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63
62화 천하대란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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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평 6년. 4월 병진일.
동한의 12대 황제 굉이 남궁의 가덕전에서 붕어했다. 시호는 영제.
십상시에게 눈과 귀가 가려진 채로 황음을 일삼다가 수년 와병 끝에 향년 34세로 영면에 든 것이다.
권자의 주인이 사라지자 낙양에는 후계 구도를 둘러싼 암투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영제는 황자 둘을 두었는데 황자 변과 황자 협이 바로 그들이었다.
황자 변은 대장군 하진의 누이인 하 황후의 소생이다. 하진이 황자 변을 지지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진 자신은 천하의 군권을 쥐고, 누이인 하 황후는 궁궐의 권세를 쥐고, 조카는 천자의 위를 쥐게 되니 하 씨 일족의 영화가 무궁해지리라.
황자 협은 영제가 총애했던 왕 미인의 소생이다.
왕 미인이 하 황후에 의해 독살 당하고 홀로 된 협을 거둔 것은 동태후였다. 동 태후는 출신이 미천한 하 황후가 낳은 황자 변이 황위에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애썼고, 하 황후의 흉계로부터 황자 협을 지켰다.
십상시로 대표되는 환관세력들은 하 씨 일족이 천하를 얻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동 태후를 도와 황자 협을 지지했다.
천하의 사인들은 이름 뿐인 청류와 황실의 정통성을 지키려는 탁류 사이에서 방황했다.
문제의 발단은 하 황후의 왕 미인 독살 사건이었다.
왕 미인의 사인은 ‘짐독’에 의한 독살. 여인천하인 후궁전의 암투는 고금을 막론하고 있어왔지만 천자가 총애하는 후궁을 황후가 독살하고 이를 숨기지도 않았다는 것이 첫 번째 문제였다.
살인 자체도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이나 숨기거나 부정하지도 않는 것은 명백한 황권의 도전이었다. 유가의 도를 따르는 한조의 황후가 한 짓이라는 점을 문제 삼았다.
두 번째 문제는 독살에 사용된 독이 ‘짐독’이라는 점이다.
짐독은 짐새의 깃털에서 얻을 수 있는 극독 중의 극독으로 굳이 칼날에 묻혀 찌르거나 베지 않아도 중독시킬 수 있었다.
짐새의 깃털을 살짝 담궜다가 빼기만 해도 그 물은 사약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해독도 불가했다. 중독되면 칠공으로 피를 쏟으며 급살하고 시신은 한 겨울에도 사흘이 지나기 전에 썩어 문들어질 정도였다.
이 독이 비할 바 없이 극악한 독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천하 사인들은 자칫 하 황후가 ‘여후’의 전철을 밟지는 않을까 저어했던 것이다.
짐독이야 열국의 시절부터 전해지는 것이나 진나라가 천하 패업을 달성한 후로 엄격히 관리되었다. 진이 망하고 한이 중원의 패자가 되고, 또 고조 유방이 죽고 난 후에 황후 여치가 이 짐독으로 수많은 자들을 고혼으로 만든 일이 있었다.
고조 유방이 총애하던 비빈들과 그의 후생들은 모조리 짐독에 비명을 달리했고, 자신은 수렴청정으로 권력을 휘둘렀다. 여후가 통치하던 시절의 한나라는 유씨의 나라가 아니라 여씨의 나라라고 했을 만큼 여후의 일족이 큰 권세를 누렸다.
이 같은 전례가 있으니 천하 사인들이 황자 변을 무작정 지지할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황자 변과 협을 두고 청류와 탁류의 힘겨루기가 한창이던 그 때 영제가 붕어한 것이다.
영제의 조칙을 내세워 하진을 궁으로 불러들여 해치려 했던 계획이 발각되며 궁중에 한바탕 혈풍이 휘몰아쳤다.
천하 군권을 지닌 대장군 하진은 원소의 청을 받아들여 천하의 군벌들을 경사로 향하게 했다.
하내 태수 왕광, 전장군 동탁, 동군 태수 교모, 병주 자사 정원의 군대가 경사를 향해 진군을 시작한 것이다.
특히 호관에 주둔하고 있던 정원은 무맹도위로 영전하며 출병했고, 천정관에 당도했다.
* * *
병주 천정관.
태항산맥을 넘어 병주로 향하는 첫 관문이자 천혜의 요새로 후한을 개국한 광무제 유수의 스물여덟 맹장(운대 28장) 중 한 사람인 왕량의 자취가 남아있는 곳이기도 했다.
지금 이곳의 주인은 무맹도위 정원. 그는 병주 자사의 인수를 내려놓고 수만 정병과 함께 이곳에 주둔하고 있었다.
병주 자사 자리는 단경(段?)과 등성(鄧盛)을 이어 정원이 부임한 후로 쭉 정원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자사의 인수는 주인이 없었다.
언제나 병주 자사 자리를 지키고 있던 정원은 대장군 하진에 의해 무맹도위로 영전했다.
당금천자인 영제가 오늘내일 하는 상황에서 대장군 하진은 사주와 가까운 곳의 대 군벌 다섯을 꼽아 언제든 경성으로 진격할 수 있도록 준비시켰다.
정원 역시 그 다섯 중 하나로 호관 일대에 대군을 주둔시킨 것도 이 때문이었다. 명이 떨어지자 정원은 호관을 떠나 이곳 ‘천정관’을 거점으로 삼았다.
옛 왕량의 불패전승이 자신에게 이어지기를 바랐던 것일까? 지금 그는 일천의 오환돌기마저 휘하에 두고 있었다.
정원이 자사 자리를 비우자 ‘장의’라는 자가 병주 자사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자사로서 일을 한번 제대로 시작도 해보기 전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곽태가 이끄는 황건잔당이 흉노의 남선우 강거와 결탁해 태원과 서하 일대를 침탈했고, 이 과정에서 병주 자사 장의가 목숨을 잃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후 동탁이 병주목으로 임명되었으나 정원의 세력권인 병주에 서량군과 함께 오는 것을 두고 인수는 받았으나 부임을 미루며 조칙을 어기고 있었다.
그리하여 병주 자사 자리는 아직까지 공석이었고, 병주의 백성들은 아직도 그를 병주 자사로 여기고 있었다.
천정관 내의 한 접객실.
그곳에는 정원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한 남자가 석탁을 가운데 두고 정원과 마주보고 있었다. 회백색의 장발을 뒤로 질끈 묶은 이 호복의 장년 사내는 바로 남흉노의 선우, ‘강거’였다.
본래의 역사대로라면 이미 작년에 국인들의 반란으로 죽었어야 할 자였으나 시간을 거슬러 돌아온 여포에 의해 역사의 조각이 바꿔 끼워져 있었던 것이다.
정원은 그를 눈앞에 두고도 담담한 얼굴이었다.
정원의 후임으로 병주 자사에 부임한 장의를 죽인 자가 바로 이 남선우, 강거라는 자인데도 말이다.
“어째 등 선생께서 안 보이십니다?”
강거의 관심사는 정원의 안녕이 아니라 등고의 안녕이었다. 등고의 신산귀모가 없다면 정원은 두려운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원은 등고가 떠난 일을 굳이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일이 있어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했소.”
“그렇습니까? 아쉽군요. 꼭 뵙고 싶었는데······.”
“오늘은 아무래도 연이 닿지 않는 모양이오.”
“오늘만이 아니라 벌써 세 번째입니다. 혹 등 선생께 병고라도 있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필요한 약재가 있거든 언제든 선우정에 기별만 넣어주십시오. 등 선생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귀한 약재라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말은 번지르르 했지만 실상은 등고의 실상을 캐내려는 말이었다.
“말씀은 고마우나 그런 도움은 필요 없을 듯하오.”
“등 선생의 무탈함은 병주의 큰 복이지요. 헌데 자사께서 어인 일로 이 몸을 찾으셨습니까?”
정원은 현제 무맹도위 직을 역임하고 있으나 자사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듯했다. 물론 정원 역시도 그 말이 싫지 않았다. 언제고 경사의 일이 끝나면 돌아올 자신의 자리가 아니던가.
그래서 남선우를 충동질하여 장의를 죽이게 했던 것 역시 정원이었다.
“선우께 청이 있어 뵙자 했소.”
정원의 말에 강거가 일어나 한족처럼 읍을 하며 말했다.
“청이라니 당치 않습니다. 하교하시지요.”
“내 용건만 말씀드리겠소. 선우께서 군사를 내어 삭방의 여포를 공격해 그 수급을 가져와 주시오. 그리만 해준다면 삭주를 선우께 내어드리리다.”
정원의 말에 강거는 흠칫 놀랐다.
여포의 이름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가 정원의 수하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강거는 정원이 그런 요구를 해온 까닭을 묻지 않았다.
어차피 여포가 삭방 흉노부를 만들며 호한혼혈들과 수복 씨족을 규합하고 있으니 강거에게도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이제 강거에게 남은 일은 정원의 청을 수락하면서도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일을 찾는 것 뿐이었다.
“여포의 무위가 입신지경에 달해 세인들이 ‘무신(武神)’이라 일컬을 정도인 데다가 수하 장졸들은 하나같이 범 같은 자들이니 쉽게 볼 상대가 아닙니다.”
강거가 앓는 소리를 해대자 정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포의 무예가 일당천의 맹장이라 하나 일자무식의 아둔한 자이니 큰 전쟁을 지휘할 그릇이 되지 못하오. 게다가 그 휘하 장졸들이 범 같다고는 하나 고작 수천에 지나지 않고, 그마저도 절반은 오늘내일하는 노병들이오.”
“그렇다고는 하나 삭방에 이르기 위해서는 서하의 군벌, 엄상의 대군을 깨뜨려야 합니다.”
엄상은 서하 일대의 유명한 군벌로 마적에서 시작해 군벌을 이루고 태수자리까지 올랐던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의 가병만 오천에 달하며, 그의 명이 떨어지면 인근의 도적떼들이 그를 돕기 위해 산을 내려 올 터였다.
강거는 흉노의 남선우이기는 하나 남흉노의 모든 족속에게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는 못했다. 그의 뜻으로 움직일 수 있는 정병은 오 만에 이르나 유주와 기주의 반란군 진압을 위해 출병시키는 바람에 삼 만여 남짓이 될 뿐이었다.
그런 상황이니 서하의 군벌, 엄상의 군대와 부딪히면 피해가 적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그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약해지면 이 자는 우리를 멸할 자다. 이용가치가 없는 자들을 결코 살려두는 법이 없지.’
당당한 흉노의 남선우이기는 하나 정원의 앞에서는 그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장환 이후 사흉노중랑장이 된 장수 역시 정원의 사람이었고, 그가 전대 남선우 호징을 죽이지 않았다면 강거는 지금의 자리에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언제든 자신의 자리를 대신할 자가 있음을 알기에 정원의 요청을 쉽게 거절할 수가 없으나 그렇다고 덜컥 허락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흠······!”
강거가 침음성을 흘리며 대답을 주저하자 정원이 조건을 걸었다.
“엄상의 공격은 없을 것이오. 내 보장하겠소. 그리고 먼저 황금 일천냥과 군량미 2만석을 내어드리리다. 여포의 수급을 가져오면 그 배를 더 주겠소!”
정원의 조건이 마음에 드는지 강거 선우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이달 안에 출병하겠습니다.”
* * *
정원과 약조한 대로 남선우 강거는 병주 서하군 이석 인근에 위치한 선우정(좌국성)에서 군대를 일으켰다.
그는 황건잔당 곽태의 병력과 함께 그대로 북상하기 시작했다. 좌국성을 나설 때 강거의 병력은 수백여 기에 불과했으나 북상하며 각지의 흉노부에서 호복기사들이 합류해 삭주 땅에 들어설 때쯤엔 이만 여에 육박했다.
곽태가 이끄는 황건병 역시 그 수가 일만을 헤아리고 있었으니 여포군엔 암운이 드리우고 있었다.
대성새 인근.
그곳에는 흉노와 황건연합군이 북진하고 있다는 소식에 집결한 여포군이 진을 치고 있었다.
수년 전만해도 이천에 지나지 않던 병력이 지금은 일만에 이르렀다. 사실 여포군 본대의 병력은 사천에 지나지 않았고 나머지는 무맹종사 장양이 내어준 정양영의 병력 오천과 삭방 흉노부의 정병 일천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보고요!”
흰 천에 당예가 그려진 소기(小旗)를 든 전령 하나가 말을 달려왔다. 전령은 말에서 내리자마자 여포 앞으로 달려가 한쪽 무릎을 꿇어 예를 올렸다.
“장군! 고순 대장이 보낸 전령입니다.”
“말하라!”
“흉노병 이 만. 황건적 일 만. 도합 삼 만의 대군이 이곳으로 북진 중입니다. 뒤따르는 병력은 없다합니다.”
“언제면 이곳까지 오겠느냐?”
“반나절이면 볼 수 있습니다.”
“수고했다. 여봐라! 이 전령에게 술과 고기를 내어주고 편히 쉬게 하라!”
여포의 명이 떨어지자 전령은 두 손을 모아 들며 고개를 깊이 조아렸다.
“장군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일백인으로 이루어진 고순의 부대는 척후의 소임을 맡았다. 강거의 군대를 도처에서 살피며 시시각각 여포에게 알려왔다.
이제 싸움이 임박하자 여포는 가후와 저수를 좌우로 두고 물었다.
“흉적들이 연합하여 이곳으로 북진하고 있으니 그들을 상대할 계책이 필요하오. 두 분 선생의 고견을 듣고 싶소.”
그러자 저수가 먼저 나서서 여포의 면전에서 두 손을 모아 들며 말했다.
“적은 우리 군보다 세 배나 많습니다. 전면전을 벌인다면 피해가 많을 것입니다. 다행히 대성새의 보수가 끝났으니 이곳을 사수하며 적들이 지치기를 기다려······.”
저수는 말을 하면서도 여포의 표정을 살폈다. 역시나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수성전은 장군이 원치 않으실 테지요. 대성새를 보급기지로 군영을 이루고 인근의 항림초원을 결전장으로 삼아 일전을 벌여야 할 것입니다.”
“좋소. 가 선생의 뜻은 어떻소?”
“저 선생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남선우의 흉노병도 기병이 주력이나 우리도 이천의 당예기가 있으니 해볼만 합니다.”
북흉노의 잔당들이 장성을 넘었을 때 가후는 하마삭을 이용한 전술로 고림을 죽음의 숲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 상대는 남흉노였다. 병주의 지리를 그들 역시 빠삭하게 알고 있으니 유인책은 성공확률이 너무 희박했다.
“따로 준비한 책략을 풀어보시구려.”
여포는 가후에게 다른 계책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서량의 지낭인 그가 전면전을 지지하는 말을 하고 물러설 리 없었기 때문이다.
“장군, 이번 전투의 관건은 초반에 적 호복기사의 돌파력을 어떻게 상쇄시키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 선생의 말이 옳소. 우리 군에서 기사가 가능한 것은 이천 당예기 뿐이오. 하지만 저들은 기병 모두가 기사에 능하니 사거리를 유지한 채 화살을 쏘아댈 거요.”
“기사보단 돌파를 택할 수 있도록 우리 군의 진세를 이룰 겁니다. 자, 보십시오.”
가후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듯 진법을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