검식을 펼치지 못하니 먼저 뽑았소. 노인장이 이해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