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564
563화 풍마욕(風魔?)의 비극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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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는 태산 천주를 비우고 하루가 지났건만 아직도 천촉을 벗어나지 못했다.
유비 입장에서는 뭐 하나라도 더 챙겨가야만 했다. 이미 치현에 옮겨놓은 재물과 식량을 모두 잃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유비를 따라 움직이는 신도들은 굼뜨기가 굼벵이보다도 더했다. 하기야 평지도 아니고 산길을 짐을 짊어지고 가는 것이니 쉽지 않으리라.
가장 큰 문제는 유비를 따르는 신도들이 태산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유비는 스스로를 태산부군의 사자라 칭하니 세상 모든 복락이 유비에게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당연히 그를 따르는 자신들은 선택받은 자들로 세상 모든 고난과 핍박이 비켜가야만 한다 믿었다.
그런데 성지인 태산을 떠나야 한다니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천촉에서 좀처럼 움직이려들지 않았고, 유비는 그들을 설득하는데 시간을 많이 지체했다.
“진인! 진인!”
유비를 부르며 호사 하나가 달려왔다.
유비는 호사가 자신을 불러대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 했다. 그가 유비 앞에 부복했다.
여느 때 같으면 발길질을 하든 따귀를 때리든 했을 터.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보는 눈이 많기 때문이다.
유비는 주먹을 움켜쥐었다가 펴며 천천히 호사의 어깨를 토닥였다.
“신도들이 놀라지 않느냐. 괜히 목소리를 함부로 키우지 말거라.”
“예, 진인!”
“그래, 또 무슨 일이냐?”
“큰일 났습니다. 관동군이 다시 출병했습니다!”
관동군이 출병했다는 소식에 유비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그는 이내 순욱을 노려보았다.
순욱은 관동군이 태산을 원할 뿐 유비를 도모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그의 계책을 받아들여 태산 천주를 비워준 것인데 일이 그만 틀어지고 만 것이다.
순욱은 유비에게서 따가운 시선을 느껴야만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그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 것은 관동군의 의도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렇게 될 게 아닌데······. 설마 두 방면에서 태산을 공략했던 것은 각기 목표가 다르기 때문이었나?’
순욱은 자신의 예상이 빗나가자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하지만 이는 그의 잘못만은 아니다. 곽도가 이런 그림을 그렸을 때 지금과 같은 상황을 예상치는 않았기 때문이다.
곽도가 원소에게 군략을 올리며 예상한 것은 원담군의 내분이었다.
순우경이 무력으로 반기를 들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순우경은 총사가 아니라 원담의 부장으로 출전하는 것이니 그 어떤 협력도 없을 것으로 여겼다.
뿐만 아니라 노병 3만의 군세를 원담에게 허락한 것은 아예 싸울 생각을 말라는 의도였다.
그런데 신평이 곽도의 예상을 깨버리고 만 것이다.
급기야 청주로 도망쳐야 할 유비를 도모하려고까지 하는 것이니 이를 어찌 순욱의 식견이 모자란 것이라 치부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유비는 이를 알 리 없었다.
‘쓸모없는 자로다! 조조는 저런 자를 군사로 두었으니 그 꼴을 면치 못했겠지.’
유비는 내심 순욱을 쓸모없는 자라 평했다. 다만 당장 버릴 생각은 없었다. 비밀을 많이 알고 있으니 차라리 조용하게 죽일 생각이었다.
* * *
“태산부군께서 현몽하여 말씀을 전하시기를 태산을 떠나 넓은 세상에 도를 전하라 하셨다! 이를 원치 않는 유가의 악적들이 지금 쳐들어와 나를 도모하려하는 구나! 그러니 너희들은 나를 지키고 도를 지켜라!”
유비의 일장연설은 광신자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태산진인을 지키고 도를 지키자!”
“태산진인을 지키고 도를 지키자!”
광신자들은 이미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자들이다. 그 어떤 설득력 있는 논리보다도 유비의 말을 진리로 여겼다.
유비는 그들과 함께 천촉을 내려갔다. 하지만 그들은 태산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원담군에게 후미를 잡혔다.
“황건의 잔당들을 쓸어버려라! 악적 유비의 수급을 가져오는 자에게는 은병 일백 개를 상으로 내리겠다!”
“오오!”
“오오!”
원담이 칼을 뽑아들고 소리치자 노병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그들이 보기에 이번 싸움은 하등 어려울 게 없었다. 상대는 오합지졸 농민군에 불과하니 기세를 타고 일거에 무너뜨릴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들의 예상은 당연히 현실이 되었다.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자들에게 오합지졸 농민군을 상대하는 것은 그야말로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쉬운 일이다.
전투가 시작되기 무섭게 원담군이 유비군을 밀어붙였다. 시작부터 승기는 원담군에게로 무겁게 기운 듯했다.
병략을 모르는 자가 봐도 승패는 뻔한 것. 하지만 원담군 군사 신평은 완전, 완벽의 승리를 바라는 자였다.
“총사, 우측면에 병력을 보강하십시오.”
“이대로 두어도 승리는 내 것인데 굳이 군략을 쓸 필요가 있소?”
“물론입니다. 승리가 다 같은 승리는 아니니까요.”
묘한 말이었다. 그러나 신평다운 말이기도 했다.
보다 적은 피해로 많은 수를 제압하는 것이야말로 신평이 추구하는 병법이니까.
“하면 안량, 문추 장군도 우측면으로 보내는 건 어떻겠소?”
“문추 장군만 보내시고, 안량 장군은 힘을 비축하게 두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산중에서의 추격전은 체력을 빨리 잃습니다.”
신평은 이제 겨우 초반인데 벌써부터 추격전까지 염두해두고 있었다.
원담은 문추를 출격시켰다. 물론 문추는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오합지졸을 얼마나 베어야 전공이라 할 수 있을까?
“관동군 상장, 문추! 출전!”
문추는 일부러 자신의 이름을 목청껏 외쳤다. 아마도 자신의 이름을 듣고 적병들이 도망쳐주기를 바란 건지도 모른다.
문추의 출전으로 인해 유비군은 이렇다 할 반격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풍마욕(風魔?)까지 밀렸다.
풍마욕은 계곡의 이름이다.
계곡에 바람이 불면 그 소리가 마치 마귀의 소리와 같다고 해서 이런 해괴한 이름이 붙여졌다.
하지만 지금의 풍마욕은 그 이름이 걸맞았다. 곳곳에서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지는 자들이 한 폭의 지옥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 * *
“헉! 헉!”
순욱은 거친 산길을 쉴 새 없이 달리고 있었다. 나뭇가지에 걸려 뺨과 손에는 몇 개의 생채기가 났다. 상처에는 어느새 피가 맺혀 있었지만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잡아라!”
관동군 병사들이 순욱을 쫓고 있었다. 순욱은 사인의 몸으로 이렇다 할 무예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병사들의 추격을 뿌리치는 건 아무래도 힘들어 보였다.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달렸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도 결코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발이 점점 무거워지는 것만은 피할 수 없었다.
철퍼덕!
순욱은 마치 걸음마가 서툰 아이처럼 넘어졌다. 그 틈에 관동군 병사들이 거리를 좁혀와 순욱을 창에 꿰려했다. 그런데 그 때, 순욱을 위기에서 구해준 자가 있었으니······.
쿵! 쿵! 쿵!
일보 일보가 지축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이내 뻑! 하는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우왁!”
성난 황소처럼 달려와 적병을 들이받아버린 자는 다름 아닌 장비.
그의 어깨에 들이받힌 병사는 새우처럼 등이 굽어 저만치 나가 떨어졌다. 던져진 병사는 얇은 나무줄기 몇 개를 부러뜨린 후에야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 때쯤 이미 장비의 사모는 두 명의 적병을 꼬치처럼 꿰고 있었다.
“후우! 하늘이 아직 이, 순욱을 데려갈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오. 고맙소.”
순욱은 자신을 향해 솥뚜껑 같은 손을 내민 장비를 보며 한숨을 돌렸다. 장비는 순욱이 자신의 손을 붙잡고 일어서자마자 물었다.
“큰 형님은······.”
장비가 용건을 꺼내기도 전에 순욱은 자신이 달려온 길을 향해 턱짓을 했다.
“풍마욕으로 밀려났소.”
그 말을 듣자마자 장비는 몸을 돌렸다. 그가 풍마욕으로 가려는 듯 여겨지자 순욱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순욱은 장비의 팔을 붙잡았다.
“가지 마시오. 가면 살아서는 돌아올 수 없소.”
“그곳에 큰 형님이 있소.”
“그런 자를 위해 의리를 지킬 필요가 있소?”
순욱은 큰맘 먹고 질렀다.
결의형제를 욕하는 것은 원수가 되자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데도 순욱이 그런 선택을 한 것은 장비가 너무도 아까운 인재였기 때문이다.
“큰 형님이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어쨌든 결의형제를 맺었소. 동년동월동일동시에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동년동월동일동시에 죽기로 하늘과 땅에 맹세를 했으니 내가 먼저 이를 어길 수는 없소.”
장비도 의리 있는 자였다.
다만 유비에게 불만이 많았을 뿐이다. 경학을 익힌 자가 유비의 행동을 보고 불만을 가지지 않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 불만이 결의형제를 깨버릴 만큼은 아닐 따름이다.
* * *
풍마욕에 몰린 유비는 병사들을 독려했다. 물론 그 방식은 사도로 홀리는 더러운 수법이었다.
– 나를 지키는 것은 태산부군을 지키는 것과 같다.
– 나를 위해 목숨을 던지는 것은 몇 대를 쌓아도 쌓지 못할 공덕을 쌓는 것이다!
– 태산부군께서 너희 생전에 지은 모든 죄를 사하여 줄 것이다! 그러니 너희를 나를 위해 죽어라! 그리하면 너희는 신선으로 다시 태어나 동천복지에서 영원토록 즐거움을 누리며 살리라!
유비는 이 세 가지를 큰 틀로 쉴 새 없이 지키지도 못할 말을 남발했다.
이성이라는 것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이런 말들에 미혹되지는 않을 터. 하지만 광신자들에게 유비의 말은 성현의 말씀보다 높은 곳에 있는 것이었다.
특히나 가관인 것은 ‘동천복지(洞天福地)’라는 말까지 알뜰하게 써먹은 부분이었다.
동천복지라 함은 36동천, 72복지에서 따온 말로 이를 테면 도가에서 말하는 이상향이라 할 수 있었다.
이 때만 해도 ‘무릉도원’이라는 말은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굳이 비교를 하자면 그에 필적하는 곳이 바로 동천복지다.
신선이 사는 땅으로 그곳에 간 사람은 영원토록 복락을 누리며 살아간다고 한다. 유비는 자신을 위해 죽으면 그런 곳에 가게 되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작 유비는 죽음이 두려워 광신자들을 앞세워 방패막이로 삼고 있었다.
광신자들은 유비의 말을 듣고는 눈이 뒤집혀 관동군을 향해 몸을 던졌다.
창칼을 다루는 실력이야 관동군에 비할 수 있으랴만은 전의(戰意) 만큼은 관동군보다 높을 터였다.
“황건의 잔당들이 사술을 부린다!”
관동군 노병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쓰러지는 쪽은 유비군이었지만 그들에게 오히려 두려움을 느꼈다.
하기야 눈을 까뒤집고 죽자 살자 들러붙는 자들을 상대하는 일이니 어찌 그렇지 않으랴.
황건동란 때의 악몽이 절로 떠올랐다.
“우오오오!”
문추의 입에서 터져 나온 사자후가 풍마욕을 뒤흔들었다. 아군의 이목을 자신에게로 모은 문추는 대도를 앞세워 유비군 병사들을 쇄도해갔다.
“으아아악!”
문추의 대도에 가슴팍을 베인 유비군 병사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계곡의 비탈길을 굴렀다.
이미 그렇게 죽어나자빠진 시체들이 계곡에 가득이었다. 피가 냇물처럼 흐르고, 피비린내가 역하게 올라왔지만 다들 창칼을 휘두르는데 급급할 뿐이었다.
“유비, 이놈! 쥐새끼처럼 숨어있지 말고 어서 나와라! 네놈 면상 한 번 보자꾸나!”
문추는 이 지저분한 싸움을 끝내려 유비의 이름을 고래고래 불렀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유비가 나설 리 없었다. 그는 궁지에 몰려 더 이상 도망칠 수 없게 되었음을 알았다.
‘팔자에도 없는 방사 노릇까지 했는데 결국 이렇게 끝이란 말인가? 관우, 장비만 곁에 있었어도······.’
이렇게 궁지에 몰리고 보니 유비는 관우와 장비가 아쉬웠다. 하지만 이미 문추가 지척에 이르고 있었다. 유비를 지키던 호사들이 떼지어 문추에게 달려들었지만 공연히 목숨만 잃을 뿐이었다.
“네놈이 유비렷다? 네놈의 수급은 갈 길이 멀다! 이, 문추가 네놈 수급을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바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