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773
772화 풍운의 시작은 여포의 붓끝에서부터 (2) >
하간왕이 보낸 서찰은 사실 그의 유서였다.
“부왕…….”
유 부인의 목소리에는 아비에 대한 그리움과 걱정이 한가득 묻어나고 있었다.
유서의 내용을 보면 그럴 만도 했다.
왜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여포의 땅을 치려고 했는지에 대한 후회가 가득한 글로 서두가 장식되어 있었다.
이어지는 얘기들은 지금 자신이 처한 처지에 관한 것이었다.
여포의 포로가 되어 고신을 받은 것과 더불어 죽는 것보다 못한 치욕적인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얘기. 그 대목부터 유 부인은 아주 그냥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이제 다시 참형을 당할 날을 기다리며 왕부의 뒷일과 함께 가솔들을 부탁하는 얘기로 전서는 마무리되고 있었다.
‘이제는 비빌 언덕이 없겠구나!’
그녀의 눈물이 비단 육친의 정리 때문만은 아닐 터.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고 했던가. 하간왕과 하간왕부는 그녀와 아들 원상의 미래를 밝혀줄 두 개의 등불과도 같았다.
그런데 하간왕도 이제는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하간왕부도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운명에 처하지 않았던가.
앞을 밝혀줄 두 개의 등불을 모두 잃는다면 유 부인과 원상 모자는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떠돌다 끝장이 날 게 뻔했다.
유 부인은 무력감에 몸서리치며 다시 이불에 머리를 파묻고 곡을 해댔다.
한 번 크게 울고 나니 그나마 속도 조금 후련해진 것 같고 머리도 맑아졌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했다. 아직 부왕께서 귀천하신 것도 아니고, 왕부가 무너진 것도 아니다. 나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지. 둘 중 하나만 무사해도 훗날을 기약할 수 있을 텐데 어찌 이리 나약한 마음을 떨쳐내질 못한단 말이냐?’
그녀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침상에 바로 앉았다.
“여봐라! 어서 진 선생을 불러…….”
유 부인은 진의록을 불러오라고 하려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니다. 내 직접 가볼 것이니 준비하라.”
그리 말하고선 유 부인은 동경 앞에 앉았다.
아주 그냥 대성통곡을 하는 바람에 얼굴도 엉망, 머리도 헝클어질대로 헝클어져 있었다.
그녀는 화장을 고치고 머리도, 옷매무새도 다시 만졌다. 그리고는 직접 걸음을 했다.
* * *
진의록의 처소.
유 부인이 직접 찾아오자 진의록은 맨발로 나가 맞이했다.
“대부인, 어찌 이런 누추한 곳까지 걸음하셨습니까?”
진의록의 말에 유 부인은 냉소를 흘렸다.
“걸음조차 못할 정도라더니…….”
하지만 유 부인은 말끝을 흐렸다. 진의록의 몰골을 보았기 때문이다.
‘마음고생이 심하긴 심했던 모양이로구나. 하긴……. 그럴 만도 했겠지.’
유 부인은 진의록을 마냥 탓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진의록은 그런 그녀의 마음을 꿰뚫어보기라도 하듯 내심 쾌재를 불렀다.
‘사흘 밤낮을 꼬박 지새운 보람이 있구나!’
진의록이 춘화에 미쳐서 사흘 밤을 뜬 눈으로 보낸 것은 아니다. 어떻게든 초췌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는데 긴긴 밤을 무료한 시간을 보낼 만한 것이 그것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수고에 대한 대가를 지금 취하는 것이다.
“대부인, 소생을 부디 용서하지 마십시오.”
“흥! 궤변이로다. 용서를 빌려면 빌 것이고, 하지 않으려면 말도 꺼내지 말 것이지 그 무슨 헛소리냐?”
“대부인을 뵐 면목이 없습니다.”
“알기는 아는구나.”
진의록의 열연은 이제 시작이었다.
그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릎의 용처를 찾았다. 유 부인 앞에 넙죽 꿇어앉아서는 눈물 없이 볼 수 없게 만들었다.
“소생은 죽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대부인이나 원 공이 찾으셔서 가도 죽고, 여포에게 가도 죽으니 차라리 거짓으로 칭병하여 화를 피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제와 털어놓는 까닭이 무엇이냐?”
“대부인께서 직접 걸음을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어찌 대부인 같은 고귀한 분을 앞에 두고 어찌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유 부인은 역시 이 정도로는 넘어갈 위인이 아니다. 이런 말이야 수도 없이 들어왔으니까 당연한 얘기다.
“남을 시켜 거짓을 말하게 할 수는 있어도 대부인의 그 한없이 맑고 투명한 눈과 마주보고 있는데 차마 입에서 거짓말이 나오질 않습니다.”
참으로 낯간지러운 말이다.
하지만 유 부인은 진의록에게서 진정성을 느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을 쏟아내는 진의록에서 진정성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어째서 유 부인은 진의록에게서 진심을 보았을까?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다른 건 다 몰라도 유 부인에 대한 진의록의 연심만큼은 진짜니까.
“지금 본녀의 환심을 사려는 모양인데……. 쯧쯧쯧!”
유 부인은 혀를 찼다.
이제 자신의 처지는 전과는 딴판이 되었다. 여포에게 아비가 붙잡혀 포로 신세가 되었고, 여포의 군세가 지금 자신의 친정이 있는 악성 땅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제와 자신의 환심을 사봐야 어디 쓸 데가 없다는 얘기다.
“환심을 살 수 있다면 사고 싶습니다.”
“네가 그리 어리석은 자가 아님을 알고 있는데 본녀가 잘못 알고 있었더냐?”
진의록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지금 대부인 마님의 처지는 그야말로 끈 떨어진 연 신세입니다. 권력에 빌붙을 생각이었다면 대부인 마님이 아니라 일 공자께 가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야 옳겠지요.”
그의 말이 더 씁쓸한 쪽은 당연히 유 부인이다. 하지만 진의록의 말이 하나 틀린 게 없었다.
“그래, 차라리 원담에게 가서 아부를 할 것이지 내게 아첨하는 까닭이 무엇이냐?”
유 부인이 묻자 진의록은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유세를 해댔다.
“대부인 마님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데 어찌 모른 척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지금 네게 어떤 청을 넣을 줄 알면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알고 있습니다. 하간왕을 구명하는데 나서달라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래, 본녀의 말은 지금 네게 죽을 자리를 찾아가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 * *
진의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생의 입장에서는 더 없이 야속한 말씀입니다. 하나 소생은 대부인 마님을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려 합니다.”
“네가 정녕 나서주겠단 말이냐?”
유 부인은 깜짝 놀랐다.
사실 이곳에 걸음을 한 것도 어떤 확신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진의록에게 한 번 기대를 걸어본 것일 뿐이다.
그런데 진의록이 대뜸 청을 받아들이겠다고 하니 유 부인의 반응이 이런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가도 죽고, 안 가도 죽으니 가는 길에 내빼려는 것은 아니냐?”
유 부인은 진의록의 진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제 발로 사지에 가겠다니 누가 의심치 않을쏘냐.
“그러려면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나 소생은 이익만을 좇는 소인배가 아닙니다. 애당초 원 공의 후계를 이을 가능성이 가장 희박한 이 공자를 따른 것만 봐도 예상이 되지 않으십니까?”
“장사치라더니 투자가 왜 그 모양일꼬?”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알고 시작한 일이니까요. 이 공자의 처지가 하도 딱하여 도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소생은 대부인을 돕고자 합니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제 본녀는 어떻게 해도 예전 같을 수가 없다.”
유 부인도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다.
하간왕군이 여포에게 대패한 그 시점에 이미 아들 원상이 원소의 후계자가 되는 일은 물 건너간 것과 같았다.
하간왕이 살아 돌아온다고 한들 살아생전에 다시 십만 군세를 모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기주 내에서의 영향력도 예전만 못하리라.
그로 인해 원상을 지지하는 기주파의 세도 줄어들 터. 이제 그들도 각자도생을 위해 뿔뿔이 흩어질 일만 남았다.
상황이 이런데 유 부인을 돕는다고 한들 진의록이 무엇을 얻을 수 있으랴.
“장부가 한 여인을 사모하기 때문이라면 믿으시겠습니까? 소생 진의록, 대부인을 뵙고 연심을 품었습니다.”
진의록의 갑작스런 고백에 유 부인은 코웃음을 쳤다.
“흐흐흥! 내 처지가 아무리 궁벽하다하나 어찌 네놈 같은 자에게 희롱당할 쏘냐!”
“희롱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목이 달아날 대죄임을 압니다. 하나 이는 스스로를 채찍질하여 궁지로 모는 것임을 알아주십시오.”
“당최 알 수 없는 말이로다.”
“어차피 가면 십중팔구는 살아서 돌아오지 못합니다.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교섭의 결과가 마땅찮다면 이곳에서 목이 달아나겠지요. 그래서 가기 싫습니다. 그래서 꼭 가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었습니다.”
유 부인은 진의록의 언행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상공은 나, 유영이라는 한 여자를 원한 것이 아니었다. 하간왕의 딸이자 한실의 공주를 원한 것이었지.’
실제로 유 부인은 원상을 잉태한 후로 단 한 번도 원소에게 안기지 않았다. 원소가 찾지 않았을 뿐더러 그녀 스스로도 고개를 숙이고 교태를 부리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남녀상열지사는 다른 세상의 일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그녀는 처음으로 고백을 받은 셈이 되는 것이다. 그것도 서른이 훨씬 넘은 이 시점에 말이다.
인생 오십 년에 절반은 진작 지났다. 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온 그녀에게 진의록의 고백은 심경의 커다란 변화를 낳고 있었다.
* * *
“소생은 스스로를 탓하고 또 탓했습니다. 나는 왜 원 공 같은 영웅이 되지 못했을까? 아니, 원 공보다 먼저 대부인을 만나지 못했을까? 무엇하나 안타깝지 않은 일이 없었습니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이미 머리 굵은 아들이 있는 내가 아니냐? 볼 게 뭐가 있다고……?”
“소생은 천하가 좁다하고 주유했던 사람입니다. 하나 세상 천지를 다 돌아보아도 대부인처럼 뛰어난 미색을 지닌 여인은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진의록은 의양성에서 진심을 드러내보인 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한 마디 한 마디에 진심이 듬뿍 들어 있었다.
“나는 이미 원 가의 여인이다. 아무리 아비를 구명하기를 원한다고 해도 외간남자와 사통해 정절을 더럽힐 생각이 없다.”
유 부인은 진의록이 자신의 몸을 원한다고 생각했다. 예전 같으면 당장에 사람을 불러다가 목을 베었을 테지만 지금은 아비의 명줄이 걸려 있어 그러지 못했다.
“소생을 그런 소인배로 보지 마십시오. 장부가 사랑에 빠지면 연인을 위해 모든 것을 걸 수 있습니다.”
“그런 달콤한 말로 얼마나 많은 여인들을 농락했는지 능히 짐작이 간다.”
“소생이 진심이라는 것을 보여드릴 것입니다. 세상 모두에게 어리석다 손가락질을 받는 한이 있어도 대부인을 위해 여포를 만나 담판을 지으러 가겠습니다.”
진의록은 머리를 다시 묶어 속발관을 고쳐 쓰고는 겉옷을 껴입다가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다.
“이…… 이봐!”
유 부인은 덜컥 겁이 났다.
죄를 지은 자에게 죽음을 명해본 적은 있지만 실제로 참수당하는 것을 본 적은 없었다.
곱게 자란 그녀가 험한 것을 볼 일이 있었을 리 없다. 그런데 눈앞에서 사람이 이렇게 그대로 뒤로 넘어가는 모습을 보았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으랴.
그녀는 진의록이 죽었나 싶어 조심스레 그의 코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하지만 그의 숨소리를 확인하기도 전에 그가 코를 골아댔다.
그제야 유 부인의 입가에도 잔잔한 미소가 걸렸다.
‘진의록, 이 자는 제법 재미난 사내로구나.’
그녀는 진의록이 잠들어버렸다는 걸 확인하고는 천천히 그의 방을 빠져 나왔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도 자신의 처소로 돌아오고 나서도 그녀의 머릿속에는 진의록이라는 존재가 들어차 빠져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머릿속이 반반으로 나뉘어 격렬한 논쟁을 벌이는 듯했다.
한쪽에선 한실 자손들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의심이 불을 붙었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선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겠다는 어리석은 사내에 대한 호기심과 고마움이 의심과 척을 졌다.
‘그래, 일단은 진 선생을 포섭했지만 다른 이들에게도 부탁을 해봐야지. 한 사람만 믿고 있다가 실패하면 낭패도 그런 낭패가 또 있으랴.’
진의록의 마음은 고마웠다. 그의 능력도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아무리 진의록이 나선다고 해도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나마 진의록이 나서면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유 부인은 다른 수가 있나 살펴보려는 것이다. 조금은 입장이 다르지만 원소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마저도 진의록의 귀계에 포함되는 것이었다. 아니 이것을 위해서 진의록이 그간의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모두의 마음속에 불신의 씨앗을 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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