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663
662화 화라곡 전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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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량 땅. 화라곡 인근.
수천에 이르는 인마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화라곡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쫓아 다시 한 무리의 인마들이 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호복기사들. 달진이 이끄는 남흉노병단이었다. 그들이 쫓는 자들은 한인이 아니다. 그들은 강족들이다. 서량을 정벌하는데 강족과의 싸움은 피할 수 없는 것. 하지만 강족들은 서량정벌군을 상대하지 못하고 연전연패했다.
지금도 이렇게 쫓기고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연묵이 말을 재촉해 달진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휴도왕! 놈들이 화라곡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연묵, 우리는 말머리를 돌린다.”
“화라곡 안으로 도망친 자들은 어찌하고요?”
“그 곳은 가 군사가 알아서 할 것이다. 우리는 시킨 것만 하면 되는 거야.”
달진은 긴 끈을 들고 말머리를 틀었다. 그러자 바람에 나부끼는 끈을 보고 호복기사들도 말머리를 돌렸다.
호복기사들이 방향을 바꾼 것을 강족 병사들은 알지 못했다. 흙먼지가 크게 일어 시야를 가렸기 때문이다. 물론 흙먼지 때문이 아니라도 쫓기는 마당에 뒤를 돌아볼 여력 따위는 없었으리라.
호복기사들이 더 이상 쫓지 않는다는 것도 모른 채 강족 병사들은 화라곡 안으로 들어가 숨을 돌렸다.
하지만 그들을 노리는 것은 호복기사가 다가 아니다. 서량정벌군에 달진의 호복기사들만 있는 건 아니니까.
물론 화라곡에는 이번에 온 강족 병사들 말고도 강족 병력이 더 있었다.
“황 추호!”
“적리 추호!”
강족 부대를 이끄는 두 명의 추호(酋胡)가 서로를 얼싸 안았다.
이들 두 사람의 이름은 각기 적리성과 황수. 적리성은 비남종의 추호이며, 황수는 종존종의 추호였다.
추호라는 말은 한 무리의 강족을 이끄는 수장.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추장 같은 명칭이다. 오환의 대인처럼 말이다.
“황 추호, 곧 흉노병들이 화라곡 안으로 뛰어들 거요. 준비는 다 되었소?”
“물론이오. 적리 추호는 걱정하지 마시오. 흉노병들은 이곳 화라곡에 뼈를 묻게 될 거요.”
적리성이 맡은 역할은 흉노병들을 이곳 화라곡까지 유인해 오는 것이었다.
가후와 화웅이 서량정벌군을 이끌고 출정한 이후로 서량의 강족들은 큰 수난을 겪었다.
하기야 서량제일용장이라 불렸던 화웅이 필두가 되었고, 달진이 그의 뒤를 받쳐 주었으며, 군략은 가후에게 전권이 있었다. 강족의 패배는 당연한 것이었으리라.
그래서 강족의 무리 몇몇이 모여 흉노병을 치기로 했다. 이곳 화라곡에는 황수의 병마를 포함해 무려 일만이 넘는 서강 용사들이 집결했다.
“적리 추호. 그런데 아직 흉노 놈들이 화라곡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있소. 혹시 이곳에 우리의 매복이 있음을 눈치챈 거 아니오?”
“그럴 리가 없소. 흉노 놈들은 줄곧 내 뒤만 쫓아 왔단 말이오.”
“그런데 왜······?”
황수와 적리성은 엄습해오는 불길한 예감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 * *
“공격하라! 활을 쏘고, 돌을 굴려라! 통나무에 불을 붙여 굴려라!”
갑작스레 절벽 위에서 화살이 쏟아지고, 돌이 굴러 떨어졌다.
“매복이다! 궁시와 낙석에 대비하라!”
황수는 칼을 뽑아들고 수하병졸들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화살과 낙석 때문에 모두들 우왕좌왕이었다.
투드득!
방패에 꽂히는 궁시나 사람 몸뚱아리에 꽂히는 궁시나 소리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명소리가 줄을 잇고 궁시와 낙석에 당한 자들로 시체들이 넘쳐났다.
“황 추호!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오?”
“내가 묻고 싶은 말이오.”
“화라곡은 완전히 우리 땅이라 여겼는데 어째서 적들이 절벽 위에 있냔 말이오!”
“나도 모르오! 분명 저 위에는 우리 종존종 병사들이 있어야 하는데······!”
황수와 적리성은 지금의 상황이 이해되질 않았다. 이곳 화라곡은 흉노병을 집어삼킬 거대한 덫이 되어야만 했다. 자신들이 아니라······.
“적리 추호! 내가 수하들을 데리고 직접 올라가 보리다. 적리 추호는 화라곡을 빠져나가시오.”
“밖에는 흉노병들이 있을 텐데 어찌 나간단 말이오?”
“내가 절벽 위를 제압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나가서 흉노병과 싸우는 게 낫소.”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 연후에 황수는 병마를 이끌고 곧장 절벽 위로 향했다. 하지만 길이 너무 가파르기에 쉽게 오르기 힘들었다.
평상시에도 오가기 쉽지 않은 길을 화살비가 쏟아지는 중에 나아가기에는 무리. 하지만 이 방법 말고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화라곡 밖으로 나가면 완만한 경사로가 있지만 밖에는 흉노병들이 있을 테니까.
“올라가라! 적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물러서지 마라!”
황수는 병졸들을 재촉해 계속해서 밀어붙였다. 날아드는 궁시의 수로 미루어 짐작해 볼 때 절벽 위의 적병들은 그리 많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개미 떼처럼 밀려오는 강족 병사들을 내려다보며 전황을 관전하는 자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가후였다.
그는 화웅에게 명했다.
“화웅 장군, 이제 출전하셔야겠소.”
그러자 화웅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월도를 높이 치켜들고서 소리쳤다.
“나를 따르라!”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화웅은 거산자를 타고 절벽에서 몸을 던지듯 아래로 치달렸다.
준비해 둔 화살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기에 병사들은 활 대신 창칼로 바꿔들고 화웅을 따라 미끄러지듯 아래로 향했다.
절벽을 기어오르던 강족 병사들 중 선두의 몇몇은 순간 그늘이 지는 것을 느꼈다. 구름이 해를 가렸기 때문일까? 아니다. 화웅을 등에 태운 거산자가 그들을 덮친 것이다.
“으라야~!”
호쾌한 기합성과 함께 화웅의 월도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서슬 퍼런 월도의 칼날이 그리는 궤적을 따라 적병들의 사지가 토막 나고 그들의 피가 화라곡을 적셨다.
몸뚱아리가 동강나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며 강족 병사들은 기겁을 했다. 방패로 막은 자 방패와 함께 동강이 나 버리고, 거산자의 말발굽에 짓밟혀 짓이겨졌다.
화웅의 뒤를 따라 강족 병사들을 도륙 내는 자들 역시 두려움을 몰랐다.
그들은 장양이 기른 병주병들로 이적들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그들이야말로 이적들을 상대하는 살인부대. 그 중에서도 경험 많은 자들을 앞세웠으니 서강병들이 기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병주병들의 수가 적은 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필두는 화웅이 있었으니까.
* * *
적리성은 황수의 장졸들이 화웅군에 도륙나는 것을 보자 수하들을 집결시켰다.
“화라곡을 빠져나간다!”
적리성의 말에 그의 아들 변개가 반기를 들었다.
“그리 하시면 안 됩니다, 추호! 밖에는 흉노병들이 있을 텐데 어찌 화라곡을 떠난단 말입니까?”
장남 변개의 말에 둘째 곡단도 동조했다.
“형님 말이 옳습니다. 추호, 적병의 수가 많지 않으니 저들을 물리치고 화라곡을 탈환해야 합니다.”
이들이 화라곡에 집착하는 것은 당연했다. 화라곡이야말로 전략적 요충지. 그 가치는 이곳에서 싸우다 죽은 한인과 서강 사람들의 숫자가 증명해 주는 것이다.
강족에게 이곳 화라곡이 전략적으로만 가치 있는 곳은 아니다. 그들에게 있어 화라곡은 신성한 땅.
그들의 조상인 무익원검이 여락종의 추호가 된 곳. 그러니까 강족이 시작된 곳이 바로 이곳 화라곡인 것이다.
“이렇게 얘기할 시간이 없다. 흉노 놈들이 무섭기는 해도 우리는 말을 타고 있으니 추격을 뿌리칠 수 있다. 약간의 희생이 따르기는 하겠지만······.”
적리성의 판단은 정확했다.
이미 패색이 짙은 곳에서 더 싸워봐야 좋을 게 없었다. 차라리 흉노병들을 뚫고 달아나는 편이 훨씬 살아남을 가망이 높은 방법이었다.
“추호로서 명이다! 나를 따르라!”
적리성의 비남종군이 화라곡을 탈출했다. 하지만 입구에서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흙먼지를 뚫고 호복기사들이 궁격을 가해 왔기 때문이다.
“응사하라!”
적리성의 부대는 흙먼지 속으로 뛰어들며 쫓아오는 흉노병들을 향해 시위를 당겼다. 흉노병들도 곧장 흙먼지 속으로 달렸지만 그 속에서 말머리를 틀었다.
강족 기병들은 왜 아직도 화라곡 밖에 흙먼지가 잦아들지 않고 있었는지를 알아야만 했다. 하지만 다들 도망치기에 바빠 이 같은 사실을 의심하지 못했다.
호복기사들은 곧장 화라곡 안으로 진입했다. 일만에 이르는 서강병을 상대하기에 화웅의 군세는 병력이 적었기에 그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삐이이익!
명적 소리가 협곡 안을 쉴 새 없이 부딪혔다. 명적을 이용해 궁격을 가할 방향을 지시하려던 달진의 뜻이 물거품이 되었다. 소리가 절벽에 부딪혀 방향을 알 수 없게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달진은 긴 끈을 묶은 화살을 쏘는 것으로 명적을 대신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호복기사들이 정확하게 달진이 원하는 방면으로 궁격을 가했다.
우왕좌왕하던 서강병들이 무더기로 쓰러지고, 그 사이를 비집고 호복기사들의 돌파가 시작되었다.
* * *
수천이나 되는 종존종과 비남종 병사들이 손이 묶인 채 무릎 꿇려져 있었다.
가후는 그들을 단애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곁으로 달진이 다가왔다. 그는 손뼉을 연달아 쳐서 인기척을 냈다. 그가 손뼉을 치는 것. 이는 가후를 칭찬하는 것이다.
“선생, 정말 대단하시오. 선생에게는 앞날을 내다보는 재주가 있소?”
달진은 가후의 군략을 떠올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비남종의 군세가 별다른 교전 없이 도주할 거라는 것부터, 서강병들이 화라곡에 매복을 준비할 것까지 그의 예견은 하나도 빗나가지 않았다.
가후는 정확한 예측을 바탕으로 적들을 농락하고, 매복을 치기 위한 매복을 둔 것까지 무엇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군략을 냈다.
그러니 달진이 보기에 가후가 신인으로 보일 수밖에······.
하지만 가후는 손사래를 쳤다.
“앞날을 내다보지는 못하오. 다만 어찌될지 예상은 해 볼 수 있지. 궁금한 게 많을 거요.”
“선생, 궁금한 게 많지만 복잡한 건 딱 질색이라서 말이오. 아아! 나도 군사 선생 같은 현사가 곁에 있다면 천하를 넘볼 수 있을 텐데······.”
“굉장히 위험한 발언이올시다.”
“천하를 노린다는 것 말이오?”
가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 한 사람의 힘은 너무도 미약하오. 여 장군의 곁에 수많은 별들이 모여드는데도 아직 우리의 세력은 너무 빈약하오.”
“내 곁에는 별이 모이지 않을 것이니 천하를 넘보지 말라는 말로 들리는 구려.”
“잘 알아들으셨소. 그리고 말은 항시 조심해야 하오. 배신자로 몰려 목이 장대 높이 걸리기 싫다면 말이오.”
“어이쿠! 이 목을 간수 잘 하려면 농담도 말아야겠구려. 무서운 얘기는 그만하고 주제를 한 번 바꿔 봅시다.”
달진의 시선이 포로들을 향했다. 그것만으로도 가후는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저들을 어찌 하실 거요?”
달진이 묻자 가후는 대답 대신 백우선을 든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자 절벽 아래에 있던 화웅이 병졸들에게 손짓했다.
창을 든 수백에 이르는 병사들이 일제히 포로들의 등짝에 창날을 쑤셔 박았다.
“다음!”
화웅의 명에 시체들이 치워지고 그 자리에 다른 포로들이 꿇어앉혀졌다.
가후는 그 모습을 보고 절벽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경사진 비탈길을 미봉의 도움을 받아가며 내려가는 그를 따라 달진도 움직였다.
“선생, 포로들을 왜 처형하는 거요? 노역을 시키면 좋잖소?”
“휴도왕은 서강에 대해 아는 바가 있소?”
달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야 강족과는 엮일 일이 없었지. 하지만 그건 알고 있소. 강족도 우리 흉노처럼 한인과 오랜 세월 싸워 왔다는 거 말이오.”
달진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음······! 생각해 보니 강족 포로들을 처형하는 것은 선생이 한인이기 때문인 것 같소.”
이에 가후는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으로 달진을 바라보았다.
“복수라도 하는 것 같소?”
“아니오?”
“인간의 역사는 곧 투쟁의 역사요. 사람이 모인 곳에 다툼이 없을 리 없지. 누가 얼마나 죽었든 나와는 상관없소. 나는 여 장군의 패업을 돕기 위해 움직일 뿐이오.”
“강족을 말살시키는 것이 여 장군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길 바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